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성산동에서 엘리카메라를 운영하고 있는 필름카메라 콜렉터 엘리다. 몇 년 전, 펜탁스의 새 필름카메라 프로젝트에 대해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펜탁스 17이라는 필름 카메라가 출시된다.”
솔직히 전혀 혹하지 않았다. 펜탁스 이름만 달고 나오는 그냥 토이카메라인 줄로만 알았으므로. 그런데 알고 보니, 꽤나 손맛이 있는 수동카메라가 아닌가?!
- 토이카메라: 플라스틱으로 단순하게 만들어진 카메라를 보통 토이카메라라고 부른다. 초점이나 밝기가 조절되지 않고 한가지 값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특징. 현재도 새제품들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 수동카메라: 초점과 노출을 수동으로 맞출 수 있는 카메라. 시중에 있는 카메라들은 이제는 거의 사라진 브랜드들로 대부분의 카메라는 1990년대 이전에 만들어졌다.
펜탁스 17의 출시일이 다가오면서 조금씩 카메라에 대한 정보와 사진들이 유출되었고 이윽고 펜탁스 17은 엄청난 비난에 휩싸이게 됐다. 너무 비싸다, 못생겼다, 왜 하프프레임인지, 목측식 초점 방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등등… 이런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북미에서는 출시되자마자 주문이 폭주하여 현재는 공급량에 비해 수요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태다. 펜탁스 17의 국내 정식 출시일은 7월 17일로, 가격은 79만 9,000원으로 책정되었다.
정식 출시 이전에 카메라를 실제로 보고 만져 본 이들은 한결같이 “와… 가볍다!”, “디자인이 너무 예쁘다!”라고 반응했다. 이전에 사진이 유출되었을 때와는 사뭇 반응이 다른 걸 보면 확실히 사진이 실물을 다 담지 못한 느낌이다.
실제로 만져보니 우선 무게가 290g으로 정말 가벼워서 놀라웠고, 가벼우면서도 촬영할 때는 안정적이라 그립감이 만족스러웠다. 단, 클래식한 올드 카메라를 예상했다면 다소 장난감스러운 느낌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초점은 목측식 초점으로 피사체와의 거리를 눈대중으로 맞추는 방식이라 초보자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 렌즈 상단에는 포커싱 영역이 심볼로 표시 되어있고(존포커싱), 렌즈 하단에는 거리가 표시 되어있다. 목측식 초점은 장단점이 분명하다. 초점거리를 확신할 수 없다면 불편함을 느낄 수 있지만, 펜탁스 17의 초점거리를 보면 3m 이상은 무한대에 놓고 찍으면 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3m가 의외로 멀지 않아서, 웬만한 장면은 거의 3m 이후에 두고 찍게 되기 때문). 또한 최소 초점거리 25cm로 매우 근접거리 초점을 맞출 수 있어 카메라를 들고 셀피를 찍거나, 테이블 위의 음식을 촬영하는 것도 가능하다.
노출(밝기)은 자동이라 조리개와 셔터스피드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촬영이 가능하다. 상단의 다이얼도 디지털카메라와 비슷하여 친숙하고, 플래시 모드와 플래시가 터지지 않는 모드로 나누어져 있어 편리하다. 비록 조리개를 수동카메라들처럼 직접 설정할 수는 없지만, 보케모드에서 아웃포커싱할 수 있는 점도 초보자에게는 편리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제일 처음 펜탁스 17을 테스트했을 때는 이 모드를 사용해보지 않았는데, 두 번째 흑백필름을 넣었을 때의 보케모드 결과물은 꽤 만족스러웠다.
다만 펜탁스 17은 조리개 3.5, 셔터스피드 1/350까지만 지원한다. 2024년에 새로 출시한 카메라치고는 스펙이 아주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 옛날 중고카메라들도 이보다는 스펙이 높은 카메라가 많기 때문에, 클래식 카메라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 부분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어두운 장소나 흐린 날의 촬영도 그럭저럭 괜찮았던 걸로 보면 막상 촬영할 때 크게 불편함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용하면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점은 레버를 돌리지 않고 셔터를 누르게 되면 파인더 옆의 불빛이 깜빡인다는 것. 옛날 중고 수동카메라들은 와인딩할 순서인지 셔터를 누를 순서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펜탁스 17은 이 부분이 정말 편리했다. 또한 선명하고 넓어 보이는 뷰파인더에 미세하게 푸르른 색감이 얕게 깔려 있어 눈이 편하고, 파인더로 보는 장면들이 더 예쁘게 느껴진 것도 촬영의 편리함과 즐거움을 주는 부분이었다.
‘펜탁스 17’이라는 이름은 사진 한 장의 가로가 17mm라는 의미에서왔다. 즉, 하프프레임 카메라를 의미한다. 하프카메라란 사진 한 장이 일반 35mm 필름의 절반사이즈로 찍혀 36컷 필름 한 롤을 넣으면 72장까지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이다. 요즘 필름 가격이 저렴하지 않다 보니 이 부분에서 하프카메라는 확실히 경제적이긴 하다. 사진을 1장에 2장 배치(2 in 1)로 받거나, 낱장으로 받는 것도 모두 현상소의 스캔 옵션이므로 둘 다 가능하다.
또한 평소처럼 카메라를 들고 찍으면 세로 사진을, 카메라를 세워서 찍으면 가로 사진도 찍을 수 있다.
클래식 카메라 중에도 하프카메라가 존재했었고, 작년에 출시된 코닥 토이 하프카메라도 유리렌즈를 장착하여 업그레이드되기는 했지만, 다소 선예도 부분이 아쉬웠는데 펜탁스 17은 하프카메라 치고 선명하고 또렷한 편이라 좀 놀라웠다. 그럼 실제 촬영한 더 많은 사진들을 구경해볼까?
결론적으로 클래식 카메라와 같은 느낌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약간의 아쉬움을 주는 모델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볍게 들고 다니면서 즐겁게 촬영할 수 있을만한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에 만나볼 수 있는 신제품 필름카메라’라는 측면에서는 필름카메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까 싶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2024년에 신상 필름카메라 언박싱 영상을 찍는 날이 올 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