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중고와 빈티지를 좋아하는 객원 에디터 우준영이다. 해외여행을 갈 때면 구글맵에 ‘vintage’만 검색해 돌아다니는 날을 하루 비워두고, 서울에서는 놀러 가는 곳마다 당근 동네 인증을 하고 구경하는 게 취미다. 발품을 파는 게 만만치 않지만 ‘내 거다’ 싶은 물건을 발견하는 순간의 성취감과 보람, 행복과 도파민에 취한 지 오래다.
세월을 돌고 돌아온 물건이 가득 쌓인 빈티지샵에 들어설 때면 항상 마음이 들뜬다. 이곳에서는 빈티지와의 운명적 만남이 이뤄진다. 다른 사이즈나 다른 색 옵션이 없는 단 하나이니까. 이 물건은 지금 이 세상에 딱 하나뿐일 거라는 낭만적 상상이 지갑을 열게 한다.
그런 빈티지샵 중에서도 지독하게 한 우물만 파는 곳들이 있다. 안경이면 안경, 신발이면 신발. 액세서리, 소품으로 취급되는 것들이 주인공이 된다. 하나의 아이템만으로도 가득 찬 곳에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모을 수 있지?’라는 감탄과 함께 점점 그 세계로 빠져든다. 수백 개의 물건을 모아온 주인의 집념이 옮는 곳을 소개한다.
빈티지 조명에 홀려 시간 가는 줄 몰라
빅슬립샵

전 세계에 숨겨진 다양하고 재치 있게 빛나는 것을 소개한다는 빅슬립. 우리나라에 있는 아름다운 빈티지 조명은 다 여기에 있는 게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곳이다. 홍대입구역에서 10-15분 거리로 오랜 시간 눈여겨보다가 이번 취재를 기회로 방문했다. 밖에서 봤을 때는 큰 창이 있는 곳이라는 인상뿐이었는데 계단을 오르고 문 앞에 서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시선이 지나는 모든 곳에 알록달록 빛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 여행 중 들렀던 플리마켓에서, 탐냈지만 캐리어 무게, 수하물로 보낼 방법 등 현실적인 문제로 단념했던 아름다운 것들이 여기 다 있었다. 버섯 모양의 조명, 우아한 벽 조명, 작은 소품을 넣을 수 있도록 트레이가 붙어 있는 조명, 동물 모양 조명. 조명들의 진기명기쇼가 이어진다.


조명과 오브제,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 싱그러운 식물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구현했다고 한다. 책장과 선반, 크고 작은 가구 모두 예사롭지 않아 한 걸음을 내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공간은 크게 2.5개 정도로 구분되고 짧은 통로도 빈틈없이 꾸며져 있어 볼거리가 많다. 구석구석 볼 여유가 있도록 방문 시간을 넉넉히 잡을 것을 권한다.

가격대는 20-50만 원대로 대부분 가격표가 붙어 있어 살까 말까 고민도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예상보다 높은 가격대는 빠르게 단념하고 그 옆의 조명을 만지작거린다. 가격표가 붙어있지 않은 건 비매품이다. 가장 탐이 났던 건 오렌지 슬라이스가 꽂힌 칵테일 모양의 조명이었다. 세상에 이런 조명도 있다니! 설레는 마음으로 가격을 여쭸는데 비매품이었다. 사장님은 좋겠다, 이 조명 주인이라서. 애써 눈을 돌린다.


빈티지 램프 전문 수리센터를 운영 중인 것도 흥미롭다.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몰라 감이 오지 않는 램프가 있다면 빅슬립을 찾아가자. 아름다운 공간에 흠뻑 취한 채로 나서면서 느껴지는 꿈을 꾼 것만 같은 몽롱함은 덤이다.
빅슬립샵
주소 | 서울 서대문구 성산로 379 좌측 벽돌계단 2층 (홍대입구역 3번 출구 약 1km)
영업 일정 | 인스타그램 확인
@bigsleep_shop
모자 써보느라 머리가 망가져도 웃음만 나와
마스컴퍼니

한 사람의 스타일 중에서 가장 재치 있는 포인트로 보는 건 모자다. 써도 되고 안 써도 되는 모자야말로 디테일을 판가름 짓는 요소가 아닐까. 특히 출처도 알 수 없는 로고를 기가 막힌 그래픽이나 타이포로 표현한 모자를 발견하면 박수를 치고 싶다. 지하철에서 흘깃 본 맞은편 사람의 모자가 너무 탐날 때, 나도 유니크한 모자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상수의 마스컴퍼니를 추천한다.

상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3~5분 거리, 가정집 1층에 있는 마스컴퍼니는 활짝 열어둔 현관문에 멋진 모자를 하나 걸어뒀다. ‘안냐세여. 마슨데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궁서체로 적힌 환영 문구가 심금을 울린다. 마스컴퍼니라는 이름도 엄마와 아들, 모자관계처럼 우리와 모자도 뗄 수 없는 관계라는 뜻에서 붙였다고 하니 그 위트가 예사롭지 않다.


80-90년대 빈티지부터 다양한 국가의 브랜드 제품까지 취급하는데, 아웃도어, 러닝용 모자와 페도라, 캠프캡 등 그들이 선보이는 모자의 세계가 무궁무진하다. 사실 가장 재미있게 본 건 꾸밈 요소로 있는 모자들이다. 챙이 긴 모자, 문고리에 걸린 스누피 모자, 구피 모자, 공룡 모형이 붙은 모자. 그들의 기세를 보여주는 것 같아 웃음이 난다.

가격은 4~6만 원대로, 귀여운 모자를 발 빠르게 낚아채고 싶다면 인스타그램에서 업데이트 소식을 지켜보는 것도 팁이다. 모자에 대한 친절하고 웃기고 박학다식한 설명까지 아주 알차다.
여름인 지금은 캡 위주의 모자가 많은데 겨울에는 니트, 털 소재의 모자도 많아서 계절 별로 방문하기도 좋다. 여러 모자를 써보다가 머리가 흐트러지기도 하지만 완벽한 핏의 모자를 찾기 위해 이 정도는 감수하자. 머리 위 꼭대기에서 패션을 완성해 줄 멋진 모자를 위하여!
마스컴퍼니
주소 | 서울 마포구 독막로12안길 25 1층 (상수역 4번 출구 370m)
영업 시간 | 매일 14:00 – 20:00
@mascompany.kr
빈티지 안경에는 틀이 없어
오래된 숲


멋진 아이웨어 브랜드들도 많지만, 남다른 멋을 찾고 있다면 ‘오래된 숲’을 추천한다. 오래된 숲에 숨어 있는 신비한 열매, 꽃, 나무를 발견하는 것처럼 빈티지를 발견한다는 뜻으로 이름 지었고 빈티지 아이웨어를 선보인다.

오래된 숲은 수원과 성수 두 지점이 있는데, 성수점은 사람으로 번잡한 성수가 아닌 뚝섬역 깊숙한 곳, 중랑천이 흐르는 옆 골목에 있다. 한갓진 골목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더듬더듬 찾아가다 보면 빨갛고 따뜻한 간판을 만나게 된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커다란 원목 책상엔 안경이 빼곡하게 놓여있어 존재감이 강력하다. 홀린 듯이 책상에 다가가서 들여다보면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동그랗고, 각진, 온갖 색상의 안경테와 선글라스가 있다.
택에는 가격과 브랜드 또는 제작연도가 적혀 있어 이 안경이 도대체 언제 만들어진 건지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가격은 2~9만 원대로, 오클리나 구찌, 까르뱅 같은 하이엔드 브랜드의 빈티지 안경이 높은 가격대에 속한다.


안경을 쓰고, 거울을 보고, 내려두고, 다시 다른 안경을 집는 것을 반복한다. 비슷하면서도 살짝 다른 디테일을 구분하며 기억하려고 하면 곧잘 어지러워지는데, 그럴 땐 바로 옆의 선글라스로 환기한다. 선글라스의 색은 더 찬란하다. 하늘색 렌즈의 선글라스, 볼드한 빨간색 테의 선글라스, 각도에 따라 오묘하게 빛나는 렌즈를 보면 다시 이것저것 써 볼 활력이 생긴다.

동그란 안경도 저마다 동그란 정도가 다르고, 무난하다 싶으면 안경다리에 포인트가 있다. 빈티지 안경엔 틀이 없다. 안경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누군가도 이곳에선 운명 같은 안경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오래된 숲 (성수)
주소 | 서울 성동구 광나루로 154 1층
영업 시간 | 매일 12:00 – 20:00
@loveoldforest_room
어느새 내 신발은 내동댕이
빈티지 제트

빈티지 신발을 좋아한다. 주름진 가죽 부츠, 독특한 색 조합의 스니커즈 등 요즘의 유행과는 확연히 다른 결로 자기주장을 펼치는 것이 흥미롭다. 다만 빈티지샵에는 신발이 몇 개 없고, 그마저도 사이즈가 마땅치 않아 아쉬운 손길로 내려두기 십상이었다.
그 아쉬움을 해소해 줄 ‘빈티지 제트’는 운동화, 스니커즈, 부츠 등 빈티지 신발을 소개하는 빈티지샵이다. 성수와 가로수길 지점 중 가로수길을 찾았고, 가장 먼저 만난 신발은 분홍색 컨버스였다. 현관문을 고정하고 있는 컨버스라니. 신발로 할 수 있는 가장 위트 있는 환영 인사에 벌써 기대가 됐다.


벽을 따라 일렬로 늘어선 신발장에는 사이즈가 적혀있어, 덕분에 신발을 뒤적거리는 일 없이 바로 본인의 사이즈로 직행할 수 있다. 신어 본 신발의 사이즈가 애매하면 더 크거나 작은 사이즈를 시도해 볼 겨를조차 없이 단념하게 되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여러 신발을 신어 보며 가장 신경 쓴 건 신발의 사용감이었다. 구멍이나 터진 부분이 있는지, 깔창의 로고는 지워지지 않았는지 꼼꼼히 살폈다. 누군가의 발자취가 사용감으로 고스란히 남아있었을까 걱정이었는데, 그 걱정이 무색하게 신발은 말끔했다. ‘신발 전문 세탁소를 직접 운영’, ‘합리적인 가격에 깨끗하고 예쁜 신발을 판매’한다는 그들의 외침이 자부심으로 와닿았다.

오랜 위시리스트인 클락스의 왈라비 부츠, 색 조합이 마음에 드는 머렐 등산화 등 눈길을 끄는 대로 신어 보니 어느새 신고 왔던 내 신발은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신발의 가격은 3~6만 원대. 사이즈가 맞는다면 마음까지 활짝 열리는 합리적인 가격대다. 신데렐라가 유리구두를 만난 것처럼 내 발에 꼭 맞고, 내 마음에 쏙 드는 운명적인 신발을 찾는 그날까지 틈틈이 들러보기로 한다.
빈티지제트 (가로수길점)
주소 |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10길 24 지하1층 (신사역 8번 출구 702m)
영업 시간 | 월-금 12:00 – 20:00, 토,일 12:00 – 21:00
@vintagez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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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준영
이런 건 (대체) 어디서 사?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언제 어디서든 구구절절 우여곡절의 썰을 풀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