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더 더워지기 전에 부지런히 도시를 거닐고 싶은 객원 필자 김정현이다. 일전에 두 차례 서울 종로의 장소들을 산책 코스로 묶어 소개한 적이 있는 만큼, 이번에는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지 북촌으로 나가보려 한다.
유서 깊은 한옥마을을 필두로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음식점, 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 아기자기한 상점과 카페가 즐비해 1년 내내 국내외 관광객으로 가득한 북촌. 워낙 즐길 거리가 다양하니 잠깐 사진만 찍고 돌아가기보다는 하루 날을 잡아 여유롭게 즐겨보는 것을 추천한다.
부지런히 돌아다니기 위해서 중간중간 연료를 넣어줄 맛있는 먹거리는 필수. 안국역에서 출발해 계동과 삼청동 일대를 느긋하게 돌아보고 싶은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건강한 점심 식사부터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주는 길거리 간식까지, 입이 즐거워지는 북촌의 산책 코스다.
- 코스 : 안국역 2번 출구 → 이밥 → 바스켓12 계동 → 커피갤러리 팝업스토어 → 풍년쌀농산
[1]
주먹밥
이밥
산뜻하게 배부터 채우고 시작하자. 오늘은 좀 건강한 걸 먹어볼 생각이다. 늦잠 자느라 아침 먹을 일이 별로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은 점심 첫 끼 메뉴 선정이 아주 중요하다. 맛있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몇 시간째 텅텅 비어 있는 위장도 신경 써줘야 하니까. 편안하고 산뜻하게 먹기 좋은 거 어디 없을까? 라고 생각하자마자 오래전 저장해 둔 식당 하나가 떠올랐다.
작고 아담한 매장으로 들어선다. 천장에 매달린 바구니와 물병을 감싼 꽃무늬 보자기가 눈길을 끄는데, 친절하고 상냥한 사장님의 안내에 먹기도 전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곧 나올 음식도 이 소박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공간을 닮지 않았을까?
이밥의 ‘이’는 이로울 리(利). 몸에 이로운 밥을 제공한다는 뜻이다. 한국식 주먹밥인 ‘이밥’, 일본식 오니기리 ‘저밥’, 덮밥류 ‘그밥’ 등의 메뉴 구성이 재밌다. 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담백하고 건강한 식사란다. 한 입 먹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졌는지를.
내 선택은 연잎주먹밥에 취나물 견과류 주먹밥, 국과 밑반찬이 포함된 주먹밥 세트다. 우선 연잎주먹밥. 초딩 입맛인 나조차 매일 먹어도 좋겠다 생각할 정도로 맛있었다. 밤, 은행 등을 넣고 연잎으로 쪄낸 찰밥의 쫀득한 식감과 은은한 연잎향이 주는 다채로운 즐거움은 일차원적으로 온갖 신경을 자극하는 인스턴트 음식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싱그러운 취나물과 고소한 견과류가 들어간 작은 주먹밥도 별미다. 나는 참치마요를 사랑하지만 더 자주 오래 먹고 싶은 건 이쪽이라는 데 반박하지 못하겠다. 마지막으로 미역 반찬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미역을 튀겨서 간장 베이스의 소스에 조린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시그니처 반찬이라며 자신 있게 말씀하실만 하다. 극강의 단짠으로 무장한 밥도둑이다.
이밥
- 주소 서울 종로구 창덕궁1길 29 102호
- 영업시간 월, 화, 목, 금 11:00-21:00 수, 토 11:00-19:00 (재료 소진 시까지) (일 휴무)
- 추천메뉴 주먹밥 세트 1만 2,000원
- @yibap_official
[2]
쿠키
바스켓12 계동
실컷 건강한 밥 먹었으면서 곧바로 디저트를 떠올리는 저, 비정상인가요? 이상하긴 하다. 허기질 땐 ‘먹고 싶다’ 정도였다면 식사 직후에는 ‘현기증 날 것 같아요’가 돼버리니까. 혈당과 콜레스테롤을 무시할 수 없는 처지임에도 별수 없이 달콤한 간식을 찾아 헤매는 내 앞에, 웬 귀여운 쿠키 가게 하나가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쿠키에 머핀에 비스킷에… 어휴, 이건 못 참지.
리얼 아메리칸 쿠키 전문점을 표방하는 바스켓12. 끓어오르는 욕구를 겨우 참아가며 심사숙고 끝에 쿠키 두 개를 골랐다. 내 기준에서는 두 개’나’가 아니라 두 개 ‘밖에’니까 한 번만 넘어가 주자. 나름 메뉴 조합에도 신경 썼다. 누텔라 스모어 쿠키와 밀크 쿠키슈. 누텔라 스모어 쿠키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대로다. 마시멜로를 넣은 초코 스모어 쿠키만으로도 이미 행복한데 거기에 누텔라 잼까지 넣었다. 행복이 두 배란 소리다. 한창 당 떨어질 오후 3시 전후로 섭취해 주면 적어도 꾸벅꾸벅 졸지는 않을 듯하다.
의외로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친구가 밀크 쿠키슈다. 바삭한 쿠키 겉면 안에 부드러운 우유 크림을 아낌없이 가득 채웠다. 어렸을 때 동네 빵집에서 사 먹던 크림 소보루빵도 연상된다. 겉바속촉 식감을 사랑하는 독자분들, 그리고 누텔라 스모어 쿠키를 경멸할 담백파 독자분들께 특히 추천한다. 담백이라 붙이기에는 조금 머쓱하지만 어차피 쿠키 먹는 주제에 그렇게 깐깐하게 따지시면 곤란하다.
이외에도 쑥 인절미 크림치즈 쿠키, 황치즈 가나슈 쿠키, 번트 케이크, 바나나 브레드 등 10가지가 훌쩍 넘는 메뉴 라인업을 자랑한다. 도저히 한두 개를 못 고르겠다 싶으면 쿨하게 세트로 지르는 건 어떨까. 대표 쿠키들을 모은 6개/8개/10개 박스와 유사한 맛을 중심으로 구성한 초코 홀릭/프레쉬/페어런츠 세트 등을 제공한다. 선물용으로 하나 사서 나올까 고민하다 가까스로 참았다. 물론 나를 위한 선물이었다.
바스켓12 계동
- 주소 서울 종로구 계동길 54 1층 바스켓12
- 영업시간 화-금 08:00 – 21:00 (일, 월 휴무)
- 추천메뉴 밀크 쿠키슈 4,300원 누텔라 스모어 쿠키 4,200원
- @basket12_seoul
[3]
커피
커피갤러리 팝업스토어
배도 부르고 노곤노곤하니 슬슬 카페인이 당길 시간이다. 북촌에 카페는 차고 넘친다. 동네가 동네인 만큼 한옥 건물을 쓰는 카페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갤러리 옆 숨겨진 공간에서, 나무와 돌담으로 둘러싸인 마당에서, 일본 로스터리의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
아트선재센터 앞에 도착했다면 잠시 멈춰서서 주변을 둘러보자. ‘가배회랑’이라고 적힌 입간판을 발견했다면 그걸 따라 옆길로 쓱 빠지면 된다. 그리고 펼쳐지는 또 다른 세상. 아니, 여기가 서울 도심 한복판 맞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자니 바쁜 일과와 해묵은 고민거리는 잠시 뒤로 밀려나는 것만 같다. 처마 밑에 자리를 잡아 넓은 마당과 돌담을 바라봐도, 반대로 마당 쪽 좌석에서 한옥과 작은 대숲을 바라봐도 좋다.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의 로스터리 카페 ‘커피갤러리’의 팝업스토어다. 현지에서도 ‘마치야’라는 일본의 전통 건축물에 터를 잡았다는데, 한국에 첫선을 보이는 자리인 만큼 아트선재센터 한옥을 무대로 삼았다. 단아한 한옥 건물에 걸터앉아 일본 현지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는 경험이라니. 어쩐지 묘하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커피를 마셨다. 직접 로스팅한 싱글 오리진 커피 중 ‘에티오피아 레드 마운틴 내추럴’로. 산미를 부담스러워하거나 과한 단맛을 선호하지 않는 이들 모두 만족할 만한 은은한 향미가 인상적이다. 부드럽게 올라오는 산미부터 고소하게 남는 끝맛까지, 차를 마시듯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커피다. 함께 먹은 디저트는 우지 말차 모나카로, 일본 전통식 디저트인 모나카에 팥소 대신 우지 말차 앙금이 들어간다. 예상보다 많이 달지 않아 가볍게 곁들이기 좋다. 팝업스토어는 오는 10월까지 진행된다.
커피갤러리 팝업
- 주소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87 아트선재센터 한옥
- 영업시간 매일 10:00-19:00
- 추천메뉴 싱글 오리진 – 에티오피아 레드 마운틴 내추럴 8,000원 우지 말차 모나카 5,000원
- @coffeegallery.jpn
[4]
떡꼬치
풍년쌀농산
밥 먹고 쿠키도 먹고 커피까지 마셨다. 많이 먹긴 했지만 이대로 끝내기에는 어딘가 아쉽단 말이지. 입이 즐거운 북촌 산책의 대미를 장식할 라스트 터치가 필요하다. 식사는 아니다. 단 것도 더 이상은 안 된다. 부담 없고, 저렴하고, 간편하게 빨리 먹을 수 있는, 그럼에도 충분한 만족감을 안겨줄 간식이라면… 벌써 몸이 알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스무 살 때부터 삼청동만 오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그곳으로.
풍년쌀농산. 언제부터 걸려 있었는지도 모를 바랜 간판이 보이면 좀처럼 설렘을 주체하기 어렵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침 질질 흘리며 먹던 떡꼬치를 또 만날 수 있어서. 기름에 튀긴 떡에 매콤달콤한 소스를 바른 것뿐인데 이게 뭐라고 30대가 된 지금까지도 행복해할까. ‘아직 애는 애다’ 같은 마음이 들다가도 바닥을 수놓은 양념 자국들을 보다 보면 ‘나만 애는 아니라서 다행이다’ 싶어진다. 단돈 천 원으로 살 수 있는 이런 행복 또 없습니다.
20년간 쌀 가게로 운영하던 곳인 만큼 직접 뽑은 쌀떡으로 떡꼬치와 떡볶이를 만든다. 아니, 떡볶이에 쌀떡이 웬 말이냐 반발하는 소리도 들리지만 제발 밀떡/쌀떡 나눌 시간에 하나라도 더 드셔보시라 권하고 싶다. 쫄깃한 식감에 한 번 빠지면 돌아가기 어렵다. 가게 내부에 플라스틱 테이블도 넉넉하게 마련돼 있으니 작정하고 먹고 싶다 하는 분들은 튀김과 순대, 어묵에 식혜까지 풀 코스로 주문해도 좋겠다.
풍년쌀농산
- 주소 서울 종로구 북촌로5가길 32
- 영업시간 수-월 11:00-20:00 (화 휴무)
- 추천메뉴 쌀떡꼬치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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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라이프스타일 잡지부터 토크 프로그램까지, 분야 안 가리는 프리랜스 콘텐츠 에디터. 멋있는 사람과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개할 때 제일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