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평일엔 바다에, 주말엔 산에 빠져 지내는 객원 필자 조서형이다. 온갖 금지와 조심이 넘쳐나는 최근 몇 년간 산을 특히 자주 찾았다. 다리 근육이 팽팽해지는 느낌도, 숨이 차오르길 기다렸다가 신선한 공기를 가득 들이마시는 기분도,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기운도, 산세를 배경으로 찍는 기념사진까지도 마음에 들었다. 시작할 무렵 중고로 등산화를 하나 장만했다. 이렇게 본격적인 등산화는 처음 사 본 거였는데, 매주 산에 오르다 보니 제법 길이 잘 들었다. 그 신발을 3년을 주야장천 신었다.
어느 날부터 산을 타다가 발이 축축한 걸 느꼈다. 흙길을 걷고, 비를 맞고, 얼어붙었던 등산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오르고 싶던 산이 아직 남았는데 이대로 등산화를 보낼 수는 없었다. 새 신발을 사던지 지금이라도 수명을 늘릴 수 있도록 손을 써야 했다. 뭐가 더 나은 선택일지 몰라 둘 다 해봤다. 이번 기사는 새 신발을 사기 위해 주변에서 추천을 받은 등산화와 관리법을 소개한다.
✔️ 잠깐, 근데 등산화를 꼭 신어야 해?
안 신어도 된다. 걷기 편한 운동화나 샌들, 스니커즈로 산에 오르는 사람도 많다. 다만 등산화를 신고 등산을 다녀오면, 다음 등산이 있을 확률이 높아진다. 훨씬 쾌적하고 편안한 기억이 될 테니 말이다. 신발은 브랜드와 디자인으로 고를 수 있지만, 등산화는 다르다. 이 친구는 패션이자 장비다. 잘 골라 길을 들인 등산화는 돌과 모래, 얼음, 젖은 낙엽과 같은 자연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충격이 몸에 전달되지 않도록 차단하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잡아주고, 오래 걸어도 덜 피로한 등 말이다.
✔️ 등산 7년차, 손동주의 등산화
아솔로 타이러스 GV
“헬리녹스에서 수입해 오는 이탈리아 브랜드 아솔로의 등산화다. 행사에서 샀다. 내 돈 내고 처음 사 본 등산화다. 통가죽으로 된 디자인과 고무가 한 번 더 덧대어진 앞 코가 마음에 들어 골랐는데, 신다 보니 발에도 잘 맞는 것 같다.”
Tip.등산화 길이 선택
복사뼈를 기준으로 아래인 것은 로우컷, 살짝 덮는 길이를 미드컷이라 부른다. 이 신발은 짧은 트래킹과 가벼운 산행에 적합한 미드 컷이다. 높이는 자주 다니는 산길에 맞춰 높이를 정하면 좋은데, 이게 그렇게 되기 어렵다. 잘 깔린 등산로를 타게 될지, 울퉁불퉁한 돌산을 타게 될지 등산화를 살 때는 미리 알 수 없으니까. 처음이라면 애매하게 중간인 미드 컷을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발목 위까지 끈으로 압박하는 하이컷 등산화가 처음이었다. 멋있어서 샀는데, 흙이 많은 산이나 겨울 설산에서 이물질이 발에 들어오는 걸 잘 막아주어 좋았다. 발목을 꽉 조여 부목 같은 역할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발목이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 산행을 마치고 막걸리를 마시러 갔을 때 하이컷은 신발을 신속하게 벗기가 어렵다.
✔️ 등산 8년차, 임준엽의 등산화
살로몬 X 울트라 3 미드 고어텍스
“스웨덴 쿵스레덴 트래킹을 하던 몇 달 동안 신었던 신발이다. 요즘은 고프코어 느낌을 내기 위해 많이들 이 브랜드 신발을 신지만, 워낙에 발이 편하기로 유명한 브랜드다. 살로몬 자체 개발 기술인 콘타그립이 있어 젖은 길이나 매끄러운 돌을 밟아도 미끄러짐이 없다. 관리를 잘한 편이지만, 워낙 많이 신어 아웃솔이 헤졌다.”
Tip. 등산화 신는 법
발을 넣고 앞쪽으로 바닥을 툭툭 친다. 발이 앞으로 밀착한 게 느껴지면 끈을 묶는다. 발이 등산화에 착 붙어야 물집이 생기지 않는다. 끈은 이왕이면 리본을 두 번 겹쳐 묶는 게 좋다. 걷다가 끈이 풀리면 귀찮기도 하지만, 밟고 넘어지면 일이 커지기 때문. 발 고정을 위해 전체를 꽉 죄기 보다 아랫부분은 여유를 두고, 위로 갈수록 타이트하게 묶는 게 좋다. 특히 오르막을 오를 때는 발목이 굽혀질 것을 고려해 여지를 줘야 한다. 발목이 고정되어 있으면 종아리의 힘이 훨씬 많이 들어간다. 계단이나 경사가 있는 곳에 발을 올려놓고 발목을 젖혀 놓고 묶으면 편하다.
✔️ 등산 7년차, 김광명의 등산화
블랙야크 헤일로 D
“여름에 가벼운 약수터 등산을 위한 샌들이다. 계곡이나 호수 트래킹에도 좋고, 격한 운동 후 리커버리 하이킹에 신기에도 좋다. 신발끈 대신 다이얼을 돌려 신발을 조이는 보아핏 시스템이라 굉장히 편리하다. 나는 울릉도 트래킹에 신었는데, 올레 코스 등에도 좋을 것 같다. 다만 15km 이상을 걷기에는 신발이 발의 피로를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다. 이틀 이상 걷는다면 다음 날, 흙에서 받는 충격이 그대로 다리를 타고 올라올지도 모른다.”
Tip. 계절별 등산화
등산화도 계절별로 가지고 있으면 좋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확실한 편이고 특히 산 위는 그 환경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발에서 난 땀이 얼어붙지 않도록 투습, 방수 기능이 필요하다. 발가락은 심장에서 멀어 동상에 걸리기 쉽다. 꽝꽝 언 발가락을 앞세워 하산하는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줄 것이다. 동네 산이나 다닐 생각인데 동상 걱정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자연은 늘 예상에서 벗어난 공간이고 인간은 의외의 부분에서 어리석다. 나의 실수에 한계를 정해두지 말자. 여름에는 통풍이 잘되는 메시 소재 신발을 추천한다.
✔️ 김광명의 두 번째 등산화
잠발란 코르네토 2_GTX RR
“나의 첫 등산화다. 잠발란은 90년 된 이탈리아 등산화 전문 브랜드인데, 서양인의 칼 발에 맞춰져 있다고 들었다. 당시 발이 넓은 동양인용 와이드 버전이 나와 냅다 구매했다. 하루에 20km씩 걸어도 끄떡없는 튼튼한 신발이다. 반면 무게가 있기 때문에 가벼운 산을 다니기에는 추천하지 않는다. 국내 브랜드 ‘캠프라인’의 등산화 스펙이 비슷하니 대체해 신어도 좋을 것 같다.”
Tip. 사이즈 확인
오래 걸으면 발이 붓게 되어 있고, 등산 양말은 주로 두꺼우니 등산화는 한 치수 크게 사라는 말이 있는데 정확하지 않다. 신어보고 사는 게 좋다. 이왕이면 작은 것보다는 큰 편이 낫다. 깔창을 끼우거나 양말을 겹 신는 등 대안이 있기 때문. 등산화가 작으면 혈액 순환이 잘 안 된다. 자잘한 부상과 동상에 취약해진다. 나는 추위도 많이 타는데 동상도 잘 걸린다. 작은 신발만은 절대 안 된다. 매장에 가서 신어보는 편이 낫고, 그보다 산을 몇 번 타 보는 게 더 좋다. 여름 소나기에 홀딱 젖어 보고 겨울에 얼어붙어도 보며 말이다. 비싼 돈을 내고 해외 유명 브랜드 신발을 사서도 발이 아파 곤란한 경우도 많다. 추천을 받고 사도 추천인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기는 어렵다.
✔️등산 5년차, 조보현의 등산화
대너 마운틴 라이트
“신발을 처음 신고 등산을 갔을 때, 발이 제대로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다. 쭉 이 신발만 신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래서 등산을 다녀오면 솔로 흙과 먼지를 털고, 전용 발수제를 발라 건조해 둔다. 귀찮지만 이만큼 발에 잘 맞는 신발을 다시 찾는 일보다는 덜 귀찮을 것 같다.”
Tip. 오래 잘 신으려면
여러 경우의 수에도 그럭저럭 나와 잘 맞는 신발을 만났다면 붙들고 늘어지자. 질척대며 보호 크림을 바르고, 후후 바람도 불어주고. 방수등산화도 오래 신다 보면 물이 스며든다. 관리해주면 확실히 신발이 낡는 걸 늦출 수 있다. 최소한 솔이나 마른 천으로 밑창까지 이물질을 제거해주는 작업은 해주는 게 좋다. 가죽 제품의 경우 왁스를 발라두면 영양 공급이 된다. 미처 떨어내지 못한 얼룩도 지우고 광택도 낼 수 있다. 이때 사용 기한이 지난 클렌징 크림이나 영양 크림 등을 사용해도 된다. 마지막으로 발수 처리제를 뿌린다. 밑창이나 접히는 부분이 찢어지거나 터졌을 때는 신발 전용 접착제로 붙여줘야 더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광명은 등산화를 오래 신으려면 자주 신으라고 조언했다. 땅을 다지듯 자주 발의 무게를 주어 내구성을 만들어나가라는 말이다. 등산화는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나의 새 등산화는 아크테릭스 GTX가 되었다. 지인에게 중고가로 워낙 저렴하게 얻었기에 친구들의 추천을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사고 보니 내피가 양말처럼 발을 잘 잡아줘 발목과 발가락이 편안해 좋았다. 준엽이 신발 관리를 위한 제품을 빌려준 덕분에 이전에 신던 신발은 잘 닦아 말려 두었다. 두 켤레를 번갈아 신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든든한 동시에 허전하다. 곧 들이닥칠 여름을 대비하여 메시 소재 등산화도 하나 필요할 것 같다.
About Author
조서형
아웃도어 관련 글을 씁니다. GQ 코리아 디지털 팀 에디터. 산에 텐트를 치고 자는 일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