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디에디트 독자 여러분. 더파크 정우성입니다. 시작은 3월 24일이었습니다. SNS에 처음 보는 시계 이미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랑 같은 디자인인데 어딘가 이상했습니다. 무려 열한 개의 에디션이었어요. 컬러웨이도 제각각 화려했습니다. 단숨에 호기심이 생겼어요. 저만 그런게 아니었어요. 댓글창도 폭발했죠.
극비리에 진행된 오메가와 스와치의 협업이었습니다. 오메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모델, 이른바 문워치라 불리는 스피드마스터의 디자인 그대로 스와치가 무려 열한 개의 에디션을 만들어 발표한 거죠. Moon과 Watch 사이에 S를 넣어서 MoonSwatch로 명명했습니다. 재밌죠? 크게 보면 둘 다 스와치 그룹 소속이니까, 식구끼리 재밌는 작업 한 번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거대한 에너지가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소유욕을 느끼고 있었어요. 저도 그랬습니다. 한국 발매 가격은 33만 원이었죠. 오프라인 지정 매장에서만 극소량을 판매한다고 했습니다. 전 세계 모든 스와치 매장에서 파는 것도 아니었어요. 스와치가 지정한 몇몇 나라의 지정한 매장에서만 살 수 있었습니다. 어때요, 뭔가 귀한 모델이라는 냄새가 솔솔 풍기죠? 한정판은 아닌데 이미 한정판이 되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
이튿날, 3월 25일 금요일 오후부터 명동 스와치 매장 앞에는 줄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3시 경에 이미 50명 이상의 대기 인원이 있었다고 해요. 저는 이 소식을 듣고 포기했습니다. 3월 25일 금요일 늦은 저녁부터는 비바람이 몰아칠 예정이었지만 줄은 점점 길어졌습니다. 당시에는 1인당 두 개의 시계를 살 수 있었으니 스와치 코리아가 준비한 물량도 이미 소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는 1969년에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던 아폴로 11호의 비행사들이 차고 있던 시계였습니다. ‘문워치 Moonwatch’라는 별칭을 갖게 된 연유이기도 하죠. 그를 둘러싼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일단 좋은 음악과 은은한 조명, 위스키 한 병을 준비해두고 싶네요. 재밌는 이야기, 흥미 진진한 사실들, 일말의 존경과 사심을 담아 새로운 세계에 대해 알아갈 땐 한껏 좋은 기분이고 싶거든요.
[940만 원짜리 문워치 프로페셔널 코‑액시얼 마스터 크로노미터 크로노그래프]
오메가 공식 홈페이지를 살짝만 훑어봐도 이 시계의 가격이 적어도 780만원, 에디션에 따라 5천만원 대 중후반까지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스와치가 33만원에, 완전히 같은 디자인으로 무려 열한 개의 만들어버린 거죠. 우주를 지향하는 시계에 맞게, 태양계에 있는 모든 행성들을 모티프로 삼았습니다. 지금은 행성 지위를 잃어버린 명왕성까지 포용했어요. 거기에 태양과 달을 합쳐 열한 개가 되었습니다.
[Mission to Mars]
모든 에디션에는 ‘작전’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미션 투 선(SUN), 미션 투 머큐리(MERCURY), 미션 투 비너스(VENUS)… 이렇게 미션 투 플루토(PLUTO)까지 이어지는 거예요. 각각의 시계에는 각각의 행성에 맞는 테마와 디테일이 가득합니다. 태양 에디션은 노란색, 금성은 핑크, 지구는 블루와 그린이에요. 달 에디션은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와 정확히 같은 디자인입니다. 제가 갖고 싶었던 건 화성과 해왕성이었어요. 화성 에디션은 흰색과 빨강, 해왕성은 파랑입니다.
가질 수는 없었지만 리뷰할 기회는 있었어요. 시계 전문지 <레뷰 데 몽트르> 이은경 편집장의 시계였습니다. 명동 스와치 매장 앞에 긴 줄이 생기기 시작하던 바로 그 시간, 이은경 편집장은 스와치 코리아로부터 아주 비밀스러운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스와치 그룹과 오메가에서 전 세계에 있는 여성 시계 저널리스트를 대상으로 문스와치를 선물하기로 한 것이었어요. 몇 명인지도, 누구에게 수여했는지도 비밀이었습니다. 다만 전세계에 10명이 채 안 되는 여성 시계 저널리스트에게 원하는 에디션을 하나씩 선물한 거죠. 이은경 편집장은 화성 에디션을 골랐고, 저는 당장 카메라를 들고 갔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에 링크를 걸어둘게요.
오메가와 스와치의 문스와치는 한정판이 아니었습니다. 영원히 팔지는 않겠지만 당분간은 새 물건들이 입고될 예정이에요. 스와치 공식 홈페이지에도 안내문이 올라와 있습니다. 아마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리셀가는 치솟았습니다. 누가 3백만원 정도에 원하는 에디션을 구매했다는 후문도 들리고요. 이베이에는 1만 불 정도에 올라와 있는 매물도 있다고 들었어요. 어떤 분들은 열한 개의 모든 에디션을 구하는 것이 목표라고도 합니다. 요즘의 리셀 시장은 확실히 과열돼 있어요. 물론 리셀 시장도 시장이고, 그 가격이야말로 욕망의 크기와 개인의 재력이겠지만…
면면을 뜯어보면, 문스와치는 당연히 33만 원이라는 가격에 걸맞는 디테일을 갖고 있습니다. 오메가의 디자인을 살려 스와치가 자유롭게 변주한 게 이번 이벤트의 핵심이니까요. 유니클로와 르메르, 질 샌더와의 협업을 생각하면 비슷하겠죠? 스틸케이스 대신 바이오세라믹 케이스, 다양한 브레이슬렛 대신 벨크로 스트랩, 기계식 무브먼트 대신 쿼츠입니다. 사진만 봐도 스와치, 실물을 봐도 스와치, 손목에 얹어봐도 우리가 아는 그 스와치가 맞습니다. 어떤 분들은 33만 원도 좀 과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야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오메가는 오메가대로, 스와치는 또 그 나름의 엄청난 성과를 얻었습니다. 스피드마스터와 스와치의 인지도도 수직 상승했죠. 시장은 재미있는 이벤트에 환호했습니다. 시계에는 딱히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이 재치있고 예쁜 열한 개의 에디션에 적지 않은 관심을 보였어요.
‘이 돈이면 차라리…’ 같은 훈수, 플라스틱 시계를 33만 원에 팔았다는 평가절하 같은 건 접어두기로 하죠. 재미는 재미, 기쁨은 기쁨, 하나의 시계가 담고 있는 의도와 이야기는 누가 뭐래도 열한 개의 에디션과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에 그대로 살아 있으니까요. 가진 사람은 가진대로, 갖고 싶었지만 인연이 아니었던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또 나름의 즐거움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실버 스누피 어워드 50주년 에디션]
뜬금없이 고백하건데, 저에게는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실버 스누피 어워드 50주년 에디션을 갖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2020년 11월에 1,240만원에 출시했는데 당연히 품절됐고, 얼추 찾아본 지금의 리셀가는 4,300만원 정도네요. 눈물을 머금고, 꿈은 꿈대로 간직할 수밖에 없는 가격이지만 언젠가 파일럿이 되는 꿈을 꾸던 스누피처럼. 그러다 나사의 마스코트로 선정된 스누피처럼… 원고를 쓰다 문득 지친 새벽에는 구글 검색창에 가만히 적어보기도 합니다.
“Ome…ga Speedmast..er Snoopy Pric…e”
오메가와 스와치의 문스와치 구매에 성공하신 분들께 <디에디트>의 귀한 지면을 빌려 축하와 부러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실패하신 분들에게는 심심한 위로와 함께 하고 싶어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 같이 시계 공부를 시작해 보는 건 어때요? 정말 끝도 없이 방대하고 재밌는 세계. 알면 알수록 재밌는 게 시계잖아요.
멋진 시계들은 살아 있는 한 계속 출시될 예정이고, 제 때에 제대로 소유하고 즐기려면 우리는 늘 준비돼 있어야 하니까요. 그러다 보면 적절한 때를 만나게 될 거예요. 나한테 꼭 맞는 시계 하나. 너무나 갖고 싶고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나의 시계’ 딱 한 점을 만나게 되는 황홀한 순간을 위해서.
About Author
정우성
시간이 소중한 우리를 위한 취향 공동체 '더파크' 대표.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고전음악과 일렉트로니카, 나무를 좋아합니다. 요가 에세이 '단정한 실패'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