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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누, 10년의 기록

안녕, 알콜 없이는 살아도 카페인 없이는 못 사는 에디터B다. 나이 지긋한 분들과 식사를 하면 옛날얘기를 하나쯤 듣게 된다. “옛날에는 말이야,...
안녕, 알콜 없이는 살아도 카페인 없이는 못 사는 에디터B다. 나이 지긋한 분들과…

2021. 12. 14

안녕, 알콜 없이는 살아도 카페인 없이는 못 사는 에디터B다. 나이 지긋한 분들과 식사를 하면 옛날얘기를 하나쯤 듣게 된다. “옛날에는 말이야, 보일러가 없어서 산에 땔감을 구하러 다녔단다.” “옛날에는 말이야, 버스가 없어서 등교할 때만 세 시간 걸렸어.” 사실 난 이런 얘기를 좋아한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상상도 할 수 없는 과거의 이야기를 듣는 게 흥미롭다. 나무위키보다 더 자세하고 유튜브보다 더 생생하다. 특히, 지금은 당연해진 기술과 제품이 첫 등장하던 때를 전해 듣는 건 <서프라이즈>를 보는 것만큼 흥미롭다. 어쩌면 본인들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일종의 무용담 같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신이 나서 말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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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카누가 그런 제품이다. 처음 카누를 맛보았던 그때를 기억한다. 2011년, 그 당시에 유행하던 단어 ‘혁신’이라는 말이 카누에 어울렸다. 카누는 내가 대학교 3학년일 때 출시되었는데, 지갑이 얇았던 나에겐 빛과 소금 같은 것이었다.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한데 맛은 아메리카노와 비슷했으니 독서실에서 살다시피 했던 나에겐 좋은 선택지였다(끊임없는 카페인 공급이 필요했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카누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당시 조교였던 친한 선배는 카누를 녹인 커피로 각얼음을 만들어놓고 뜨거운 우유에 넣어 먹었다. 교수님이 좋아하신다며 냉동실 문을 열어 카누 얼음을 보여주던 모습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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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핫 데뷔했던 카누가 나온 지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브랜드가 얼마나 유명한지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고유명사가 일반명사가 되었다면 그걸로 끝이다. 하나의 브랜드가 시장을 대표한다고 봐도 되기 때문이다. 카누는 동서식품에서 출시한 제품명이지만 일반명사와 다름없이 사용된다. 이젠 카누라고 말하면 누구나 ‘인스턴트 원두커피’를 떠올린다. 수요는 있었으나 공급이 없었던 시장에서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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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란 숫자가 얼마나 긴 세월인지는 본인의 나이에 10을 더해보면 체감할 수 있다. 내 나이에 10년을 더하면 44살이 된다. 44살이라… 절대로 오지 않을 날일 것 같고,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클래식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식품업계에서 카누가 10년 동안 그 인기를 유지한 건 대단한 성과다. 그래, 카누 정도라면 ‘새로운 클래식’의 반열에 올랐다고 말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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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누가 있기 전, 동서식품의 대표 상품은 단연 믹스커피였다. 설탕, 프리마, 원두 분말이 층층이 들어가 설탕의 양을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있는 그 믹스커피. 설탕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스틱형 믹스커피는 동서식품이 세계 최초로 개발해서 출시 이후부터 지금까지 국내 인스턴트 커피 시장의 스테디셀러이자 베스트셀러로 군림하고 있다. 그런데 동서식품은 믹스커피에 안주하지 않고 2011년, 믹스커피뿐이던 시장을 또 한 번 뒤집는 제품을 출시한다. 그게 바로 오늘의 주인공 카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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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그 당시는 카페 전성시대였다. 요즘에는 프랜차이즈 카페보다는 인테리어가 예쁜 로컬 카페가 관심받지만 그때만 해도 대부분 프랜차이즈 카페였고,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브랜드가 생길 때였다. 그에 따라 원두커피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다. 그런 트렌드에 발맞춰 출시된 것이 바로 카누다. 카누의 슬로건 ‘세상에서 제일 작은 카페’라는 이름처럼 카누는 카페에서 마시는 아메리카노의 맛을 구현하려고 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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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 디자인부터 실험적이었다. 패키지 메인 컬러로 블랙을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요즘엔 프리미엄 제품임을 강조하려고 블랙 컬러를 종종 사용하지만 당시엔 검은색을 사용하는 제품은 거의 없었다. 특히 식음료계에서는 빨강, 노랑 등 원색 패키지가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카누의 라인업이 다양해지면서 제품마다 다른 컬러를 사용하고 있긴 하다. 민트초코 라떼는 하늘색, 너티 카라멜 라떼는 주황색, 돌체 라떼는 인디언 핑크색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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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 원두커피는 사람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었다. ‘믹스커피처럼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데, 원두커피의 맛과 향이 난다고?’ 그래서 동서식품은 출시 이후 꾸준히 체험형 마케팅을 했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카페’라는 슬로건에 맞춰 카누 패키지 모양을 살린 팝업스토어를 만들어 직접 카누 맛을 보도록 했다(공유가 가진 부드러우면서도 도시적인 이미지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레 카누에 대한 입소문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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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동안 카누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다. 아메리카노와 맛이 비슷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커피, 그 정도로 생각했다. 간편함에 초점을 맞추었으니 맛에는 큰 공을 들이지 않았을 거라는 오해도 했다. 이번에 조사를 하면서 커피의 맛과 향을 위해 상당한 연구와 투자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맛과 향을 살리기 위해서는 원재료와 커피 추출 방식이 중요한데, 원두는 콜롬비아,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등 전 세계에서 수입해 블렌딩을 한다(어떤 농장에서 원두를 수입하는지도 알면 좋겠지만, 워낙 대용량으로 수입을 하니 여러 농장이 섞여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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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하는 양이 상당해서 4년 전에는 주한 콜롬비아 대사가 동서식품 본사를 방문해 감사의 인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매년 1만 2천 톤 규모의 콜롬비아산 원두를 수입하는데, 대한민국에서 수입하는 콜롬비아 원두의 50%에 달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감사의 인사를 전할 만하다. 주한 대사가 아니라 대통령이 방문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다. 이쯤에서 나는 궁금증이 들었다. 카누가 도대체 얼마나 팔리길래, 그렇게 많이 원두를 수입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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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누 스틱 하나를 한 잔으로 계산하면, 10년 동안 카누의 판매량은 약 100억 잔에 달한다. 카누가 출시된 2011년에는 3,800만 잔이었고, 5년 만에 10억 잔, 코로나 이후에는 판매량이 더 증가하면서 올해에만 약 15억 잔이 판매되었다. 한국 사람들, 커피 참 좋아한다. 웬만해서는 쇼핑을 하지 않는 엄마 아빠도 카누를 꼬박꼬박 사두는 걸 보면 인스턴트 원두커피라는 제품은 그 형태는 달라지더라도 영원히 존재할 것 같은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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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누, 하면 검은색 패키지만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카누에도 여러 라인업이 있다. 우유가 들어간 라떼 계열에서는 커피 함량을 높인 트리플샷 라떼, 민트초코 라떼, 너티 카라멜 라떼, 돌체 라떼, 티라미수 라떼, 바닐라 라떼 등이 있다. 또,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아메리카노 계열에서는 디카페인, 시그니처 다크 로스트, 미디엄 로스트, 싱글 오리진 에티오피아 아리차,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링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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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카누를 소개하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카누를 다 마셔봤는데, 공통적으로 모든 제품이 일관되게 향이 좋았다. 뜨거운 물에 원두 분말을 풀어 5초 만에 제조한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향이었다. 카누 시그니처 미디엄 로스트가 가장 만족스러웠다. 드립커피에서 느낄 수 있는 고소하고 부드러움이 있는 커피였다. 나는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린 진한 커피보다 부드러운 드립커피를 더 좋아하는데, 직접 내려먹기는 불편하고 동네 카페로 가자니 많이 번거롭더라. 나 같은 사람에게는 카누 시그니처 시리즈가 좋을 것 같다. 커피 추출 기구를 살 필요도 없고, 추출한 뒤 청소를 할 필요도 없으니 이것저것 따지면 카누 시그니처 시리즈가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게다가 바리스타의 능력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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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미수 라떼, 민트초코 라떼 등 모든 라떼 제품은 공통적으로 우유의 부드러움을 잘 가지고 있다. 부드러움과 함께 기본적으로 단맛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 따뜻하게 한 모금 마시면 온 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 든다. 맛의 밸런스가 아주 좋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좋은 밸런스는 취향을 덜 타고, 최대한 사람을 만족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 같다. 단맛이 있다는 건 똑같지만, 너티 카라멜 라떼, 티라미수 라떼, 돌체 라떼, 민트초코 라떼가 한 끗 차이로 다른 맛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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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라떼는 민트초코 라떼였다. 평소 민트초코 라떼를 굉장히 좋아해서, 편의점에서 종종 사서 마시는데 그것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었다. 가성비를 생각하면 큰 차이가 없다는 것에 높은 평가를 줄 수밖에 없다. 민트 향의 존재감이 강해서 민초파들은 좋아할 만한 제품이라 생각한다.

만약 반민초파라면 티라미수 라떼를 추천한다. 끝 맛에 티라미수 맛이 기분 좋게 혀끝에 남는다. 인스턴트 커피 특유의 단맛, 우유맛, 커피맛이라는 게 있다. 티라미수 라떼는 인스턴트 커피 특유의 맛을 잘 가지고 있으면서도 끝맛에 티라미수를 가미하면서 새롭다는 느낌을 준다. 중독성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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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는 좋은 브랜드와 물건을 알려주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는 직업이다. 그래서 기획부터 결과물까지 잘 브랜딩된 제품을 보면 반가운 마음과 함께 희열까지 느낀다. 아마 10년 전에 내가 대학생이 아니라 에디터였다면 카누를 누구보다 빨리 구입해서 리뷰도 쓰고 까탈로그에도 소개했겠지. 제목은 ‘시공간을 초월한 커피타임을 위해’ 대충 이런 느낌일 거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감히 예상하건데 카누는 2032년에도 건재하게 있을 것 같다. 우리 모두 커피 없이 못 사는 사람들이니까.

*이 글에는 동서식품의 유료 광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