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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와인을 골라드립니다

안녕, 디에디트의 객원필자 김은아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칠 때,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뉜다. 거리의 따끈한 군것질거리를 위해 가슴...
안녕, 디에디트의 객원필자 김은아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칠 때, 세상은 두…

2020. 10. 20

안녕, 디에디트의 객원필자 김은아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칠 때,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뉜다. 거리의 따끈한 군것질거리를 위해 가슴 속에 3,000원을 품는 사람, 그리고 술장에 레드와인을 채워넣는 사람. 당연히 나는 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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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에 때가 어디 있겠느냐만, 싸늘한 공기를 헤치고 돌아와 한 모금 마시는 와인은 어떤 술보다도 편안하고 따뜻한 환대를 선물한다. 그래서 오늘은 데일리 와인으로 적합한 만 원대 레드와인을 소개해볼까 한다. 다양한 품종의 와인을 하나씩 골랐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하나씩 맛보면서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볼 것. ‘내 스타일이다’ 싶은 와인 품종을 발견했다면, 한 단계씩 등급과 가격을 올려보며 자신만의 와인 지도를 만들어보자. 그때부터 개미지옥, 아니 무한한 와인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1]
몬테스 트윈스
(롯데마트, 1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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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몬테스 알파’라는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을 거다. 지금처럼 와인 문화가 자리잡히기 전부터 이미 국민와인으로 자리매김한 와인이니까. 이 와인은 칠레의 손꼽히는 와이너리 몬테스에서 생산하는 대표적인 제품으로, 천사가 그려진 라벨이 특징이다.

81QOoZ5sfQL._AC_SL1500_[이렇게 생긴 로고]

그런데 오늘 소개할 와인은 몬테스 알파가 아니다. 요즘 편의점에서도 판매하는 몬테스 클래식도 아니고, 주로 대형 마트에서 살수 있는 몬테스 트윈스다. 이게 무슨 몬테스 게슈탈트 붕괴 오는 소리냐고?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가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마크 제이콥스를 중심으로, 세컨드 라인으로 마크 바이 마크 베이콥스, 더 마크 제이콥스 등의 브랜드를 선보이는 것을 떠올리면 쉽다.

몬테스 시리즈는 한 종류의 포도로만 만든 단일 품종 와인을 선보이는데, 트윈스는 예외다. 까르베네 쇼비뇽과 말벡을 이름처럼 50:50 비율로 블렌딩한 와인이다. 각자 묵직한 바디감과 탄닌을 자랑하는 두 품종이 만났으니 얼마나 찐할까? 그러나 여기서 반전. 첫 모금부터 풍부한 과일향, 그것도 붉은 과일의 향과 맛이 부드럽게 밀려온다. 두 품종의 강한 캐릭터는 조화롭게 어우러지다가 끝에 오랜 여운을 준다. 간이 너무 강하지 않은 고기 요리나 샐러드, 생선 요리까지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와인.


[2]
홉노브 피노누아
(이마트,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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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누아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맛을 자랑하는 품종이다. 포도의 껍질도 아주 얇은데, 덕분에 색도 연한 보랏빛을 띄고, 맛에서는 강한 탄닌보다는 풍부한 산미를 보인다. 이를테면 평양냉면 같은 친구랄까? 뭘 모르고 후루룩 마실 때는 맹물인 것 같지만, 조금씩 음미하다보면 육수를 이루는 다양한 맛이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 피노누아도 처음에는 맛의 특성을 떠올리기 어려울 수 있지만,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 그 안에 숨어있는 다층적인 풍미가 퐁퐁 터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평양냉면과의 얄궂은 공통점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가격이다. 비빔냉면이야 강한 양념 때문에 수더분한 분식집에서 먹더라도 어느 정도 맛의 감을 잡을 수 있지만, 평양냉면은 (대체적으로) 가격과 맛이 비례하지 않나. 피노누아 역시 어느 정도 가격대가 있는 와인일수록 그 섬세한 레이어의 진가를 드러내는 품종이다.

그렇지만 취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는 와인에 무턱대고 비싼 값을 치를 수는 없는 일. 저렴하면서도 피노누아의 매력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와인이 바로 홉노브 피노누아다. 피노누아의 특징인 경쾌한 딸기, 라즈베리, 체리향과 풍부한 산미가 조화롭다. 레드와인 특유의 무겁고 떫은 맛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이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와인. 맛과 향이 모두 여리여리하기 때문에 강한 맛의 음식보다는 향이 강하지 않은 경성치즈나 크래커 등과 함께 가볍게 즐기기에 좋다.


[3]
로손 리트리트 쉬라즈-까베르네 쇼비뇽
(이마트, 1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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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의 사과, 전남 나주의 배. 지역마다 특산품이 다른 건 기후에 따라 잘 자라는 과일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와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도 마찬가지다. 다크 초콜릿으로 설명될 정도의 진한 풍미를 자랑하는 쉬라즈라는 품종은 온화한 기후에서 잘 자란다. 그래서 대표적인 쉬라즈 생산지로 꼽히는 것이 따뜻한 기후를 자랑하는 호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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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는 무려 2,000여개 와이너리가 있는데, 이중에서 단연 국가대표 와이너리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펜폴즈. 마트의 수많은 와인병 사이에서 길을 잃었을때, 이 빨간색 마크만 골라잡으면 (그중 가장 저렴한 와인이라도!) 누구나 만족스럽게 마실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추천할 와인은 로손 리트리트. 위에서 소개한 몬테스 트윈스처럼, 펜폴즈의 엔트리 브랜드가 바로 로손 리트리트다. 이 와인은 믿고 마시는 브랜드가 만든 와인답게 가격을 뛰어넘는 맛을 자랑한다. 저렴한 가격대의 와인은 상대적으로 묵직한 힘이 아쉬운 경우가 많은데, 무게감은 물론이고 계피나 정향처럼 다양한 향신료의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덕분에 파스타나 스테이크 등 맛이 또렷한 메인 요리들과도 매치하기 좋다.


[4]
에르다데 상 미구엘
(롯데마트, 15,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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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포르투갈 와인’하면 와인에 브랜디를 첨가해 숙성한 주정강화 와인을 떠올리기가 십상. 그러나 사실 포르투갈이야말로 저렴하고 품질 좋은 와인이 가득한 곳이다. 이 와인은 스페인에 가까운 포르투갈 내륙에 위치한 와이너리에서 탄생시킨 와인이다. 위에서 소개한 와인이 대중적인 품종이었다면 이 와인은 알리칸테 부쉐, 포르투갈 나씨오날이라는 생소한 품종을 블렌딩했다. 그렇다고 맛까지 낯설지는 않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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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과일 향과 함께 와인을 잘 숙성했을 때 느껴지는 오크향이 부드럽게 어우러진다. 무엇보다 이 와인의 강점은 친근하다는 것. 마냥 가볍지 않으면서도 막힘없이, 어렵지 않게 한 모금 한 모금이 넘어간다. 데일리 와인으로 이보다 큰 강점이 있을까?

kim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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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일로 여행하고, 취미로 술을 씁니다. 여행 매거진 SRT매거진 기자, 술 전문 뉴스레터 뉴술레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