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여름에 마시기 좋은 여름차’에 이어 ‘겨울에 마시기 좋은 겨울차’로 돌아온 박주연이다.

얼죽아 강성 회원들도 하나둘 탈퇴하는 계절이다. 몸 구석구석을 찔러대는 칼바람에 근육을 잔뜩 웅크리느라 여기저기 안 쑤시는 곳이 없는 겨울, 폭폭 끓여 내 속을 따뜻하게 데우는 차를 마실 계절이 왔다.
지난 글에서 여름에 차가 특히 좋다고 했는데, 미안하다. 사실 겨울에 가장 좋다. ‘특히’와 ‘가장’은 엄연히 다른 표현이니까 이해바란다.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면 의사선생님이 꼭 하는 말이 있다. “따뜻한 물 많이 드세요” 추운 계절엔 꽁꽁 언 몸을 따뜻한 액체로 데우는 게 인지상정. 꼼짝도 하기 싫은 날을 위해 집에서 마시기 좋은 겨울차. 그리고 집에서 마시기엔 다소 아찔한 레시피의 겨울차까지 소개한다.
집에서 직접 내려 마시기 좋은 겨울차
[1]
겨울에 마시는 폭폭 끓인 보이차

차는 기본적으로 뜨겁게 마시기 때문에 어떤 차든 겨울과 잘 어울린다. 하지만 겨울에 ‘가장’ 어울리는 차를 고르라면 보이차를 꼽는다. <효리네 민박2>에서 손님들이 뜨거운 물에 몸을 녹인 후 옹기종기 모여 보이차를 마시는 장면이 나에겐 가장 이상적인 겨울의 형태다.
차는, 차나무에서 딴 잎으로 만든 것만 ‘차’라고 부르며 수색에 따라 크게 6가지로 나뉜다(지난 글 참고). 이 중 수색이 검은 것을 ‘흑차’로 부르는데 보이차도 흑차에 해당된다. 하지만 보이차의 시장 규모와 팬덤이 너무 커서 사실상 독립된 차 카테고리로 여겨진다.
보이차에도 카페인이 있는 편이지만 녹차나 우롱차에 비해선 월등히 적고 후발효를 거친 탓에 산도가 낮거나 거의 없어서 빈속에도 비교적 편안하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 밤낮 가리지 않고 따뜻한 보이차를 수시로 마실 수 있다는 점에서, 겨울에 마시기 좋은 차로 추천한다. 보이차를 농축한 고체 형태를 물에 녹여 마시는 ‘보이차고’도 있어서, 보이차를 물처럼 마시고 싶다면 보이차고도 좋다.
개인적으로 보이차를 마실 때 퍼지는 깊고 짙은 향은 찜질방을 떠올리게 한다. 한증막에 들어가 담요를 뒤집어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아 시원하다…’ 하는 그 순간에 맡아지는 깊고 짙은 찜질방의 향. 차 한 잔에 찜질방 온 효과까지 있으니, 육대다류 중 보이차가 겨울에 제격인 이유다.
– 보이차 레시피
1. 100도 가까이 뜨겁게 끓인 물을 준비한다
2. 5~10g 가량의 보이차에 물을 넣고 30초 우린다
3. 3-4탕 더 우려먹어도 좋고 우릴 때마다 10~20초씩 시간을 늘리면 된다
밖순이, 밖돌이를 위한 추천 보이차 전문점

월하보이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26
월하보이는 고수의 찻집 같은 묘한 분위기가 있다. 재야의 고수처럼 눈에 잘 띄지 않게 숨어있는 월하보이에 입장하는 순간, 중국 어디선가 고수가 차를 따라 줄 것만 같다.
[2]
따끈하고 부드러운 밀크티


시중 밀크티는 대부분 너무 달아서 머리가 지끈해지는 맛이지만 집에서 밀크티를 끓이면 전혀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밀크티는 직접 끓인 게 가장 맛있다. 원하는 만큼 차와 우유의 양을 늘리거나 줄이고, 당도 조절도 셀프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밀크티는 보통 홍차류로 만든다. 향을 내고 싶다면 가향 홍차인 얼그레이가 좋고 아쌈, 다즐링 등 익숙한 홍차류 무엇이든 좋다.
차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해도 보통 집에 녹차, 홍차 티백쯤은 있다. 밀크티는 티백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티백째로 진하게 우린 홍차에 우유를 넣어 끓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잎차로 미세플라스틱 걱정 없이 진하게 끓여내서 거름망으로 걸러내면 우유막도 걸러져 1석2조. 그럴싸해 보이고 싶을 땐, 바닐라빈을 톡톡 뿌리는 것도 좋다.
– 밀크티 레시피(2인분 기준)
재료 : 홍차류, 우유, 기호에 따라 설탕/바닐라빈 등
1. 냄비에 우유 300ml를 넣고 중약불로 2~3분 가열, 너무 센 불에 끓이면 우유막이 생기니 주의할 것
2. 홍차 10g 또는 티백 2개를 넣고 3분 정도 더 가열한다
3. 기호에 따라 설탕을 추가한다
밖순이, 밖돌이를 위한 추천 밀크티 전문점

헤르만의 정원
서울 종로구 통인동 46-14
느긋한 서촌에서 즐기는 중세 런던 바이브. 예쁜 티팟에 홍차가 한가득 나오는데, 홍차 단독으로 마시다가 같이 나온 우유와 각설탕을 취향껏 넣어 셀프 밀크티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3]
비주얼 작살나는 유자잭살


겨울차 근본은 유자차다. 새콤달콤한 유자차를 호로록 먹다 컵 밑에 소복히 깔린 유자 껍질을 오독오독 씹어먹는 그 맛.
유자는 겨울에 수확되기 때문에 겨우내 먹기 위해 설탕에 절여 청을 만들어 차로 먹어 왔다. 맛도 있고 따뜻한 차로 감기도 예방할 수 있어 오래전부터 마셔온 전통차다. 어릴 때, 기침하거나 콧물 흘리면 꼭 엄마가 유자차를 타주곤 했다.
우리나라 차 생산지 중 대표적인 곳인 하동에서는 오래전부터 감기 예방을 위해 유자를 활용해 색다른 유자차인 유자잭살차를 마셨다. 유자의 속을 파내어 돌배, 모과 그리고 잭살차를 넣은 것이다. 잭살차는 ‘작설차’의 사투리로 참새(작), 혀(설)로 말린 찻잎의 모양이 참새의 혀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며 하동 지역에서 재배된 홍차를 뜻한다.
한 번 끓이면 보통 2리터 정도를 끓여낼 수 있어서, 비타민C 절실한 목구멍 칼칼한 날에 한 솥 끓여내 종일 마시기에 제격이다. 동글동글한 속이 꽉찬 유자는 보기만 해도 감기가 사라지는 듯하다. 달지 않은 유자향이 강하게 나고 끝맛에서 살짝 홍차의 향이 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껴보자.
– 유자잭살차 레시피
재료 : 물, 유자잭살차
1. 물병에 유자잭살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넣는다(냉침도 가능)
2. 10분 이상 충분히 우려낸 후, 맛이 써질 수 있으니 유자잭살은 건져내자

– 유자잭살차 구입처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구매
한 알 당 8,000원
가장 맛있는 겨울차는 밖에서 사 먹는 겨울차

한약재 넣고 푹 고은 국물이 몸에 좋듯 짜이티 한 잔이면 감기의 ㄱ자도 내 발끝에 못 붙을 듯하다. 짜이티를 집에서 만들려니 드는 재료가 한두 개가 아니다. 정향, 카다멈, 회향, 팔각, 핑크페퍼 등. 직접 만들 수 있다면 좋겠지만 바쁘다바빠 현대인이라면 차라리 콧바람도 쐴 겸 짜이티 전문점에서 전문가의 음료를 마시길 바란다.
짜이티 전문점이 하나둘 늘어 가는 추세인데, 그 중 성수동의 ‘높은산’을 추천한다. 음료는 오직 짜이티 하나. 사장님이 종일 짜이티 하나만 끓이면서 한 잔 한 잔 만들때마다 짜이티를 부드럽게 할 거품을 내는 퍼포먼스도 볼 수 있다. 진저짜이, 마살라짜이, 럼짜이, 핑크짜이, 호텔짜이 등 다양한 짜이티 종류가 있다. 내 입맛엔 카다멈, 생강 그리고 조금의 버터가 들어간 호텔 짜이가 맛있었다.
위에 말한 것처럼 짜이티에는 정말 많은 향신료가 들어간다. 이 향신료들은 체온을 유지시키고 혈액순환을 돕고, 소화 혈류를 증가시키는 등의 효능이 있다. 그리고 정향, 카다멈 등의 향신료는 그 향만으로도 스트레스와 피로가 완화되는 아로마 효과도 지녔다고 한다.
직접 마셔본 높은산의 짜이

호텔짜이
뭄바이의 오래된 호텔에서 마셨다는 짜이인데 버터가 들어가고 당도가 낮아 부드럽게 마시기 편하다. 그나저나 당도가 낮다니 저속짜이 아냐?

럼짜이
알코올 도수 약 3-4%의 럼짜이로 술맛이 꽤 세게 다가왔다. 인도 럼, 올드 몽크를 넣어서 이국적인 맛이 흥미롭다.

마살라짜이
향긋하다. 호텔짜이와 약간 반대되는 톡톡 튀는 맛이 있다. 거품 위 올라간 정향이 이곳이 뭄바이인지 서울인지 헷갈리게 한다.

진저짜이
생강을 넣은 짜이로 가장 대중적인 짜이 중 하나다. 이 메뉴는 아이스와 오트밀크로 바꿔 마셔 봤는데, 아이스인데도 정말 진했다. 홍콩에서 먹던 밀크티의 맛과도 닮아있다.

높은산
주소 : 서울 성동구 성수동2가
메뉴 : 진저짜이 4,000원, 마살라짜이 4,500원, 호텔짜이 6,000원, 럼짜이(알콜메뉴) 6,000원.
티백 판매처 : 스마트스토어에서 짜이티백을 개당 2,000원에 판매한다.
집순이, 집돌이를 위한 마살라짜이 레시피
재료 : 물 200ml, 우유 300ml, 홍차티백 2-3개 또는 찻잎 4-6g, 설탕 1.5~2스푼, 생강 2~3조각, 향신료(계피스틱, 카다멈, 정향, 후추, 넛메그)
1. 물 + 각종 향신료 + 생강을 넣고 5분간 약불~중불로 끓인다
2. 홍차를 넣고 3분간 더 끓인다
3. 우유를 넣고 약불로 서서히 데운다
4. 기호에 따라 단맛 추가 후 체에 찻잎을 거른다
(이렇게 복잡하게 먹기보단 높은산 티백을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겨울은 길고 춥지만 차를 마시는 순간만큼은 따뜻하다. 추위가 버겁게 느껴지는 날엔 오늘의 차들을 떠올리며 우선 주전자에 물을 끓여보자. 혹독하던 겨울도, 순간 고요하고 다정하게 느껴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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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
이롭게 쓰이길 바라며 오늘도 씁니다. 글로자 박주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