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필름 카메라를 좋아해서 관련 매거진까지 만들고 있는 남필우다. 필름 사진을 찍고 싶지만, 막상 시작부터 망설여지는 이들을 위해 오늘은 ‘일회용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뭐든 시작이 어렵지, 경험하고 나면 이게 나에게 맞는 취미인지 쉽게 알게 된다. 필름 사진을 찍어 본 경험이 없거나 한 번에 큰 예산을 쓰기 망설이는 분들이라면 오늘 기사를 통해 시작할 용기를 얻기 바란다. 어차피 일회용이니까.
그럼 ‘일회용 카메라’는 무엇인가? 말 그대로다. 한번 사용하고 나면 그 수명이 끝나 1회만 사용 가능한 카메라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27컷(또는 39컷)을 찍을 수 있는 필름이 내장된 형태로, 해당 컷 수만큼 촬영하면 카메라를 통째로 사진관에 가져다줘야 한다. 카메라와 필름이 일체형이다 보니, 사용자가 임의로 필름을 넣고 뺄 수 없게 되어 있다. 기능 또한 정말 초간단이다. 레버(사실 레버보다는 태엽을 감는 정도의 느낌)를 돌려 감고 셔터를 누르면 촬영 끝. 어떤 건 플래시가 내장되어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일회용 카메라 몇 가지를 소개해 보겠다.
1. 코닥 FunSaver / 2만 원대
코닥 펀세이버는 코닥 Ultra Max 800의 고감도 필름이 내장된 일회용 카메라다. ISO 800 필름이라 맑은 날은 물론이고 흐린 날이나 실내에서도 잘 찍힌다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어두운 실내에서 덜컥 그 말을 믿었다가는 큰일날 수 있다. 그러니 상단 구석에 믿음직하게 달린 큼지막한 플래시를 빵빵 터트리도록 하자. 참고로 플래시는 1~3m 거리 사이에서 멋진 결과물을 보여준다. 1m 이내면 피사체가 너무 밝게, 3m 이상이면 플래시 불빛이 피사체에 다다르지 못하니 주의해야 한다. 참고로, 플래시에 대한 건 모든 일회용 카메라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2. 후지필름 QuickSnap / 2만 원대
후지필름 퀵스냅은 후지 X-Tra 400 필름을 장착한 일회용 카메라다. 필름은 미국, 조립은 중국에서 이뤄지는 코닥과는 달리 전 과정 일본에서 제작된다. 코닥 펀세이버는 ISO가 800인 것에 비해 후지필름 퀵스냅의 ISO는 400으로 한 단계 낮다. 하지만 일회용 카메라가 아닌 일반 필름 카메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필름의 ISO는 200 또는 400인 것을 감안하면 가장 범용성 있는 사양이라고 볼 수 있다. 맑은 날에 촬영하거나, 플래시를 빵빵 터트리며 즐기기엔 더없이 좋은 모델이다.
3. 일포드 HARMAN HP5 400 / 2만 원 선
무려 14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흑백 필름의 대명사 일포드에서 출시하고 있는 흑백 일회용 카메라다. 일포드에서도 강한 명암 대비로 인기가 많은 HP5 400필름이 내장되어 있다. 컬러 사진을 찍고 흑백으로 보정하는 것이 아닌 흑백 필름 자체를 사용하여 촬영하는 귀한 경험을 선사하는 카메라다. 색다른 카메라지만(24년 6월 기준) 판매가는 위의 두 카메라와 비슷하다는 점도 장점. 참고로 영국에서 제조된 필름을 사용해, 중국에서 조립하여 판매된다.
4. 기타 브랜드
코닥, 후지, 일포드가 끝일까? 주변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다양한 디자인의 일회용 필름 카메라가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건 대부분 굿즈로 브랜딩된 일회용 카메라라고 할 수 있는데, 일회용 카메라를 감싸고 있는 종이 케이스에 브랜드나 캐릭터를 인쇄하여 판매하는 상품들로 관련 브랜드나 캐릭터 마니아층의 소유욕을 자극하는 굿즈로 인기를 얻고 있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예뻐서 구매한 굿즈용 카메라들은 대게 단순 진열용으로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 그중에 실제로 모든 컷 수를 채워 촬영을 완료하고도 방 한편, 선반 위 등에 진열을 해놓고 있다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인화를 맡기면 카메라 실물까지 없어지는 이유에서다. 굿즈 개념으로 브랜딩된 일회용 카메라라도 실제 촬영을 하고 인화까지 할 용도라면 이게 어떤 베이스 카메라 위에 브랜딩이 된 것인지 알면 좋을 것 같다.
보통은 후지나 코닥일 거다. 기존 일회용 제품 위에 디자인이 된 케이스를 씌워서(일명 커스텀) 판매하거나 중개하는 업체들이 꽤 있다. 그런 브랜드라면야 크게 손해 보거나 실패할 일은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출처를 알 수 없는 정체 모를 카메라들이 커스텀 굿즈로 시장에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지불한 비용에 비해 사진 퀄리티가 현저히 떨어질 수 있으니 구매 전에 조금의 노력을 더 해서라도 카메라의 베이스 기종이 무엇인가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어찌 되었건 내 손에 1~2만 원대의 필름 내장형 일회용 카메라가 생겼다 치고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무엇을 찍어볼까 설레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고 있노라면 나의 방이 무척이나 특별해 보일 거다. 책상 위에 소품도 뷰 파인더로 들여다보다가 찍고, 거울 셀카도 찍어보고, 길을 걷다가 하늘과 구름이 예뻐 보여서 찍고, 가로수나 길고양이도 찍고, 예쁜 카페나 친구들 모임에서 옆 사람을 찍어주기도 할 거다. 만약 그렇게 27컷을 모두 찍었다면 한 3~5장 정도는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질 가능성이 있다.
‘겨우 5장?’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첫 사진에 그 정도라면 꽤나 성공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ISO를 간과하고 찍기 때문이다. ISO는 빛에 대한 감도를 포함한 국제 표준으로 International Standards Organization의 약자다. ISO 100, 200 등 숫자로 표현되는데, 같은 환경에서는 숫자가 낮을수록 빛에 대한 민감도가 낮아져 어둡게 나오고, 반면에 숫자가 높을수록 밝게 나온다.
조리개나 셔터스피드 세팅이 불가한 일회용 카메라의 경우는 대부분 ISO 400 또는 800으로 출시되고 있는데, 사실 이 정도라고 해도 자연광이 많이 들지 않는 실내에서 밝은 사진 결과물을 얻기는 무척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일회용 카메라는 가능하면 자연광이 가득한 야외에서 찍는 걸 추천한다. 만약 실내에서 찍고 싶다면 플래시를 작동시켜서 찍어보자. 뭔가 요즘 패션 화보 같은 일명 ‘플래시 빵빵’ 터트리는 사진 결과물이 우연히 걸릴 가능성이 있다. 정리하자면, 일회용 카메라는 야외에서 제일 잘 나오고, 실내에서는 플래시의 도움을 받아 촬영하는 것이 한정된 필름 컷 수를 절약하는 방법이라는 이야기.
그럼 필자는 과연 일회용 카메라를 과연 추천할 것인가?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1~2회 정도의 경험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일회용 카메라를 딱 2대 정도 경험했다면, 적당한 성취감과 아쉬움이 혼재된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 바로 토이카메라로 넘어가기를 추천한다.
토이카메라는 말 그대로 장난감처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셉트의 필름 교체용 다회용 카메라를 말한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로모그래피에는 다양한 토이카메라를 출시하고 있다. 물고기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같은 어안렌즈 카메라, 줄을 당겨 찍으면 연사가 찍히는 카메라, 여러 색상 필터를 사용할 수 있는 카메라 등 일회용 카메라에선 느낄 수 없는 놀라운 재미를 선사하는 카메라들을 말이다. 가격대 역시 일회용 카메라와 일반 필름 카메라의 중간 언저리에 위치하고 있다. 일회용 카메라와 비슷한 성격으로 다회용 카메라가 있긴 하지만 토이카메라가 주는 재미는 절대 따라갈 수 없다.
최근에는 일회용 카메라를 다회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업사이클링 클래스’를 제공하는 커뮤니티도 있고, 토이카메라 가격 정도로 중고 일반 필름 카메라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으니 각자의 취향을 찾으면 되겠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정리해보자. 일회용 카메라를 구매한다면, 실제 사진을 촬영할 카메라와 굿즈로 보관할 일회용 카메라를 구분해서 구매하도록 하자. 이 과정에서 필름 사진의 매력에 빠졌다면 일회용 카메라는 두 번까지의 구매가 적당하다.
그리고 난 뒤에는 토이카메라로 넘어가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만약 일반 필름 카메라로 바로 레벨 업을 하고 싶다면 필자가 예전에 기고했던 <그렇게 필름 카메라 유저가 된다>를 다시 정독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겠다. 자, 필름 값이 점점 오르고 있다. 고민만 하다 보면 배송만 늦출 뿐, 지금이 제일 저렴하다고 생각하고 도전해 보자! 어려울 거 전혀 없다.
About Author
남필우
필름 사진 매거진 'hep.'의 편집장.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는 오래된 물건들을 좋아한다. 자칭 실용적 낭만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