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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 위스키 ‘프레임’, 틀을 깰 수 있을까

싸고 좋은 건 없다?
싸고 좋은 건 없다?

2024. 04. 25

안녕, 위스키를 리뷰하는 홈텐더 글렌이다. 세상에 싸고 좋은 건 없다고 했다. 위스키도 그렇다. 하지만 가격과 만족도가 항상 정비례하지는 않으니 ‘가성비의 영역’은 있기 마련이다. 2024년 4월, CU에서 출시한 자체 브랜드 위스키 ‘프레임(FRAME)’은 스스로 ‘가성비 양주의 기준’이 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그 포부를 들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빠르게 구매해서 리뷰했다.

프레임 위스키

가격은 1L 기준 1만 9,900원. 단돈 600원에 30ml 한 샷을 즐길 수 있다. 출시 기념으로 4월 한 달 동안 할인 이벤트까지 하고 있으니 가격 하나는 확실히 저렴하다. 오케이! 가격은 인정. 그럼 이제 성능을 알아볼 차례다.

정식 이름은 ‘프레임 아메리칸 위스키’, 그리고 라벨을 보면 ‘American Blended Whisky’라 적혀있다. 위스키를 조금 마셔봤다는 사람에게도 생소할 만한 분류다. 미국 위스키지만 버번이나 라이 위스키가 아니다. ‘버번 위스키’가 되려면 옥수수를 51% 이상 사용해야 하고, 불에 그을린 새 오크통만을 이용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기준을 따라야 한다. 

‘아메리칸 블렌디드 위스키’는 스트레이트 위스키 20% 이상에 뉴트럴 스피릿을 섞어 만든다. 스트레이트 위스키는 일종의 ‘위스키 원액’이다. 옥수수, 호밀 등 한 가지 곡물을 주재료로 하고 2년 이상 숙성한 위스키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버번, 라이 위스키도 이 조건을 만족하기 때문에 라벨에서 ‘STRAIGHT’라는 단어를 흔히 볼 수 있다.

뉴트럴 스피릿은 흔히 주정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코올 자체에 가깝다. 다양한 곡물과 과일을 당화, 발효, 증류해 85도 이상의 알코올로 만들어 원재료의 풍미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타피오카나 카사바의 전분질로 95도 이상의 주정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렇게 되면 원재료의 풍미가 아예 없다시피 해 술로 만들 때는 보통 감미료가 들어간다. 초록병 소주가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 주정에 물을 타서 희석한 거다. 주정은 생산 효율이 좋은 연속식 증류를 통해 만들고, 숙성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저렴하다. 

그러니까 ‘아메리칸 블렌디드 위스키’라는 스타일은 우리 흔히 아는 미국 위스키 원액에 주정을 섞고, 다시 물을 타서 적당한 도수로 맞춘 위스키다.

이제 위스키를 느껴 볼 차례. 우선 색은 금색과 호박색의 중간쯤이다. 아메리칸 위스키에 많이 보이는 색이지만 라벨을 보니 원재료에 캐러맬 색소가 적혀있다. 그러니 색은 크게 의미가 없다. 

향은 알코올 특유의 찌르는 향이 강했다. 막 개봉한 것을 감안해 충분히 시간을 두고 다시 맡아보니 아메리칸 오크 특유의 제법 달콤한 바닐라 향이 올라왔다. 하지만 우디하다거나 다른 복합적인 향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 입에 넣었을 때는 버번이나 라이 위스키가 연상되는 단맛이 느껴지다가 이내 흩어지고, 약간 부담스러운 알코올의 쓴맛이 온다. 위스키보다는 곡향이 있는 소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맛과 향 모두 듬성듬성 비어있다는 느낌이 강하고, 알코올 향이 강해 흔히 말하는 부드러운 목넘김과도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 위스키는 애초에 대놓고 하이볼용 위스키로 광고하고 있으니 실망하기는 이르다. 1L 한 병으로 하이볼을 33잔 만들 수 있다는 문구도 눈에 띈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야외에서 먹는 하이볼이 기가 막히다. 그래서 이 프레임 위스키를 챙겨 한강으로 갔다.

위스키 하이볼의 정석은 위스키와 탄산수의 조합이다. 가니쉬도 살짝만 곁들이거나 아예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했을 때 위스키 본연의 풍미를 잘 즐길 수 있어서다. 하이볼용 탄산수로는 싱하를 추천한다. 탄산 강도가 센 편이라 하이볼로 만들었을 때 청량하게 즐기기 좋다. 

기다란 하이볼 글라스에 편의점에서 산 얼음을 가득 채우고 프레임 위스키 30ml, 그리고 나머지를 싱하로 채웠다. 이렇게 만든 첫 잔의 맛은 솔직히 아쉬웠다. 단독으로 마셨을 때 느꼈던 아쉬움이 탄산수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다. 레몬필을 가볍게 곁들여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럴 때는 깔끔한 매력의 하이볼은 포기하고, 믹서나 가니쉬의 힘을 좀 빌려보는 것도 괜찮다. 달달한 하이볼을 마셔봤다면 그건 십중팔구 토닉워터나 진저에일로 만든 하이볼이었을 거다. 당도와 특유의 향으로 위스키 향을 가려 추천하지 않는 편이지만, 취향에 정답은 없으니 ‘하이볼은 달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탄산수 대신 달달한 믹서를 타는 것도 좋다. 그리고 진저에일이라면 프레임 위스키 맛의 빈 공간을 채워주고, 불편한 향을 잡아줄 수 있는 카드가 될 것 같다.

예의 방법대로 얼음을 채우고, 위스키 30ml, 그리고 진저에일을 채워준다. 탄산음료는 얼음과 닿으면 기포가 많이 생기므로 잔을 살짝 기울여서 최대한 잔의 벽을 따라 천천히 흘려 넣어주면 좋다. 그리고 상큼함을 더하기 위해 레몬즙을 살짝 짜 넣고 잘 섞은 뒤 레몬 필을 가니쉬로 올려 마무리했다. 이렇게 진저에일을 넣어 만든 하이볼은 확실히 탄산수만 넣은 것보다 불편한 구석이 줄고 달달하니 맛이 좋았다.

버번 위스키는 콜라를 타 버번 콕으로 즐기기도 하는 것처럼, 아메리칸 블렌디드 위스키인 프레임도 콜라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탄산수를 콜라로 바꿔보니 역시 잘 어울리고 맛도 훨씬 풍성해졌다. 

콜라 대신 닥터페퍼를 넣은 버전도 괜찮다. 시도해 본 다양한 조합 중에서 콜라나 닥터페퍼를 넣은 버전이 입맛에 가장 맞았다.

위스키와 탄산수, 그리고 약간의 가니쉬. 심플한 레시피인 만큼 사실 하이볼은 위스키의 퀄리티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하이볼용 위스키로서 프레임 위스키는 아쉬운 구석이 있다. 맛과 향에서 가성비 프레임을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1L에 1만 9,900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나름의 쓰임과 역할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편안한 사람들과 떠들썩한 자리에서 콜라와 함께 즐긴다면 제 몫을 다 해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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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위스키와 칵테일에 대해 글을 쓰는 홈텐더. 술이 달아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