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시대를 풍미한 그 시절의 패션 3

안녕, 나는 패션에 대한 글을 쓰는 이예은이다. 졸업 사진 속 교복처럼, 옛날에 입고 다녔던 옷들을 보면 ‘창피하게 저런 걸 어떻게 입었지?’...
안녕, 나는 패션에 대한 글을 쓰는 이예은이다. 졸업 사진 속 교복처럼, 옛날에 입고…

2021. 10. 13

안녕, 나는 패션에 대한 글을 쓰는 이예은이다. 졸업 사진 속 교복처럼, 옛날에 입고 다녔던 옷들을 보면 ‘창피하게 저런 걸 어떻게 입었지?’ 싶을 때가 많다. 유행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과거의 내 취향은 쉽게 촌스러워 보이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들춰보곤 하는 그때 그 시절의 옷들이 있다. 시대를 풍미했던, 내 맘속에 스멀스멀 기어들어 왔던 추억의 패션 아이템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1]
PRADA
2011 S/S 프라다 클리퍼

1400_buty-marki-prada-na-wiosne-i-lato-2011-1766469-tile 1400_00110fullscreen-tileⓒ PRADA

작년부터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라프 시몬스가 프라다에 합류하면서 매 시즌 프라다 컬렉션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 전에도 프라다가 모든 잡지 커버를 도배할 정도로 시즌 컬렉션 전체가 히트 친 적 있었다. 컬렉션에서 등장한 스트라이프 드레스, 바나나 패턴 셔츠 등 많은 아이템이 카피를 양산했고, 특히 그중에서 ‘클리퍼’라고 불리는 에스파드류 윙팁 옥스포드 슈즈의 인기는 거의 대란에 가까웠다.

1400_Screen shot 2011-07-19 at 4.15.13 PM-tileⓒ PRADA

2021년이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의 시대라면, 2011년은 사토리얼리스트, 토미톤 같은 블로거형 스트릿 포토그래퍼들의 스트릿 사진이 붐을 일으키던 시대였다. 패션 위크에 참석한 패션 관계자들이 어떤 옷을 입고 사진에 찍히냐가, 전 세계 패션에 큰 영향을 줬다.

당시 스트릿 사진에는 프라다 클리퍼를 신지 않은 패션 관계자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평범한 옥스포드 슈즈에 에스파드류를 덧대고 오렌지, 그린, 블루 같은 고무 밑창을 한 번 더 덧댄 이 신발이 찍힌 사진들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머지않아 클리퍼는 전 세계적인 유행이 되었다. 국내에서도 지드래곤, 김민희 같은 연예인들이 신으면서 큰 인기를 끌었고, 신발 브랜드나 쇼핑몰은 너도나도 프라다 클리퍼st를 만들어냈다.

나 또한 프라다는 아니지만 비스무리하게 생긴 초록색 밑창의 흰색 클리퍼를 열심히 신고 다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유행이 한참 지나 전혀 신지 않지만, 2011년 큰 인기를 끈 이후 그다음 시즌부터 새로운 컬러가 추가되며 프라다의 캐리오버 아이템이 되어 한동안 나의 물욕을 계속해서 자극했더랬다.


[2]
Vetements
“2016 S/S 베트멍 롱슬리브 티셔츠와 후디”

1400_elle-pfw-ss16-collections-vetements-30-tileⓒ Vetements

2016년 패션계는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르지엘라, 루이비통에서 경력을 쌓은 조지아 출신의 디자이너 뎀나 바살리아는 2015년부터 발렌시아가에서 아티스틱 디렉터 직책을 맡으며 베트멍, 발렌시아가에서 투잡을 훌륭하게 해냈다. 베트멍은 2014년 런칭 당시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다. 하지만 2016년엔 그 영향력을 길거리에서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 뎀나가 디자인한 굉장히 긴 소매를 가진 베트멍 티셔츠와 후드티가 엄청난 히트를 쳤기 때문이다.

당시 약속이라도 한 듯 거의 모든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들과 동대문 브랜드들은 학춤을 춰도 될 정도로 소매가 긴 티셔츠를 생산해냈고, 옷 좀 좋아한다 싶은 이들의 옷 소매는 모두 베트멍을 따라 무릎까지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베트멍은 세 명이 같이 입어도 될 듯한 봄버 자켓, DHL 로고 티셔츠 등 수많은 히트 아이템들을 탄생시켰지만, 롱 슬리브 티셔츠만큼 우리나라 패션 시장에 임팩트 있었던 건 없었다. 밥 먹을 때 소매를 둘둘둘 말아야 숟가락 겨우 쥘 수 있는 긴 팔 티셔츠가 옷장에 있다면, 2016년 베트멍 영향권 아래 있었다는 증거다.


[3]
Dior homme
“에디 슬리먼이 이끌던 시절의 2000년대 디올옴므”

jojojⓒ Dior homme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이 셀린과 생로랑에서 로고를 바꾸거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버리고 모든 걸 ‘에디 슬리먼화’ 시키는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갈 수 있는 건 그의 네임 밸류와 그를 지지하고 구매까지 하는 탄탄한 고객층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탄탄한 팬층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디올옴므 브랜드에서 세운 전설에 가까운 활약 덕이다.

어릴 적부터 마른 체형 때문에 자주 놀림을 받았던 에디 슬리먼은 2000년 디올옴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 당시 자신처럼 깡마른 남자들을 위한 몸에 딱 붙는 스키니룩을 처음으로 제안했다.

70년대 록스타들에게 영감을 받아 반항적인 서브 컬쳐룩인 찢어진 청바지를 만들고, 스코틀랜드 전통 남성용 스커트 킬트 등을 메인스트림으로 불러냈다. 또 에디진, 독일군, 바시티 자켓 등 수많은 유행템을 남겼다. 이렇게 에디 슬리먼이 디올옴므에서 창조해낸 스키니룩은 수많은 ‘슬리매니아’를 양산해냈고, 파급력은 단순한 스타일을 유행시킨 걸 넘어 남성들이 생각하는 미의 기준을 바꿔놓아 남성들을 다이어트 세계로 몰아넣기도 했다.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당시 에디슬리먼의 디올옴므 수트를 입기 위해 40킬로 넘게 감량했다는 건 유명한 에피소드다.

와이드팬츠 대유행 시대인 지금은 분명 쳐다도 안 볼 스키니진이지만 십여 년 전쯤 스키니진을 입고 다녔거나, 2000년대 중후반 샤이니, 빅뱅 같은 국내 남자 아이돌이 입은 스키니진 무대의상과 길쭉하고 마른 남성상을 동경하는 그 시절을 기억한다면? 그 전설의 시작은 모두 에디 슬리먼의 디올 옴므였다.

ye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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