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국내 패션 브랜드를 소개하는 객원 에디터 강현모입니다. 얼마 전 일본으로 출장을 다녀왔어요. 한국보다 날씨가 더 덥더라고요. 아침에 숙소 근처 요요기 공원에서 가볍게 달리고 푸글렌으로 넘어가 아이스 커피를 들이붓고 있었는데, 강아지 산책을 시키던 아주머니 가방에 그 강아지를 똑 닮은 자수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작고 귀엽게 새긴 자수에서 누구보다 강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소중한 것들을 소중하게 기억하는 법. 사진이나 그림으로 남기기도 하지만, 입거나 사용하는 물건에 자수를 새겨 넣기도 합니다. 올드하고 지루해 보이기도 했던 자수가 최근에는 단순한 커스텀을 넘어 특별한 의미를 담는 수단으로 조명받고 있습니다.
자수에는 여러 공법이 있지만, 오늘은 그중에서도 명품 브랜드부터 전 세계 곳곳의 작은 브랜드까지 다루고 있는 체인 스티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체인 스티치가 뭡니까?
체인 스티치는 봉제 방식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제품의 내구성을 위해 사용하는 단순한 기법이라기보다 역사와 문화, 장인정신이 어우러진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를 놓으면(Stitch) 마치 사슬(Chain)처럼 고리 형태로 엮이게 되어 이같은 명칭으로 부릅니다.
패션에 관심이 많거나 청바지를 좋아한다면 ‘체인 스티치’라는 용어를 한 번쯤 들어 봤을 겁니다. 데님 매니아라면 자신만의 바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유독 민감하게 보는 요소이기도 하고, 제작하는 브랜드 입장에서도 체인 스티치를 사용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세탁과 착용을 거듭하며 봉제 부위 주변에 자연스러운 물 빠짐이 생기는 것을 ‘퍼커링’이라 합니다. 일본어로는 ‘적중/명중’을 뜻하는 ‘아타리’라고도 하죠. 실 한 땀이 지나가는 방식인 싱글 스티치에 비해, 체인 스티치는 실이 고리 형태를 만들며 지나가니 원단도 자연스럽게 한 쪽으로 살짝 밀리면서 재봉됩니다. 이 특성으로 인해 마치 파도가 치는 듯한 퍼커링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실제로 보면 정말 멋져요. 이 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데님 시장과 커뮤니티에서 체인 스티치가 유독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포인트가 있는데요. 체인 스티치는 청바지 수선 기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청바지는 이 방식을 활용하는 사례 중 하나일 뿐이죠. 견고한 만듦새뿐만 아니라 실 한 땀이 지나가는 것보다 훨씬 더 짙은 색을 표현할 수도 있고, 입체감 있는 질감을 보여줄 수 있어 패션 아이템 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을 제작할 때 적용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매우 정교하고 섬세한 과정을 거치기에 기계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한정될 수밖에 없고, 실과 바늘이 지나가는 길을 사람의 손으로 밀고 당기며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높은 숙련도가 필요합니다.
체인 스티치로 팀복을 맞췄습니다
몇 달 전 팀복을 맞췄습니다. 그것도 각자 사비를 들여서요. 회사 내부적으로 팀이 신설되었고, 업무 특성상 매일 모든 부서와 소통해야 하기에 저희 팀 안에서의 결속력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30년 이상 각자 다르게 살아온 팀원들을 이끌어 가야 하는 상황에서 정신적인 유대를 이어 가기 위해서는 재미 요소가 필요하다 생각했고, 마침 아침에 옷 고르는 고민을 다들 하고 있었기에 “유니폼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마침 회사에서 전개하는 브랜드에 워크 자켓이 있었고, 브랜드 슬로건을 새겨서 우리 팀만이라도 입고 다니기로 했습니다. 브랜드를 알리는 최전선에 있는 팀이거든요. 다행히도 다른 팀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고, 끈끈해진 분위기 덕에 높은 업무 성과까지 낼 수 있었죠. 이 자켓에 적용된 자수가 체인 스티치 입니다.
팀복을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① 등판에 메시지를 넣으면 촘촘하게 입체감이 구현될 것
② 세탁을 여러 번 해도 쉽게 망가지지 않을 것
③ 영문 슬로건을 유려한 곡선으로 쭉 이어갈 수 있는 것
체인 스티치라는 몰랐던 영역을 탐구하다 보니 입체감이나 곡선 표현은 기계 자수로는 어렵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사람 손을 거쳐야 한다는 걸 깨닫고 숙련도 높은 기술자를 찾기 위해 주말에도 발품을 팔아가며 체인 스티치를 메인으로 하는 아뜰리에를 찾았습니다. 망원동에 위치한 번 프롬 더 썬 입니다.
집중! 햇빛에 살갗이 익는 걸 잊을 정도로
‘번 프롬 더 썬(Burn from the sun)’은 한여름 햇빛에 살갗이 익는 걸 잊을 정도로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집중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아뜰리에 대표인 최세준 작가는 평소 스폰지밥을 좋아하고 특히 ‘찢어진 바지’ 에피소드를 재밌게 봤는데, 그와 비슷한 경험에서 브랜드명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최세준 작가는 평소에 옷을 좋아해서 청바지에 워싱을 만들기 위해 햇빛이 쨍한 날 바다로 가서 모래와 바닷물로 워싱을 했는데, 워싱 내는 데만 2시간 가깝게 집중하니 피부는 화상을 입고, 빨개지고, 벗겨지고, 너무 가려워서 오랫동안 했다고 합니다. 최고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오롯이 집중하는 사람. 번 프롬 더 썬은 그런 사람들이 뭉치는 곳이 되기를 바라며 탄생했습니다.
번 프롬 더 썬은 의류뿐만 아니라 신발과 모자, 가방 등 폭넓은 자수 서비스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취향에 맞는 제품들에 재미를 더하고 싶을 때 체인 자수를 새겨서 사용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표 작업 사례
1) with 오어 슬로우
일본의 베스트 복각 브랜드로 항상 언급되는 오어 슬로우. 특히 남성들에게 퍼티그 팬츠가 인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오어 슬로우는 상의 맛집이기도 합니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스테디셀러 3종에 ‘Artisan’을 주제로 3가지 수를 놓았습니다. 필기체와 함께 한국-일본을 상징하는 동물들을 새겨 넣었는데, 성수동 팝업에서 셀 수 없는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린 작품이었습니다.
비교적 높은 가격이 책정되었음에도 현장에서 모두 품절 됐습니다. 살 수 있을 때 살 것을 이제 와서 후회하고 있네요.
2) with gml
유니페어에서 전개하는 한남동 카페 gml. 글로벌 브랜드 드레익스의 초어 자켓에 수를 놓은 이 제품은 공개와 동시에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카페 스태프용 유니폼으로 제작했지만, 구매 문의가 정말 많았다고 합니다.
3) with Slo. Lee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한 번쯤 들어 봤을 자운드(jjj jound). 자운드의 필기체 알파벳 브랜딩을 맡았던 슬로 리 작가와 여러 차례 협업을 진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4) with 부기 홀리데이
웨스턴 아메리칸 캐주얼 스타일을 제안하는 국내 브랜드 부기 홀리데이. 서부의 짙은 태양이 연상되는 의류들에 다양한 수를 놓았고, 시즌별로 발매와 동시에 품절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제품입니다.
5) with 머니 그라피
토스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머니그라피>. 지난해 팝업에 전시될 제품도 번 프롬 더 썬이 함께했습니다.
적어도 10년은 기억할 수 있도록
유니폼을 다같이 입고 출근한 날, 다른 팀원들에게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 얻고자 했던 유대감과 결속을 생각보다 많이 얻을 수 있었어요. 이런 유니폼 제작이 제가 속한 조직의 한 문화로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작 비용]
가격이 가장 궁금할 겁니다. 하지만 디자인 시안 및 색상 선택, 텍스트와 일러스트 조합 여부에 따라 가격대는 천차만별입니다. 만 원부터 수십만 원까지 제작 범위에 따라 다양하니 방문 또는 DM 문의를 권장합니다.
[제작 기간]
사용하고 싶은 시점보다 조금 더 여유 있게 생각하는 게 좋을 거예요.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많다 보니 바로 제작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About Author
강현모
패션 관련 글을 씁니다. 출근 후 마케터, 퇴근 후 에디터. 회사 안에서는 브랜드 마케터로, 회사 밖에서는 '아워페이스' 매거진의 팀 리더로 활동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