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

아이스라떼에 대한 고찰

차가운 계절이 되어야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겨울에 먹는 평양냉면과 아이스라떼. 물론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 경우엔 그렇다....
차가운 계절이 되어야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겨울에 먹는 평양냉면과 아이스라떼.…

2017. 02. 03

차가운 계절이 되어야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겨울에 먹는 평양냉면과 아이스라떼. 물론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 경우엔 그렇다. 그렇다고 여름에 내가 이걸 즐기지 않냐면 그건 또 아니다. 어쩌면 내가 이걸 그냥 좋아하는 걸 수도 있고. 뜨거운 뙤약볕에서 30분 이상 기다려야 맛볼 수 있는 여름의 평냉은 그많은 수요를 견디지 못하고 맛이 이내 싱거워지고 만다. 비교적 한적한 겨울에 먹는 평냉이야말로, 진짜 제대로 우려낸 육수와 제철을 맞은 메밀의 향이 온전히 살아있는 상태로 즐길 수 있다.

Processed with VSCO with a6 preset[맥락없는 평냉 사진. 난 언제나 네가 그리워]

아이스라떼의 경우도 그렇다. 나를 둘러싼 공기의 밀도가 높은 여름이 아니라, 차갑고 건조한 겨울에 마셔야 우유의 고소한 맛이 제대로 살아난다. 여름엔 역시 쨍한 아아(아이스아메리카노)가 짱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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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날이 찬 요즘 아이스라떼를 주구장창 마시고 산다. 주머니가 빈궁하니 커피전문점에서 매번 사기란 솔직히 부담스럽다. 아메리카노의 경우엔 인스턴트 커피가 워낙 잘 나오기 때문에 집에서도 그런대로 마실만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하지만, 라떼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우유의 고소한 맛을 받쳐줄 수 있는 로스팅 강도, 적당히 진한 커피의 농도, 진한 우유 맛 등 여러가지 요소가 잘 어우러져야 비로소 맛있는 라떼가 된다. 집에서 꼬수우면서도 쌉쌀한 라떼를 맛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라떼중독자인 나는 라떼에 대해 꽤 까탈을 부린다. 개인적으로 전세계인의 커피 피난처를 자처하는 스타벅스 라떼가 너무 맛없다. 얼마 전 이말을 SNS에 올렸더니 커피 업계 종사자가 스벅은 서울우유를 써서 그렇다는 제보를 하더라. 라떼에는 매일우유가 들어가야 맛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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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도 맛있는 라떼를 마시고 싶다는 소망은 오랜시간 내 가슴속에 품어온 간절한 소망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이것이 가능하다는 반가운 제보를 받았다. 심지어 찬물에도 술술 녹는 인스턴트 커피란다. 이건 사야 해. 앞뒤 재지 않고 당장 검색에 돌입한다. 아쉽게도 한국에 공식으로 수입하는 곳이 없어서 구매대행을 했다. 인스턴트 커피라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대신 배송료가 제품 비용보다 더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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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내손에 들어온 이 녀석의 이름은 인터내셔널 로스트 커피. A.K.A 호주 마약커피다.

Processed with VSCO with a1 preset[아까워서 촬영때도 새모이만큼만 꺼낸 후, 핥아먹었다]

과연 일면식도 없는 내 SNS 지인의 말은 거짓이 아녔다. 고운 검은 가루는 얼음을 넣은 우유에 넣어도 벨벳처럼 녹아들었고, 산미 없이 묵직한 맛의 커피는 라떼로 마셨을 때 완벽한 밸런스를 자랑했다. 아아 이거다. 이거.

용량은 100g. 구매대행하는 곳마다 다르긴 하지만, 난 7,000원 정도에 샀다. 캔에 적혀있는 바에 따르면 총 66잔의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하니, 7,000원 나누기 66은 약 106원. 여기에 매일 우유 3.4% 1,000mL 가격이 약 3,000원 정도하고 이걸로 대충 5잔 정도의 라떼를 마실 수 있으니까. 결국 한 잔에 700원 가격으로 내 집 안방에서 근사한 아이스라떼를 마시는 셈이다. 핵이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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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난 요즘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시원한 라떼 한 잔을 말아먹는 즐거움에 빠져있다. 행복은 이렇게 가까이에 있다.

물론 라떼만 마신 건 아니다.

그건 그렇고, 우리 집에 온 지 일주일 만에 커피 가루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왤까. 하는 수 없지. 다시 주문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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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