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많은 사람이 기대하고 있는 작품인 만큼 가장 궁금해할 것 위주로 감상평을 적었습니다. 지금까지 나홍진 감독의 영화는 ‘호불호 갈릴 영화’로 분류되었지만, 이번에는 좀 다릅니다. 본 적 없는 미친 영화(p)를 만들어냈습니다. 긴 말 할 것 없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세하게 설명하진 않았지만 조금의 스포일러도 접하고 싶지 않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1. 재미있나요?

재밌습니다. 감독의 전작과 비교했을 때 ‘상업영화’로서는 확실히 더 재밌습니다. 아무래도 전작이 <곡성>, <추격자>, <황해>이기 때문에 웃긴 장면도 많고 액션신도 시원시원합니다. 나홍진 감독 특유의 기분 나쁜 서늘함은 여전하지만 좀 더 가볍습니다. 2시간 내내 긴장하며 볼 필요는 없습니다. 긴장감이 최고조에 다다른 상황에서 삑사리를 내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유머 코드가 연상되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봉준호스럽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삑사리계에서 워낙 독보적인 감독이 봉준호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웃음 타율은 꽤 높은 편이고, 진지하게 웃음을 유발하는 배우들의 호흡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목격자 역할의 임현식 배우의 연기는 굉장했습니다.
2. 정호연 연기는?

“정호연이 반짝스타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이런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정호연이 제대로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생활연기 차력쇼처럼 <호프>에 나오는 배우들의 내공이 넘쳐흐르는 와중에도 정호연의 연기는 밀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초반 등장씬과 경찰차 액션씬, 자칫 소화하지 못하면 오그라들 수 있는 정의감 넘치는 대사를 100% 소화합니다. <호프>를 보며 <오징어 게임>의 정호연이 단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3. 그래서 호프가 무슨 영화냐고?
<호프>는 ‘크리처물’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됩니다. 물론 SF적인 요소도 중요하지만 영화 자체가 주는 재미는 크리처물을 생각하면 기대에 충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느 날 시골 마을에 괴물이 나타나고, 마을 사람들은 힘을 합쳐 싸운다.” 사정없이 내용을 후려치면 이 정도로 요약됩니다. 후반부까지의 줄거리를 고려하면 SF도 중요합니다. 다만, 초중반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외계인’이라고 언급하는 대사도 거의 없고, 괴물이라고 부릅니다. VFX에 대해서는 칸영화제에서도 아쉽다는 평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렇습니다. 배경과 크리처가 따로 노는 느낌이 있습니다.
4. 액션, 액션, 액션!

액션의 리듬감이 정말 좋습니다.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액션이라기보다는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고, 강한 한방을 터뜨리기 위해 조금씩 긴장감을 축적하는 연출을 선보이는데 나홍진 감독이 그걸 너무 잘합니다. 영화 오프닝에는 범석(황정민)이 등장해 괴물이 휩쓸고 간 흔적을 조사합니다. 흔적은 동물의 사체이고, 조사가 진행될수록 사람 시체가 나오고, 지인의 죽음도 목격하게 됩니다. 엄청난 스피드와 파워를 지닌 괴물과 달리 범석 일행은 별다른 무기가 없습니다. 가진 건 총뿐이고(생각보다 총이 많긴 합니다), 그마저도 괴물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그 와중에도 의협심과 책임감 있는 범석은 다리를 후들후들 떨면서 괴물을 사냥하려 합니다. 어떻게든 죽여야 한다는 범석 일행의 집념이 시원시원한 액션을 보여줍니다. 러닝타임이 총 2시간 30분 가까이 되는데, 초중반까지 나오는 액션은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웨스턴 무비를 연상케 하는 호쾌한 음악도 좋습니다. 크리처의 움직임도 박진감 넘치고 기괴합니다.
5. 중후반은 조금 아쉽다

초중반에 모든 걸 다 보여준 범석 일행의 액션은 후반부가 되어 맥이 빠집니다. 특별히 더 강한 무기가 지급된 것도 아니고 강력한 멤버가 합류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액션은 반복되는 느낌입니다. 탈 것으로 말이 추가되어서 포스터에 사용된 스틸컷이 이때 연출되긴 하지만 마을에서 보여준 액션신과 후반부 숲에서 보여주는 액션을 비교하면 후반의 매력도가 떨어집니다. 숲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이유는 합당하지만 상황에 어울리는 액션신이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초중반은 확실한 크리처물이었고 중반을 지나면서 SF적인 요소가 드러납니다. 범석 일행은 사건의 이면을 알게 되고, 액션이 쉬어갈 타이밍입니다. 배우들이 맛깔나는 연기로 시퀀스가 너무 늘어지지 않도록 끌고 가는데 초중반에 너무 신나게 달린 탓인지 긴장이 완화되며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마이클 패스밴더 등 유명한 외국 배우를 섭외한 이유는 잘 모르겠고, 꼭 그랬어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칸영화제에서 VFX를 보고 <스콜피온킹>이 떠오른다고 말했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6. 많이 무섭나요?

무서운 영화가 아닙니다. 서늘한 분위기,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크리처 디자인이 조금 무서운 것만 빼면 특별히 무서운 장면은 없습니다. 시체를 해부하거나 죽고 죽이는 장면이 많아서 조금 잔인하다고는 느낄 수 있습니다.
7. 뻔한 상업 영화는 아니다
‘멸공’이라는 글자가 보이는 DMZ 접경 마을, 외계인에 대한 서사, 마지막 대사, 허가받지 않은 무기, 죽음을 돈으로 생각하며 조금의 죄책감도 없는 인간, 범석의 깨달음 등 단순히 재밌는 영화 이상입니다. 하나씩 뜯어보자면 재밌게 해석할 수 있는 요소가 풍부합니다.
8. 세상엔 다양한 ‘X발’이 있다
조폭영화에서보다 더 많은 욕설이 나옵니다. X발이라는 단어가 숨쉬듯 발화되는데, 살면서 처음 본 괴생명체 앞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싶은 생존에 대한 욕구가 그 두 글자로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인생을 관통하는 명언 한 줄 대신 다양한 ‘X발’을 들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크리처에게 하는 원색적인 비난 “X같이 생겼네.” 역시 중요한 포인트에 등장합니다.
9. 그래서 결론은?

과연 나홍진입니다. 재밌습니다. 꾸준히 흥행하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잃지 않는 감독이 있다는 건 영화 팬들에게는 선물과도 같습니다. 박찬욱, 봉준호의 최근 연출작이 흥행하지 못했기에 나홍진이 한 방 해주길 기다렸고, 기어코 보여준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봤을 때는 뻔한 크리처물 이상으로 ‘뭔가’를 집어넣어서 역시 나홍진이 만들면 다르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있지만 단점은 작고, 장점은 압도적으로 큰 영화입니다.
그리고 무조건 영화관에서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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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