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한국에서 6년째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는 전희재다. 뉴욕에 도착해서 나는 모르는 사람들과 밥을 먹었다. 모르는 사람 여섯 명과 저녁을 먹고, 처음 본 사람들과 가라오케에 갔다. 60달러를 내고 낯선 사람들과 사우나에도 들어갔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맛없는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 종일 노트북을 두드리는 창업자들을 구경했고, 뉴욕에서는 그 카페에 들어가기 위해 한 블록 가까이 늘어선 줄에도 서봤다. 나는 이런 걸 구경하러 미국에 왔다.
서울 연희동에서 ‘혼자 넷플릭스 보지 말자’며 시작한 동행클럽(구 넷플연가)과 동행을 만들다 보니, 의도치 않게 6년째 커뮤니티를 만드는 사람이 됐다. 시작할 때는 이렇게 오래 할 줄도, 서울에서 가장 큰 커뮤니티 중 하나가 될 줄도 몰랐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AI 시대가 되면서 역설적으로 IRL(In Real Life), 그러니까 ‘실제로 만나는 경험’이 더 주목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리는데, 서울 말고 다른 도시에서는 요즘 사람들이 어떻게 새로운 사람을 만날까? 그리고 우리는 왜 점점 더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싶어 하는 걸까? 그래서 이번 미국 여행에서는 유명 관광지보다 이상한 모임들을 찾아다녔다.
이 글은 외로운 사람도 많고 그만큼 커뮤니티 서비스가 발달한 미국의 요즘 핫한 서비스에 대한 체험기다. 타임레프트를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체험할 수 있는 서비스는 없다. 다만 외로운 도시인들이 낯선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느슨하게 연결되는지를 앎으로써 커뮤니티 문화에 대한 벽은 낮아질 수 있지 않을까.
1. 타임레프트 & 222
“낯선 사람과 밥 먹기”
우리는 ‘동행’이라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과 부산에서 매주 300개 이상의 모임이 열린다. 처음에는 퇴근하고 이자카야에 가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술 한잔하는, 일종의 ‘게스트하우스’ 같은 경험을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지금은 같이 달리고, 등산하고, 콘서트에 가는 동행까지 열리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도 비슷한 서비스가 있다고 했다. 궁금해서 직접 써봤다. 타임레프트(Timeleft)와 222.

타임레프트는 꽤 단순하다. 앱에서 묻는 간단한 질문에 답하고 날짜를 고르면 끝이다. 누구와 어디에서 만날지는 모른다. 관심사와 성격 등을 바탕으로 처음 보는 사람들을 한 테이블에 매칭해주고, 식사 직전에야 장소와 그룹을 알려준다. 소개팅 앱처럼 사진을 넘기며 사람을 고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누구를 만날지 모른다’는 것 자체가 이 제품의 경험이다. 슬로건도 ‘Dinner with Strangers’였다.

나 역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저녁을 먹었다. 국적도, 직업도 제각각이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조금 어색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다들 비슷한 이유로 이 자리에 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고, 특별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외로움은 어떤 도시든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식사가 끝날 즈음에는 미리 섭외해둔 바로 이동했다. 내가 간 곳은 미국식 가라오케였는데, 한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 갑자기 마이크를 잡고 열창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다들 너무 진심이었다. 나도 하마터면 한 곡 뽑을 뻔했으나 잘 참았다.

러닝도 해봤다. 집결지인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파크에 가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뛰었다. 더 재미있는 건 그다음이었다. 여기서 같이 뛰었던 인도인 구글 매니저와는 따로 점심을 먹었고, AI 회사에서 일하는 캐나다인 친구의 초대로 로컬 피클볼 커뮤니티에도 놀러 갔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한 번 만나는 서비스가 내 미국 생활의 예상치 못한 다음 장면들을 만들어준 셈이다.

222는 조금 달랐다. 그날 만날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 있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여줬고, 만남 이후의 관계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느낌이었다. 서로 원하면 같은 멤버로 다시 식사 자리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친구나 데이트 목적으로 서로에게 관심이 있는 경우에는 그 시그널을 연결해주기도 했다.

직접 경험하고 나니 재미있는 질문이 하나 생겼다. 낯선 사람을 한 번 만나게 하는 것과, 그 사람을 진짜 친구로 만드는 것 중 무엇이 더 어려울까? 아마 후자일 것이다. 앱이 첫 만남은 만들어줄 수 있다. 하지만 그날 만난 사람과 다음 주에 다시 밥을 먹고, 같이 운동하고, 어느 순간 서로의 친구가 되는 것까지 만들어내기는 훨씬 어렵다.
그래서 타임레프트와 222를 경험하면서 오히려 ‘매칭’보다 그 이후가 더 흥미로웠다. 실제로 타임레프트 역시 이제 스스로를 단순한 ‘Dinner with Strangers’가 아니라 ‘Friendship App’이라고 부르며 첫 만남 이후의 관계를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온라인 데이팅 앱의 시대가 ‘가능성’을 팔았다면, 오프라인 연결의 시대에는 실제 ‘만남’을 팔고, 그다음에는 ‘관계’를 팔게 되는 건 아닐까.
그리고 조금은 자신감도 생겼다. 한 도시 안에서 열리는 그룹 동행의 수와 밀도만 놓고 보면 우리가 서울에서 만들고 있는 동행이 더 크다. 이번에는 미국의 커뮤니티를 구경하러 왔지만, 다음번에는 정말 동행의 다음 도시를 만들러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Othership
“낯선 사람과 사우나 하기”
미국 커뮤니티 중 가장 활발한 건 단연 웰니스다. 러닝부터 피클볼, 하이록스, 명상까지 종류도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사우나’가 요즘 핫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조금 신기했다. 사우나가 그렇게까지 특별한가?
우선, 신청할 때 가격에 한 번 놀랐다. 다회권을 사면 조금 저렴해지지만 1회권은 60달러(8만 원) 정도. 내 생애 가장 비싼 사우나다. 가는 길에 수영복(2만 원)까지 하나 사니 체감 가격은 더 올라갔다. 그래도 뉴욕까지 왔는데 한번 가봐야지 싶어서 눈 감고 결제했다.
일부러 커뮤니티성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어서 사람이 많은 시간대를 찾았고, ‘가이드’가 진행하는 세션을 예약했다. 사우나에 웬 가이드가 있지? 가보면 알겠지.
들어가는 순간부터 우리가 아는 동네 사우나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고급스러운 리셉션을 지나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들어가니, 수영복을 입은 남녀들이 새빨간 빨간 조명의 라운지에 모여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친구나 연인과 함께 온 사람도 많았다.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내가 방문한 날의 인상일 뿐이지만, 비교적 젊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국, 특히 뉴욕을 돌아다니면서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사람이 어떤 커뮤니티에 속하느냐가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과 정체성을 꽤 크게 구분하고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뉴욕에 수많은 프라이빗 멤버십 클럽과 웰니스 커뮤니티가 생기는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본격적인 세션이 시작되자 더 신기했다. 꽤 뜨거운 사우나 안에 가이드들이 함께 들어와 음악을 틀고 명상을 진행한다. 조명과 음악, 향까지 더해지니 그냥 땀을 빼는 사우나가 아니라 하나의 몰입형 프로그램에 가까웠다.
한 번 사우나를 마치면 바로 차가운 물에 들어가는 콜드 플런지가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사우나. 내가 참여한 프로그램은 총 75분 동안 사우나와 콜드 플런지를 오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국에서는 너무 흔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우나’라는 경험을, 미국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웰니스 상품으로 만들고 있어서 참 신기했다. 한국 사우나는 각자 씻고, 뜨거운 곳에 들어갔다가, 시원한 곳에서 쉬고 집에 가는 루틴이 있는 생활 공간에 가깝다. 아더십(Othership)은 그 사이에 음악과 명상, 가이드, 아름다운 공간,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사우나가 하나의 ‘소셜 웰니스이자 커뮤니티 경험’이 됐다.
사실 사우나는 원래부터 묘하게 사람을 연결하기 좋은 공간인지도 모른다. 휴대폰도 내려놓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땀을 흘리고, 얼음물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끼리는 굳이 거창한 대화 프로그램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커뮤니티를 만들려면 반드시 사람들이 둘러앉아 대화를 나눠야 하는 건 아니었다. 함께 반복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나 좋은 경험이 존재하는 공간(사우나) 하나만 있어도 커뮤니티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60달러짜리 사우나라니 처음에는 비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오면서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사람들은 사우나 이용권만 산 게 아니라, 건강한 라이프스타일과 그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는 경험까지 함께 사고 있는 것이었다.
3. Corgi Cafe
“창업자와 빌더만 모이는 커뮤니티”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자마자 추천받아 찾아간 카페가 있다. 이름부터 귀엽다. Corgi Cafe. 그런데 막상 가보니 이곳은 IT 창업자와 *빌더들을 위한, 카페의 탈을 쓴 커뮤니티에 가까웠다.
*빌더(Builder): 기존의 기획자·개발자·디자이너라는 직군 간 경계를 허물고, 1인 또는 소수 인원으로 서비스의 A부터 Z까지 직접 실행하고 책임지는 사람. 최근 AI 및 노코드 툴의 발달로 샌프란시스코 테크 씬을 중심으로 부각된 개인 제작자 문화를 대표하는 용어.
그렇게 크지 않은 공간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코딩을 하고, 누군가는 화상 미팅을 하고, 또 누군가는 옆 사람과 자기가 만들고 있는 제품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 세계에서 온 창업자와 빌더들이 한 공간에 모여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에너지가 꽤 강했다.
더 신기했던 건 커피다. 맛이 없다. 처음 마셨을 때는 맹물인 줄 알았다. 공간이 엄청나게 멋진 것도 아니고, 커피가 특별히 맛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찾아올까? 사실 답은 꽤 단순하다. 이곳에 오면 창업자와 빌더들이 있기 때문이다.
Corgi Cafe는 사실 카페 회사가 아니라 2024년 시작한 AI 보험 스타트업 코기(Corgi)가 만든 공간이다. 샌프란시스코에는 밤늦게까지 일하는 창업자와 엔지니어가 많은데 정작 24시간 열려 있는 카페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자신들의 사무실 아래에 24시간 카페를 만들었다.
재미있는 건 코기의 고객도 스타트업이라는 점이다. 광고를 내서 창업자에게 보험을 파는 대신, 창업자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오고 싶어 하는 공간을 직접 만들어버린 셈이다.
뉴욕에 갔을 때 이 커뮤니티의 힘을 더 실감했다. 이벤트 앱 루마(Luma)를 구경하다 코기 카페(Corgi Cafe) 뉴욕 오프닝 행사를 발견했다. 공간은 정말 작은데 웨이팅리스트에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적혀 있었다. 궁금해서 찾아갔더니 실제로 한 블록 가까이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주변에는 웰시코기도 열 마리 가까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줄을 서 있는 동안이었다. 사람들이 가만히 휴대폰만 보고 있지 않았다. 앞뒤 사람에게 “왜 왔어요?”, “뭐 만들고 있어요?”라고 물으며 자연스럽게 네트워킹을 시작했다.
내 앞에 있던 한 사람은 이곳에 오기 위해 3~4시간이나 걸렸다고 했다. 혼자 AI 에이전트를 만들고 있는데, 계속 혼자 일하다 보니 외롭기도 하고 다른 빌더들과 교류하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그러더니 내게도 뭘 만드는지 물었다. 동행 이야기를 해줬더니 바로 링크드인을 찾아보고, 우리가 써놓은 비전까지 번역해서 읽었다. 잠시 뒤에는 코기 카페와 함께 미국에서 뭔가 해보면 어떻겠냐며 꽤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카페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이미 커뮤니티는 시작되고 있었다. 코기 카페를 보면서 커뮤니티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좋은 공간일까? 좋은 커피일까? 재미있는 프로그램일까? 물론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앞에 있는 건 어쩌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디에 속하고 싶은가’라는 정체성인지도 모른다.
‘나는 창업자다, 나는 빌더다’ 그 한마디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이자 맛없는 커피도, 작은 공간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스타트업은 자신들의 잠재 고객이 매일 찾아와 일하고, 만나고, 서로 연결되는 장소를 갖게 됐다.
사람들이 제품을 사기 전에 먼저 그 브랜드의 커뮤니티에 속하게 만드는 것. 코기 카페를 나오면서 커뮤니티가 한 브랜드의 마케팅이 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방식 중 하나를 본 것 같았다.
4. Lectures on Tap
“술집에서 수업 듣는 커뮤니티“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이상하게 ‘오프라인 강의’를 들을 일이 별로 없다. 미국에서 요즘 잘되고 있다는 렉처스 온 탭(Lectures on Tap)은 이걸 아주 단순하게 풀었다. 교수와 전문가를 술집으로 데려온다.

사람들은 퇴근하고 바에 모여 맥주 한 잔을 주문한다. 저녁을 시켜 먹기도 하고,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다 강연자가 무대에 올라오면 45분 정도 이야기를 듣는다. 끝나면 질문을 하고, 다시 술을 마시며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눈다. 그게 전부다. 그런데 이 단순함이 꽤 좋았다.
내가 갔던 날의 강연 제목은 <뉴욕의 지하철은 가장 저평가된 미술관>이었다. 연사도 수만 팔로워를 가진 유명 인플루언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래서 재미있었다. 평소라면 내가 직접 검색해서 찾아보지 않았을 아주 좁고 이상한 주제를, 그 분야를 오래 들여다본 사람에게 맥주를 마시며 듣는다.
실제로 렉처스 온 탭(Lectures on Tap)의 강연 주제들을 보면 꽤 엉뚱하다. 향수의 역사, 도박의 신경과학, 니체와 실존주의, 양자물리학, 타란티노의 천재성까지. ‘이걸 누가 돈 내고 들으러 가지?’ 싶은 주제들이 오히려 상품이 된다. 다양한 도시에서 거의 매일 열리는데 대부분 매진이다.
티켓도 40~50달러 정도로 아주 싸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바에 모여 맥주를 마시고 저녁을 먹으며 기꺼이 지적인 밤을 보낸다. 스물다섯 살이 넘고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우리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은 마음까지 졸업하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학교를 떠난 뒤에는 무엇을 배울지 내가 고를 수 있다. 그리고 시험도, 과제도 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만 들을 수 있다.

렉처스 온 탭(Lectures on Tap)을 보면서 커뮤니티에는 꼭 거창한 프로그램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같이 뛰는 것이 이유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사우나가 이유가 되고, 여기서는 ‘새로운 것을 알고 싶다’는 호기심 하나가 사람들이 모일 충분한 이유가 된다.
어쩌면 우리가 대학 이후에 잃어버린 건 강의가 아니라, 함께 지적 호기심을 나눌 사람들이 있는 공간인지도 모르겠다.
5. Corner + Partiful
구글맵보다 친구의 지도를 믿는 사람들
뉴요커들은 재미있는 모임과 장소를 대체 어디서 찾을까? 뉴욕에 사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자주 나온 이름이 파티풀(Partiful)과 코너(Corner)였다. 둘 다 온라인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사람을 집 밖으로 내보내는 서비스라는 점이 재미있었다.
파티풀(Partiful)은 친구들과 파티나 모임을 열 때 예쁜 초대장을 만들고, 누가 오는지 확인하고, 사진과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서비스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요즘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오늘 내가 갈 만한 이벤트’를 발견하는 서비스로 확장하고 있다.

실제로 앱을 열면 뉴욕 곳곳에서 열리는 파티부터 러닝클럽, 공연, 팝업, 작은 커뮤니티 모임까지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건 단순히 ‘인기 이벤트’를 보여주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내 친구가 어디로 가는지 보인다는 것.
생각해보면 꽤 중요하다. 뉴욕처럼 매일 수없이 많은 이벤트가 열리는 도시에서는 ‘재미있는 행사가 있는가?’보다 ‘그 많은 행사 중 어디에 가야 실패하지 않을까?’가 더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다.
그때 아는 사람이 간다는 사실은 꽤 강력한 신호가 된다. 별점 4.8점보다 ‘내 친구 두 명이 간다’는 정보가 오늘 저녁의 선택을 더 쉽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더 인상 깊었던 건 코너(Corner)였다. 코너는 지도 중심으로 만들어진 SNS다. 마음에 드는 식당, 카페, 재즈바, 빈티지숍 같은 장소를 저장해 나만의 지도를 만들고, 친구나 다른 사람들이 저장하고 추천한 장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신기하게도 뉴욕에 며칠 있다 보니 나 역시 구글 맵보다 코너를 더 자주 열어보고 있었다. 구글 맵에는 훨씬 많은 정보가 있다. 별점도 있고, 리뷰도 수천 개씩 쌓여 있다. 그런데 여행을 하다 보니 꼭 ‘가장 평점이 높은 식당’에 가고 싶은 건 아니었다. 뉴욕에 사는,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실제로 가는 식당과 재즈바에 가보고 싶었다.

코너에는 그런 살아 있는 취향의 흔적들이 있었다. 누군가가 저장한 작은 바를 발견하고, 그 사람의 다른 저장 장소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이 좋아하는 뉴욕을 함께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커뮤니티를 만들면서 늘 ‘사람을 어떻게 연결할까’를 고민했는데, 미국에서 이런 서비스들을 쓰다 보니 그보다 한 단계 앞의 문제도 재미있어졌다. 사람들을 밖으로 나가게 하려면 먼저 ‘오늘 뭐 하지?’라는 질문에 답해줘야 한다. 그리고 수많은 선택지 중 내가 고른 경험이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단서도 필요하다.
파티풀은 ‘내가 아는 사람이 간다’는 단서를 주고, 코너는 ‘내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 좋아하는 곳이다’라는 단서를 준다. 온라인 서비스인데 이상하게 사용할수록 오프라인 생활이 더 바빠진다.
어쩌면 앞으로의 소셜미디어는 사람을 화면 안에 더 오래 붙잡아두는 것만이 아니라, 화면을 닫고 밖으로 나가 더 좋은 오프라인 생활을 만들도록 돕는 역할도 하지 않을까. 결국 우리가 정말 살아가는 곳은 화면 안이 아니라, 화면을 닫은 다음의 오프라인 세상이니까.
6. RealRoots + Les Amis
‘모임’이 아니라 ‘친구’를 팝니다

우리가 메인으로 운영하는 서비스는 동행클럽(구 넷플연가)이다. 재능과 경험, 전문성이 있는 모더레이터들이 자신만의 주제로 시리즈형 모임을 연다. 한 번 만나고 끝나는 모임보다 같은 사람을 반복해서 만나기 때문에 ‘여기서는 친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도 조금 더 크다. 6년 동안 이 서비스를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이런 모델이 서울 밖에서도 정말 될까?’
같은 사람들을 몇 주 동안 반복해서 만나게 하고, 그 경험을 진행하는 모더레이터까지 필요한 꽤 오프라인 집약적인 모델이다. 어쩌면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이라서 가능한 사업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미국에서 비슷한 스타트업 리얼루츠(RealRoots)를 발견했다. YC에서 투자받은 여성 커뮤니티이고 동행클럽과 유사하게 시리즈형 모임을 파는데, 첫 화면에 쓰여 있는 문장부터 재미있었다. “Make new friends. Guaranteed.”
‘6주 동안 재미있는 모임을 합니다’도 아니고, ‘좋은 여성 커뮤니티에 가입하세요’도 아니다.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드립니다. 그것도 보장합니다” 이들이 파는 상품은 ‘6주 프로그램’이 아니라 6주 뒤 내 삶에 새로운 친구가 생긴다는 결과였다.
방식도 꽤 집요하다. 간단한 설문을 통해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여성들을 매칭하고, 같은 사람들과 6주 동안 반복해서 만난다. 매주 가이드가 함께하고, 그룹 안의 사람들과 1:1로 만날 기회도 만들어준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더 큰 리얼루츠(RealRoots) 커뮤니티의 이벤트와 클럽, 1:1 매칭으로 이어진다.
가장 재미있는 건 ‘친구 보장제’다. 6주가 끝났는데도 정말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최소 한 명도 없다면 새로운 그룹으로 무료 리매칭해준다. 최대 두 번까지 가능하다. 생각해보면 꽤 과감하다. 사람들은 사실 ‘화요일 저녁 7시에 6주 동안 열리는 프로그램’을 사고 싶은 게 아니다. 친구를 보장받는 기회를 사고 싶은 걸 수도 있다. 비슷한 서비스들을 찾다 보니 여성들의 관계 자체를 상품으로 만드는 커뮤니티가 꽤 눈에 띄었다.

레자미(Les Amis)도 그중 하나다. 이들의 슬로건은 아예 ‘Your family of girlfriends.’ 여성 멤버만 받고, 함께 여행하고, 운동하고, 워크숍에 참여하는 다양한 경험을 만든다. 앱에서는 2주마다 새로운 여성 한 명을 매칭해주기도 한다. 현재 뉴욕과 오스틴을 비롯해 유럽과 미국 여러 도시에서 운영되고 있다. 예전의 여성 커뮤니티가 커리어, 육아, 창업처럼 어떤 특정한 목적을 중심으로 모였다면, 이들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좋은 여자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 자체가 상품이다. 물론 이런 여성 전용 프렌드십 커뮤니티가 미국과 유럽에서 특히 잘 작동하는 문화적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여러 서비스를 보다 보니 하나의 새로운 카테고리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히 들었다.
동행클럽을 만들면서 우리는 오랫동안 ‘어떤 좋은 모임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런데 리얼루츠를 보고 나니 질문이 조금 달라졌다. 우리가 파는 것은 좋은 모임일까, 아니면 그 모임이 끝난 뒤 사람에게 남는 변화일까? ‘6주짜리 커뮤니티’를 파는 것과 ‘6주 뒤 새로운 친구가 생긴다’를 파는 건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상품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또 하나의 확신도 생겼다. 우리는 동행클럽 같은 시리즈형 커뮤니티가 서울처럼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만 가능한 모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7명의 직원이 있는 리얼루츠가 현지 가이드들과 함께 150개가 넘는 도시까지 확장한 것을 보면서, ‘이 방식 자체가 서울에서만 가능한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강하게 들었다.
오히려 동행클럽에는 조금 다른 가능성도 있다. 우리에게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연결해주는 모더레이터도 있지만, 그 위에는 자신만의 전문성이나 경험, 콘텐츠를 가지고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크리에이터들도 있다. 누군가는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 위해 6주 동안 만날 수 있고, 누군가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창업을 시작하기 위해, 와인을 배우기 위해, 혹은 인생에서 한 번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함께하기 위해 반복해서 만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팔 수 있는 결과도 꼭 ‘친구’ 하나일 필요는 없다. 친구가 생기는 6주, 무언가를 배우는 6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6주, 혼자서는 하지 못했던 일을 해내는 6주.
리얼루츠를 보면서 오히려 동행클럽이 미국에서도 가능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이번 여행에서 미국의 커뮤니티들을 구경하러 다녔는데, 재미있게도 돌아갈 때쯤에는 우리가 만든 커뮤니티도 이곳에서 한번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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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재
동행과 동행클럽(구 넷플연가)을 만드는 세븐픽처스 대표. 연희동에서 혼자 넷플릭스를 보다가 ‘굳이 외로울 필요가 있나?’ 싶어 시작한 일이 벌써 6년째다. 지금은 낯선 사람들을 연결하며 이 커뮤니티를 함께 키워갈 동료를 찾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