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아직 떠나지 못한 당신을 위해, 서울의 독서 공간 3

안녕, 디에디트 데뷔 1일 차 객원 에디터 정경화다. 하루하루 더 뜨거워지는 것만 같은 기분.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안녕, 디에디트 데뷔 1일 차 객원 에디터 정경화다. 하루하루 더 뜨거워지는 것만…

2022. 08. 04

안녕, 디에디트 데뷔 1일 차 객원 에디터 정경화다. 하루하루 더 뜨거워지는 것만 같은 기분.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 곧 휴가 시즌이니까. 혹시 휴가 때 멀리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나? 있다면, 그래도 괜찮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세 곳의 장소에서는 반나절의 짧은 시간에도 호캉스 못지않은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아직 떠나지 못한 당신을 위해 준비한 서울의 독서 공간을 만나보자.


[1]
그래픽

1400_20220512_136 ⓒ그래픽

덕후들은 힘이 세다.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이라는 이름의 패션 커뮤니티는 대한민국의 10번째 유니콘 기업인 무신사가 되었다. 만화책을 사랑하던 어느 덕후는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책을 볼 수 있는 멋진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직접 그런 공간을 만들었다. 그 공간은 ‘서점 웨이팅’이라는 독특한 현상까지 일으키며 올해 상반기 가장 성공한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지금부터 소개할 그래픽의 이야기다.

1400_20220526_184216 ⓒ그래픽

그래픽은 경리단길에 위치한 독립서점이다. 그래픽 노블과 만화, 아트북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서점인 동시에 입장료 1만 5,000원을 내면 시간제한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 공간이다. 그것도 커피나 위스키를 마시면서. 지난해 연말 가오픈을 거쳐 올해 3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는데, 입소문이 퍼져 주말에는 줄 서서 입장하는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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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작복작한 주택가 사이에 자리한 서점을 보고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책이다. 책을 층층이 쌓아 놓은 듯한 벽면의 질감은 책의 빽빽한 단면을 닮았다. 만약 이 동네 주민이었다면, 창 하나 없는 이 커다란 건물이 대체 뭐 하는 곳인지 매우 궁금했을 터. 이곳의 목표는 책에 가장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설계를 맡은 오온의 건축가 김종유는 번잡한 주변 동네가 보이지 않도록 창을 없애고, 대신 층마다 천창을 내어 자연채광을 들였다. 덕분에 자연광과 은은한 천장 조명, 집중을 돕는 스폿 조명을 오가며 다양한 조도에서 책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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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입구를 지나 문이 열리면 환한 독서 공간이 드러난다. 바깥에서 보았던 책의 단면을 닮은 마감재가 실내로 이어지고, 벽과 바닥은 종이를 닮은 질감과 베이지 톤의 색감으로 채워져 있다. 층고도 그리 높지 않아 보드라운 종이에 폭 감싸인 듯한 느낌이다. 햇빛이 가장 잘 들어오는 3층에서 사람들이 잔뜩 늘어진 모습으로 책을 읽는 것이 너무 좋아 보였는데, 매니저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곳은 밤이 되면 몰입이 잘 되어 더욱 좋다고.

1400_20220512_156 1400_20220512_172 ⓒ그래픽

건축가는 책 읽는 자세를 분석해 아홉 가지 유형으로 정리하고 이를 곳곳에 녹여냈다고 한다. 빈백부터 라운지체어, 소파, 걸터앉는 계단까지 다양한 자리가 곳곳에 숨겨져 있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원하는 자세로 책을 읽으면 된다. 이런 곳을 꿈꾼 건축주도, 그 꿈을 진짜로 구현해 낸 건축가도 대단하다. 덕업일치는 이렇게나 세상을 이롭게 하는 걸까.

Pick 그래픽 매니저의 여름휴가 추천 도서
📚<신들의 봉우리> 다니구치 지로_ 
“한번 보고 나면 진이 빠질 수 있으니 그래픽에 와서 제대로 자리 잡고 보기를 권해요.”

실종된 등산가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5권 분량의 만화책. 배경으로 등장하는 세계의 명산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작가의 그림체를 보는 재미가 있다.

그래픽

  • 화요일~일요일 13:00-23:00(월요일 휴무)
  •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39길 33
  • @graphic.fan

[2]
문학살롱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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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 햇빛이 아름다운 낮의 공간이라면, 문학살롱 초고는 조명이 매력적인 밤의 장소다. 조용한 곳에서 책도 읽고 싶고 바 같은 분위기에서 칵테일도 한잔하고 싶을 때, 서늘한 여름밤에 어울리는 이곳에 와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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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살롱 초고는 합정동의 복잡하고 시끌벅적한 거리에 자리한 바 겸 독서 공간이다. 살롱은 17~18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사교 모임으로, 당시 귀족들은 자신의 저택에 문화예술계 인사를 초대해 철학이나 예술, 정치를 주제로 자유롭게 토론하고 교류하곤 했다. 그러한 의미를 담아, 이곳은 문학을 매개로 사람들이 모이고 교류하는 장소로 만들어졌다. 때로는 조용히 독서하며, 때로는 책을 주제로 대화하며 시간을 나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 펜더는 우연히 마주친 마차를 타고 현대와 모든 것이 다른 1920년대를 여행한다. 그는 그곳에서 평소 흠모해 마지않던 작가를 만나 자신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꿈 같은 시간을 보낸다. 공간 디자인을 맡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음제곱미터는 영화 속 주인공의 여정처럼 이곳이 주변과 단절되어 완전히 다른 시공간처럼 느껴지도록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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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의 입구에 들어서면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좁은 복도가 나 있다. 3.3m의 길은 바깥의 소란을 잊고 살롱으로의 입장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이곳에는 조명을 따로 두지 않고 벽은 모두 패브릭으로 마감해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에 집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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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책의 종이처럼 보드라운 벽의 질감을 느끼며 안으로 들어가면 큐레이션 도서를 전시한 서가가 등장하고, 곧이어 주황빛 조명, 짙은 색감의 목제 테이블과 스툴, 편안한 가죽 소파가 놓인 바의 모습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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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에서는 낮에는 커피를, 저녁에는 칵테일을 판매한다. 그중에서도 문학 칵테일은 문학책을 주제로 개발한 이곳만의 시그니처 메뉴다. 메뉴를 주문하면, 같은 이름의 책이 칵테일과 함께 서빙된다. 영화 속에서 마차를 타고 새로운 시공간으로 타임리프 하는 주인공처럼, 달고 시원한 칵테일 한잔과 함께 책 한 권에 담긴 세계로 떠나보자.

Pick 문학살롱 초고 운영자의 여름휴가 추천 도서
📚<행성어 서점> 김초엽_
“여름휴가 때 챙겨갔는데, 한 편의 길이가 짧아서 여행지에서 이동할 때 잠깐씩 읽기 좋았습니다.”

열네 편의 짧은 이야기가 담긴 소설집. 김초엽 작가 특유의 다정하고 애틋한 SF 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문학살롱 초고

  • 서울 마포구 독막로2길 30 지하 1층
  • 16:00-24:00(수요일 휴무)
  • @chogo_seoul

[3]
소전서림

1400_yedam2 ⓒ소전서림

해외에는 입장료를 내고 이용하는 도서관이 종종 있지만, 한국에는 2020년 청담동에 문을 연 소전서림이 유일하다. 문학을 중심으로 3만여 권의 책을 소개하는 도서관으로, 반나절(5시간) 이용권이 3만 원이니 저렴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만큼 공들인 콘텐츠와 공간으로 완전한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1400_moonhak seoga ⓒ소전서림

이곳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나무의 향이 코를 자극한다. 차분한 내음이 숲속에 온 듯한 기분을 일깨우고, 계단을 마저 내려가면 탁 트인 서가가 등장한다. ‘흰 벽돌로 둘러싸인 책의 숲’이라는 이름처럼 높은 층고의 공간에 벽면은 온통 책으로 채워져 있다. 벽의 위쪽에는 조명을 설치하고 한지 느낌이 나는 재료로 마감해 빛이 부드럽게 퍼져나간다. 책장 규격에 맞춰 선을 내어 벽돌벽 같은 모습에 은은한 빛이 공간 전체에 드리워 지하임에도 창이 없는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1400_yedam ⓒ소전서림

이곳을 설계한 원오원 아키텍츠의 건축가 최욱은 ‘눈은 책을 향하지만 모든 감각이 열려 있는 곳이 도서관’이라 말했다. 그의 말대로 소음이 사라지고 음악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곳에서는 주변의 공기에 더 민감해지고 자연스럽게 말소리를 줄이게 된다. 적막함에 점차 익숙해지고 나면 명상하듯 책을 읽기 시작한다. 번잡한 도심 속에서 한적한 스테이에 온 듯한 기분이다.

1400_private book ⓒ소전서림

소전서림에서 꼭 경험했으면 하는 곳은 1인용 서가다. 프리츠 한센의 에그 체어, 카시나의 LC4 셰이즈 롱 등 하이엔드 가구 브랜드의 의자에 앉아 나만의 서재에 온 듯 프라이빗하게 책을 즐길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창이 없는 지하의 단점은 오히려 주변을 잊게 하는 장점이 된다. 올해 8월부터는 10만 원의 연회비를 내면 1일 3시간까지 이용할 수도 있다고.

Pick 소전서림 마케터의 여름휴가 추천 도서
📚<낮술> 하라다 히카_
“소전서림의 일부 공간에서는 낮술도 가능하니, 이곳에서 책과 함께 여름휴가를 즐겨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낮술처럼 운치와 여유가 담긴 단어가 또 있을까? 주인공이 지친 일상에서 낮술을 마시러 다니는 이야기로 읽다 보면 여름의 향기가 물씬 느껴진다.

소전서림

  •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138길 23 지하 1층
  • 화-토 11:00-23:00, 일 9:30-18:00(월요일 휴관)
  • @sojeonseo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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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정경화

공간, 건축 관련 글을 씁니다. 낮에도, 밤에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5년 차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