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간만에 카페 방문기로 돌아온 객원 에디터 김정현이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탓에 인접한 지역인 서대문구/마포구/종로구 너머로는 웬만하면 나가지 않는 내가 봄을 맞아 산책 범위를 (아주 조금) 넓혀봤다. 이번에 근사한 카페를 찾아 돌아본 지역은 남영동과 삼각지 일대. 지하철역 기준으로 4호선 숙대입구역과 1호선 남영역, 4・6호선 삼각지역을 아우르는 동선에 해당한다.
100년 넘은 건물에 자리한 가게부터 교토 현지에서 공수한 원두를 맛볼 수 있는 매장까지, 각기 다른 맛과 멋을 자랑하는 4곳의 카페를 소개한다. 다가오는 주말 나들이에 유용한 리스트가 되어주기를!
오래된 건물에 숨겨진 로스터리 카페
데일리루틴
숙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골목 하나만 들어가면 나타나는 남영아케이드는 1922년 당시 남영동 일대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을 위해 지어진 공설시장이다. 100년이 넘는 세월의 아우라를 풍기는 이 건물에서 현재 운영 중인 업장은 세 곳뿐이다. 바비큐 요리 전문가 유용욱 소장의 ‘유용욱바베큐연구소’, 남영탉 오준탁 셰프가 운영하는 한식 주점 ‘탄막’, 그리고 스몰 로스터리 카페 데일리루틴.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다. 이 은밀한(?) 곳까지 찾아온 손님을 반기는 건 높게 솟은 목조 지붕 아래 한쪽 벽면을 차지한 로스터기와 은색 배관, 브루잉 도구를 늘어놓은 커피바 같은 것들. 주인장과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바 좌석 외에는 뒤편으로 마련된 테이블 2개가 전부인데, 자리가 부족하다거나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며 당황해할 필요는 없다. 몇 걸음만 옮기면 두 개의 층으로 구성된 취식 공간이 나온다.
데일리루틴은 스페셜티 커피가 낯선 입문자들과 개성 강한 커피를 즐기는 마니아 모두를 아우르는 커피를 제공한다. 붉은 베리 과일의 농밀한 단맛이 입안 가득 퍼지는 콜롬비아 엘 디비소 옴블리곤 무산소 내추럴 같은 어려운 이름의 필터 커피도, 복숭아 치즈케이크를 커피로 형상화한 피치프로마쥬 같은 시그니처 커피도 아무렴 좋다. 커피만 마시기 아쉽다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디저트는 초코바나나파운드케이크. 후숙 과정을 거친 달콤한 바나나와 초콜릿으로 만든 파운드케이크에 소량의 크림을 곁들여 내어준다.
데일리루틴
• 주소 |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84길 5-8 데일리루틴
• 영업시간 | 주중 09:00-20:00 주말 11:00-18:00
• 인스타그램 @dailyroutinecoffee
교토 현지의 커피를 삼각지에서
코르츠
한동안 삼각지역 일대에 놀러 가지 않았다. ‘용리단길’이라는 멋도 재미도 독창성도 없는 이름이 주는 거부감 때문에. 너무 빠른 속도로 많은 가게들이 생기고 사라지는 흐름은 새롭고 즐거운 경험을 압도하는 피로감만 안겨준다. 하지만 나 하나 안 찾아온다고 뭐가 또 달라지던가. 용리단길이란 선입견의 방해 공작에도 여전히 이 동네에는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매력적인 상업 공간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궁금해했던 카페를 꼽으라면, 단연 ‘코르츠’다.
삼각지역 5번 출구를 나와 국립서울맹학교 용산캠퍼스를 지나 철길 쪽으로 들어오면 목재 가구가 놓인 입구가 보인다. 이 작은 카페가 커피 마니아들의 눈길을 끈 것은 코르츠가 교토 ’Style Coffee’의 공식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Kurasu, Weekenders 등과 함께 교토 스페셜티 커피 투어에 빠지지 않는 로스터리의 커피를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셈. 깨끗한 산미의 라이트 로스팅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교토 현지에서 날아온 6-7종의 싱글 오리진 원두를 두고서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될 거다.
에티오피아 보나 세데카 내추럴 원두로 내린 필터 커피가 일본 아리타의 장인들이 만든 도자기 잔에 담겨 나왔다. 딸기나 물렁물렁한 복숭아가 떠오르는 선명한 단맛에 워시드 커피를 마시는 듯한 깔끔한 질감이 인상적인 한 잔. 커피에 곁들인 바닐라빈 크림 퍼프는 소보로 같은 질감의 쿠키에 노란 슈크림을 듬뿍 채운 디저트다. Style Coffee의 자매 가게인 브런치 카페 ‘Peer Press’에서 직접 레시피를 잡아줬다고. 쿠키를 반으로 가른 뒤, 흘러나오는 크림을 놓치지 말고 크게 한입 베어 물어 보자.
코르츠
• 주소 | 서울 용산구 백범로99길 40 102동 109호
• 영업시간 | 주중 10:00-19:00 주말 11:00-19:00
• 인스타그램 @korzseoul
동네 사랑방 드립 커피 가게
드립쏘
남영역과 효창공원역 사이에 위치한 원효로1가는 근사한 식음료 매장으로 즐비한 지역이다. 흑백요리사 나폴리 맛피아의 ‘비아 톨레도 파스타바’와 키친갱스터의 ‘나우 남영’부터 에스프레소에 특화된 ‘바마셀’과 크림커피 맛집으로 통하는 ‘오츠커피 용산’까지, 낡고 좁은 골목들을 배회하는 틈틈이 젊은 감각의 가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서울용산경찰서 후문 앞, 완만한 경사가 진 갈림길에서 빛바랜 한남수퍼 간판을 발견한다면 그냥 지나치지 마시기를. 작년 크리스마스에 문을 연 ‘드립쏘’ 역시 다양한 블렌드 원두를 선보이는 실력 있는 로스터리 카페이기 때문이다.
드립쏘(Dripsso)는 핸드드립(Hand-Drip)과 에스프레소(Espresso)의 합성어다. 단순히 드립 커피와 에스프레소 모두 제공한다는 뜻을 넘어 ‘드립 커피를 에스프레소처럼 내린다’는 의미를 담았다. 에스프레소 농도로 미리 추출해 둔 커피를 이틀가량 숙성시켜 원액화하고,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이를 활용해 메뉴를 제공하는 식이다. 콜드브루의 효율적인 제작/보관 과정을 차용해 1인 업장의 편의성은 끌어올리되, 스페셜티 원두의 품질과 캐릭터는 최대한 살리고자 한 주인장의 고민이 엿보인다(물론 드립 커피 이외에 기본적인 에스프레소 베리에이션 메뉴도 주문 가능하다).
카페 곳곳에서 55년간 동네 사랑방으로 기능해 온 한남수퍼의 흔적이 느껴진다. 실제로 한남수퍼에서 사용하던 간판과 외부의 음료수 냉장고, 가게 오픈 때부터 관심을 보이던 앞집 어르신이 선물한 서예 작품 같은 것들. 정겨운 매장 분위기를 즐기며 중앙 커피바에 자리를 잡고서 ‘호라이즌 블루’라는 이름의 블렌드 원두로 드립 커피를 주문했다. 아침에 편하게 마시기 좋은 화사하고 부드러운 과일 단맛! 다른 카페에 비해 커피가 나오는 시간은 짧지만 만족도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드립쏘
• 주소 | 서울 용산구 백범로77길 61 1층
• 영업시간 | 10:00-20:00 (월요일 휴무)
• 인스타그램 @dripsso_cafe
담벼락 앞 카페 & 바
우모에
정갈한 수평-수직 구도와 차분한 색감이 안정감을 주는 카페 ‘우모에’. 남영동 미군지기 담벼락 앞 빌딩에 위치한 이곳은 마포구 합정동의 카페 ‘음오아에’에서 오픈한 2호점 격의 매장이다. 대학생과 직장인으로 붐비는 숙대입구역 대로변에서 불과 2분 남짓 떨어진 거리임에도 수풀로 우거진 담벼락을 따라 뻗은 골목에는 여유로운 공기가 감돈다.
널찍한 공간을 통일성 있는 디자인의 목재 가구가 채우고 골목이 내다보이는 통유리창은 개방감을 선사한다. 넉넉한 좌석 수와 고요한 분위기 덕분일까. 책과 수첩, 노트북을 두고 자기만의 작업에 열중인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키친 중앙에 나무 장과 함께 존재감을 드러내는 스피커는 JBL사의 빈티지 제품. 국내에 딱 두 대밖에 없는 스피커를 발견하고는 유니크한 사다리꼴 형태에 마음을 뺏겨 바로 구매했다고 한다. 카페로 운영되는 낮에는 잔잔한 음악이, 바로 운영되는 저녁에는 조금 더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오랜만에 커피 대신 에이드와 차를 주문했다. 오후의 갈증을 날려줄 계절 에이드에는 리치와 레드커런트가 들어 있었는데, 혀에 닿는 순간 느껴지는 레드커런트의 상큼함이 끝에 이르러 리치의 단맛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인상적이었다. 시즌별로 주재료가 달라지는 만큼 여름의 에이드는 또 어떨지 기대가 된다. 티라이프 브랜드 ‘더소가’에서 블렌딩한 카모마일 블렌딩은 카모마일에 히비스커스와 로즈힙을 더해 핑크빛을 띠는 티 메뉴. 기존의 담백한 카모마일보다 화사하고 산뜻해서 요즘 같은 날씨에 잘 어울린다.
우모에
• 주소 |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84길 21-17 1층
• 영업시간 | 매일 12:00-23:00 (카페 12:00-19:00 바 19:00-23:00)
• 인스타그램 @u.mo.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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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라이프스타일 잡지부터 토크 프로그램까지, 분야 안 가리는 프리랜스 콘텐츠 에디터. 멋있는 사람과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개할 때 제일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