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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천국인가, 낮술과 디저트 성지 4선

'낮, 술, 디저트' 미식 큐레이션 4
'낮, 술, 디저트' 미식 큐레이션 4

2025. 05. 19

안녕, 미식에 진심인 객원 에디터 미진이다. 자기소개를 하자면, 일 년에 130여 건 이상의 국내외 다이닝과 스시야를 방문하고, 트렌디한 미식 공간부터 오랜 기간 사랑받는 노포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는 사람이다. 어느정도로 미식에 어느정도로, 와인이 좋아서 국제 공인 와인 자격증을 취득할 정도랄까. 그렇게 발굴한 좋은 미식 공간을 이제부터 디에디트에 소개하려고 한다.

말랑한 햇살 아래 나른함이 감도는 시간. 문득 창밖을 바라보니 몽글몽글 피어난 꽃들이 말을 건다. “찰나의 계절이 지나가고 있어!” 한 달 내내 시간에 휩쓸려 살았다.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굳이 해 질 녘을 기다릴 필요 있을까. 떠오른 건 두 가지. 달콤한 디저트와 향기로운 낮술 한 잔. 입안 가득 퍼지는 디저트의 여운과 혀끝을 간지럽히는 낮술의 취기가 맞닿으면, 평범했던 오후도 특별한 색으로 물들겠지.

그리하여 네 곳의 공간을 공들여 골랐다. 카페냐 바냐 고민할 필요 없고, 당 충전은 물론 감성 충전까지 책임지는, 지금 가장 감각적인 ‘디저트 & 낮술’ 맛집들로. 이건 단지 미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스쳐가는 시간을 붙잡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1]
칵테일과 딸기밀푀유
이재인 셰프의 ‘재인’

재인

한남동 좁은 골목 안, 자그마한 주택 하나. 까만 철제문 옆에 ‘JAEIN’ 사인 하나만 단출하게 걸려있다. “여기 맞겠지?” 좁은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가 문을 열면, 화이트톤의 생동감 넘치는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조금 낯선 공기가 흐르는 이곳은, 카페도 아니고 파티세리도 아니다. 파티셰와 바텐더가 함께 상주하는 ‘디저트 바’다. 매장 한켠에는 구움과자와 쁘띠 갸토가 소담스레 펼쳐져 있고, 화사한 햇살이 내려앉은 창가엔 디저트와 함께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바 테이블이 무심한 듯 놓여있다. 커피는 없다. ‘한국 디저트계의 피카소’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식재료의 경계를 넘나들며 발상의 전환을 이끄는 재인다운 공간이다.

딸기밀푀유와 레몬파이 칵테일

재인의 ‘딸기밀푀유 낭만이다. 나뭇가지 위에 꽃이 피어난 듯한 디자인부터 이미 감각적이다. 이날은 왠지 평소와 달리 입안 한가득 느끼고 싶어서, 나이프로 얌전히 잘라 먹지 않고 우와앙 베어 물었다. 역시. 푀이타쥬의 도톰한 결이 입안에서 파사삭! 부서지며 상큼한 사워체리 소스와 감미로운 디플로매트 크림이 사이 사이로 녹아내리고, 꽃처럼 살포시 얹어놓은 딸기와 처빌이 싱그럽게 톡 터지며 스며든다. 놓칠 뻔했던 찰나의 여유가 입안으로 흠뻑 밀려 들어오는 느낌.

낭만 한 입 먹었으니 이제는 칵테일이 필요하다. “바텐더님, 휴식 같은 칵테일이 필요해요.” 바텐더가 추천한 페어링은 ‘레몬파이’. 사브레를 인퓨징한 버번 위에 레몬 커드와 머랭 크림을 올리고 사브레 파우더로 마무리한 칵테일이다. 처음 한 모금은 살짝. 머금자마자 사브레 파우더와 머랭의 달콤함이 스며든다. 그다음은 크게 한 모금. 먼저 레몬의 향긋한 산미가 슬며시 스치더니, 버번의 캐러멜, 바닐라, 토스트 풍미가 서서히 따라 올라오고, 사브레와 머랭의 여운이 모든 걸 보드랍게 감싸안는다. 이내 굳어진 마음이 스륵 녹는다.

늘 분명한 색으로, 개성 있게, 자신만의 감각을 표현하는 이재인 셰프의 ‘재인’. 과감한 도전 정신이 느껴지는 디저트에 재인만의 독창적인 칵테일까지 곁들이면, 예상치 못했던 특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 서울 용산구 한남동 683-47 2층
• 13:00 – 19:00(18시 음료 마감)
• 월, 화 정기 휴무
• 예약 가능

이재인: (현 現) 재인 오너셰프, 전 다츠 페이스트리 셰프, 전 오트뤼 페이스트리 셰프, 전 미쉐린2스타 정식당 페이스트리 파트 셰프


[2]
겹겹이 부서지는 자르뎅로제와 와인
최규성 셰프의 ‘살롱 드 뮤흐’

뮤흐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만한 막다른 골목 끝. 웅장한 곡선의 짙은 회색빛 건물이 우뚝 섰다. 지난 겨울 오픈한 한남동의 새로운 랜드마크 ‘보보스 한남’으로, 지하 1층부터 지상 6층까지 와인바, 파티세리, 카페, 레스토랑, 루프탑 바가 한꺼번에 자리 잡은 F&B 빌딩이다.

어느 평범한 날의 목적지는 다름 아닌 보보스한남 3층, ‘살롱 드 뮤흐’. 2층 파티세리 뮤흐의 파인 디저트를 앉아서 즐길 수 있는 카페다. 심플하고 모던한 공간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살롱 드 뮤흐에 들어서면, 순간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한 듯 화려하고 로맨틱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하얀 벽면을 가득 메운 아르누보 스타일 꽃과 나비, 반짝거리는 베르나르도 에퀴메 플레이트, 너른 창으로 쏟아지는 금빛 햇살이 한데 어우러지니, 마치 알폰스 무하의 그림 속으로 들어간 듯하다.

살롱 드 뮤흐
디저트는 자르뎅로제, 와인은 샤토 쉬드로 2016

일단 디저트부터. 공간부터 남다른 뮤흐의 낭만을 테이블 위에서도 만끽하고 싶다면, 핑크빛 ‘자르뎅로제’를 추천한다. 푀이타쥬, 로즈 앙글레이즈 크림, 딸기 라즈베리 잼, 마스카포네 크림, 쿠키 슈, 딸기, 장미 꽃잎이 아름답게 층층이 쌓여있는 쁘띠 갸토다. 먼저 눈으로 감상한 후 디저트 나이프로 조심스럽게 잘라 입에 넣으니, 겹겹이 부서지는 푀이타쥬 사이로 부드러움과 촉촉함, 과즙과 크림이 번갈아 스며들며 향긋한 장미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Jardin Rosé, 장미 정원’이란 이름처럼, 장미꽃밭 한가운데 앉아 여유롭게 쉬는 느낌.

페어링은 어떤 게 좋을까. 다양한 와인 리스트를 보유한 뮤흐의 추천 페어링은, 프랑스 소테른 와인 샤토 쉬드로(Château Suduiraut) 2016. 뮤흐와 어울리는 클래식한 페어링이다. 컬러는 연한 골드. 먼저 잔에 코를 대니 꿀, 크렘브륄레, 마지팬 등 달콤한 향이 진하게 올라오며 오감을 간지럽힌다. 뒤이어 한 모금 머금으니 핵과류, 설탕에 절인 과일, 캐러멜, 바닐라 빈 풍미와 농밀한 질감이 입안을 진득하게 휘감으며, 남아 있던 자르뎅로제의 화사한 여운에 볼륨감을 더한다. 만약 더 높은 등급의 소테른 와인을 원한다면, 샤또 리외섹(Château Rieussec), 샤또 디켐(Château d’Yquem)도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경험한 뮤흐의 디저트는 총 다섯 가지. 텍스처, 맛, 향은 제각기 달랐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정교하면서도 동시에 휴식처럼 편안하다는 것. 무겁지도, 혹은 가볍지도 않다. 자연스럽다. 최규성 셰프가 프랑스어 ‘Mûr’의 ‘무르익은’이라는 뜻에 걸맞게 시간과 정성을 듬뿍 녹여내면서도,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균형감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 2025년 1월 오픈
• 서울 용산구 한남동 657-138 3층
• 12:00 – 23:00 (22:30 라스트오더)
• 예약 가능

최규성:  (현 現) 뮤흐 총괄셰프, 전 세드라 오너셰프, 전 한국 카페인스페이스 총괄셰프, 전 한국 카페 디올 오픈 및 운영 책임 셰프, 전 프랑스 피에르 에르메 파리 근무, 전 프랑스 호텔 로얄 몽쏘 근무, 프랑스 국립제과제빵학교 졸업


[3]
무한한 딸기의 집합체와 와인
저스틴 리 셰프의 ‘JL 디저트바’

JL 디저트바

무대처럼 길게 뻗은 바 테이블.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고 나면, 공연의 막이 오르듯 눈앞에서 디저트를 만들기 시작한다. 부수고, 뿌리고, 층층이 쌓고… 틈틈이 설명과 대화도 곁들인다. 이것은 바로, 오감을 총동원한 플레이팅 디저트를 선보이는 ‘JL 디저트 바’의 색다른 풍경이다.  

디저트는 9 textures of strawberry, 와인은 그레이스톤 리슬링

JL 디저트 바의 ‘9 textures of strawberry’는 즐거운 낭만이다. 딸기 솜사탕, 딸기 소르베, 딸기 폼, 딸기 머랭, 딸기 파우더, 딸기 소스, 딸기 겔소스, 반건조 딸기, 생딸기까지. 딸기 하나로 무한한 가능성을 펼쳐낸 딸기 집합체다. 눈앞에서 바닥의 크림치즈 크림부터 꼭대기의 솜사탕까지 차곡차곡 조합해나가는 동작을 지켜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드디어 모든 재료를 입안에 넣는 순간! 층층이 쌓아놓은 맛, 향, 식감, 소리, 온도의 다채로운 레이어가 이쪽저쪽에서 톡톡, 톡톡 터지기 시작한다. 어찌나 재기발랄한지. 마치 산들바람이 실어오는 갖가지 재미난 이야깃거리를 전해 듣는 것만 같다.

JL 디저트바의 추천 페어링은 뉴질랜드 와이파라 밸리의 그레이스톤 리슬링(Greystone Riesling). 이 또한 클래식한 문법에서 벗어나 있다. 오래전부터 디저트에는 달콤한 술을 페어링하는 공식이 전해 내려왔지만, 저스틴 리 셰프는 오히려 반대로 드라이하거나 가벼운 술을 선보인다. ‘각각 먹어도 맛있지만 함께 먹으면 더 맛있게’를 모토로 삼고 있다고. 산뜻한 ‘9 textures of strawberry’에 그레이스톤 리슬링의 섬세한 과실과 활기찬 산도까지 더해지니, 실바람에도 흔들리는 가녀린 풀잎처럼 한없이 가볍고 싱그럽다.

저스틴 리 셰프의 JL 디저트 바는 2016년부터 새로운 개념의 플레이팅 디저트를 선보이며 독자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식사를 마무리하는 후식으로서의 디저트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요리가 되는 디저트를 추구하는 곳이다. 테이블 자리에 앉아 동행과의 시간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바 자리에 앉아 파티셰와 소통하며 추천 페어링을 곁들이면 JL 디저트 바만의 남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서울 용산구 한남동 657-115 3층
• 수, 목, 금 13:00 – 22:00 (21:20 라스트오더)
• 토 13:00 – 23:00 (22:20 라스트오더)
• 일 13:00 – 21:00 (20:20 라스트오더)
• 월, 화 정기휴무
• 예약 가능

저스틴 리: (현 現) JL 디저트 바 오너셰프,  전 2024 테이스트 오브 서울 카페&디저트 1위 선정, 전 2024 프랑스 미식 어워즈 LA LISTE 페이스트리 부문 수상


[4]
민트 그라니따와 와인
김나운 셰프의 <앨리스프로젝트>

앨리스프로젝트

느긋한 오후 햇살 아래 양재천 산책로를 한참 걷다 보면 어느새 발걸음이 느슨해지는 순간이 온다. 이럴 때 잠시 흐름에서 벗어나 조용한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면, 시선을 붙드는 아담한 가게가 하나 있다. 이름도 귀여운 ‘앨리스프로젝트’.

디저트는 민트그라니따, 와인은 디 보톨리 딘 뱃 5

고민할 것도 없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돌아온 앨리스프로젝트의 시그니처 플레이팅 디저트, ‘민트그라니따’가 있으니까. 민트 그라니따 위에 사워크림 소르베를 올리고, 화이트 초콜릿 가나슈와 레몬 커드, 크럼블, 소렐로 마무리한 시원한 디저트다. 한 스푼 가득 떠 입에 머금는 순간, 산책 후 데워진 몸에 그라니따의 청량함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뒤이어 소르베의 부드러운 산미, 레몬 커드의 향긋한 톤, 가나슈의 은은한 달콤함, 크럼블의 바삭한 결이 가볍게 포개지며, 입안에서 투명한 시냇물이 흐르듯 맑고 시원한 여운이 퍼져든다. 더위뿐 아니라 그간 쌓인 스트레스까지 사르르 녹아내리는 느낌.

앨리스 프로젝트의 추천 페어링은, 호주 뉴 사우스 웨일즈 지역의 귀부 와인, 디 보톨리 딘 뱃 5(De Bortoli Deen Vat 5). 달콤하고 묵직해서 일반적으로 견과류나 크림, 머랭, 블루치즈를 사용한 디저트에 페어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가벼운 ‘민트 그라니따’에 페어링하다니 의외의 조합이다. 산뜻한 청량감 위에 달콤한 무게감… 산도와 당도의 간극이 색다르면서도 매력적이다. 시원한 시냇물에 내리쬐는 따스한 햇살 한 줄기 같다.

김나운 셰프의 앨리스프로젝트는 자유롭다. 식재료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진중하고 깊으면서도 동시에 귀여운 모험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도 맛과 향은 어렵지 않고, 항상 놀라울 정도로 밸런스가 훌륭하다. 먹으면서 ‘아무래도 김셰프님 타고난 맛천재인가봐…’ 생각했을 정도로. 만약 새로운 감각을 따라가는 발랄한 플레이팅 디저트의 세계를 탐험하고 싶다면, 앨리스프로젝트로 가보기를.

• 서울 서초구 양재동 95-10 1층
• 월, 목, 일 12:00 – 19:00
• 금, 토 12:00 – 22:00
• 화, 수 정기휴무
• 디저트코스 예약 가능

김나운: (현 現) 앨리스프로젝트 오너셰프, 전 슈퍼막셰 페이스트리 셰프, 전 호주 베넬롱 Bennelong 헤드 페이스트리 셰프, 전 호주 키 Quay 근무, 버즈알아랍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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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진

미식에 진심, 미진입니다. 미식과 예술,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