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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리퀴드 글라스를 선택한 진짜 이유

호불호가 갈리지만 이유 없이 만든 디자인은 아닙니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이유 없이 만든 디자인은 아닙니다

2026. 04. 14

안녕하세요, 디자이너 관점에서 브랜드를 다루는 유튜버 ‘브랜드 아카이브’입니다. 작년에 WWDC에서 애플이 공개한 리퀴드 글라스(Liquid Glass), 다들 보셨을 겁니다. 투명한 유리 같은 UI가 화면 위에 떠다니는 그 디자인이요. iOS, iPadOS, macOS, watchOS까지 애플의 거의 모든 플랫폼에 일괄 적용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비주얼 리프레시 이상의 의미가 있죠.

© APPLE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예쁘다는 사람, 눈이 아프다는 사람,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사람, iOS가 대체 왜 이러냐는 사람. 저도 처음엔 꽤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애플이 단순히 남다르고 색다른 디자인을 위해서 이렇게 큰 변신을 시도했을까요? 아닙니다. 이 디자인이 나오게 된 맥락을 하나하나 따라가 보니, 애플이 꽤 오래전부터 이 방향을 준비해 왔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비주얼의 호불호나 사용성 문제를 잠시 떠나서, 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리퀴드 글라스 디자인 철학의 맥락을요.


키보드는 필요 없던데?

© wikipedia

리퀴드 글라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이폰이 처음 탄생한 2007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 발표할 때 지적했던 문제가 있습니다. 당시 블랙베리 같은 스마트폰에는 물리 키보드가 달려 있었습니다. 앱마다 필요한 버튼이 전부 다른데 키보드는 항상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죠. 

© APPLE

잡스는 이걸 낭비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물리 키보드를 통째로 없애고 큰 터치스크린 하나만 남겼습니다. 키보드가 필요 없는 상황에서는 사라질 수 있도록요. 앱이나 콘텐츠에 딱 필요한 인터페이스만 적절한 타이밍에 보여주겠다는 건 아이폰을 기획할 때부터 존재했던 UX 철학이에요.


사실적인 디자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스큐어모피즘

© APPLE

초기 iOS의 그래픽은 굉장히 사실적이었습니다. 메모장은 진짜 메모패드 자체처럼 생겼고, 카메라 앱에는 셔터가 움직이는 모션이 있었고, 가죽 질감까지 디테일하게 구현했죠. 이런 방식을 스큐어모피즘(Skeuomorphism)이라고 부릅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의 형태를 디지털에 그대로 옮기는 디자인 방법론이에요.

사실적으로 모방해서 표현하는 스큐어모피즘 © APPLE

왜 그랬을까요. 당시는 스마트폰이라는 게 처음 나온 시점이었으니까요. 사람들이 정전식 터치스크린을 쓰는 경험 자체가 완전히 새로웠을 겁니다. 잡스가 무대에서 화면을 손가락으로 쓸어 스크롤하는 걸 보여줬을 때 관객석에서 감탄사가 터졌던 시절이에요. 낯선 기기를 이해시키려면 현실에서 익숙한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 APPLE

사람들은 익숙해졌다
그래서 플랫디자인

그로부터 7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스마트폰 없는 세상을 기억하지 못하죠. 이 무렵 애플은 iOS 7에서 디자인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플랫 디자인의 시작이에요. 당시 수석 디자이너였던 조너선 아이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유리를 터치하는 것에 충분히 익숙해졌기 때문에 물리적 세계를 문자 그대로 참조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생겼다”고요.

스큐어모피즘에서 플랫디자인으로 © APPLE

더 이상 현실을 그대로 옮길 필요가 없어졌으니, 이제 스마트폰이라는 매체에 맞는 고유한 디자인 언어를 만들어 보자는 전환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애플이 스큐어모피즘의 근본 개념을 완전히 버린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현실의 물건을 직접 따라 그리는 건 그만뒀지만, 현실의 물리적 속성을 빌려와 더 세련된 은유를 만들어 냈어요.

© APPLE

플랫 디자인에서도 애플은 드롭 섀도우를 활용해 물리적 깊이감을 전달했습니다. 현실에서 물체에 그림자가 생기는 원리를 그대로 차용한 거죠. 이후 업데이트를 거치면서는 불투명 유리(frosted glass) 효과로 레이어 간 위계를 표현했어요. 현실의 유리 같은 게 위에서 내려오니, 사용자는 직감적으로 이게 더 위에 있는 요소라는 걸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APPLE

iOS 15쯤 되니 지갑 앱, 노트 앱, 날씨 앱 등에서 완전한 플랫도 완전한 스큐어모피즘도 아닌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현실의 친숙함은 유지하되 디지털의 깔끔함을 취하는 방향으로요. 이 흐름의 연장선에 리퀴드 글라스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리퀴드 글라스는
왜 등장한 걸까?

© APPLE

이번에 공개된 리퀴드 글라스의 근본 개념은 현실에 존재하는 유리나 물의 빛 굴절을 UI에 적용한다는 겁니다. 현실에 있는 걸 모방한다는 점에서, 이건 여전히 스큐어모피즘의 연장선에 있어요. 다만 표현 방식이 다시 조금 더 직접적으로 돌아온 것뿐이죠. 애플은 스큐어모피즘에서 플랫으로, 플랫에서 다시 리퀴드 글라스로 넘어가면서 현실의 물리적 속성을 차용한다는 근본을 단 한 번도 버린 적이 없습니다. 리퀴드 글라스에 대해 조금 더 본격적으로 탐구해보죠.

1) 왜 ‘원형’인가?

© APPLE

왜 UI의 곡률이 강해졌을까요. 왜 이렇게 원형에 가까울까요? 이건 하드웨어 변화와 직결됩니다. 우리는 더 넓은 화면의 스마트폰을 원하지만, 스마트폰은 모니터와 달리 물리적 크기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휴대성이 떨어지니까요. 크기를 키우지 않으면서 화면을 최대한 넓히려면 베젤을 줄이고 화면을 기기 끝까지 채워야 합니다. 그 미래를 처음 보여준 게 아이폰 X였어요. 노치를 도입하면서 홈버튼을 없앴고, 덕분에 화면을 꽉 채울 수 있게 됐죠.

문제는 화면이 기기 끝까지 확장되면서 생겼습니다. 기기 자체는 손에 쥐어야 하니까 원래부터 모서리에 곡률이 들어가 있었는데, 베젤을 극한으로 줄이다 보니 화면도 기기 모서리를 따라 둥글어져야 했어요. 화면이 둥글어지면 90도 모서리에 박혀 있던 닫기 버튼 같은 UI가 잘리게 됩니다. 결국 UI 요소 전체가 화면의 곡률을 따라가야 하는 거예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통합을 중시하는 애플에게 이건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었습니다.

2) 왜 ‘유리’인가?

© APPLE

유리 디자인, 글라스모피즘은 예전부터 많은 디지털 인터페이스에서 시도했던 겁니다. 예전 아쿠아 시절 윈도우도 그랬고요, 최근에는 Vision OS에도 보였죠. 유리의 근본적인 특성은 투명하다는 거예요. 뒤에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화면을 꽉 채운 상태에서 콘텐츠를 유일하게 가리는 건 그 위에 올라간 버튼들인데, 이 버튼이 투명해지면 뒤의 콘텐츠 맥락을 잃지 않고 폰을 조작할 수 있어요. 동시에 레이어의 깊이감도 생기면서 화면이 시각적으로 더 넓게 느껴지죠. 이미 플랫 디자인 시절부터 시스템단에서 불투명 유리를 활용해 왔었고요. Vision OS 같이 진짜 뒤에 공간이 보여야하는 공간컴퓨팅의 경우에는 더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소재죠.

3) 왜 ‘리퀴드’인가?

© APPLE

좋아요. 그럼 왜 ‘리퀴드’일까요?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이유. 이건 2007년 잡스의 그 철학, 필요 없으면 사라지는 UI라는 개념을 한층 더 진화시킨 겁니다.

사실 이런 움직임은 아이폰 14의 다이나믹 아일랜드에서 이미 힌트가 있었어요. 검은색 영역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필요할 때는 커지고 불필요할 때는 줄어들었잖아요. 애플은 그때 이미 보여줬습니다. 인터페이스가 유체처럼 움직이면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사라질 수 있다는 걸요. 리퀴드 글라스도 같은 원리입니다. 인터넷 브라우저를 스크롤하면 입력창이 작아지고, 필요할 때는 커지며 불필요한 순간에는 존재감을 최소화합니다.

© APPLE

그러니까 리퀴드 글라스의 진짜 핵심은 유리를 예쁘게 그렸다는 글라스모피즘이 아닙니다.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불필요할 때 사라지는, 콘텐츠 상위에 배치된 인터랙션 개념이 본질이에요. 비주얼적으로도 기존 글라스모피즘이 불투명 유리에 기반했던 것과 달리, 빛의 굴절을 실시간으로 렌더링해서 훨씬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고요.

3) 리퀴드 글라스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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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계는 분명합니다. 투명한 유리 위의 글씨는 배경에 따라 가시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어요. 그리고 이 실시간 렌더링을 구현하려면 배경 샘플링, 블러 처리, 렌즈 왜곡, 색수차, 프레넬 효과 같은 과정이 프레임마다 픽셀 단위로 GPU에서 실행되어야 합니다. 성능이 좋아야 하고 배터리도 그만큼 소모되죠. 사용성 측면에서 비판을 받는 건 이 두 가지 지점 때문입니다. 하지만 디자이너로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UX/UI에서 사용성이 가장 중요한 건 맞지만 심미성을 완전히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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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잘 보이게, 편하게, 간단하게만 달려온 시간이 꽤 길었어요. 사용성의 기반 위에서 조금 더 다양하고 아름다운 시도를 해볼 만한 시기가 온 것 아닌가 싶습니다.


달라진 건 기술이지, 철학이 아니다

브랜드 전략을 다루는 채널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기업을 분석해 봤는데, 애플이라는 회사가 유독 대단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뭘 하나 만들어도 근본적인 생각을 계속 유지하면서 깊게 고민한다는 거예요. 

스큐어모피즘에서 플랫으로, 플랫에서 리퀴드 글라스로. 겉모습은 매번 크게 바뀌었지만 그 안에 흐르는 원칙은 18년 동안 일관됩니다. 그 원칙이 밖으로도 느껴지니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호불호가 갈리는 와중에도 결국 사람들이 애플의 다음 행보를 궁금해하게 됩니다.

애플은 다음 세대의 디바이스를 위해서, 비주얼의 요소를 많이 변경했습니다. 하지만 필요한 때에 필요한 UI만 보여주겠다는 방향성에는 흔들림이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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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아카이브

세상에 모든 사람이 디자인에 진심이면 좋겠어서 ‘브랜드 아키이브’ 유튜브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