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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 그 무엇이라도

안녕, 여러분.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쓰는 여자 에디터H다. 며칠 전이었나 앱스토어에 들어갔는데 ‘내 안의 셰익스피어를 깨워 보세요’라는 테마가...
안녕, 여러분.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쓰는 여자 에디터H다. 며칠 전이었나…

2017. 07. 09

안녕, 여러분.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쓰는 여자 에디터H다. 며칠 전이었나 앱스토어에 들어갔는데 ‘내 안의 셰익스피어를 깨워 보세요’라는 테마가 보이더라. 글쓰기 위한 앱을 추천해 놓은 리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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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뭐든 느린 아이였다. 행동도 굼뜨고, 특별히 이해력이 뛰어나지도 않았다. 운동회 때 매스게임이라도 하면 집에 돌아와 밤새 울곤 했다. 왜 친구들은 모두 왼쪽으로 걷는데, 나는 오른쪽으로 걸었을까? 왜 내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까? 바보같이. 멍청이처럼.

8세부터 사회적 좌절을 맛본 내게 뭐든 마음대로 되는 세계는 오직 하나였다. 나는 매일 글을 썼다. 하드 커버 노트를 들고 다니며 소설을 썼다. 괜히 자물쇠를 걸어 놓긴 했지만 누군가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글쓰기는 나의 세계를 둘러싼 견고한 탑이었고 유희였다. 지긋지긋할 만큼 많은 글을 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글의 시대가, 종이의 시대가 지났음을 알리는 징조는 너무나 많다. 문장은 짧아졌고 사유는 야트막해졌다. 그래도 누군가는 글을 쓴다. 누군가는 읽는다.

앱스토어의 리스트 중에서 [씀]이라는 앱을 다운로드했다. 그냥 그 글씨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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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해두고 일주일 동안 앱 아이콘을 한 번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 방금 전에야 간신히 ‘씀’을 열었다. 폭우에 비를 피하느라 들어온 작은 카페에서 문득, 그냥 갑자기, 쓰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 써봤지만 나는 이 앱에 홀딱 반했다.

모바일에서 글을 쓰는 경험이 이렇게 고급스럽다니.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숨을 쉬듯’ 편하게 문장을 뱉어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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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은 하루에 두 번, 글감을 제공한다. 나의 첫 글감은 ‘웃긴’이었다. 바로 문장이 떠오른다. 습관적 글쓰기는 깊은 고민 없이 떠오르는 문장을 바로 옮겨야 한다. 그래야 좋은 것들을 놓치지 않는다. 후다닥 의식의 흐름을 따라 짧은 글을 옮겨 담는다. 잘 다듬어 놓은 명조체가 예쁘다. 정갈하고 정성스러워 보이는 글씨체다. 바보 같은 글을 써도 멋지게 보이는 글씨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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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생각 없이 쓴 글이 꽤 멋지게 보인다. 요즘 앱 치고는 글씨 크기가 아주 작다. 아마 일부러 그랬겠지. 덕분에 단어 하나하나 더 세심하게 바라보게 된다. 슬쩍 곁눈질해서는 읽히지 않는 크기다. 옛날 문고판 서적처럼 깨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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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들의 글을 엮어서 만든 ‘아홉 편의 모음’이라는 기능이 있다. 운영자가 직접 편집하는 방식은 아니고, 알고리즘이 글을 선택한다고. 여러 가지 요소가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글의 길이와 읽는 시간이 비례하는지, 담아가기(스크랩 개념)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작성자의 방문 이력은 얼마나 되는지를 고려해 목록을 만든다. 물론 일부는 무작위로 선택하기도 한다. 특정 ‘잘 팔리는 글’만 노출되는 일을 피하기 위함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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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편의 모음을 서너 개 읽어보았다. 서툴고, 유쾌하고, 슬프고, 아름답고, 어리석은 글들이다. 모두가 글쓰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쓴다. 짧은 주제를 보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서. 어쩜 이렇게 멋진 공간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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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두 개의 글감을 받아 짧은 글을 등록했다. 어쩌면 내일부터는 다시 열어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항상 시간에 쫓기는 생계형 글쟁이니까. 그래도 어느 날 문득, 비가 많이 오는 날 괜히 센치해지면 또 생각날지도 모르지. 비가 그쳤다. 이제 나가야겠다.

에디터H 씀.


Store – iOS / 안드로이드
Point – 뭔가 쓰고 싶은데 트위터는 싸움판이고 페이스북은 뉴스판이고 인스타그램은 고양이판일 때 여기로.
Price – 무료
Size – 45.3MB
DownloadiOS / 안드로이드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