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디터B다. <환승연애>, <하트시그널> 같은 프로그램에는 이런 드라마 같은 대사가 나온다. “너 좋은 사람인 거 내가 잘 알아.” “너를 정말 응원해.” 감동적인 대사와 장면일 수 있다. 하지만 냉소적인 나는 그들의 ‘낙관주의적 응원’이 쉽게 공감되지 않았다. 몇 번 봤다고 좋은 사람인 걸 안다는 거지? 진심으로 응원을 해?
그랬던 나도 요즘엔 생각이 달라졌다. 응원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거짓말탐지기 같은 태도를 취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속에 무엇이 숨어 있든 말 자체를 따스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고, 응원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니까. 덜 삐딱한 태도로 살아야 이 삭막한 세상에서 숨이라도 쉴 수 있겠다 싶은 요즘이니까.
요즘 전방위적으로 따스한 응원을 보내고 있는 브랜드가 있다. 동서식품의 RTD 커피 브랜드, 맥심 T.O.P다.
“넌 지금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이 말을 음원으로, 뮤직비디오로 전한다. 오늘은 맥심 T.O.P가 만든 광고 한 편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브랜드가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은 다양한데, 성공적인 사례가 궁금하다면 오늘의 글이 도움 될 거다.
뮤직비디오를 감상하기에 앞서 우선 브랜드에 대해서 짧게 알아보자. T.O.P는 동서식품에서 2008년에 출시한 브랜드다. 좋은 품질의 원두를 사용한 프리미엄 제품으로 출시가 되었는데, 맛도 맛이지만 광고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네가 그냥 커피라면… 얘는 T.O.P야.”
글로 읽으면 귀여니 소설 속 대사 같지만 원빈이 말할 땐 다르다는 걸 감안하자. 센세이셔널한 광고였다. 각 방송사의 예능프로그램에서 패러디가 쏟아졌고, 대학생들은 썸녀에게(그 당시엔 썸녀라는 용어가 없었지만) 커피를 건네며 “넌 T.O.P야”라고 장난치고 싶어 했다.
특히 대학생 때 굉장히 많이 마신 기억이 난다. 1교시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에, 토요일 아침 조조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 혹은 추운 겨울 좋아하는 사람의 손에 한 캔 쥐여주기 위해 편의점을 들렀다. 나뿐만이 아니겠지. 많은 사람들이 T.O.P를 생각하면 청춘의 푸르른 한 조각이 떠오르지 않을까.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T.O.P는 라인업을 꾸준히 늘려 현재는 마스터라떼, 스모키라떼, 스위트 아메리카노 등 7종의 T.O.P 캔을 판매하고 있다.
광고계에 한 획을 그었던 브랜드답게 이번에도 눈에 띄는 광고를 선보였다. 어떻게 하면 브랜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선택한 건 음원이었다. 심지어 뮤직비디오까지 만들었다. 곡 제목은 ‘Keep it Up’, 크러쉬가 불렀다.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해 음원을 제작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뮤직비디오를 뜯어보며 감상하니 완성도가 상당히 높아서 놀랐다.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면서 세련되게 만드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니까. 일단 뮤직비디오부터 감상해 보자.
처음으로 이 곡을 들었을 때, 몇 가지 가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Let’s keep it up”
“지금처럼 너를 응원할게.”
T.O.P는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통해 이런 메시지를 강조해서 전한다. “넌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믿어!” “세상에 정답은 없어, 무엇을 하든, 어떤 선택을 하든,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너 자신을 믿어” 흔한 응원 멘트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결이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응원은 ‘열심히만 하면 잘될 거야’라는 낙천주의적 응원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열심히 한다고 모든 게 잘 될까? 그렇지 않은 경우를 훨씬 더 많이 봤다. 그게 현실이다. 동화나 드라마의 판타지는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열심히 했기에 잘 되는 게 아니라, 잘했기 때문에 잘 되는 것’이다. ‘Keep it Up’에는 ‘넌 지금 이미 잘하고 있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낙관적인 응원이 아니다. 이런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첫 직장에 입사하고 다섯 번 넘게 이직을 했다. 이유는 매번 달랐다. 새로운 꿈을 찾고 싶어서, 무능력한 상사가 싫어서, 마이크로매니징이 피를 말려서, 회사에 비전이 없어서 등등. 불안하고도 남았을 시기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나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잘하고 있다, 그러니까 불안해하지 말자.” 이런 말을 되뇌었다.
나는 간혹 생각한다. 지금의 젊은 세대만큼 능력치가 뛰어난 세대는 없다고. 단순히 일이나 학업만 말하는 게 아니라 먹고 놀고 즐기는 것까지 모두 더 잘한다. ‘Keep it Up’이 하는 얘기 역시 크게 다르지 않기에 가사에는 ‘지금처럼 앞으로도’라는 말이 반복된다.
뮤직비디오 속에는 세 그룹의 서브 주연이 등장한다. 건축가 2명, 미대생 그리고 개발자. 뮤직비디오의 줄거리는 단순하게 흘러간다. 반복되고 우울한 일상을 사는 그들을 크러쉬가 노래와 커피로 응원을 하고, 덕분에 기운을 낸다.
그들을 보며 자연스레 감정이 이입됐다. 대학생을 보면 수년 전의 내가 떠오르고, 하는 일은 다르지만 직장인을 보면 지금의 내가 오버랩된다. 직장인의 고민이란 필연적으로 교집합을 가지니까.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대학생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꿈을 좇아 미대에 입학해 마침내 하고 싶었던 그림을 그리게 되었지만, 어쩐지 마음 한구석은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불안해하고 있다. 그게 나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사람들과 부딪치고(그만큼 아프고), 화구와 스케치북을 바닥에 떨어뜨리게 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뒤처지고 싶지 않아서 죽을힘을 다해 뜀박질하는 나 같다.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찬란한 여유를 선물하고 싶어’
그냥 여유도 아니고 ‘찬란한 여유’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게 달릴 땐 어둡고 외로운 터널을 지나면 찬란한 광명이 비출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인생은 종착지 없는 터널의 연속이며, 빛은 잠시뿐이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그래서 중요한 건 빨리 뛰는 게 아니라, 천천히 가더라도 불안해하지 않으며 찬란한 여유를 즐기는 게 아닐까. 속도를 조절하는 게 중요하기에, 그들은 춤을 춘다.
건축가, 개발자, 미대생은 크러쉬의 노래를 들으며 리듬에 몸을 맡기기 시작한다. 네 사람은 어떤 때보다 자유롭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순간을 만끽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발자는 텅 빈 축구장에 혼자 있는 것처럼 외롭지만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인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는 모든 걸 말로 설명하고 싶어 하는 주인공에게 조르바가 춤으로 말해보라고 말한다. 그는 처음엔 당황해하지만 춤을 추며 낯선 해방감을 느낀다.
‘Keep it Up’에서 춤추는 인물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등바등 열심히 사는 것을 증명하기보다는 ‘나 지금 잘하고 있어, 그러니까 춤을 출래’라는 태도가 필요하겠다고. 전속력으로 달리면 그다음 터널을 일찍 만날 뿐이지만, 춤을 추면 하늘로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 크러쉬가 탄 차가 하늘로 올라가듯.
유튜브 촬영을 하는 어느 날, 에디터H가 물었다. “석준아, 너 요즘 듣고 싶은 말 없니?” 그런 질문을 처음 들어봤는데, 마치 준비한 듯 답했다. “지금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나는 많이 지쳤던 것 같다.
지친 날에는 응원이 필요하다. 지치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응원이 필요할 거다. 그러니까 이 말을 기억하자.
“나는 지금도 잘하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잘할 수 있다.”
“도돌이표 같은 하루여도 나의 마음은 녹슬지 않는다.”
“정답이라는 건 원래 없다.”
이런 말들이 하루의 작은 조각 우울이라도 위로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에는 동서식품의 유료 광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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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