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글을 읽을까?’ 나의 글쓰기가 유효할까. 유튜브와 릴스의 시대, 대 도파민의 시대에도 글을 소비할까. 약간 센치한 척 글을 써봤지만 사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웹사이트 통계를 통해 여전히 많은 사람이 정보를 얻기 위해 접속한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 덕분에 요즘은 더 강하게 확신하고 있다. 텍스트를 고집하는 사람들의 절대 수치는 줄었지만, 좋은 글을 읽고 싶은 열망은 커졌다고.
디에디트가 7년 만에 리뉴얼을 했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을 거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몇 년 전부터 리뉴얼을 하고 싶었다. 디에디트 에디터이기 이전에 독자였고, 불편한 점이 눈에 보일 정도로 있었으니까. 몇 가지만 고치면 될 줄 알았다. 신나고 낭만적인 프로젝트가 될 줄 알았다. 의자와 테이블 위치를 옮기고, 예쁜 무늬의 벽지로 도배하는 정도로 예상했다. 그땐 미처 몰랐다. 집을 부수고, 다시 짓는 프로젝트가 될 거라는 걸.
혹시, 불편한 점 있으세요?
개편 방향성이 잡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우선은 충성도 높은 구독자의 의견을 수렴하기로 해다. 5월 26일 까탈로그를 통해 구독자들에게 설문 조사를 했다. 총 18개의 설문 문항에 대해 449개의 답변을 받았다. 길게는 20분 정도는 걸릴 설문조사다. 보통 이런 설문 조사를 할 때는 스타벅스 쿠폰을 주는데… 우리 조사에는 스타벅스 쿠폰은 물론이요, 메가커피 쿠폰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게도 수백 명이 답변을 남겨놓았다. 힘이 되었던 글 몇 개만 발췌하자면,
“곧 7주년이 다가오는데 7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테크 및 다양한 정보를 소개해 주시고 이것저것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지만 디에디트만의 Color와 Identity를 그대로 잘 유지해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개인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있듯이 좋아하는 취향의 글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디에디트의 글은 선을 넘지 않는 위트와 유머, 그리고 솔직함이 가미된 읽기 불편하지 않은 글이라 좋아하는 독자입니다. 아쉬웠던 점은 딱히 없고, 지금처럼 유익한 내용을 담은 웹진을 오래도록 운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글보다는 이미지가, 이미지보다는 영상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줄어들고 있죠. 그래서 그럴까요, 얼마 없는 글들이 점점 날카로워지네요. 디에디트에서 쓴 글들은 단어와 단어를 오랫동안 고민하며 썼다는 게 느껴집니다. 물론 사진이나 영상에서도 디에디트가 쏟은 시간과 노력이 보이지만 역시 여러 분야를 다루는 웹사이트 글이 저는 더 좋습니다. 항상 더 나은 방향을 위해, 독자들을 위해 고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글이 좋고 재밌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취향이 있는 것이고 관심 분야를 더 많이 보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까탈로그를 보면서 내가 관심 없었던 분야를 알게 되기도 해서 좋았고, 관심 있는 분야는 글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앞으로도 다채로운 디에디트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다렸다는 듯이 장문의 글을 써준 구독자를 보며 다짐했다. 올해 안에 꼭 리뉴얼을 마치자. 피드백을 적어준 게 감사해서가 아니다. 그동안 불편한 점이 많았을 텐데 참고 방문해 준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서다. 보완하면 좋을 점을 분명하게 적어준 구독자도 많았다. 적지 않은 분들이 사용성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웹사이트가 전체적으로 살짝 무거운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메인화면에서 기사들의 이미지가 큰 건 좋은데, 과거의 기사를 찾으려고 내비게이팅할때는 오히려 불편합니다.
“모바일로 볼 때는 반응형이라 괜찮은데, 전 업무 때문에 컴퓨터로 보는 시간이 많아, 만약 이렇게 사이트만 있고 앱이나 알림이 없다면 컴퓨터를 통해 접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기엔 너무 풀 스크린이라 모든 기사들이 한눈에 들어오질 않는 것 같음 약간 검은색 레이어가 위쪽에 깔려있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가독성이 떨어지는 큰 글자와 큰 사진들이 화면에 꽉 차 있으니 집중도가 떨어진다. 기사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각 문단이 끝나는 곳 (한 기사의 섹션)마다 구분 띄어쓰기가 동일하게 한 칸이라 얇은 줄만으론 섹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것 같아 그런 사소한 것들이 가독성 부분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띄우거나 명확하게 단 구분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사진과 글 부분도 뭔가 간격이 좀 좁은 건지 사진이 너무 커서 그런 건지 컴퓨터에선 글자가 뚜렷하게 들어오지 않아 가독성이 좀 떨어집니다. 모바일 기준에선 좋아용“
“우측 바가 어떤 기준으로 나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브랜드’에 왜 뉴스레터랑 어바웃 디에디트가 함께 있는지, ‘어차피 일할 거라면’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PC보다는 모바일로 접근하는 경우가 대다수일 텐데 실제 기사의 양은 많지 않으나 처음에는 스크롤의 압박이 있을 수 있을듯함. 나는 40대라 텍스트 베이스에 익숙하지만 어린 친구들은 아닐 수도.”
“처음 들어갔을 때 어디부터 클릭해야 할지 약간 당황스러웠다. 메인 페이지가 확실해지고 메뉴가 좀 더 눈에 띄었으면 좋겠다.”
디자인 콘셉트: 디지털로 구현한 종이잡지
디에디트는 하루 한 편의 기사를 발행한다. 수십 개의 단신을 만들어내는 여러 미디어에 비하면 적은 수다. 이유가 있다. 우리는 모든 트렌드를 전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엔 정보가 너무 많고, 신경 쓸 게 많은 바쁘다 바빠 현대인은 모든 트렌드를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디에디트는 트렌드가 아니라 ‘취향’에 다룬다. 트렌드와 취향은 언뜻 보기엔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우연과 운명처럼 극과 극에 있는 말이다. 트렌드가 거대한 물살을 쫓는 행위라면, 취향은 거친 물살에 가려진 바닷속 진주를 찾는 일이다.
디에디트가 지향하는 것이 솔직하게 쓴 리뷰와 취향 가득한 큐레이션이라면 그건 종이 잡지가 지금껏 해 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종이 잡지처럼 만들어야겠는데?’
그래서 리뉴얼을 통해 디에디트는 쉽게 휘발되지 않는 글, 필력 좋은 에디터의 글을 진득하게 읽을 수 있는 매체라는 걸 보여주기로 했다. ‘디지털 환경에서 경험하는 종이 잡지’. 이 콘셉트를 잡고 하나씩 진행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살짝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업무가 많겠는걸?). 종이 잡지를 경험하게 하려면 종이 잡지의 어떤 특성을 가져올 것인지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내부적으로 정리한 건 아래와 같다.
첫 번째, 잡지 한 권을 펼친 것처럼 광활하게 펼쳐진 레이아웃. 이미지는 한눈에 크게 들어와야 한다.
두 번째, 의외성. 페이지를 넘겼을 때 다음 장에서는 어떻게 디자인된 페이지가 나올지 모른다. 이런 재미를 웹에서 구현하고 싶었다.
아래는 초기 레이아웃이다. 최종 버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디테일을 뜯어보면 완전 다르다. 일단 웹사이트로 구현하지 않은 단순 이미지이기 때문에 똑같이 구현하는 건 불가능했다. 폰트 크기, 이미지 비율, 필자 프로필 이미지의 위치가 조금씩 바뀔 때마다 묘하게 촌스러워지고 어색해 보였다. 오와 열을 맞추고 크기를 조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이 작업은 기사 작성 업무가 끝난 저녁에 할 수 있었다. 저녁 없는 삶이 계속되었다.
마우스 스크롤링을 했을 땐 리듬감을 넣고 싶었다. 이 애니메이션 효과를 글로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웹사이트 첫 화면에서 스크롤링을 해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거다. 한쪽의 큰 이미지는 고정된 채, 다른 한쪽의 작은 이미지들은 스크롤링 되다가 다음 단으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종이 한 페이지를 넘기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이런 효과 덕분에 종이 잡지처럼 페이지와 페이지를 나누는 느낌을 살릴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배경 컬러. 페이지마다 다르게 디자인된 종이 잡지의 아름다움을 구현하고 싶었다. 개발자에게 요청하지 않아도 에디터가 손쉽게 컬러를 바꿀 수 있도록 개발했다. 웹사이트 홈 화면, 기사 상세 페이지 두 페이지에서 모두 컬러 변경이 가능하다. 현재 홈 화면은 네온, 화이트 두 가지 컬러를 번갈아 설정해 놓았는데, 크리스마스에는 초록색/빨간색으로, 벚꽃이 피는 4월에는 인디언 핑크로 바꿔도 예쁘지 않을까.
우측 상단의 메뉴 버튼을 누르면 오른쪽에서부터 창이 왼쪽으로 슬라이드 되어 등장한다. 이 디자인 역시 종이 잡지라는 콘셉트를 참고한 애니메이션 효과다. 종이 잡지 앞쪽 페이지를 보면 광고와 편집장의 말이 나오고 그다음에 목차가 나타나는데, 원하는 기사를 찾기 위해서는 목차 페이지를 자주 펼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목차의 기능이 웹진에서는 메뉴 버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페이지에서도 메뉴 버튼을 누르면 잡지를 펼친 것처럼 화면 절반을 가리며 등장하도록 디자인했다.
홈 화면만큼이나 중요한 곳,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곳이 있다. 바로 기사 상세 페이지. 가장 오래 체류할 페이지니까 멋은 덜 부리고 가독성을 신경 썼다.
일단 왼쪽에 이미지, 오른쪽에 기사 제목을 배치해서 ‘종이 잡지’라는 디자인 DNA가 유지되도록 만들었다. 로고는 왼쪽 이미지 위에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두어서 마치 잡지 커버 같은 느낌을 살렸다.
이 페이지에서 스크롤링을 하면 이미지와 기사 제목은 페이드아웃 되며 기사 본문이 그 위를 덮어쓰듯 올라오는데, 이것 역시 페이지를 넘긴 것 같은 구분감을 주기 위한 효과다. 위에서도 한 차례 언급했지만 상세 페이지에서도 배경 컬러를 변경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 위 기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비프>에 대한 리뷰이기 때문에 일부러 넷플릭스 레드 컬러를 적용했다.
본문에서는 가독성을 위해 흰색이 아니라 미색을 사용했다. 미색을 사용한 덕분에 종이 잡지 같은 느낌이 난다.
그리고 현재도 고민 중인 게 있다. 댓글 시스템에 대해서는 조금 고민이 있었다. 여러 기능이 들어가면 사이트가 느려지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고, 반드시 필요한 기능인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물론 댓글 기능이 있으면 독자들의 피드백을 빠르게 확인할 수는 있지만 얼마나 활성화될지, 괜히 사이트가 느려지는 건 아닐지가 고민이었다. 웹사이트 리뉴얼은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니 조금 더 고민해봐도 좋을 것 같다.
특집 기사들: Special issue
개편에 맞춰 준비한 스페셜 콘텐츠도 중요했다. 껍데기가 전부는 아니니까. 아래는 그 리스트다.
- 배우 장나라 인터뷰 by 에디터B
- 애플워치 VS 아날로그 워치 by 에디터H, 에디터 정우성
- 향이 좋은 핸드크림 추천 by 전아론
- 소설가 김중혁의 에세이 by 김중혁
- 다이소 달항아리 화보 by 에디터M
- 명동 길거리 음식 by 에디터 유정
- 셰프 장준우의 와인 추천 에세이 by 장준우
- 뉴발란스 브랜드 스토리 by 강현모
그동안 디에디트는 주로 내부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했지만, 특집 콘텐츠인 만큼 포토그래퍼를 섭외해 외부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디에디트 웹사이트의 첫 셀럽 인터뷰(장나라 편), 다이소 달항아리, 핸드크림 추천, 뉴발란스 신발 추천 기사는 그렇게 탄생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진행한 장나라 인터뷰와 다이소 달항아리 기사가 인상 깊었다. 매력적인 기획의 힘을 느낀 기사는 다이소 달항아리였고, 장나라 인터뷰는 디에디트를 모르던 사람에게 한국에 이렇게 멋진 매거진이 존재한다는 걸 알릴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 장준우 셰프의 와인 추천 기사, 정우성 에디터와 에디터H가 대결 형식으로 기사를 쓴 기사도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을 만큼 잘 나왔다. 아,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김중혁 작가가 직접 써준 애플 덕후 간증기는 2023년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거다.
에디터 소개 페이지: Editors
디에디트는 에디터를 전면에 드러내는 매체다. 그래서 ‘Editors’라는 페이지를 만들었다. 이 페이지에서는 디에디트에서 활동하는 에디터가 어떤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만약 디에디트 객원 에디터가 되고 싶다면 yes@the-edit.co.kr, 디에디트 객원 에디터와 협업하고 싶다면 hello@the-edit.co.kr 로 문의하면 된다. 경력이 부족해도 문이 열려 있으니 언제든 문을 두드려주길.
독자들에게 바치는 보고서는 여기까지다. 힘들었다고 징징대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지금은 다 잊었고, 뿌듯함만 남았다. 뿌듯함의 결과, 디에디트가 국내 최대의 디지털산업계 행사 ‘앤어워드 2023’ 저널/미디어 분야 Winner로 선정되었다. 업데이트해 주길 바라는 기능이나 개선점이 있다면 [여기]에 적어주면 된다. 보고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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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