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글 쓰고 향 만드는 사람 전아론이다. 매년 이맘때에 사람들이 하나쯤 구매하게 되는 제품이 있다. 그건 다름 아닌 핸드크림 혹은 핸드 밤! 핸드 케어 제품이 손의 건조함만 달래주면 됐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수분감, 흡수 속도, 끈적임을 비롯한 제형과 디자인 등을 두루 고려한 다양한 제품이 나오고 있어서 선택의 폭이 확 넓어졌다. 물론 나는 그런 다양성에 큰 관심은 없다. 정말 없다. 오로지 향, 향, 향!! 향밖에 모르는 바보라기보다 조향사니까! 그래서 오늘은 휴대성, 발림성, 어쩌고 저쩌고 등등을 차치하고, 오로지 향이 좋은 핸드크림을 추천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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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마티카
서렌
‘아로마테라피의 정수를 담아 건강한 아름다움을 표방한다’는 아로마티카에서 만든 핸드크림. 그중에서도 서렌은 4종의 핸드크림 중 브랜드 슬로건에 가장 잘 어울리는 향이라고 생각한다. 메인 향조는 라벤더와 마조람. 바른 직후에는 다양한 허브 중에서도 우리에게 특히 익숙한, 라벤더의 향취가 도드라진다.
라벤더 노트는 자칫 잘못하면 코를 찌르거나 너무 남성적인 뉘앙스를 줄 수 있지만, 서렌의 라벤더는 그렇지 않다. 차분하고 온화한 라벤더다. 약간 쌉싸래한 허브 향 아래로 촉촉한 흙 내음이 깔려있어 더더욱 숲의 한가운데로 들어선 기분이 된다. 그것이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는 건 마조람의 산뜻하고 프레시한 풀 내음 덕분.
커어어어다란 스트레스가 예상되는 회의나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이 향을 바르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것 같다. (물론 회의가 시작되면 다시 불편해지겠지만.) 그런데… 대표적으로 ‘숙면에 도움이 되는 향’으로 알려진 라벤더뿐만 아니라 ‘악마도 잠재운다’고 알려진 마조람까지 섞인 핸드크림이라니. 아침 잠이 많은 나는 아무래도 오후에 발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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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티크
핸드크림 플레르 드 뽀
이 제품을 바른 직후, 손등에 코끝을 가져다 대고 숨을 들이쉬어 보자. 그러면 나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아니… 향이 좋은 핸드크림이라며!?” 맞다. 한국인의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플레르 드 뽀는 현재 딥티크의 1등 베스트셀러 향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인기몰이 때는 어느 매장에 찾아가도 모두 품절이라 발만 동동 구른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지금도 외출하면 하루에 한 번쯤은 이 향기를 마주칠 정도다. ‘피부의 꽃’이라는 뜻의 이 향은 포근한 살내음이 주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페퍼 노트가 포인트로 들어있다. 매력적이지만 쉽지 않은 향이랄까.
핸드크림 또한 그 포인트를 아주 잘 담고 있다. 신기하게도 피부에 코를 대고 맡으면 크림 특유의 냄새만 도드라질 뿐 향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확산력은 엄청나다. 폭닥하면서도 따뜻한 질감과 온도감까지 잘 느껴져서 추운 날씨에 더욱 잘 어울린다. 그러니 플레르 드 뽀 러버라면 핸드크림까지 함께 사용했을 때의 시너지를 노려볼 것. ‘난 그 정도는 아닌데…?’ 싶다면, 다른 향수와 레이어링 하는 것도 추천한다. 기존의 향수에 가을, 겨울 무드를 슬쩍 더해주는 ‘비밀의 레이어링템’으로 아주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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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티드툴레아
핸드크림 165(원식스파이브)
“풀냄새랑 생화 향이 나는데 흔하지 않고 독특하더라고요.” 이 핸드크림을 선물해 주며 친구가 한 말이다. 생화 향 제품은 다 비슷비슷하지 않나? 그런 마음으로 향을 맡아봤는데, 친구의 말이 진짜였다. 첫 향부터 풀 내음이 풍기지만, 그게 흔히 내세우는 꽃 시장이나 숲의 느낌과 완전히 달랐다. 마치 산뜻한 연둣빛 디저트나 음료를 먹을 때 느껴질 법한 향 같았다. 한참을 킁킁거린 후에야 비밀을 깨달았다. 바로, 민트!
사이트에 표기된 노트를 찾아보니 유칼립투스, 로즈메리처럼 허벌한 느낌이 강한 노트들이 눈에 띄지만 그 비중이 낮은지 전체적인 향은 훨씬 가볍고 산뜻한 민트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다고 싸한 민트의 느낌은 아니다. 은은한 꽃향기를 배경으로, 앞서 말한 것처럼 고급스러운 디저트에서 느껴질 것 같이 은은하고 달콤한 민트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민트 향은 어딘가 모르게 ‘개운한’ 느낌을 준다. 식사 후 양치를 할 때도, 속이 답답해서 페퍼민트 차를 마실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꽁티드툴레아의 165를 바르면 뭔가 홀가분하고 후련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로마틱한 그린 노트들이 주는 감각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편안함이다. 게다가 세련된 느낌까지! 갑갑한 일상에 한 모금의 휴식이 되어줄 것만 같다. 일단 나부터 자꾸 손이 간다.
- 꽁티드툴레아 핸드크림 165 50ml 2만 2,000원 [링크]
❹
르라보
핸드 포마드 히노키
핸드크림도 핸드 밤도 아닌 핸드 ‘포마드’답게 제형이 아주아주 꾸덕꾸덕해서 흡수되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 손등 위에 한 겹 코팅되듯 수분감이 씌워지면, 거기서부터 히노키 향이 솔솔 올라온다. 편백나무인 히노키 향을 메인으로 하고 있어 연필이 떠오르는 다소 드라이한 나무 향이 정직하게 발향 된다. 우디 향을 메인으로 한 핸드 케어 제품 중에는 너무 달거나 너무 파우더리한 우디를 사용해서 멀미를 유발하는 경우도 있는데, 핸드 포마드 히노키는 전혀 그렇지 않다. 과하게 달지도 무겁지도 않은 나무 향이라, 다소 자연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무거워지지 않고 오히려 화사해지는 것이 독특하다. 자세히 맡아보니, 범인(?)은 워터리 노트. 드라이한 우디 향에 워터리 노트를 매치할 생각을 했다니!
시더 우드나 히노키처럼 드라이한 느낌이 도드라지는 우디 노트는 자칫 잘못하면 너무 샤프하거나 씁쓸하게, 혹은 너무 건조해서 더스티하게(지저분한 먼지처럼) 느껴질 위험도 있다. 만약 그랬다면 핸드 케어 제품으로는 최악이었을텐데. 핸드 포마드 히노키는 크림 질감과 워터리 노트로 그 부분을 확실하게 보완했다. 잔향으로 갈수록 얼핏얼핏 느껴지는 플로럴 노트까지 더해져 마지막엔 참 예쁜 나무 내음으로 남는다. 이 제품, 자주 품절이라더니… 역시 잘 팔리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니까.
- 르라보 핸드 포마드 히노키 55ml 3만 8,000원 [링크]
❺
조말론
피오니 앤 블러쉬 스웨이드
바른 직후에는 달콤한 피오니 향과 함께 사과가 떠오르는 상큼한 프루티 향기가 뒤섞여 사방으로 퍼진다. 그리고 곧 프루티한 향은 잦아들고 보드라운 피오니 향기가 중심을 차지한다. 플로럴 노트가 메인이지만, 피오니 앤 블러쉬 스웨이드는 베이스에 스웨이드 질감을 느낄 수 있는 향을 깔아두어 오묘한 매력을 드러낸다. 사랑스러운 느낌이 가득한 피오니와 거친 듯 부드러운 스웨이드라니, 생각지도 못한 조화다.
이 향은 향수에서도 충분히 인상적이었는데 핸드크림으로 사용하니 그 독특함이 더욱 돋보인다. 향료 외에 알코올이 대부분인 향수가 아닌, 크림의 텍스처와 흡수성이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주고 있기 때문. 그래서 살에 스며들었을 때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살 내음과 섞이면서 점점 무게감이 생기고, 과한 파우더리함 없이 부드러운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드는 플로럴이라니. 추운 한겨울에도 우아하게 피어나는 꽃 한 송이를 연상케 한다. 평소에 여성스러운 룩을 자주 입는 사람, 크림이나 핑크 등 밝은 컬러를 좋아하는 사람, 꽃 향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용한다면 반전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심플한 정장을 입은 여성이나 남성이 사용한다면? 더더욱 끌리는 반전 묘미가 되어줄지도.
- 조 말론 피오니 앤 블러쉬 스웨이드 핸드크림 50ml 4만 6,000원 [링크]
❻
아로
풀 문 블로썸 핸드 밤
풀 문 블로썸은 가을에 피는 꽃인 ‘금목서’ 향이 담겨있다. 금목서는 그 향이 만 리를 간다 하여 ‘만리향’이라는 애칭이 붙은, 좋은 향기로 굉장히 유명한 꽃이다. 비교적 추운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는 잘 피지 않아서 나 또한 그 존재를 모르고 살았다. 그러다 몇 년 전 국내 여행에서, 어디선가 달콤하고 너무나 예쁜 향이 나길래 코를 킁킁대며 따라갔더니 그곳에 금목서가 있었다. 꽃에서 마치 향수처럼 달콤하고 화려한 향이 풍겨서 단박에 반했던 기억이 난다.
아니 왜 갑자기 궁금하지도 않은 내 이야기를 줄줄이 풀어놓느냐고? 그건, 음… 내가 이 향을 만든 조향사거든(머쓱). 그렇게 반한 후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심하고 또 고심해서 ‘풀 문 블로썸’ 향을 완성했다. 이 향은 향수로도 판매 중인데, 오묘하게 매혹적인 금목서 특유의 캐릭터 덕분에 가을 겨울에 특히 많은 분들이 찾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핸드 밤을 바른 직후에는 ‘살구 우유’ 혹은 ‘복숭아 크림’이 떠오르는 프루티 노트가 먼저 느껴진다. 하지만 진짜 매력은 금목서 특유의 크리미하고 밀키한 향이 중심을 잡아가면서부터다. 잔잔하게 피어오르는 부드럽고 달콤한 금목서 향이 지치고 피곤한 마음까지 두둥실 환하게 떠오르도록 만든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마음과 혼을 담아 만들었기 때문이지!
좋은 향은 그 자체만으로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순간을 선물할 수 있다는 건, 생각할 때마다 새삼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그러니 나의 짧은 글들로, 여러분이 매일 만나는 향에 대한 즐거움을 다시 조명하실 수 있길. 그래서 기분 좋은 순간이, 향기로운 그 틈이, 더 생길 수 있길. 아주 잠깐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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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아론
글쓰고 향 만드는 사람. 에세이스트, 프리랜서 에디터, 향수 브랜드 ahro의 조향사까지. 예술적 노가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