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창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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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까지 서야 돼? 부창제과 호두과자

‘유행’을 먹고 싶다면 웨이팅 OK
‘유행’을 먹고 싶다면 웨이팅 OK

2025. 06. 17

안녕. 격변하는 한국의 푸드 트렌드를 따라가기가 버거운 객원 에디터 김정년이다. 특히 디저트씬은 유행이 엄청 빠르다. 백화점 팝업 스토어 흥행, SNS 챌린지, 인플루언서의 한마디에 뜻밖의 디저트가 단숨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디저트 하나 유행하면 열 가게가 따라붙는다.

몇 년 사이 호두과자 세계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호두과자를 다루는 디저트 브랜드가 크게 늘었고, 맛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코코호도는 크림치즈 맛을, 앙호두는 소시지를 넣는다. 어떤 호두과자 브랜드에서는 상큼한 허브향을 더한 레몬 딜 버터 호두과자까지 판다. 레몬 딜 버터를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무슨 맛인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뇌절 아닌가? 싶은 호두과자도 있지만, 너그럽게 보면 더 맛있는 호두과자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부창제과
호두과자

요즘 호두과자 세계에서 큰 화제를 모은 브랜드는 부창제과. ‘늘 음식에 진심인 배우’ 이장우가 관여하는 디저트 브랜드로, 외식업계 전문가와 손잡고 1990년대까지 경주에 있던 제과점을 부활시켰다고 한다. 한국인의 추억을 건드리는 레트로 디저트를 만드는데, 최근 6개월 동안 전국 신세계백화점 푸드코트를 중심으로 매장을 확장시켰다. 브랜드 론칭 이후 1억 개 넘게 만들었다는 호두과자의 맛은 어떨까? 가장 가까운 신세계 강남 스위트파크를 방문했다.

호두과자. 호두 모양 틀에 밀가루 반죽을 붓고 그 위에 호두조각과 팥앙금을 담아 노릇하게 구운 구움과자 디저트. 한국 사람이라면 적어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한 번쯤은 먹어본 국민 간식이다. 그런데 호두과자가 원래 줄 서서 먹는 음식이던가?

부창제과 앞은 이른 낮부터 길게 사람들의 줄이 끊이지 않는다. ‘호두과자로 웨이팅을 만들다니 정말 대단해!’ 줄을 서서 먹는 음식을 그리 즐기지 않는 편이어서 호기심이 생겼다. 웨이팅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직접 먹어봐야 아는 법. 평일 점심시간에 30분 정도 줄을 섰다. 부창제과의 호두과자 가격은 12개입 8,000원(*택 2종), 선물세트 포장은 18개입 1만 5,000원.

뜨거울 때 먹으니, 앙금의 달콤함과 얇게 뜬 밀가루 빵의 바삭한 식감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견과류 크기는 다른 호두과자와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다. 딱딱한 견과류의 존재감이 미미하니 흐물흐물한 앙금의 맛이 두드러진다. 식으면 겉이 눅눅해지는데, 이때 먹으면 빵 맛이 아쉽다. 에어프라이어에 3분 정도 돌리니 바삭한 빵 맛이 되살아났다. 

부창제과는 앙금 맛이 다양했다. 신세계 강남 스위트파크점은 호두과자 맛의 정석인 팥앙금, 꼬수운 단맛을 간직한 흑임자와 인절미, 완두콩이 쏙 담긴 완두배기, 그리고 슈크림 붕어빵을 떠오르게 하는 우유니 소금맛을 선보였다. (우유니 소금맛은 무슨 이유인지 이름과 달리 짠맛도 감칠맛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스위트파크점의 경우, 요일마다 매장에서 다루는 앙금이 달랐다. 부창제과 호두과자의 모든 맛을 경험하고 싶다면 여러 번 방문해야 한다.

누군가 내게 “부창제과 호두과자 맛있어?”라고 물어보면 고갤 끄덕이며 “‘맛’이 있어.”라고 답하겠다. 호두과자를 채운 앙금은 각자 자기주장이 확실한 맛을 갖고 있다. 특히 앙금의 달콤함이 인상적이다. 전반적으로 어떤 호두과자를 먹던 입안에 달달한 여운이 남는다. 단맛에 너그러운 성격이라면 부창제과 호두과자를 맛있는 디저트로 여길 듯하다.

그런데 “부창제과 호두과자는 맛있는 ‘음식’이야?”라고 물어보면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답하겠다. 견과류의 식감, 앙금의 단맛, 밀가루 반죽의 익힘. 호두과자를 이루는 요소가 서로 조화롭게 맞물리는 음식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앙금이 다양한 건 확실한 강점이다. 하지만 단맛만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농구로 빗대면 ‘앙금’은 부창제과 호두과자팀의 에이스. 앙금이 득점도 잘하고 리바운드도 잘하고 패스도 잘하는데, 나머지 팀원이 앙금에 눌려서 유기적인 팀플레이를 해내지 못하는 상황. 앙금 활약에 따라 모든 게 좌우될 원맨팀 호두과자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 오랜만에 호두과자를 먹어서 편협한 평가를 내리는 건 아닐까?’ 싶어 문득 비교시식을 하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부창제과 방문 일주일 뒤 호두과자의 고향 천안에 다녀왔다. 호두과자의 원조라 손꼽히는 학화호두과자 본점과 천안역 근처 노포를 돌며 호두과자를 쓸어 담았다. 아침, 점심, 저녁 내내 호두과자를 먹었다. 

부창제과 호두과자와 비교하면, 천안에서 먹은 팥앙금 호두과자는 가격경쟁력이 있었고, 빵도 훨씬 폭신했다. 공통적으로 호두과자를 입안에 넣고 오래 씹어도 마냥 달지는 않았다. 그리고 호두알이 비교적 컸다. 견과류의 고소함이 앙금의 단맛을 견제하는 기분이었다. 팥이 들어간 호두과자의 경우, 예외 없이 조화로운 단맛을 경험할 수 있었다.

천안버스터미널 옆 학화호두과자 본점에서 파는 앙버터맛과 쑥인절미맛 호두과자. 본점 한정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출처: 학화호두과자 홈페이지

앙금의 다양성 면에서도 천안의 호두과자 가게 역시 부창제과만큼의 다채로움을 확보하고 있었다. 특히 2020년대 인기 디저트의 맛을 호두과자에 이식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학화호두과자 본점에서는 쫀득한 떡으로 식감에 킥을 주는 쑥인절미맛이 가장 인상 깊었고, 앙버터맛은 먹고 나면 버터의 부드러움이 입안에 퍽퍽한 느낌이 드는 걸 막아줬다. 천안역 앞 어느 가게는 호두과자 위에 튀김소보루를 얹는 경우도 있었다.

천안의 호두과자 가게를 돌며 이런 이색메뉴를 언제부터 팔았냐고 여쭤보니, 한 가게 점원분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 말씀해주셨다. 덧붙여 ”전통에 충실한 맛이랑 ‘요즘 젊은 친구들 입맛’이 반반씩 나가는 편예요.”라고 귀띔해주셨다. 호두과자의 본고장도 부창제과 못지않은 K-디저트의 유행을 반영하고 있다는 걸 배우고 다시 서울행 열차에 올라탔다.

다시 부창제과 호두과자 이야기로 돌아오자. 적어도 세 가지 요소의 보완이 절실해 보인다. 앙금의 ‘건강한 단맛’, 호두과자 이름에 걸맞은 ‘견과의 존재감’. 잘 익힌 구움과자의 ‘입체적인 맛’(누군가는 겉바속촉이라 부르는 맛). 이는 한국 사람들이 호두과자에서 맛보길 기대하는 기본 스펙이라 생각한다. 5월에 먹은 부창제과 호두과자는 이색적인 단맛에 기댄 채, 반짝 인기를 얻는 디저트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세게 든다. 그런 점에서 줄을 서서 먹을 이유는 없는 호두과자라 말씀드리겠다. 호두과자가 아니라 ‘요즘 유행’을 먹고 싶다면 웨이팅 OK! 큰 기대 없이, 줄이 적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사 먹는 걸 권해드린다.

한편 천안 호두과자 가게에서 들은 ‘요즘 젊은 친구들 입맛’이란 표현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요즘 젊은 친구들 입맛이라… 그런 입맛은 대체 무엇인가. 그런 입맛의 디저트는 뭐가 있을까. 약과를 올린 쿠키, 크로플, 두바이 초콜릿, 밤 티라미수 같은 음식이 떠오른다. 인상 깊은 맛을 하나씩 간직했기에 너도나도 먹어보려 애쓰지만, 어쩐지 물려서 한 번 맛보면 거기서 끝인 음식들.

부창제과 호두과자가 그런 ‘한 번 먹고 끝나는 음식’으로 남지 않길 바란다. 배우 이장우의 ‘음식에 대한 진심’이 TV 너머로 전해졌다면, 이제는 진심이 호두과자 맛에서도 드러나야 한다. 호두과자 흥행을 이어가기 위해선, 재정비가 필요해보였다. F&B 브랜드의 기획력보다 음식의 맛이 기억에 남을 부창제과이길 응원한다.

필자는 호두과자처럼 나름 한국에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음식이 유행에 편승하다 시들어가지 않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전통을 존중하는 가게와 힙한 시도를 이어가는 가게가 공존하는 호두과자 세계의 다음 챕터를 기대하며, 2025년 대세 호두과자 리뷰는 여기까지.

About Author
김정년

브랜드와 음식문화를 탐구하는 피처 에디터. 세계를 떠돌며 아름다운 논픽션을 쓰는 게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