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라이브클럽 오방가르드는 왜 문을 닫아야 했나

춤을 췄고, 영업정지 2개월을 받았다
춤을 췄고, 영업정지 2개월을 받았다

2026. 08. 28

한국 음악 신 이야기를 할 때 ‘로컬’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지만, 정작 그 로컬을 몇 년이고 버텨온 라이브클럽 얘기는 뒷전으로 밀리곤 한다. 대구에는 클럽 헤비가 서른 해 넘게 자리를 지키고, 대전 버찌라이브홀과 광주 소극장 보헤미안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지역 신을 떠받쳐 왔다. 부산에도 크고 작은 공연장들이 있지만, 요 며칠 유독 한 곳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다. 바로 대연동의 라이브클럽, 오방가르드다.

오방가르드는 2018년 5월, 경성대·부경대역 골목의 지하 공간에 문을 열었다. 드럼과 베이스로 함께 밴드를 하다 만난 이승철, 정아윤 두 사람이 공동대표다. 호주에 머물던 승철 대표가 부산에서 공연할 곳이 하나둘 사라진다는 얘기를 아윤 대표에게 전해 듣고 돌아와 함께 연 공간이라고 한다. 이름은 두 사람 말로는 죽여준다는 뜻의 부산 사투리 ‘오방 간다’와 아방가르드를 합친 것이다.

이후 오방가르드는 부산 인디 신에서 조용히, 그러나 중요한 자리를 채워왔다. 세이수미, 보수동쿨러, 소음발광, 해서웨이 같은 부산 대표 밴드들이 이 공간을 거쳐 갔고, 여기서 공연한 밴드 피치트럭하이재커스는 올여름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 무대에도 올랐다. 대학 동아리 밴드의 첫 무대부터 독립영화 상영회까지, 이 작은 지하 공간을 거쳐 간 이들의 추억은 기록되지 않은 것까지 셀 수 없이 많다.

그런 오방가르드에 부산 남구청이 영업정지 2개월을 사전통지했다. 이유는 ‘일반음식점’에서 손님의 춤을 허용했다는 민원이 계속 들어왔다는 것. 이달 초 구청이 현장을 확인했고, 22일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코로나 시기의 어려움까지 이겨내며 쌓아온 오방가르드는 운영을 중단했다. 음악가는 저마다의 사연을 담아 음악을 들려주었고, 관객은 몸으로 화답했을 뿐인데, 그 모습이 고스란히 처벌의 증거가 된 셈이다. 이게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오방가르드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공지 사항.

여기서 짚어야 할 게 ‘일반음식점’이라는 영업 형태다. 음악가와 팬이 공연으로 만나는 공간이 법 앞에 설 수 있는 자리는 크게 셋이다. 식품위생법상 영업의 종류인 일반음식점, 유흥주점, 그리고 아예 다른 법인 공연법에 따라 등록하는 공연장. 흔히 라이브클럽을 뭉뚱그려 공연장이라 부르지만, 정작 오방가르드를 포함한 이런 공간 대부분은 공연장이 아니라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돼 있다.

그렇다면 정식으로 공연장 등록을 하면 될 일 아닌가 싶지만, 그러면 술을 팔 수 없게 된다. 공연이 없는 평일엔 손님이 거의 들지 않고, 공연이 있는 날의 티켓 수익도 출연진과 나눠야 한다. 오방가르드만 봐도 평일 소규모 공연은 1만 원, 기획 공연은 2만 원대다. 좌석이 다 차도 예순 몇 석, 스탠딩까지 백 명 남짓한 지하에서 입장료만으로 월세와 설비 투자비를 감당하기는 어렵다. 라이브클럽 살림에서 술을 포기하는 길은 애초에 선택지가 아니다.

결국 오방가르드는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기 위해 일반음식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식품위생법이 술을 팔면서 손님이 춤출 수 있게 하는 영업만 유흥주점이라는 별도 업종으로 구분해 놓았다는 점이다. 오방가르드가 등록한 업종은 일반음식점이니, 법 앞에서는 손님이 춤을 춘 순간 신고하지 않은 유흥주점 영업을 한 셈이 되어버린다. 사유가 다른 무엇도 아니라 관객의 ‘춤’이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유흥주점으로 등록하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그쪽은 세금 부담이 크게 늘고 미성년자는 아예 발을 들일 수 없다.

이렇게 라이브클럽이 법 안에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홍대 앞에 라이브클럽이 몰리기 전, 신촌블루스나 들국화 같은 1세대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은 크리스탈소극장, 레드제플린 같은 신촌의 소극장과 락카페 무대에 섰다. 그런데도 이미 1991년부터 서대문구청과 경찰은 식품위생법을 근거로 이 락카페들을 단속하고 있었다. 지금 오방가르드가 겪는 일의 원형이 그때 이미 있었던 셈이다.

그 시절 시행령은 무대에 서는 가수와 연주자까지 유흥접객원에 준하는 존재로 취급해, 일반음식점에서 두 명 이상이 함께 연주하는 것조차 막고 있었다. 1999년 시행령이 개정되며 공연은 가능해졌지만, 춤은 그대로 유흥주점의 전유물로 남았다. 지금 라이브클럽들이 27년째 몸을 맡겨온, 이도저도 아닌 그 칸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동안 법이 끝내 셈에 넣지 못한 게 하나 있다. 바로 ‘춤’이다. 법이 춤을 확인하는 기준은 몸이 움직였는가, 아닌가뿐이다. 그런데 공연을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듯이, 정작 그 순간엔 몸을 안 움직이는 게 더 어렵다. 좋은 소절에 저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이고, 후렴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몸으로 그 순간을 만끽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흥이 오른다’, ‘신이 난다’고 불러왔다. 두 말 모두 주어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흥과 신을 내는 쪽이 아니라 받는 쪽에 있다. 그런 점에서 법이 금지한 라이브클럽의 ‘춤’은 놀기 위해 꺼내 든 몸짓이 아니라, 음악에 몸이 반사적으로 응한 결과에 가깝다. 유흥이 아니라 감흥인 셈이다. 그리고 그 몸짓은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서 뮤지션의 음악에 함께 반응하는 순간, 낯선 사람들 사이에도 잠깐이나마 같은 리듬을 공유했다는 감각이 생긴다.

유흥주점으로 등록하면 그만이라던 그 길에는 문턱이 하나 더 있다. 열여덟, 열아홉의 관객이 가장 먼저 걸러진다는 것. 오늘 그 나이에 처음 라이브 무대를 본 아이가 몇 년 뒤 다음 세대의 연주자나 관객이 되는 순환을 생각하면, 예순 몇 석짜리 무대 하나가 문을 닫을 때 사라지는 건 이번 달 공연 몇 건이 아니라 그 순환의 고리다.

이런 풀뿌리 신은, 춤을 추는 케이팝을 수출산업으로 키우는 나라에서도 여전히 일반음식점 간판을 걸고 단속의 그늘 아래서 버티고 있다. 이번 사건에 서울의 채널1969 같은 다른 지역 라이브클럽과 음악가, 기획자들이 자기 일처럼 목소리를 낸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다만 이 목소리가 커질수록 그 해법이 더 촘촘한 규제로 쏠릴 위험도 있다. 필요한 건 더 세게 옥죌 잣대가 아니라, 맞지 않는 옷을 벗기고 이 공간에 맞는 옷을 새로 지어주는 일이다.

이 요구는 이미 많은 음악 관계자의 지지를 얻고 있다. 지난 26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소규모 공연장에 맞는 별도 업종을 마련하고 공연 중의 춤과 유흥행위를 구분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9월 25일까지 5만 명이 동의하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된다.

라이브클럽이 주는 공연의 감흥은 그 밤 하루로 끝나지 않는다. 같은 무대에서 같은 방식으로 반응해 온 시간이 쌓이면서, 낯선 얼굴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관객이 되고, 그 관객 중 누군가는 훗날 무대에 서는 연주자가, 누군가는 판을 만드는 기획자가 된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 오래 반복돼 온 그 ‘춤’이야말로 로컬 신이 세대를 건너 스스로를 이어가는 방식이었고, 그런 몸짓을 억지로 막아 세우는 쪽이야말로 훨씬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부자연스러운 금지 앞에서, 오방가르드는 두 달 뒤 다시 문을 열 것이다. 그사이 다른 도시의 무대를 빌려서라도 공연을 이어가겠다는 공지도 이미 나왔다. 그러나 이 두 달 동안 사라지는 건 영업일수만이 아니다. 활동을 접었던 밴드 미역수염은 아윤 대표의 오랜 설득 끝에 이 무대에서 다시 시작했고, 지난해 앨범 《2》로 한국대중음악상 메탈&하드코어 부문을 받았다. 이렇듯 이 작은 무대 하나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다음 이야기, 어느 신인 밴드의 첫 공연과 그 공연을 보고 처음 악기를 잡아볼 어느 얼굴도 그렇게 함께 미뤄진다. 

그날 밤의 ‘춤’은 답이었다. 무대 위에서 건너온 소리에 몸이 보낸 응답. 우리가 지금 잃고 있는 것은 이미 만들어진 무언가가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부산의 다음 밴드다.

About Author
최승인

음악을 듣고, 쓰고, 떠드는 일을 한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도 활동하며, 넋매거진을 운영 중이다. 힙합과 R&B부터 재즈, 인디, 팝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신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