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님은 디에디트에서 뭘 담당하고 계신가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콕 집어 무엇이라 말하기 힘들다. 다 하니까. 하지만 이 글을 쓰며 문득 생각해 보니 나에게도 전문 분야가 있다. 바로 버거다. 오늘은 4시간 동안 기다려 인앤아웃 버거를 먹은 후기를 전해보려고 한다. 버거 전문 에디터가 아니라면 4시간씩 못 기다리지.
서울 3대 족발처럼 미국에도 3대 버거가 있다. 누가 정한 것인지 모르지만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인앤아웃이다. 한 가지 놀랍고도 재밌는 사실은 3년마다 한국에서 팝업스토어를 연다는 것. 인앤아웃 버거는 2012년에 국내에 상표권을 등록했는데, 3년 내에 상표권을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5월 31일, 신사동에서 팝업스토어가 열렸다.
압구정로데오역에 내려서 걸어갔다. ‘오전 11시에 오픈하니까, 10시 반 정도에 도착하면 괜찮지 않을까? 기다리긴 하겠지만 1시간 정도면 기다려도 되겠지?’ 게으르고도 안일한 생각이었다.
현장에 가까워지니 멀리서부터 긴 줄이 보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당황하지는 않았다. 놀랍게도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가게 앞으로 선 줄은 건물을 돌고 골목으로 들어가 거의 200m에 가까웠다. 지금껏 많은 오픈런을 해봤지만 이 정도로 열광적인 오픈런은 처음이었다.
한편으로는 놀랐고, 다른 한편으로는 절망했다. “아무래도 취재를 포기해야겠어요.” 에디터H에게 이렇게 말하려고 했다. 오늘 할 일이 많은데 언제까지 줄만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고민하는 사이 직원은 다가와 인앤아웃 로고가 프린트된 팔찌를 하나씩 채워주었다.
“팔찌 받으신 분들까지는 확실히 드실 수 있어요. 못 받으신 분들은 죄송하지만 솔드아웃입니다.”
그 말 한마디를 듣고 기다려 보겠다고 다짐했다. 3시간을 기다려도 먹을 가능성이 없다면 모를까, 확실하다면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인앤아웃을 언제 먹어보겠어. 미국 서부에만 있는 인앤아웃에 갈 일이 뭐가 있다고.’
5분쯤 기다렸을 때 안내 사항 하나를 또 들었다. 카드 결제 불가, 계좌 이체 불가. 현금만 가능. 우리 동네 작은 시장에서도 계좌 이체가 가능한데, 현금만 되다니.
“진짜 현금만 돼요?”
“네, 계좌 이체 안되고 현금만 돼요. 현금 뽑아오실 거면 뒤에 분에게 말씀하시고 다녀오셔야 나중에 오해가 없을 거예요.”
이 대화를 들은 내 뒤에 서 있던 손님이 내게 말했다. “먼저 다녀오세요. 자리 맡고 있을게요. 대신 이따가 저도 다녀올 건데, 그때 자리 봐주세요.” 오늘 처음 본 낯선 사람에게 동지애를 느꼈다. 인앤아웃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이렇게 대동단결할 수 있구나.
10분 뒤. 현금을 뽑고 돌아왔을 때 상황은 아까보다 시끌벅적했다. “줄을 설 거면 가게 앞으로 설 것이지, 왜 남의 영업장 앞에서 줄을 서!” 목청 좋은 건물주가 등장했다. 인앤아웃 티셔츠를 입은 젊은 직원은 연신 죄송합니다, 번호표 배부하고 이제 곧 해산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나라도 남의 영업장 앞에 줄을 서서 입구를 막으면 시정 조치를 요구하겠지. 그래도 경찰차가 출동하는 데시벨 싸움은 안 할 것 같은데. 대신 인앤아웃 버거 4개 정도 받는 걸로 딜을 하지 않을까.
길게 줄을 섰던 사람들은 몇 분내에 이름과 전화번호 뒷자리를 순서대로 적고 해산했다. 모두 한 시간 뒤에 다시 모이기로 약속하며 근처로 흩어졌다. 인앤아웃 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람들 표정이 들뜨긴 했지만, 오픈런을 예상하지 못한 운영진의 대응이 미숙해 보이긴 했다. 근처 카페에서 한 시간 기다렸다가 다시 갔더니, 다시 1시간 뒤에 오라는 얘기를 들었으니까. 참고로 근처 카페는 다이브 에스프레소바였다. 롱블랙이 3,500원이었는데 가격도 합리적이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에스프레소는 3,000원.
10시 40분부터 줄을 섰던 내가 최종 입장한 시간은 2시 9분이다. 팝업은 3시까지만 운영된다고 했으니 오픈하기 전에 찾아왔는데도 겨우 먹게 된 셈. 나는 도대체 몇 시에 왔어야 했을까.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제가 출근하기 전에 이미 도착해 있던데요? 한 8시쯤?” 옆에 있는 직원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것보다 더 일찍 왔어요. 빨리 온 사람은 새벽 6시에 돗자리 깔고 대기하고 있었대요.” 패티도 바싹 구울 뜨거운 열정이다. 이날 아침 일찍 전 국민 모닝콜 사건이 있었는데, 6시에 도착한 분은 사이렌 소리를 듣고 자리를 이탈했을까 어땠을까.
팝업이기 때문에 메뉴는 한정적이었다. 더블더블, 치즈버거, 햄버거 세 가지 종류를 팔고 있었고 각각의 버거는 기본으로 먹거나 애니멀 스타일 또는 프로틴 스타일로 변경할 수 있었다. 애니멀 스타일은 구운 양파, 머스터드 프라이드, 추가 소스와 피클이 들어간다. 프로틴 스타일은 햄버거빵 대신 양상추가 들어간다.
나는 더블더블을 주문했다. 감자칩도 먹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품절이었다. 놀라운 건 가격이었는데, 시그니처 버거인 더블더블이 겨우 6,000원. 이따가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믿을 수 없는 가격이긴 하다.
굿즈로 모자와 티셔츠를 팔았는데 이것 또한 가격이 저렴했다. 모자는 1만 5,000원. 티셔츠는 2만 원. 하나쯤 가서 쓸없템 시리즈에서 소개할까 했지만 역시나 현금으로만 구매 가능했기에 버거 먹을 돈만 있었던 나는 구매할 수 없었다.
테이블에 앉아 5분 정도 지났을까. 버거가 나왔다. 마침내. 내가 미국 본토에서 인앤아웃 버거를 먹어봤다면 맛 비교가 확실할텐데, 본토의 맛은 모른다. 그래서 얼마나 본토의 맛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을지가 궁금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최대한 노력한 것 같았다. 일단 소고기 패티와 양상추, 토마토처럼 신선함이 중요한 식재료는 한국에서 공수했다. 그리고 소스와 번은 본사에서 사용하는 재료를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또, 미국 본사의 인력이 다섯 명이나 파견되어 버거를 만들고 있다고 하니 이정도면 본토의 맛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일단 번부터 뜯어 먹어봤다. 건조한 느낌의 번이었다. 참깨가 많이 올라갔다거나 버터 향이 난다거나 빵만 뜯어 먹어도 맛있다거나 하는 번이 아니었다. 의외였고, 기대와는 달랐다. ‘재료가 주는 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 번은 오히려 평범한 걸 쓴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자, 소감을 말하자면,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물론, 맛있는 버거다. 인앤아웃 버거는 개성이 강한 버거는 아니었다. 소스의 맛이 유달리 강하다거나 패티의 육향이 짙다거나 어느 한 가지 맛이 존재감이 강한 류가 아니었다. 축구선수로 비유하자면 스피드, 체력, 슈팅, 패스 등이 골고루 발달한 육각형의 선수랄까. 엄청난 맛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의외로 밸런스가 좋은 무난한 버거였다. 패티가 두 장이 들어갔지만 느끼하지 않았고, 짠맛이 도드라지지도 않았다. 이런 특징 덕분에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라면 두 번 이상은 안 갈 것 같았다. 한국엔 이미 맛있는 버거가 너무 많으니까.
나의 평가가 어쨌든 4시간 팝업의 경험은 굉장했다. 유일하게 한국에 진출하지 않은 미국 버거 삼대장, 인앤아웃. 한국 사람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걸 봤으니, 이제는 좀 생각이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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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