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가옥

CULTURE

안전가옥: 작은 출판사가 팬덤을 만드는 방법

[DeePick] 01.덕후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출판사
[DeePick] 01.덕후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출판사

2026. 07. 21

“요즘 잘하는 브랜드 어디에요? 너무 유명한 곳은 빼고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시리즈로 준비했습니다. [DeePick]은 한 가지 브랜드만 골라 ‘찍먹’하는 시리즈입니다. 유명한 브랜드보다는 아직 크게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 동시에 실력과 매력, 철학을 지닌 스몰 브랜드만 소개합니다. ‘찍먹’할 수 있게 하이라이트만 골라 주목해야 할 이유를 알려드릴게요. 첫 번째 브랜드는 덕후의 마음을 아는 출판사 ‘안전가옥’입니다.

안녕, 주기적으로 책을 사는 객원 에디터 지정현이다. 하지만 완독하는 책은 많지 않다. 소화할 자신도 없으면서 일단 책부터 들인다. 나는 책 안에 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지식과 지혜가 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짧은 도파민에 절여 지내다가도, 조금 길게 사유하고 오래 붙들고 생각하고 싶어질 때면 여지없이 책을 고른다. 과거에 고민 없이 돈을 써둔 나에게 감사하면서 말이지.

같은 이유로 살만한 책을 찾아 도서전을 매년 찾는다. 학부 시절, 교수님의 권유로 마지못해 따라갔던 때와 비교하면 요즘 도서전은 거의 페스티벌이다. 예전에는 출판업계 고관여자나 헤비한 애호가들이 모여 있어 전반적으로 진중한 분위기가 강했다. 지금은 어떤가. ‘텍스트 힙’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참여 연령대는 낮아졌고, 부스 앞은 한층 시끌벅적해졌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책’을 읽는 대상이기보다,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소비자의 흐름도 있겠으나, 전통 출판사보다 기민하게 움직이는 소규모 출판사들의 존재도 한몫했을 것.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곳이 ‘안전가옥’이다. 장르소설 [쇼-트] 시리즈와 오프라인 경험에 공을 들인 마케팅으로 탄탄한 팬덤을 쌓아온 안전가옥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출판업계 안에 또렷한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모두가 무난하게 좋아할 책보다, 단 한 명의 독자를 깊게 사로잡을 책을 만든다는 이들. 덕후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출판사, 안전가옥을 소개한다. 


제목 그대로다. 안전가옥은 자신들을 ‘출판사’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대신 ‘콘텐츠 프로덕션’이라 말한다. 콘텐츠 산업에서 프로덕션이란 기획부터 예산 책정, 제작, 프로모션까지 하나의 결과물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전 과정을 가리킨다. 책도 비슷하지 않냐고?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일반적인 출판 편집이 작가가 써낸 원고를 다듬고 세상에 소개한다면, 안전가옥은 이야기의 기획 단계부터 창작자와 훨씬 밀도 높게 협업한다. 

직함부터 다른데, 출판 과정을 담당하는 이를 편집자가 아닌 ‘스토리 PD’라 부른다. 스토리 PD들은 작가와 긴밀히 논의하며, 캐릭터의 관계와 스토리 전개, 더 나아가 IP 확장 여부까지 고려해 집필 과정을 돕는다. 그렇다고 작가를 통제하는 건 아니다. 창작자가 가진 개성을 소비자의 입장에서 납득될 수 있도록 담금질하는 과정이기 때문. 모두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뭉뚝해진다는 철학처럼, 단 한 명의 독자에게 가닿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프로세스라 할 수 있다. 


아는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장르 소설

취미로 지도를 수집해 온 김홍익 안전가옥 대표

그런데 잠깐. 프로덕션을 자처한다고 해서 누구나 좋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독자가 어디에서 눈을 반짝이고, 어느 순간 책장을 덮는지 모르는 사람이 방향키를 잡는다면 이야기는 얼마든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간다. 안전가옥에서 스토리 PD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안전가옥은 ‘장르소설’로 유명하다. 호러, SF, 판타지, 미스터리처럼 장르소설에는 저마다의 합의된 ‘장르적 쾌감’이 있다. 독자는 그 문법을 즐기기 위해 책을 펼치고, 동시에 그 기대를 한 번쯤 멋지게 배반당하길 바란다. 그러니 작품을 함께 빚는 사람 역시 장르의 맛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안전가옥의 스토리 PD들이 장르소설을 오래 읽고 사랑해 온 덕후들인 것도 그래서다.

웹툰으로 재탄생한 조예은 작가의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런던도서전에 출품된 박에스더 작가의 <박씨아씨전>

안전가옥의 구성원들은 영화, 드라마, 라노벨, 애니메이션 등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오타쿠’라고 한다. 대표인 김홍익 대표도 전통 문학보다 장르 소설을 좋아한다고. 사실 콘텐츠를 업으로 하는 곳일수록, 덕심이 가득한 이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데, 본인들이 재밌게 하면서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분야가 ‘장르 문학’이었다는 것. 

덕후의 마음은 덕후가 가장 잘 안다. 그래서일까. 안전가옥의 대표 베스트셀러인 조예은 작가의 <칵테일, 러브, 좀비>는 12만 부 이상 판매됐다. 해외 독자와 만난 작품도 꾸준히 늘고 있다. 천선란 작가의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는 2025년 영국 블룸스버리를 통해 영어판 <The Midnight Shift>로 출간됐고,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오컬트 로맨스 판타지 <벽사아씨전>은 영미권을 비롯한 해외 여러 나라에 판권이 수출됐다. 이밖에도 다양한 작품들이 웹툰, 드라마,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안전가옥의 책들은 덕심이 국경과 플랫폼을 초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진심은 통한다, 덕후들의 영업력

2024 서울국제도서전 안전가옥 부스 풍경
2024 서울국제도서전 안전가옥 부스 풍경
2024 서울국제도서전 안전가옥 부스 풍경
2024 서울국제도서전 안전가옥 부스 풍경

안전가옥의 영향력이 급부상한 결정적 계기는 서울국제도서전이라 할 수 있다. 방문객 연령층이 낮아지며 도서전 부스는 출판사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팝업 스토어’의 성격으로 바뀌었고, 안전가옥은 그 변화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한 곳 중 하나였다. 매년 참신한 공간 기획으로 주목받아온 이들이 정점에 올라선 것은 2024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한 ‘정원’ 콘셉트의 부스는 장르문학 특유의 생동감을 공간으로 구현했다. 하지만, 이러한 팝업 스토어 전략은 이미 보편화 되었기에, 안전가옥만의 뾰족한 장점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가장 눈에 띄는 출판사’로 만든 걸까.

한 해의 숨고르기를 마치고 2년 만에 도서전의 문을 두드리는 안전가옥

핵심은 공간이 아닌 사람이었다. 나는 그 해에 안전가옥 부스를 가봤다. 다른 부스보다 유난히 시끌벅적했는데, 카운터 쪽에서는 환호와 박수 소리가 들렸고, 진열대 앞에서는 현장 스태프가 방문객에게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알아차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책을 유심히 보고 있자 한 분이 다가와 “설명해드려도 될까요?” 하고 말을 붙였다. ‘아, 책 소개를 해주시려나’ 싶어 “잘 모르는 책이라, 해주시면 감사하죠”라고 답했다. 도서전에서 책을 설명하는 일쯤은 자연스러운 영업 방식이니까.

<울트라백화점 서울> Vol.2 속 비하인드 아카이브 부스.

그런데 차분하게 줄거리를 짚는 데서 시작한 설명은 곧 작가의 문체와 특징, 작품이 지닌 장르적 매력으로 뻗어나갔다. 알고 있는 정보의 밀도도 놀라웠지만, 이야기하는 모습이 무척 들떠 보였다. 내 주변에도 적지 않은 덕후들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 어린아이처럼 신난다는 것. 무언가에 진심인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란 어렵다. 왜 안전가옥이 ‘출판계의 러쉬’라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들이 만든 책을 이토록 신나게 소개할 수 있다면, 독자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마음도 그만큼 크리라(카운터에서 들리던 환호는 일정 권수 이상 책을 산 독자를 향한 환대였다고).


이쯤에서 안전가옥의 책들이 궁금해졌을 여러분들을 위해, 그들이 만든 책 중, 한 손에 잡을 수 있는 판형과 특색 있는 표지로 사랑 받는 [쇼-트] 시리즈 중 장르 세계에 빠져들기 좋은 책 3권을 골라봤다. 모두 안전가옥의 개성과 강점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장르소설이 낯선 독자라면 부담 없이 첫발을 들일 수 있고, 이미 장르의 맛을 아는 독자라면 안전가옥이 만든 세계관에 푹 빠질 수 있을 만한 것들로. 

<칵테일, 러브, 좀비> — 조예은

안전가옥의 부동의 베스트셀러이자, [쇼-트]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칵테일, 러브, 좀비>는 일상적인 풍경에 오컬트와 호러를 입히는 조예은 작가의 매력을 대중적으로 각인시킨 책이다. 기괴한 설정으로 독자를 끌어당기면서도, 그 안에 가족과 관계, 폭력처럼 실적인 문제를 녹여내며 장르소설의 매력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성은이 냥극하옵니다> — 백승화

애묘인으로 유명한 조선의 왕 숙종. <성은이 냥극하옵니다>는 숙종의 반려묘 금손이가 사라지고, 이를 찾아나서는 퓨전 사극이다. 금손이의 행방을 쫓는 여정 속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의 민낯을 재치 있게 담아냈다. 본업이 감독인 백승화 작가의 찰진 말맛과 리드미컬한 전개 덕분에 책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다. 

<마지막 증명> — 이하진

장르소설 중 진입 장벽이 가장 낮은 건 아무래도 로맨스 소설. 거기에 SF까지 함께 있다면? 지구가 황폐화 된 우주적 재난 속 천체 물리학자 백영과 양서아는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이성적인 당신이라도 웜홀, 양자역학, 외계 문명까지 온갖 혼란이 뒤엉킨 세계에서, 어떻게든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동할지도.


안전가옥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해봤다.

1) 프로덕션형 출판 
작가와 함께 이야기를 만든다. 기획부터 IP 비즈니스까지, 작가의 장점이 100% 발휘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인다.

2) 덕후가 만드는 장르소설
장르의 문법과 쾌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스토리 PD들이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키면서도, 기발한 상상력으로 단숨에 끌어당기는 작품을 기획한다.

3) 진심이 닿는 영업력 
책과 작가를 깊이 이해한 구성원들이 자신의 애정을 숨기지 않고 전한다. 작은 출판사인 안전가옥이 단단한 팬덤을 구축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지금까지 생각한 출판사와는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안전가옥의 길이 궁금해진다면 그들의 이야기를 먼저 읽어보자. 위 3개의 소설 중 하나로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About Author
지정현

브랜드와 라이프스타일을 탐구하는 에디터.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합니다. 마땅히 조명받아야 할 사람과 사물을 찾는 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