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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간 김에 와이너리 투어

신혼여행인데 이동거리가 1500km
신혼여행인데 이동거리가 1500km

2025. 10. 30

안녕. 최근 디에디트 객원 에디터 주연과 결혼하고, 신혼 여행기 2편으로 돌아온 글렌이다. (1편은 여기)

“남프랑스 가자. 근데 이탈리아 돌로미티도 가고 싶어. 그리고 나는 프랑스 처음이니까, 파리도 가고 싶어.”

주연의 말에 구글 지도를 들여다봤다. 남프랑스-돌로미티-파리를 연결하니 유럽 지도 위에 커다란 정삼각형이 그려졌다. ‘커다란’ 정삼각형은 직선거리로만 1,500km였다. 그리고 주연은 한 마디 덧붙였다.

“풍경 보면서 이동하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대신 중간에 들를 도시는 네가 정해줘.”

신혼 여행은 휴양지에서 푹 쉬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서로 다른 매력의 도시들을 경험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이동 거리가 상당해도 그마저도 재밌지 않겠냐는 말도 그럴싸했다. 무엇보다 중간에 들를 도시를 내가 정하라니. 꽤 마음에 드는 미션이다. 

최근 와인에 부쩍 관심이 생긴 나에게 이탈리아와 프랑스 여행이라. 그렇다면 세계 최고의 와인 산지로 꼽히는 이탈리아 피에몬테와 프랑스 부르고뉴에 가서,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피노누아 와인을 실컷 마시고 와이너리 투어도 해야지. 들뜬 마음으로 와인, 아니 신혼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1]
보물지도를 따라가다 도착한 곳

피오 체사레 와이너리

서점에서 ‘와이너리’가 들어가는 책은 모조리 훑어봤다.

신혼여행을 가기 전, 서점에 들러 와이너리 투어에 관한 책을 사고,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후기도 찾아봤다. 처음인 만큼 규모가 있으면서, 후기도 많고 평판이 좋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와이너리 뿐만 아니라 도시 자체도 볼거리가 풍성한 곳이었으면 했다. 우리의 첫 와이너리 투어 도시가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관문, 알바(Alba)가 된 이유다.

알바는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와인 여행의 중심지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 중 하나인 바롤로(Barolo)와 바르바레스코(Barbaresco)의 산지와 인접해 있으며, 인근에서 가장 큰 도시라 레스토랑과 상점도 많았다. 우리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아그리투리스모에 머물렀다. 주인 할아버지는 온갖 맛집과 와인숍을 적은 보물지도를 만들어주셨다. 그 지도를 품에 안고, 전기자전거로 포도밭을 향해 달렸다.

*아그리투리스모: Agriculture(농업) + Tourism(관광)의 합성어로 시골 농가에서 숙박하는 형태.

숙소 사장님의 맛집 보물지도, 모든 알파벳을 대문자로 쓰는 게 인상 깊다(어렵다).
오래된 성을 숙소로 개조한 듯한 아그리투리스모 ‘Villa La Favorita’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마을은 숙소에서 각각 자전거로 1시간, 30분 거리. 마을이 가까워질수록 와인 라벨에서만 보던 지명이 표지판에 나타났다. 바르바레스코! 바롤로! 표지판만 봐도 어찌나 설레던지, 자꾸만 자전거를 세우고 땡볕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다가 얼른 가자고 혼이 났다. 피에몬테는 언덕이 많아 오르막을 오를 때는 전기자전거로도 꽤 힘들었지만, 다 오르고 나면 발 아래로 포도밭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이 포도밭인, 말 그대로 절경이고 장관이고 신이 내린 선물이다. 

바롤로
전날 반팔, 반바지를 입었다가 와인처럼 검붉게 익고 나서 긴팔로 교체했다.

피에몬테는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와인으로 유명하다. 이 둘은 흔히 이태리 와인의 왕과 여왕으로 불리운다. 둘 다 네비올로 품종 100%로 만들고 지역 간 거리도 가깝지만 맛에서는 꽤 차이가 느껴진다. 바롤로는 힘 있고 타닌이 세며 남성적인 느낌이라면, 바르바레스코는 보다 섬세하고 부드러워 여성적이라고 칭한다. 흔히 말하는 떼루아의 차이다.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로 유명한 와이너리 중 하나인 피오 체사레(Pio Cesare)에 방문했다. 와인 숙성고로 쓰이는 지하 공간은 로마 때부터 있던 2000년 된 성벽으로 둘러싸여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했다. 

무더운 날씨임에도 숙성고는 서늘했다.

모양과 크기가 다양한 오크통도 구경하고, 와이너리에서 보관 중인 것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1916년생 할아버지 바롤로도 뵈었다. 

1916년 빈티지 바롤로, 만지기만 해도 바스러질 듯하다.

시음은 총 네 가지 코스가 있었는데,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를 빈티지별로 비교해 볼 수 있는 200유로 코스와,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을 마셔볼 수 있는 100유로 코스 두 가지를 골랐다. 투어 내내 친절한 미소와 자세한 설명으로 가이드를 하던 페데리카는 시음에서는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았다. 먼저 와인을 맛보게 한 뒤 어땠냐고 물어보고 설명을 덧붙였다. 덕분에 와인의 미묘한 뉘앙스를 스스로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피오 체사레
시음한 수많은 와인과 가이드 페데리카.

2021년부터 2005년까지의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를 번갈아 맛보며 숙성에 따른 변화를 경험하다 보니 어느새 테이블 위에는 와인잔이 가득했다. 흰 테이블매트 위로 드리워지는 붉은 와인 그림자가 영롱했다.

숙성 햇수에 따라 와인색이 다르다.

시음을 마친 뒤 판매 리스트를 받았다. 고민 끝에 고른 와인은 ‘바롤로 오르나토(Ornato) 2008’. 단일 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 바롤로다. 국내에서는 구하기도 힘들고, 가격도 국내보다 저렴해 돈을 쓰고도 돈을 버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멋진 케이스까지 더해져, 기분이 더없이 근사했다.

피오 체사레, 바롤로 오르나토 2008. 현지가 180유로.

Pio Cesare

위치 | https://maps.app.goo.gl/s77gDBY8J56Hxw3R6
웹사이트 | https://www.piocesare.it/
투어 예약 | 웹사이트에 기재된 메일로 컨택(75~200유로까지 총 네 가지 시음 코스, 와이너리 투어 포함) 

주연 생각

직선거리로 1,500km의 루트로 여행할 계획을 만든 주인공, 박주연이다. “이 와인은 무슨 뉘앙스가 느껴져?” “음… 포도?”라고 밖엔 할 재주가 없는 내가 이런 황송한 와인 여행을 가도 되나, 숱하게 고민됐지만 다행히도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처음 들른 와이너리였던 피오 체사레에서 10잔 가까운 와인을 테이스팅했는데, 한국어로 설명을 들어도 모자랄 판에 영어로 설명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고 취하지가 않았다.

종류도, 숙성연수도 다양한 와인들을 테이스팅했는데 솔직히 지금은 그 맛들이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이 원고를 쓰면서도 글렌이 원망할까 걱정되지만 그것이 사실인 것을.

나에게 피오 체사레는 시음한 와인보다 투어한 와이너리가 더 근사하게 기억에 남았다. 로마 시대 성벽으로 만들어졌다는 와인 저장고의 돌 하나하나를 만지며 로만들과 교감하는 것도, 100년이 넘은 먼지 덮이고 곰팡이가 핀 와인병을 보는 것도 신기했다. 돌아가신 내 할머니보다 오래된 그 와인병이 가진 100여 년의 맛이 궁금하다. (못 먹어보겠지?)


[2]
잔에 담긴 자연
필립 파칼레 와이너리

‘루트 데 그랑크뤼(Route des Grands Crus)’를 알리는 표지판.

이탈리아 알바에서 프랑스 남부 휴양지를 거쳐 동부의 부르고뉴(Bourgogne)로 이동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와인 산지지만 부르고뉴의 와인 생산량은 의외로 적다. 프랑스 와인 전체의 3~4% 수준. 하지만 매출 비중은 25%라는 점이 반전이다. 부르고뉴는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와인이 나는 땅이기 때문이다. 레드는 피노 누아(Pinot Noir), 화이트는 샤르도네(Chardonnay). 세계 최고의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 와인이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숙소를 잡은 곳은 부르고뉴의 심장부, 본(Beaune). 이 일대는 ‘황금 언덕’이라는 뜻의 꼬뜨 도르(Cote d’or)로 불린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는 길부터 와인 광고사인이 줄지어 서 있어 이곳이 와인의 성지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지역을 여행한다면 렌트카를 추천하는데, 바로 꼬뜨 도르를 북에서 남으로 관통하는 ‘루트 데 그랑 크뤼(Route des Grands Crus)’를 달리기 위해서다. 

부르고뉴에서 최고의 포도밭에 부여되는 등급인 ‘그랑크뤼’에서 이름을 따온, 말 그대로 와인의 길이다. 언덕이 많았던 피에몬테와는 달리, 너른 평야에 포도밭이 펼쳐진 모습이 또 다른 장관이었다.

길 양옆으로 늘어선 포도밭이며 표지판을 구경하느라 천천히 달려도 뒷차들이 보채지 않았다.

이 길을 따라 명성 높은 와이너리들이 많지만 그중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 한 병에 3,000만 원을 호가하는 로마네 꽁띠(Romanée-Conti)가 그 주인공. 로마네 꽁띠 밭에는 커다란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데 그 앞에 서니 왠지 모를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말고도 다양한 국적의 와인 러버들이 이곳에 와 있어 반가웠다.

와인 러버들의 포토 스팟. 구글맵에서 ‘로마네 꽁띠 십자가’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의외로 포도밭에는 관광객의 접근을 막는 어떠한 장치도 없었다.

와이너리 투어를 준비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투어를 운영하는 와이너리가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소규모 와이너리는 홈페이지조차 없었고, 투어 후기가 있는 곳이라도 업계 관계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비공식 투어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저희는 프랑스 와인을 사랑해 저 멀리 한국에서 신혼여행을 갑니다. 선생님의 와이너리를 방문할 수 있을까요?”

ChatGPT에게 공손한 말투의 프랑스어로 번역해달라고 부탁해 꼭 가고 싶은 몇 곳에 메일을 보냈다. 그중 유일하게, 가장 가고 싶었던 필립 파칼레 와이너리에서 기적처럼 ‘좋다’는 회신을 받았다.

필립 파칼레는 부르고뉴의 스타 생산자다. 도멘 로마네 꽁띠에서 최고 양조책임자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그 자리를 거절하고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세운 전설 같은 인물. 그의 철학은 ‘자연주의’다.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해 자연 그대로의 와인을 담아내는 것. 최근 들어 각광받는 ‘내추럴 와인’의 흐름을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실천해 온 생산자다.

이런 와이너리에 초대받다니, 좋아하는 연예인 팬미팅에 가면 이런 기분일까? 와이너리에 도착하자 사진으로만 보던 뽀글머리의 그 분, 필립 파칼레가 직접 맞이해주었다. 전형적인 테이블 시음회를 예상했는데, 곧장 지하 셀러로 안내하더니 기다란 유리관을 들고 오크통에서 숙성 중인 와인을 직접 뽑아 따라주었다. 한 잔, 두 잔 마시다보니 취기가 오르는데, 지금 내 앞에 있는 저분이 내가 아는 그 부르고뉴 탑 생산자가 맞는건가… 도무지 현실 같지 않았다.

필립 파칼레
필립 파칼레에게 직접 와인을 받다니, 이만하면 성공한 삶이다.
오크통과 와인이 만들어낸 쿰쿰한 향이 가득했던 저장고.

“와인을 맛있게 만드는 법은, 나도 잘 모른다. 아기 다루듯 소중히 다루며, 있는 그대로를 병에 담을 뿐이다.” 

필립 파칼레는 와인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잔을 채워주고, 그저 맛보게 했다. 와인마다 뚜렷한 개성과 별개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퓨어한 풍미. 그의 와인 철학이 자연스레 이해되었다.

시음 중간중간 ‘짠’을 잊지 않는 한국인들.

시음이 끝나고 들른 와인샵에는 당장 박스째 쟁여두고 싶은 와인들이 가득했고 고심 끝에 두 병을 골랐다.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가 그러하듯, 부르고뉴 피노누아 중에서 각각 남성적 여성적인 특징이 있다고 일컫는, ‘쥬브레 샹베르탱’과 ‘샹볼 뮈지니’ 마을의 프리미에 크뤼 등급 와인이다.

이날 시음에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오너와 직원들도 함께했는데, 투어 중에 연신 “브라보!”와 “쎄봉!”을 외치는 그들 덕에 한결 신나다가, 샵에서 차로 몇 박스씩 실어 나르는 모습에는 한없이 부러워졌다.

왼쪽은 쥬브레 샹베르탱 프리미에 크뤼 쁘띠 샤펠 2020, 오른쪽은 샹볼 뮈지니, 프리미에 크뤼 레 상티에 2021. (와이너리 정책으로 가격은 미공개)

우리를 배웅하는 필립 파칼레에게 주연은 넉살 좋게 파리 레스토랑 추천을 부탁했다. 스타 생산자가 추천한 맛집이라니! 비록 일정이 맞지 않아 가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꼭 가 볼 위시리스트로 남아 있다.

배웅해주던 필립 파칼레에게 핸드폰을 턱 내밀던 주연과 직원들과 고심하며 추천 식당을 구글맵에 찍어준 필립 파칼레.

Philippe Pacalet

위치 | https://maps.app.goo.gl/foQqER9LUCABmPyq5
웹사이트 | https://www.philippe-pacalet.com/fr/
투어 예약 | 공식 투어 없음 (웹사이트에 기재된 메일로 문의. 행운을 빈다!)

주연 생각

와인 생산자까지 알고 즐길 만큼의 경지가 아니다보니, 필립 파칼레가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알지 못했다. 오히려 투어가 끝난 후 구글링을 해보곤, ‘저 할아버지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싶어 머쓱했다. 투어 중간까지도, 얼큰히 취해보이는 낡은 외투를 입은 저 할아버지가 필립 파칼레인 줄도 모르고 ‘직원이 막 취한 채로 일하네, 와이너리 복지 남다르구먼’ 싶었으니.

명성에 비해 아담했던 와이너리, 오크통에서 바로바로 와인을 뽑아내서 막걸리 주듯 시음을 권한 덕에 이곳에서의 투어가 꽤 재밌었다. 품종마다 조금씩 다른 색과 맛이 재밌었고 내추럴 와인같은 상쾌한 맛도 느껴졌다.

필립 파칼레를 옆집 할아버지처럼 보고, 파리 맛집을 당장 내놓으라고 하여 얻어낸 그 리스트는 아직 내 구글맵에 저장되어있다. 필립 파칼레가 추천하는 ‘음식도 좋고 와인리스트도 좋은 파리 맛집’, 아래 공개한다. 나 대신 즐겨주길…

Jaïs (https://maps.app.goo.gl/9kbe48Z4ug9TmMFJ8)
Restaurant David Toutain (https://maps.app.goo.gl/FRA2xjefqS8E1HAG7)
Le Violon d’Ingres (https://maps.app.goo.gl/q63dfe4dLvFQokej7)


[3]
와인 러버를 위한 종합선물세트
올리비에 르플레브 와이너리

나에겐 와인 마시는 즐거움을 일깨워 준 친구이자 귀인이 있다. 그 친구와 같이 마신, ‘맑다, 산뜻하다’는 좋은 인상으로 기억된 새하얀 라벨의 와인이 있으니 바로 해리왕자 웨딩 와인으로 유명한 올리비에 르플레브(Olivier Leflaive)의 레세띠(Les Sétilles). 이 와이너리도 본에 위치해있었는데 투어 뿐만 아니라 호텔과 식당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한 와이너리도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차에 방문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부르고뉴는 본을 중심으로, 북쪽을 꼬뜨 드 뉘(Côte de Nuits), 남쪽은 꼬뜨 드 본(Côte de Beaune)으로 부른다. 부르고뉴 와인을 마시다보면 한 번쯤은 들어볼 법한 지명인데 매번 헷갈린다면, ‘Nuits – (같은 N으로 시작하는) North – 북쪽’ 이렇게 외우면 된다. 꼬뜨 드 뉘는 피노 누아로 만드는 레드 와인이, 꼬뜨 드 본은 샤르도네로 만드는 화이트 와인이 유명하다. 

이런 사인을 볼 때마다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본 시내에서 남쪽으로 차로 15분 정도 달려 퓔리니 몽라셰(Puligny Montrachet) 마을에 도착했다. 꼬뜨 드 본에서도 최고의 화이트 와인 산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 올리비에 르플레브 호텔이 있었다. 투어 종류가 몇 가지 있었는데, 이미 다른 와이너리에서 숙성고 투어는 해본 터라 이번에는 포도밭 투어를 선택했다. 열댓 명이 함께 페달을 밟는 특별한 자전거를 타고, 와인을 시음하며 밭을 둘러보는 와인 바이크 투어였다.

와인 바이크
와인잔을 안정적으로 끼우는 홈까지 갖춘, 안전한 와인 바이크.

최근 타 본 자전거라곤 헬스장 바이크가 전부였는데, 이 자전거는 심박수 대신 취기가 오르는 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투어를 이끄는 가이드는 바로, 와이너리 이름이자 창업자 이름이기도 한 바로 그 올리비에 르플레브 할아버지였다. 와이너리의 역사부터 자신들이 와인을 만드는 방식까지, 자부심이 묻어나는 설명이 이어졌고, 중간중간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시간도 주어졌다.

올리비에 르플레브
지긋한 연세지만 왕성하게 활동하는 올리비에 르플레브, 10년 뒤에도 다시 만나고 싶다.

“부르고뉴 와인을 고를 때 생산자가 중요한가요? 아니면 밭의 등급이 중요한가요?”

돌아온 단호한 대답은,

“Vineyard(포도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좋은 포도가 가장 중요하다.”

앞서 필립 파칼레 와이너리에서 들었던 말과도 닮아있는, 탑급 부르고뉴 샤르도네 생산자의 말이라기엔 겸손하게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투어 끝엔, 10년 후에 다시 오라며 그때 자기는 (공동묘지를 가리키며) 저기에 누워있을 거라고 하셨는데,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맛있는 와인 많이 만들어 주시라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바이크를 타며 총 3종의 와인을 시음했다, 취기가 오르니 페달 밟는 속도가 조금 느려지긴 했다.

올리비에 할아버지가 왕년에 비즈니스 스쿨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이력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투어 말고도 호텔이나 레스토랑도 잘 운영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갈하게 꾸며진 객실에는 신혼여행 온 우리를 위한 꽃과 샴페인이 준비되어 있었고, 식당은 최고의 화이트 와인에 어울릴만한 훌륭한 메뉴들이 있었다. 여행하기에 불편할 수 있는 시골 마을에서 덕분에 와인을 편히 즐기다 갈 수 있었다.

허니문을 축하하는 편지와 꽃, 꽃이 너무 예뻐서 다음 도시인 파리까지 가져가 여행의 마무리까지 함께했다.
식당의 음식들도 수준급이었다.

투숙객에 한해 할인된 가격으로 와인도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 중 ‘옹클 뱅상(Oncle Vincent)’을 골랐다. 와이너리를 시작할 당시 아낌없는 후원을 해 준 은인인, 올리비에의 삼촌 뱅상(Vincent)의 이름을 딴 와인이다. 하얀 라벨의 다른 와인들과 달리 황금빛으로 빛나는 라벨로, 딱 봐도 뭔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비주얼이다. 

옹클 뱅상
올리비에 르플레브, 옹클 뱅상 2020. 현지가 42유로.
투숙객에게 제공되는 할인가다.

와인의 이름에서 특정 마을이나 밭이 언급되지 않는 일반 레지오날급 와인이지만, 삼촌을 기리는 마음으로 만든 와인답게 가격대비 품질 좋은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이 와인을 구해 기쁜 마음으로 이곳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와인 뒤의 생산자를 만나는 경험. 그것은 무언가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며, 한평생을 헌신한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었다.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우리의 결혼 생활이 앞으로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괜찮을 것 같다.

Olivier Leflaive

위치 | https://maps.app.goo.gl/j7pTr2w2mWneLA8CA
웹사이트 | https://www.olivier-leflaive.com/
투어 예약 | 웹사이트에서 신청(호텔, 레스토랑도 예약 가능)

주연 생각

신혼여행 전에도 포르투, 토스카나, 호주에서 와이너리 투어를 경험했다. 그래서 와이너리를 세 곳이나 간다고 했을 때, 전부 비슷하게 느껴질까 걱정도 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의 세 와이너리가 모두 다른 스타일의 투어인 점이 좋았다.

공부하듯 투어한 피오 체사레, 옆집 할아버지와 막걸리 양조장 투어를 하듯 했던 필립 파칼레 그리고 바이크 투어부터 숙박, 식사 경험까지 한 올리비에 르플레브까지.

‘걸어서 세계 속으로’류의 여행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면 분명 한 번쯤은 이 와인 바이크 투어를 본 기억이 있을거다. 알딸딸하게 취한 여행객이 일심동체가 되어 다리를 굴리며, 이 밭 저 밭 구경하는 게 특별했다. 

뭐든 돈으로 계산하기 좋아하는 K-한국인(?)답게, 바이크 투어-숙박-레스토랑-와인구매까지 이어지는 경험을 통해 인당 얼마의 수익을 올리는지 계산해보기도 했다. 사업 좀 할 줄 아는 올리비에 할아버지의 경험 설계와 맛있는 와인이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About Author
글렌

위스키와 칵테일에 대해 글을 쓰는 홈텐더. 술이 달아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