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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인간관계는 손절인가 익절인가 4

베스트셀러보다 더 재미있는 책 추천 시리즈
베스트셀러보다 더 재미있는 책 추천 시리즈

2026. 08. 26

안녕, 나는 6년째 디에디트에서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 에디터 기명균이다. 평일엔 회사에 도움되는 글을 쓰고, 주말엔 내가 도움받은 책에 대해 쓴다. 짬날 때 써둔 메모들을 모아 뉴스레터로 보내기도 한다.

이번 달에는 ‘2026년의 인간상’을 엿볼 수 있는 책 4권을 골랐다. 기술이 발전해도 모든 게 좋아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고립되거나 무너진다. 그 와중에도 일상은 계속될 테고. 네 권을 읽는 내내 ‘관계의 위기’라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책이 좋다고 자꾸 책으로만 도피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
<손절사회>

“아무도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데 관계가 깊어질 리 만무하다.”

손절사회

100쪽 정도 읽고 잠시 책을 덮었다. 찔려서. 언제부턴가 “나는 누구인가”에 심하게 꽂혀 있는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몇 달 전부터 어렴풋이 문제의식은 있었다. 나를 들여다보다가 남을 들여다보는 일에 게을러지고 있다고. 뭐든 적당히가 중요한데 지금은 어느 선을 넘어버린 것 같다고. 그래서 금방 다 읽었다. 중단했던 독서모임을 다시 열고 싶어졌다. 할 얘기도 들을 얘기도 많았다. 이 책의 가격은 얼마가 적당했을까. 나는 이 책을 너무 싸게 산 것 같은데.

제목에서부터 시작해 책의 논리를 이어나가보자. 요즘은 다들 쉽게 손절을 말한다. 왜? 나한테 특별히 이득이 되지 않는 사람은 과감히 잘라낼 수 있어야 하니까. 그게 내 정신건강에 좋으니까.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것은 나의 의무다. 그래야 일에 몰입해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야 ‘나답게’ 살 수 있다.

물론 남들과의 유대감이 약해질 수는 있다. 괜찮다. MBTI를 비롯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다. 그걸로 충분하다. 확신이 안 설 땐, 유튜브를 켜라. 다양한 전문가들이 날 위해 조언해준다.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좋다. 자신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니까. 부정적인 감정일수록 친구나 가족들에게는 털어놓지 않는 것이 좋다. 민폐이기도 하고, 결국은 다 약점이 된다.

위 두 문단의 논리는 저자의 것이 아니다. 저자가 문제시하는 현상을 요약한 것이다. 사람에 따라 이 현상에 동조하는 정도가 다르겠지만, 이것이 특별히 문제라고 생각한 적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100% 이 책의 타깃 독자다. 마음의 평화를 인생의 목표처럼 삼아왔고, 내가 규정하는 ‘나다움’이 가장 중요하다 믿어왔고, 타인과의 관계는 필요한 만큼만 가지면 되고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니라 생각해왔다. 나 같은 사람이 많고, 그게 문제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왜 문제인지는 책을 읽어보시는 것이 좋다. 아니, 읽어보셔야 한다.

  • <손절사회> | 이승연 | 어크로스 | 2만 1,000원

“패권이 상대적으로 약해질수록 그 균열을 감추기 위한 더 적극적인 힘의 과시가 필요했다.”

회사에서 종일 주식 뉴스를 접하다 보면 “미국이 최고”라는 얘기를 많이 듣게 된다. 균형을 좀 맞추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정말 계속 최고일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기에 서점에서 <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라는 제목을 보고 바로 집어들었다. 추천사 중 한줄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과의 외교·안보 이슈가 터지면 KBS 보도국은 가장 먼저 이정민 기자를 찾았다.” 바로 구매.

막상 읽어보면 제목이 다소 경솔하게 느껴진다. ‘미국이 무너진다’라기보다는 ‘압도적인 1위 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 정도에 가깝다. 트럼프가 하는 말만 들으면 여전히 미국이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선택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과거 전 세계의 질서를 수호하는 ‘세계 경찰’을 자처했던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MAGA’로 돌아섰다. 트럼프는 다양한 명분을 이야기하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전략 변화의 배경은 단순하다. 어쩔 수 없어서.

이러한 전제하에 저자는 최근 몇 년간 미국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정리한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일으킨 전쟁, 동맹국들에게 더 강경한 관세 정책 발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이란과의 전쟁까지 미국을 둘러싼 최근 몇 년간의 세계 정세를 쭉 훑어줘서 파편으로 읽었던 뉴스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지는 기분이다.

중국 견제도, 동맹국의 충성심도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믿고 있는 마지막 보루는 AI다. 중국도 안다. 그래서 두 나라 모두 AI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쏟아붓고 있다. 이제 AI는 단순 기술을 넘어, 세계 질서를 좌우할 무기다. 미국이 계속 최고일지도 거기에 달려 있고.

  • <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이정민 | 사이드웨이 | 1만 9,800원

“내 안의 텅 빈 마음은 장바구니 속 물건이 아니라, 스스로를 따스하게 응시하는 온기로만 채워질 수 있다.”
“중력을 거스르는 유일한 방법은 중력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과 대등한 나만의 장력을 갖추는 일이다.”

비주얼부터 얘기해야 한다. 연두색 표지가 예쁘다. 껍데기를 벗기면 분홍색 속표지가 나온다. 이것도 예쁘다. 손바닥만하다. 만화책보다 더 작다. 대신 두껍다. 500쪽이 넘는다. 예쁘고 작고 두꺼운 이 책은 100개의 덩어리로 쪼개져 있다. 한 편 한 편 나눠 읽기 좋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가볍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책날개에 적힌 저자 소개가 재밌다. 초등학교 때 “주의 산만하나 집중력이 뛰어남”이라는 오묘한 평가를 받은 뒤로, “모순이 균형을 이룬 삶”을 추구해왔다. 모순이 균형을 이루는 건 이 책도 마찬가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을 100개 골라, 그 물건에 얽힌 역사와 의미를 들려준다. 일상에서 흔히 들을 수 없는 얘기들이다.

예를 들어볼까. “인류가 광장을 버리고 규격화된 고독의 안락함으로 옮겨 간 서글픈 진화의 기록이다.” 이건 어떤 물건에 대한 해석일까? (힌트: ㅁㅈ) “우리가 타자와 맺는 관계가 얼마나 물질적 자극에 취약한지, 동시에 그 얄팍한 끈 하나에 얼마나 절실하게 매달려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글픈 메타포다.” 이건? (힌트: ㅊㄹ) <일상 질문 사전>에는 이런 게 100개 있다.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많이 끄덕였다. 끄덕이며 생각했다. ‘일상에서 이런 얘기 하면 꼰대라고 할 것 같은데…’ 둘 중 하나겠지. 내가 꼰대이거나, 꼰대가 잘못 정의되어 있거나. 끝으로,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 하나를 맥락 없이 소개한다. “지금 이 세계에서 인간이 지켜내야 할 마지막 권리는 시스템의 효율을 망가뜨리는 서툰 우연과 불필요한 시행착오일지도 모른다.”

  • <일상 질문 사전> | 전성원 | 유유 | 2만 2,000원

“제가 감정을 느끼는 대상이 꼭 인간일 필요는 없잖아요.”

AI가 내 생산성을 얼마나 높여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높아졌다고 해서 그게 다 내 것 같지도 않고. 하지만 대화는 많이 한다. AI로부터 위로를 얻었다, 라고는 못하겠지만 위로가 필요할 때 AI를 찾는다. AI를 사랑하진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묻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못 할 얘기를 털어놓는다. 개떡같이 말해도 AI는 찰떡같은 답변을 내놓는다. AI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이 책은 ‘러브 머신’으로서 AI의 가능성과 한계를 탐구한다. 연애, 우정, 섹스,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까지 ‘러브’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만큼 저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나처럼 위로가 필요할 때 AI를 찾은 사람, 하루에 10시간씩 AI를 쓰다가 지금은 안 쓰는 사람… 저자에게도 ‘재스민’이라는 이름의 AI 동반자가 있다. 본인 역시 한 명의 인터뷰이인 셈이다.

다른 사람들은 AI와 어떤 대화를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궁금했다. AI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생생했다. ‘맞아 맞아 나도 저런 점이 좋았어’ 하며 공감했고, 내가 몰랐던 가능성도 알게 됐다. AI 제작자 내털리에 따르면, AI는 시중에 떠도는 폭력적인 포르노보다 훨씬 아름답고 섬세한 성애물을 만들 수 있다. 릴리는 AI를 통해 ‘다자연애’를 실현하게 되었다. “저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느꼈지만, 이들과 함께 하면서 ‘이것도 좋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라는 생각에 이르렀죠.”

반면 ‘한계’ 부분은 당위만 반복되어 아쉬웠다. 인간과 기계가 제공할 수 있는 위로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AI를 너무 믿어서는 안 된다… 그 차이가 뭔지, 믿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그게 궁금했는데. 책을 다 읽었지만, 나는 러브 머신의 부작용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

  • <러브 머신> | 제임스 멀둔 | 웅진지식하우스 | 2만 원

“추리소설만이 아니라 일반 문학작품 속의 수많은 죽음도 마땅히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이 질문은 푸아로가 내린 답과 다른 답을 갖고 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소설을 오디오북으로 듣는 건 처음이었는데 꽤 실감났다. 근데 속도가 안 났다. 듣다가 읽으려니 안 읽혀서 끝까지 들었다. 몇 달 걸렸다. 과정이 좀 지루했지만 결말은 역시 충격이었다. 이 결말이 아니었다면 아마 난 이 작품에 만족 못 했을 거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충격이 흐려지기 전에,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를 재빨리 이어 읽었다. 피에르 바야르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결말이 마음에 안 든다. 더 그럴듯하고 매력적인 시나리오를 내민다. 나는 피에르 바야르 버전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구석방에 선풍기 틀어놓고 읽다가 김치냉장고 쿨럭 소리에 깜짝 놀라버렸다.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추리소설 이상의 재미를 얻을 것이다. 중간중간 어려운 말들이 나오지만 마라샹궈에서 고수 걷어내듯 걷어내고, 맛있게 먹으면 된다.

  •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 피에르 바야르 | 여름언덕 |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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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균

매달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기이할 기, 밝을 명, 고를 균, 이름처럼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