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강

LIFE

파리 센강에서 수영하기, 제가 해봤습니다

100여 년 만에 개장했다는데 궁금하잖아요
100여 년 만에 개장했다는데 궁금하잖아요

2025. 07. 22

안녕, 객원 에디터 길보경이다. 언젠가부터 여름을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라 말하기가 조금 머쓱해졌다. 신록이 무성한 계절인 만큼, 무더위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여름에 어항 속을 걷는 것과 같다면, 유럽은 그야말로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습도가 낮다 한들, 40도까지 치솟는 폭염 앞에선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을 터.

올여름을 파리에서 보내던 어느 날,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바로 센강 수영장이 102년 만에 개장했다는 것! 파리시가 지난해 올림픽을 계기로 무려 2조 5천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해 수질 정화 사업을 진행한 끝에, 드디어 공공 수영장이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역사적인 순간인가. 

당장 프랑스인 친구들에게 함께 가자며 연락을 돌렸다. 그런데 웬걸, 다섯 명 중 다섯 명이 거절. 그중 한 명은 뜯어말리기까지 했다. 아직 믿을 수 없다고, 분명 똥물일 거라고. (사람들이 진짜 센강에 똥을 싼다는, 알고 싶지 않은 TMI까지 전해주었다…) 그래도 괜찮다. 더위에 지친 나에게 이 소식은 너무도 반가웠다. 무엇보다 이번 여름이 아니면 또 언제 센강에서 수영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일단 가보기로 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필자를 용감하게 여겨도 혹은 한심하다고 생각해도 다 괜찮다. 중요한 건 유쾌하고 짜릿한 경험을 했다는 것. 센강 수영장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생생한 후기를 전한다.


혁명기념일을 앞둔 주말, 스포츠 수건과 선글라스 그리고 책 한 권을 챙겨 가볍게 집을 나섰다. 찬물에 몸을 식힐 생각에 신바람이 절로 나더라. 이번에 문을 연 수영장은 총 세 곳. 센강의 마리 수로(Site de baignade du Bras Marie), 베르시 강변(Baignade Bercy), 그르넬 항구(Baignade de Grenelle)다. 위치로 따지자면 마리 수로는 4구 생루이 섬 맞은편, 베르시 강변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있는 13구, 그르넬 항구는 에펠탑 뷰 명소이자 영화 인셉션의 촬영지로 유명한 15구 비르하켐 다리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오는 8월 31일까지 세 곳의 수영장 모두 누구나 원하는 시간만큼 자유롭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이중 재방문하고 싶은 곳을 고르라면, 주저 없이 베르시 수영장을 택할 것이다. 그 이유는 차차 소개하도록 하겠다. 6호선 콰이 드라 가르(Quai de la Gare)역에서 내려 시몬 드 보부아르 인도교(Passerelle Simone de Beauvoir)를 건너면, 다리 너머 강변에 베르시 수영장이 한눈에 펼쳐진다. 입구에서는 가방 검사를 거친 뒤 입장할 수 있었고, 음식물과 주류는 반입 금지였다.

일단, 넓어서 좋다. 최대 700명까지 수용할 수 있으며, 세 곳 중 가장 큰 수영장을 갖췄다. 두 개의 존으로 나뉜 수영장 중 하나는 길이 35미터에 너비 12.5미터, 다른 하나는 무려 길이 67미터, 너비 11미터에 달한다. 한강 수영장처럼 너비가 좁고 수심이 얕지 않아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수영장 존에는 탈의실, 샤워 시설, 화장실, 장애인 전용 일광욕 공간은 물론 응급처치 구역까지 잘 갖춰져 있었다. 안전요원도 예상보다 많이 배치돼 있어 혹시 모를 비상 상황에 잘 대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파리 시민들이 대부분이었다. 휴가철에 멀리 떠나지 못한 이들에게 이곳은 훌륭한 대안이 되어주는 듯했다. 각자 가져온 수건을 바닥에 펼치거나 구역별로 마련된 파라솔 아래 비치 의자를 자유롭게 이용했다. 인상 깊었던 건, 누구 하나 가방을 덜렁 두고 수영장에 뛰어드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 모두 주변 사람들에게 “제 짐 좀 봐주세요”라고 부탁한 뒤 물에 들어갔다. 태닝을 목적으로 꽤 오랜 시간 앉아 있던 나는 결국 동시에 다섯 팀의 짐을 맡아주게 되었는데… (나는 언제 들어가라고) 물론 유료 보관함도 있지만, 열쇠는 개인이 지녀야 하니 단독 방문보다는 동행과 함께 오는 걸 추천한다.

입수할 땐 반드시 노란색 구명띠를 착용해야 했다. 수영장이라지만 결국 센강에 마련된 공간인 만큼, 이 안전장치가 없었더라면 나 역시 다소 긴장했을 듯하다. 물 상태는 솔직히 아주 맑진 않았다. 파리 당국은 수질이 유럽 기준을 충족한다고 밝혔고, 안 이달고 시장은 현장을 찾아 센강 물을 담은 투명한 병을 들어 보이며 신뢰를 강조했지만 체감했을 땐 살짝 아쉬웠다. 둥둥 떠다니는 정체불명의 이물질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물고기를 발견하고 아이처럼 활짝 웃는 파리 시민들을 보니, 긴장감이 스르르 풀렸다. 다행히 지금까지도 건강에 아무 이상 없으니, 결과적으로 괜찮았다고 말할 수밖에. 기분 좋은 시원함 속에서 유유자적 수영을 즐겼다. 베르시 수영장은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되니 참고.

무엇보다 베르시 지구의 매력은 수영장에만 있지 않다. 주변 지역은 이미 오래전부터 파리지앵들 사이에서 쿨하고 트렌디한 분위기로 손꼽히는 동네다. 쁘띠 베인(Petit Bain)과 바토-파레(Bateau-Phare) 같은 콘서트 보트부터, 복합문화공간 플라트/폼(Plat/Form), 그리고 콰이 드 라 포토(Quai de la Photo)까지. 강을 따라 이어지는 테라스에서는 공연, 전시, 마켓 등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며, 여름이면 마치 작은 페스티벌처럼 활기를 더한다. 

수영을 마친 후 젖은 머리 그대로 맥주 한 잔을 들고 라이브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이곳만의 아주 특별함일지도. 강가에 앉아서 해 질 녘 노을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여운을 즐기고 있노라면, 당일치기 수영장이 아니라 일종의 ‘작은 휴가’를 보내고 있는 기분이 들 것이다. 막상 베르시 수영장에 왔는데 입수가 망설여진다면, 이 문화 지구에 자리한 조세핀 베이커 수영장(Piscine Joséphine Baker)도 추천한다. 센강 위 바지선에 지어진 실내외 수영장으로, 하늘과 강의 풍경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다.

만약 에펠탑을 바라보며 수영을 즐기고 싶다면, 15구 그르넬 항구의 수영장도 가볼 만하다. 울창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수영장 주변 환경은 도심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만든다. 이곳의 큰 장점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수영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 수영장 내부에는 깊이 40~60cm의 얕은 풀이 있어 어린이나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특히 인기였다. 물론 수영 실력자들을 위한 브라스 마리(Brass Marie) 구역도 따로 있었다. 단, 물살이 제법 있는 편이니 어느 정도 수영에 익숙한 사람에게 적합하다. 이곳 역시 탈의실, 샤워실, 화장실, 리셉션, 거동이 불편한 이용자를 위한 편의시설 등 기본적인 부대시설이 모두 잘 갖춰져 있다.

인근 수상 스포츠 센터에서는 무료 카약 입문 강습이 진행된다. 준비물 없이 찾아가도 노를 저어보는 이색적인 경험을 즐길 수 있다니, 여름날의 소소한 모험으로 제격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토요일은 오후 4시 45분까지, 일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2시, 오후 12시 30분부터 2시 15분, 그리고 오후 2시 45분부터 5시 30분까지 세 타임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사실 에펠탑 뷰 수영장을 원한다면 또 다른 옵션도 있다. 마찬가지로 15구에 있는 에밀 앙투안 수영장(Piscine Emile Anthoine)은 에펠탑이 보이는 실내 수영장으로, 파리지앵이 좋아하는 히든 스팟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생루이 섬 맞은편에 위치한 마리 지류 수영장이다. 이곳은 파리 시민들의 대표적인 도심 속 휴양지인 파리 플라주(Paris Plage)의 일부로 조성되어 있다. 파리 중심부에 자리해 인근 관광 명소를 둘러보다가 가볍게 들르거나, 수영하지 않더라도 해변처럼 꾸며진 공원에서 피크닉 기분을 즐겨도 좋겠다. 이 수영장 역시 최대 150명까지 수용 가능하며, 규모는 그르넬 항구 수영장과 비슷하다. 올해 파리 플라주의 테마는 바로 브라질의 카니발. 

프랑스-브라질 수교 200주년을 기념해 코파카바나의 정취를 센강에 재현했다. 이를테면 야외 브라질 영화관, 라이브 콘서트, 남미 요리 미식회, DJ 공연, 각종 워크숍까지 축제의 열기로 한여름 강변이 들썩이는 중이다. 안타깝게도 필자가 방문한 날마다 행사가 겹쳐 수영장은 운영하지 않았고, 결국 입수에 실패했다. 그래도 주변 풍경과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들를 가치가 있는 장소였다.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 이곳을 포함해 모든 센강 수영장은 무료로 개방된 열린 공간이다. 따라서 방문 시간대에 따라 꽤 긴 줄을 설 수도 있다. 필자 역시 입장을 위해 약 한 시간가량 대기해야 했는데, 시간을 아끼고 싶다면 오전 시간대 방문을 추천한다. 입장 후에는 시간제한 없이 머무를 수 있지만, 물과 음료를 제외한 음식물 반입은 어렵고, 흡연과 음주 역시 엄격히 금지된다. 이 점을 미리 알고 간다면 훨씬 더 쾌적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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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보경

걷고 뛰며 바라본 세상을 글로 풀어내는 매거진 에디터. 언제나 자유롭고 여유롭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