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영화평론가는 어떤 기준으로 별점을 매길까?

별점, 그 오묘하고 심오한 세계
별점, 그 오묘하고 심오한 세계

2025. 06. 19

요식업계에 미쉐린 스타가 있다면 영화엔 평론가들이 매기는 별점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매주 그 별점을 매기고 있는 영화평론가 김철홍입니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영화의 별점에 대해서 얘기해 보는 것은 처음인데요. 매주 씨네21을 통해 개봉 영화의 별점을 공개하면서도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혹은 이 별점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늘 고민하게 됩니다. 둘 다 사실 ‘작품’을 즐기는 데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디 적혀 있으면 은근히 신경 쓰이는 것은 맞으니까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짧은 분량이지만 함께 나가는 소위 ‘한 줄 평’에 공을 들이려 노력하는데요. 저는 특히 별점이 높은 영화보단, 낮은 영화에 대해 얘기할 때 더 망설이는 편입니다. 이 지점에서 미쉐린 스타와 큰 차이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미쉐린은 별이 많은 곳을 위주로 말들이 많다면, 영화는 높은 별점뿐만이 아니라 별점이 지극히 낮은 곳에도, 아니 가끔은 별점이 낮은 영화에 더욱 큰 관심이 쏠리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니 음식과 영화의 별점이 얼핏 비슷한 것처럼 느껴져도, 따져 보면 많은 차이가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무엇보다 미쉐린의 별 점수가 어떻게 매겨지는가에 관해선 세간에 꽤나 알려져 있는 반면, 영화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별점을 부여하는 공식적이고 객관적인 논의가 이뤄진 적도 없는 것 같고요. 

사실 역사상 가장 영화 잘 보는(?) 평론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고 해도, 거기서 어떤 합의가 이뤄질 리가 만무하다고 봅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영화에 정답이 있는 양 별점을 매기게 되는 것은, 이렇게라도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영화 제목 옆에 완벽하진 않지만 별이라도 붙어 있으면, 존재를 잘 몰랐던 영화에 대한 소통을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별점은 이야기의 최종 결론이 아닌 출발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그 영화 재밌어’ 대신 할 수 있는 감상법]과 함께 읽으시면 더욱 재미있으실 겁니다.

★★★★★

먼저 제가 별점을 매기는 가장 큰 기준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며, 들어맞지 않는 경우도 매우 많을 것임을 미리 밝힙니다. 모든 영화는 기본적으로 50% 지점인 2.5에서 시작하는데요. 영화가 스스로 정한 목표를 달성했는지 못했는지에 따라 3점과 2.5점으로 갈립니다. 예컨대 영화가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오직 관객을 웃기기로 마음먹은 코미디 영화라고 해봅시다. 웃겼으면 3점인 거고, 못 웃겼으면 2.5점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액션 영화인데 액션이 아쉬웠다거나, 슬픈 이야기인데 슬픈 감정이 들지 않으면 2.5점입니다.


<범죄도시4>

★★☆
자신의 주먹에 의문을 품다가, 다시 또 풀스윙

<범죄도시4>는 액션/코미디 영화입니다. 저는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범죄도시2>에는 3.5점을, <범죄도시3>에는 2.5점을 줬습니다. 2편은 목표한 바 이상의 영화적 재미(코미디 + 액션)뿐만이 아니라 프랜차이즈 영화로서 성공적인 속편을 개시한 의미까지 평가해 3점보다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반면 3편과 4편에 2.5점을 준 것은 영화의 목표인 액션/코미디가 2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물론 두 영화 모두 그 시기에 나온 같은 장르의 영화들보다 재미있고 타격감도 좋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방식이 2편에서 활용했던 것의 반복으로 느껴져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한 것입니다. 평에 적었듯, 저는 이 시리즈가 자신의 성공 패턴에 충분한 의심을 품지 않고 ‘다시 또 풀스윙’한 것이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승부>

★★★
“승부의 대명사가 될 자격을 지닌 두 전설

<승부>는 조훈현 바둑 기사와 이창호 바둑 기사의 드라마틱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관객들에게 스포츠 영화의 짜릿함을 선사해야 하지만 현실이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적절한 각색이 필수겠죠. 극적인 결말을 위해 실제 사실 관계를 조정하거나 MSG를 쳐야 하는데, 또 너무 많이 건들면 실존 인물들과 그 사건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다가갈 위험도 큽니다. 제가 본 <승부>는 그 밸런스가 아주 좋았던 영화입니다. 딱 납득 가능한 만큼 수정해서 정말 긴장감 넘치는 스포츠 드라마를 만들어냈습니다. 배우들의 멋진 연기 또한 인상적이었죠. 하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고 느꼈습니다. 앞서 <범죄도시2>가 이룩한 것과 같은 영화 재미 이상의 무언가는 없었습니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실화가 지금 다시 소환될 때 어떤 사회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었고요.


<하얼빈>

★★★☆
“아직 기회가 남은 자들을 향한 길고 텐션 높은 담화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만큼 자주 소환되는 실화가 없을 것입니다. <하얼빈>은 물론 영화의 완성도 자체만으로도 많은 별을 줄 수 있는 영화입니다. 안중근 의사를 포함한 독립운동가분들의 투쟁 과정을 <하얼빈>만큼 비장하고 현장감 있게, 그러면서 장르적으로도 스릴 넘치게 담은 영화는 보기 드뭅니다. 여기에 더해 <하얼빈>에 별을 반 개 추가한 이유는, 이 실화를 지금 다시 스크린에 부른 이유가 영화 속에 담겨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한 저의 생각이 궁금하시다면, 위에 적은 한줄평을 통해 한 번 유추해 보시면 어떨까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
“김다민의 상상력 학원이 구해줄거야

지금까지 관객이 많이 들었던 영화를 예시로 보여드렸는데요. 이번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제목의 영화를 가져와 봤습니다. 여기에도 의도가 있는데요. 처음 알게 된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 예상외로 좋았을 때 더 높은 점수를 매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회에 여러분께 추천드리고 싶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11살 소녀 동춘이입니다. 동춘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들어가는 시기라 국영수뿐만 아니라 태권도, 미술, 심지어 페르시아어 학원까지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주운 막걸리의 기포에서 모스 부호 같은 소리를 듣게 되는데요. 영화는 동춘이가 그 신호를 외계인의 비밀 메시지로 받아들이면서 생기는 웃지 못할 사건들로 진행됩니다. 벌써부터 독특한 영화라는 생각이 드실 텐데요. 제가 이 영화에 높은 별점을 매긴 이유도 그 과감한 상상력에 있습니다. 아이를 향한 영화의 따뜻한 시선도 인상적이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과열된 사교육 현장에 대한 날카로운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메시지가 뻔하더라도, 그것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예시가 바로 이 영화입니다.


<씨너스: 죄인들> ★★★★ 이제 모든 흑인음악이 완전히 다르게 들리게 될 것.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 분노의 탄생. 혹은 분노가 종말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하여.
<해피엔드> ★★★★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모르는 존재들의 소리 가득 아우성.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평론가가 주는 별점이라는 게, 더욱 별것 아니라고 느껴지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의 목표라는 것도 결국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바가 다르기도 하고요. 저 또한 가끔은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와 상관없이 너무 좋은 단 한 장면만으로 별점을 갑자기 추가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또 내가 영화를 본 시기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경우도 많으니. 아무래도 쓰면 쓸수록 제가 과거에 내린 판단들에 대한 의심이 커지는 느낌입니다. 이래서 평론가 별점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는 걸까요?

별점으로 뭔가 객관적인 점수를 내리는 척해왔지만, 실은 제가 좋아하는 취향을 에둘러 표현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확실한 건 꾸준히 매긴 별점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마치 별자리처럼 어떤 희미한 형태 같은 것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아직은 잘 보이지 않지만 계속해서 점 찍어가며, 제가 본 좋은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려 합니다. 여러분 또한 잘 모르겠더라도 일단 찍어보시면 어떨까요? 영화뿐만이 아닌 스스로의 취향에 대해 알아가게 되는 좋은 시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About Author
김철홍

제25회 씨네21 영화평론상에서 최우수상 수상. 영화 글과 평론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