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음식을 안 좋아하는 편이다. 펄펄 끓는 뚝배기보다는 토렴식을 선호하고, 가스불에 끓여 가며 먹는 찌개류도 좋아하지 않는다. 한식 애정이 크지 않으면서 파스타와 나폴리 피자를 좋아하다 보니 ‘난 도대체 왜 이럴까’ 의구심을 가진 채 살아왔다. (심지어는 해장도 버거로 한다) 하지만 나이가 30대 후반이 되니 이상하게 뜨끈한 국물에 본능적으로 끌리기 시작한다. 몸이 원하는 걸까…? 물론 아직까지도 팔팔 끓는 뚝배기는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스트레스 받을 때, 속이 답답할 때, 기운이 없을 때면 한식만이 줄 수 있는 온기를 찾게 된 것이다. 오늘은 최근 몇 개월 동안 방문했던 식당 중 추천할 만한 한식당을 추천하려고 한다. 어디서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파는 곳은 아니다. 뭔가 다른 한 끗을 지닌 그런 식당이다.
1. 트리플본국밥
“깊다! 다르다! 뉴 웨이브 국밥“


국물이 특이하다. 지금까지 먹어본 어떤 국물과도 비슷하지 않다. ‘트리플 본’이라는 이름처럼 세 가지 종류의 뼈를 함께 우린 것으로 추정되긴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 공식적인 설명은 없다. 메뉴를 보면, 닭 장각, 돼지, 소가 토핑으로 올라가는 다른 종류의 국밥이 있고 나는 소뼈국밥을 시켰다. 국밥인데 특이하게도 국물 없이 서빙되고, 서버가 보온통을 따로 들고 와서 뚝배기에 부어준다. 직원의 말로는 밥이 뜨거운 뚝배기에 달라 붙어 있는 상태에서 뜨거운 육수를 부었기 때문에 누룽지 같은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먹어보면 확실히 누룽지 뉘앙스가 있고, 국물에는 점도가 있는 편이다. 감칠맛이 상당하다. 감칠맛이 뼈로 우린 깊은 맛에서 오는 건 확실한데 이게 도대체 무슨 뼈인 걸까 그런 생각이 든다. 닭은 느껴지고, 소도 있는 것 같고… 문정역 부근에 있다 보니 생활권과 멀어서 자주 못 가는데 조금만 가까웠다면 자주 가봤을 것 같다.

얇게 썬 냉제육과 김장아찌도 있다. 클래식한 제육을 바란다면 기대에 못 미치겠지만 뻔하지 않아서 나는 좋았다. 껍질을 그을려서 불맛을 더했고, 김장아찌는 짭조름해서 궁합이 좋다. 참고로 트리플본국밥의 셰프는 <흑백요리사> 시즌1에 출연한 ‘공사판 셰프’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방송 분량이 많지 않았지만 이 정도로 이색적이고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낸다. 매번 느끼지만 방송이 전부가 아님을 트리플본국밥에서 한 번 더 알게 된다.
- 서울 송파구 법원로11길 11 문정현대지식산업센터 A동 107호
2. 오일제
“들깨 미역국 하나로 승부”

단일 메뉴를 파는 식당을 신뢰한다. 하나만 잘하기에도 부족한데 어떻게 여러 음식을 만드냐는 결론에 도달한 요리사가 식당을 지키고 있을 것 같아서. 오일제는 미역국 하나만 파는 곳이다. 그것도 들깨 미역국 한 종류만 판다. 사실 오일제는 너무 유명하다. 너무 유명해서 예약도 힘들고, 워크인은 불가능할 정도다. 처음에는 유명한지 몰랐다. 첫방문하던 날을 기억한다. 토요일 오전 11시 정도에 삼각지역에서 내려 오일제로 천천히 걸어갔다. 식당으로 가는 길은 한적했다. 그때까지도 밥을 못 먹을 거란 생각은 당연히 못했다. 하지만 문 앞에 적힌 네 글자 ‘재료 소진’. 나는 ‘오전 11시에 어떻게 재료가 소진될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 3주 정도 지났을 때 2차 방문했다. 이번에는 오전 10시였다. 문 앞에는 또 ‘재료 소진’이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억울한 마음을 누르며 문을 열고 사장님께 물었다. “(도대체) 몇 시에 오면 먹을 수 있어요?” 사장님은 보통 오전 9시에 오면 가능하긴 하다고 했다. 오전 9시? 그렇게까지 먹고 싶지는 않았다. 찾아보니 전화 예약을 할 수 있었다. 한 달 뒤 평일 오전 10시로 예약했다. 그게 제일 빠른 날이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이 크다고 하지만 오일제는 기대에 부응하는 곳이다. 지금까지 못 먹어봤던 최상의 미역국을 만드는 곳은 아니다. 미역국의 맛은 시간과 좋은 재료에서 오기 때문에 미역국 전문점에서 맛을 압도할 정도는 아닐 수 있다. 다만 정갈한 차림새와 공간의 분위기에 조금 더 기분이 좋아하는 건 있다. 카톡 선물하기 덕분에 생일에 선물을 받는 건 오히려 덜 특별해졌다. 하지만 미역국을 사주는 건 의미가 다르지 않을까. 누군가의 생일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면 오일제 추천한다. 참고로 스마트스토어에서 밀키트도 파는데 생각보다 잘 재현했다. 밀키트도 추천한다.
-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62다길 29 1층
3. 심마니약초백숙
“건강한 맛이야”


직접 캔 약초와 버섯을 듬뿍 넣은 백숙. 오직 전화로만 예약할 수 있는 이 식당의 존재가 유튜버 ‘안성재’ 덕분에 전국에 퍼졌다. 게스트로 출연한 ‘요리괴물’ 이하성 셰프의 단골집으로 소개가 된 것. 심마니약초백숙을 소개해주니 반가움도 있었지만 이제 방문이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많이 아쉬웠다. 메뉴는 산약초 닭백숙, 오리백숙, 삼계탕, 닭도리탕, 참옻 백숙 등 다섯 가지. 나는 ‘4인팟’으로 방문해 닭백숙을 먹었다. 한눈에 봐도 굉장해 보이는 밑반찬과 백숙은 다른 식당에서는 쉽게 못 본 비주얼이다. 이건 보약이나 마찬가지다. 직접 캔 약초들이 듬뿍 들어가 있다. 음식도 음식이고 무엇보다 친절하고 다정한 사장님의 서비스 덕분에 온기를 잔뜩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어떤 대화를 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직접 담근 술도 한 잔씩 받으며 두런두런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그동안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서 음식은 슴슴하다고 생각했다. ‘오? 이거 내가 생각하던 맛이 아닌데?’ 싶었다. 한국 사람들이 간이 심심한 음식을 먹을 때 하는 말이 있지 않나. “건강한 맛이야” 그 말의 결정체 같은 음식이다. 재료 본연의 맛을 강조하고 짜거나 단맛을 최소화한 느낌. 이런 안주(?)라면 술을 마시면서도 건강해지고 있다는 착각이 들 자신이 있다.
- 서울 성동구 성덕정13길 4
4. 닭진미강원집
“모닝 커피 레이브가 필요 없는 아침”


닭진미 강원집을 알게 된 건 4년 전이었다. 믿고 보는 <최자로드>에서 최자가 맛집으로 소개한 영상에서 처음 닭진미 강원집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사실 남대문에는 가 본 적이 거의 없다. 중고 카메라를 살 때 한 번쯤 스치듯 들린 정도. 네이버 지도에 한참 동안이나 저장되어 있다가 어느날 문득 생각이 났다. “이번 주말에 강원집이나 가볼까?” 그럴 때가 있다. 코끝으로 어떤 음식이 향이 미세하게 느껴질 때. 짜파게티라든지 화덕피자라든지. 그날은 백숙이었던 것이고.
회현역에서 내려 남대문시장쪽으로 걸어가면 좁은 골목에 식당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을 만나게 된다. 그 골목 안에 닭진미 강원집이 있다. 아침 일찍부터 하루가 시작되는 시장 사람들을 위해 아침 8시부터 문을 열고, 밤 8시 30분까지 영업한다. 요즘 아침 일찍 카페에 모여 춤을 추는 ‘모닝 커피 레이브’가 유행인데, 시장 사람들은 그런 것 필요 없다. 원래 그 시간에 일어나니까. 메뉴는 통닭, 닭곰탕, 고기백반이 있고, 베스트셀러는 고기백반이다. 한국에서 닭고기는 대체로 강한 양념을 만날 때가 많다. 고추장에 조려지든, 밀가루를 입혀 양념에 버무리든. 대부분의 닭요리는 영계를 쓰기 때문에 육향이 거의 없고 부드러운 식감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닭진미 강원집에서는 노계를 쓰는데 식감이 부드럽기보다는 쫄깃하고(질긴 게 아니다) 탄탄하다. 그런 닭을 수육 형태로 먹기 때문에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이다. 맛도 맛이지만 시장 사람들의 생활권에 들어가 본다는 느낌이 색다르다. 지하철 타고 9시 출근 6시 퇴근의 삶에서 잠깐 비껴나 오전 일찍 들린 시장 풍경은 시끌벅적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처음 보는 어르신과 합석을 하고 닭다리를 뜯다 보면 “오랫동안 나도 맛있는 거 먹으려면 건강하게 살아야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1962년에 오픈한 이 가게처럼 오래오래.
-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길 22-20
5. 서촌가락
“서촌의 숨은 데이트 코스”



한때 서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같이 노는 친구가 서촌을 좋아했고, 나와 그 친구의 중간이 서촌이라서. 물론 나도 좋아했다. 경복궁역에서 멀어질수록 줄어드는 소음, 골목에 숨은 카페를 발견하는 재미가 좋아서.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헤매다 우연히 발견한 곳이 바로 지금 소개하는 ‘서촌가락’이다. 외관만 봐서는 평범해보이지만 음식에 굉장한 내공이 숨어 있다. 두부김치, 감자전, 비빔국수, 이름만 들어서는 대단하지 않을 것 같지만 손맛이 좋아서일까. 조금의 흠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밸런스를 갖췄다. 단맛이 과하지도 않고 자연스러우면서 기름기가 많아서 부담스럽지도 않다. 서촌가락을 세 번 정도 방문하면서 여러 메뉴를 먹어봤는데, 맛이 없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여긴 정말 아끼는 곳이라 지금까지 친구에게만 알려줬다. 가장 맛있는 건 비빔국수와 산채만두다. 고기 하나 들어가지 않은 만두가 웬만한 고기만두보다 감동을 준다. 다양한 전통주가 있고, 잔술로도 판매한다.
커플이 많았다. 테이블 간격이 가까워서 대화가 잘 들렸는데, 커플이거나 부부거나 썸이었다. 존댓말을 쓰며 적당히 농담을 섞어가며 조심스럽게 식사를 하는 조합이 많이 보였다. 데이트 코스로도 괜찮은 곳이라는 뜻이다.
-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7길 59
6. 미필담
“만둣국계의 평양냉면”


한국 음식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나는 ‘따뜻한 국물’이라고 생각한다. 아침 식사에는 목이 메이지 않게 국물이 꼭 들어가고, 웬만한 가정집에는 대용량으로 끓인 음식이 있는 게 일반적인 풍경이니까. 한국인의 국물 사랑은 부족한 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던 시기에 가성비 좋게 요리하는 방법이 끓이는 것이니까. 미쉐린 가이드 빕구르망에는 유독 만둣국이 많다. 개성만두 궁, 봉산옥, 만두집, 자하 손만두, 평양집. 나는 지금 언급한 모든 가게에 전부 가봤다. 그 중 최고는 미필담이다. 만굿국계의 평양냉면이다. 극단적으로 맑은 국물, 만두 외에는 쉽사리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강건함이 그릇에서 보인다. 황해도 출신인 외할머니의 조리법을 기반으로 만둣국을 만들었다고 한다. 양지를 베이스로 끓여 국물이 맑고 기름기는 거의 없다. 국물은 뜨겁게 않고 따뜻한 정도. 자극적인 걸 좋아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나처럼 평양냉면과 어복쟁반을 좋아하는 슴슴파 인간에게는 완벽한 만둣국이 될 것 같다. 만둣국 외에도 수육, 김치말이 국수, 양지온반을 판매하며 종류가 많진 않아도 술도 있다.
- 서울 마포구 성지3길 22 1층 미필담
7. 저저
“산뜻하다! 다르다! 뉴웨이브 국밥”

식당 투어가 취미가 되면 한끼 한끼가 소중하다. 게임이 취미라면 몇 판이나 할 수 있지만 밥은 하루에 많아도 3번밖에 시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려고 했던 식당이 갑작스레 휴업이면 동선이 꼬이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저저 방문도 쉽지 않았다. 첫 방문을 했을 땐 재료 소진으로 문이 닫혀 있었고, 두 번째 방문했을 때는 국밥이 없어서 국수를 먹었었다. 그러니 나는 아직도 국밥을 먹지 못했다는 뜻이다. 물어보니 국수나 국밥이나 육수는 같은 베이스라고 했다. 어차피 중요한 건 육수이니 그냥 먹자 싶었다. 육수는 충청도식이다. 내장을 넣지 않고 뼈, 살로만 끓여서 맑고 깔끔한 게 충청도식 국밥의 특징이라고 한다. 셰프는 여기에 미나리와 산초를 넣어서 경상도식 국밥의 특징을 섞었다. 결론적으로는 하이브리드 국밥인데, 왠지 모르게 충청도와 경상도를 섞으니 동남아 음식 같은 느낌이 난다. 저저는 충무로와 합정 두 군데 지점이 있으니 새로운 스타일이 국밥이 당긴하면 방문해봐도 좋겠다.
-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 65 1층 101호
- 서울 중구 퇴계로41길 31 1층 101호
8. 계월
“닭곰탕으로 끝장을 보겠다”



미필담이 만둣국계의 평양냉면이라면 계월은 닭곰탕계의 평냉이다. 국물이 맑아서 바닥에 깔린 쌀 한 톨 한 톨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다. 깔끔하면서도 깊이가 있어서 맛있는 닭곰탕이 먹고 싶다면 무조건 계월을 추천하고 싶다. 메뉴는 백곰탕뿐만 아니라 매콤하게 마무리한 홍곰탕도 있고, 곁들임 메뉴의 닭무침도 베스트셀러다. 먹어 본 적은 없지만 된장 양념에 재운 허벅다리 메뉴도 있다. 설명만 봐도 맛있는 게 짐작되고도 남는다. 계월은 미쉐린 가이드 빕구르망에 오른 곳이다. 성수동에있지만 역과 거리가 멀어서 교통이 편하진 않다. 하지만 곰탕 하나 먹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으며, 내가 방문했던 그 날도 그랬다.
- 서울 성동구 성덕정3길 8 1층
9. 어부오와
“귀하다, 강원도식 닭개장이라니”



사실 성수동 상권 식당에 기대가 없다. 번화가에는 팝업과 포토스튜디오, 유행을 따르는 식당들로만 북적이고 오래전부터 자리를 지켜온 식당은 그 자리를 지킬 수가 없으니까. 어부오와는 조금 색다른 곳이다. 신장 개업 식당이지만 메뉴는 클래식하게 ‘강원도식 닭개장’을 판다. 보통 유행과 거리가 먼 이런 음식을 파는 식당은 본인의 철학이 뚜렷한 경우가 많다. 내가 이 음식을 너무 좋아해서 꼭 팔고 싶었다거나 추억이 담긴 음식이라거나. 메뉴판을 살펴보니 어쩌다 닭개장을 팔게 되었는지 자세히 적혀 있다. 삼척에 살았던 할머니와의 추억이 깃든 음식이며, 밑반찬도 대충 만든 것이 없다. 고소한 톳두부무침은 너무 맛있어서 두 번이나 리필했다. 메뉴는 오직 닭개장과 감자전 딱 두 가지만 판매한다. 이 정도면 단일 메뉴 식당인데, 성수동에서 보기 힘든 식당이라 믿기 힘들 정도였다. 이런 식당이 왜 이 비싼 성수동에…? 강원도식 닭개장은 전분기가 많아서 죽처럼 걸죽했고, 닭고기가 잘게 풀려 있어서 한 숟가락씩 퍼먹을 때마다 고소함이 잘 느껴졌다. 성수동에 가면 꼭 방문해야 할 식당으로 추천하고 싶다. 할머니의 사랑이 듬뿍 느껴지고, 음식도 맛있는 식당이다.
- 서울 성동구 연무장1길 8 지하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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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