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디터B다. 이 정도면 연례행사가 아닐까. 메이커스마크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웅장하고 화려한 팝업스토어를 오픈했다.
사실 ‘대 팝업의 시대’라 여기저기 발에 치이는 게 팝업이다. 하지만 메이커스마크의 팝업 ‘독주 스튜디오’는 다르다. 독보적이랄까. 그 앞에서는 원 오브 뎀 같은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언뜻 보면 CG처럼 보이기도 한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한 장면처럼 현실 왜곡이 일어나는 느낌. 그나저나 건물 하나를 통으로 빌리는 클라쓰라니, 이 위스키 브랜드 참 대단하다. 건물을 덮은 건 메이커스마크를 상징하는 레드왁스다. “00에 진심”이라는 표현이 이제는 지겨워서 안 쓰고 싶지만 마지막으로 지금 써야겠다. 메이커스마크는 팝업에 진심이다.
건물 앞을 지나가는 행인들은 한 번씩 고개를 돌려보고 웅성거린다. 하긴, 이런 비주얼이라면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신사는 “저게 무슨 건물이오?” “위스키도 마실 수 있고 공연도 하는 공간이에요.” 이해를 돕기 위해 굳이 ‘팝업스토어’라고 말하진 않았다. 말하고 나니 팝업스토어보다 더 정확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이커스마크는 술도 마시고 공연도 보는 공간이 맞으니까.
단순히 제품을 진열하는 팝업스토어가 많은데, 메이커스마크는 그렇지 않다. 가장 메인 콘텐츠는 공연. 내 대답을 들은 노신사는 “그런 곳이라면 젊은이들만 갈 수 있겠군.”이라고 말했다. 작은 아쉬움이 묻어났다. “에이, 아니에요. 아무나 다 들어갈 수 있어요.” 그분은 결국 가던 길을 갔다. 나이가 몇 살이든, 19세 이상이라면 누구든 방문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팝업 방문기를 써본다.
내부는 온통 빨간색이다. 메이커스마크를 상징하는 레드왁스를 활용했다. 온통 새빨갛게 만든 인테리어는 작년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방식이다. 마치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서 브랜드에 대한 재밌는 사실 하나. 메이커스마크는 레드왁스를 디자인적 요소로 도입한 이래 지금까지 수작업으로만 하고 있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위스키병을 왁스가 담긴 통에 일일이 담근다. 덕분에 똑같은 형태의 레드왁스가 없다. 이런 신념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장사만 잘되면 대량생산하고 효율성만 추구하는 브랜드가 많으니까. 요즘 뜨는 브랜드는 유행이 무엇이든, 누가 뭐라 하든 묵묵히 내 길을 가는 브랜드가 아닌가. 메이커스마크도 그렇다.
팝업스토어는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에는 공연 무대와 바, 2층에는 무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스탠딩석과 테이블, 3층에는 전시 공간. 우선 1층에서부터 천천히 올라가보도록 하자.
입장 후 왼쪽을 보면 술과 음식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주문 가능한 술은 총 다섯 가지. 메이커스마크 니트, 하이볼, 민트줄렙, 올드패션드 그리고 바텐더 시그니처. 꼭 마셔봐야 하는 메뉴는 당연히 바텐더 시그니처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여러 바텐더가 시그니처 칵테일을 하나씩 선보이는데 올해는 다섯 명이다. 강리나, 안경원, 노우현, 이도경, 전대현 등. 내가 방문했던 날에는 안경원 바텐더의 칵테일 ‘360 번뇌봉’을 마실 수 있었다. 순간적 찰나를 담은 사진이라는 재료를 조각에 담아내는 권오상 작가의 사진 조각 기법에 영감을 받은 칵테일이라고 한다.
스낵은 간단하게 한 종류를 판다. 을지로의 유명 카페 섬광에서 만든 옥수수 푸딩과 옥수수 타코박스다. 굶주린 배를 채우는 용도는 아니고 위스키를 마시며 집어 먹기 좋은 핑거 푸드다. 을지로 주변에는 맛집이 워낙 많기 때문에 배는 밖에서 채우고 들어오자. 사실 나도 팝업 오기 전에 경일옥 핏제리아에서 피자 한 판 먹었다.
바에는 술만 파는 게 아니라 칵테일 클래스도 열린다. 팝업스토어가 오픈하기 전, 낮 2시에 칵테일 클래스가 열렸다. 메이커스마크 브랜드 히스토리, 위스키 마시는 법, 칵테일 만드는 법에 대해 들었다. 취재를 하면서 위스키를 여러 번 마셨으면서도 몰랐던 기초적인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는데, 위스키는 알코올 향이 강하니 직접 코로 들이마시지 말고 손목 스냅으로 잔을 흔들어 주면서 풍기는 향을 맡으라고 하더라. 어쩐지 그동안 위스키 마실 때마다 향이 강하다고 느꼈던 이유가 있었다.
가장 꿀팁이었던 건 코디얼 활용법. 코디얼(cordial)은 설탕을 과일이나 과일즙과 함께 물에 끓여서 만든 시럽인데 한번 만들어 놓고 칵테일 만들 때 꺼내서 쓰면 된다. 홍차 티백, 설탕, 구연산, 식초, 물, 레몬즙을 넣고 끓이면 홍차 코디얼이 된다. 아주 간단한 레시피라 집에서도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독주 스튜디오를 찾아오는 팔 할은 공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라인업이 웬만한 뮤직페스티벌 뺨칠 수준이다. 바밍타이거, 미소, 시피카, 넉살&까데호, 씨잼, 실리카겔, 지올팍. 그리고 올해는 이용주, 김민수 등 메타코미디클럽 소속의 코미디언들이 스탠드업 코미디까지 선보인다.
공연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부터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이날 공연의 주인공은 바밍타이거. 한국인이 대부분었지만 글로벌한 아티스트라 그런지 외국인 손님도 쉽게 눈에 띌 정도였다.
이제 2층으로 올라가보자. 레드왁스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계단을 밟고(이런 디테일!) 2층으로 가면 편하게 먹고 마실 수 있는 테이블과 좌석이 있다.
메이커스마크가 팝업을 하는 이유가 하이볼 많이 팔아서 수익을 남기려는 게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메이커스마크가 만든 팝업에서 즐기길 바라는 게 목적이다. 그래서 하이볼, 칵테일이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친구들끼리 모여 칵테일과 하이볼을 여러 잔 마시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한 디에디트 구독자는 퇴근길에 잠깐 들려 한잔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에디터B님, 근데 오늘 공연하는 사람 유명해요?” “네, 바밍타이거 유명하죠.” 하지만 아티스트가 누군지 몰라도, 공연을 안 봐도 상관없다. 음악과 분위기가 들뜨게 만드니까. 우연히 만난 그 구독자 역시 자주 오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마지막 층, 3층으로 올라가자. 3층에는 전시존이 있다. 1층과 2층 못지않게 재밌는 곳이 바로 3층이다.
1층과 2층에 비하면 인구 밀도는 낮은 편이었다. 시끌벅적하지도 않았다. 3층은 굿즈를 구매할 수 있는 곳과 아티스트의 작품이 전시된 곳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상적이었던 아티스트 작품부터 소개할까 한다.
총 다섯 팀의 아티스트가 참여를 했다. 권오상, 기시히, 서인지, 전보경과 이찬유, 주재범. 이들이 선정된 기준은 단 하나. 세상의 기준에 눈치 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독주’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청바지를 업사이클링하는 아티스트 기시히의 작품. 기시히는 안 입는 청바지를 리폼해서 새로운 제품으로 만드는 업사이클링을 하는 사람이다. 청바지 조각을 붙여 거대한 메이커스마크 병을 만든 것도 재밌었고, 작품명과 인터뷰 영상도 좋았다. 작품명은 <쓰레기 도로 가져가세요>. 업사이클링 후에 나온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라고 한다.
“업사이클이라는 거나한 타이틀을 붙여주지만 그냥 재미있어서, 마음이 편해서 하는 일이에요. 업사이클이라고 하면 그 자체로 좋아 보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다시 쓰레기가 발생한다는 모순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어요.”
[미니TV를 활용한 레트로 감성. 집에 한 대 가져가고 싶어질지 모른다.]
[권오상 작가의 작품 ‘메이커스마크와 다람쥐’. 작업 방식이 독특하다. 작가는 3차원의 입체를 촬영하여 2차원의 사진으로 뽑은 다음, 사진을 조각내어 다시 3차원의 입체물로 만드는 작업을 한다.]
기시히 작가 외에도 많은 아티스트가 본인이 생각하는 독주에 대해 작품과 영상을 통해 말하고 있다. 작은 화면에 영상이 플레이되어서 시선이 가지 않을 수도 있는데 감상해 보는 걸 추천한다.
작년 5월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도 메이커스마크의 팝업은 화제였다. 스토리에 팝업 사진을 올리면 “와, 여기 핫한데! 언제 갔어?” 이런 DM이 왔다. 지금도 그렇다. 아니, 지금은 더 규모를 키웠다. 내년에는 어떤 팝업을 보여줄까. 4월부터 기대될 것 같다.
<독주 스튜디오(DOK-JU Studio)>
- 일시 2023.5.19 ~ 6.18 (매주 금,토,일)
- 장소 서울시 중구 을지로 127
- 운영시간 금, 토(15:00~24:00) 일(15:00~23:00)
경고: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이 글에는 메이커스마크의 유료 광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