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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는 취향껏, 마포구 필터 커피 맛집 3

원두 취향을 찾는 가장 빠른 방법
원두 취향을 찾는 가장 빠른 방법

2023. 04. 11

안녕. 에스프레소보다는 필터 커피를 좋아하는 객원 필자 김정현이다. 브루잉, 푸어오버, 핸드드립이라고도 부르는 필터 커피. 그윽하고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커피 열매가 가진 고유한 향미를 더 섬세하게 즐길 수 있는 방식이다. 여러 종류의 싱글 오리진 원두를 제공하는 카페가 그래서 좋다. 각기 다른 성격의 커피를 돌아가며 마시다 보면 나처럼 미각이 둔한 사람도 맛의 지평이 조금씩 넓어지니까.

우리의 커피 스펙트럼을 한 뼘 더 넓혀줄 마포구 소재의 카페 세 곳을 소개한다. 자체적으로 로스팅을 진행하는 로스터리 카페가 아니라는 게 포인트다. 국내외 로스터리들의 다양한 원두를 가져와 필터 커피로 제공하는, 이를테면 커피 편집숍의 성격을 가진 곳들이다. 실력 있는 로스터리 카페로 가득한 마포구에서 이들은 어떤 기준과 취향으로 커피를 소개하고 있을까?

* 참고로 세 카페 모두 필터 커피 외에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커피도 제공한다.


[1]
커퍼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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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터 커피는 빨리 나오지 않는다. 원두를 갈고, 잔을 데우고, 정해진 레시피에 따라 2분이 넘는 시간 동안 물을 부어 추출하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중간 단계가 많다는 건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드는 모습을 구경하기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구경하며 이런저런 대화까지 나누고 싶다? 그럼 바리스타와 가장 가까운 바 좌석에 자리 잡는 게 답이다. 이 과정을 기꺼이 즐기는 사람치고 커퍼시티의 커다란 바에 실망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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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퍼시티는 커피 한 잔 두고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네 커뮤니티를 지향한다. 계절의 변화를 발견할 수 있는 통창과 내부를 환하게 밝히는 자연광, 따뜻한 느낌을 주는 밝은 우드 톤의 가구 사이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다 갈 수 있는 카페. 커다란 직선 구조의 바에 앉은 이들을 느슨하게 연결해주는 건 풍부한 향미를 가진 다양한 종류의 스페셜티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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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까지 신맛을 즐기는 편이에요?” 첫 대답에 따라 섬세하게 원두 종류를 안내한다. 너무 화려하거나 튀는 스타일을 가진 커피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깨끗함이 느껴지는 커피를 중심으로 소개하는데, 모모스커피나 센터 커피 같은 국내 로스터리부터 더 반, 라카브라, 솔벅&한센 등의 해외 유명 로스터리까지 그때그때 나누고 싶은 커피를 엄선한다.

필터 커피를 주문하면 분쇄한 원두의 향을 맡아볼 수 있도록 건네준다. 내가 선택한 원두가 그라인딩 후에는 이런 향을 내뿜는구나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잠시 후에 나올 한 잔의 커피가 기다려진다. 그 기대감 역시 커피를 마시는 경험의 일부라는 걸 작은 서비스가 알려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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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퍼시티

  • 주소 서울 마포구 동교로 48 1층
  • 영업시간 월-수 11:00-20:00 목-일 08:00-11:00
  • @this.is.cuppacity

[2]
도래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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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오픈 소식을 들었을 때 카페 이름을 착각했다. 돌의 노트. 사진을 찾아보니 커피 바가 대리석으로 되어 있길래 정말 돌을 사랑하는 사장님인가 싶었다. 한국 전통매듭 중 가장 기본이 되는 ‘도래매듭’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걸 알고 나서야 발음도 의미도 멋진 이름이구나 생각했다. 서로 다른 두 가지를 연결해주는 매듭처럼, 도래노트는 스페셜티 커피를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관계 맺을 수 있는 공간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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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건 오직 해외 로스터리의 원두만 취급한다는 점. 국내 로스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두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게 그 이유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산지의 커피도 소개할 수 있고, 동일한 국가 안에서도 천차만별의 특징을 지닌 커피를 선보일 수 있어서 재배 지역에 대한 선입견을 깨기 좋다는 이점도 있단다. 다양한 원두 중에서도 ‘깔끔한 개성’을 보여주기 좋은 워시드 커피만을 엄선한다고 하니, 너무 진하고 강렬한 커피보다 차 마시듯 산뜻하고 편안한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입에 맞을 것이다(워시드 커피란 커피 체리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과육을 물로 씻어내는 방식의 커피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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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내가 마신 건 뉴욕 브루클린의 ‘SEY COFFEE’에서 로스팅한 콜롬비아 호세 하비에르 카나쿠. 극강의 클린컵을 강조하는 로스터리답게 깨끗한 산미와 은은하게 퍼지는 과일 향이 좋았다. 맛보다도 커피를 내어주며 건네는 말이 더 인상적이다. “처음에는 3분의 1만 따라서 향을 맡은 뒤 맛을 보고, 다음 3분의 1은 천천히 식혀가며 맛의 변화를 느끼고, 마지막 3분의 1은 얼음 컵에 부어 차갑게도 드셔보세요.” 이 한 잔을 풍부하게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섬세한 가이드다. 잊지 말고 리코타 츄러스도 꼭 먹어보자. 반죽에 리코타 치즈와 시나몬 스틱 티를 넣어 부드럽고 고소하다. 많이 달지 않아 맘 같아서는 다섯 개는 더 먹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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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노트

  • 주소 서울 마포구 방울내로 72 1층 도래노트
  • 영업시간 월-수, 금 08:00-17:00, 토-일 10:00-17:00 (목 휴무)
  • @doraeknot_mangwon

[3]
캘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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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입구역 3번 출구를 나와 ‘연트럴파크’를 따라 걸어보자. 사람 구경, 강아지 구경, 가게 구경을 하며 끝없이 올라가다 보면 한적한 동네가 나온다. 연남동 끄트머리라고 해서 속칭 ‘끝남동’이라고도 불리는 지역. 끝남동 한쪽에 자리한 캘브는 ‘브루잉 커피숍’을 표방하는 작은 카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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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카페들을 찾아다니고 홈카페에도 진심이었던 커피 애호가가 직접 가게까지 열었다. 오랜 시간 집에서 브루잉 커피를 내려 마신 경험을 살려, ‘내가 좋아하는 다양한 커피들을 소개해보자’는 생각을 담아 일종의 커피 작업실 개념으로 확장한 것이다. 최소 4가지부터 많게는 10가지의 원두를 제공하는데, 대개 평소에 흔하게 접하기 어려운 커피나 향미의 개성이 확실한 것들이다. 종류가 너무 많아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손님에게는 복합적이고 다채로운 뉘앙스의 커피보다 특정한 한두 가지 맛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커피를 추천하는 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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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톤을 낮춘 그레이와 브라운 컬러 중심의 차분한 공간이다. 조도가 낮고 내부 면적도 작지만 건물로 가로막히지 않은 바깥 풍경 덕분인지 답답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가운데를 차지한 테이블은 원형도 사각형도 아닌 독특한 형태의 곡선형. 굴곡에 따라 좌석 간의 느슨한 분리가 가능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테이블을 공유하기 때문에 별도의 테이블을 배치한 것에 비해 단란하고 아늑한 모양새다. 혼자 오더라도 자리 눈치 볼 필요 없는 구조라서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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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브

  • 주소 서울 마포구 연남로13길 19 1층
  • 영업시간 월, 수-일 12:00-20:00 (화 휴무)
  • @calbcoffee
About Author
김정현

라이프스타일 잡지부터 토크 프로그램까지, 분야 안 가리는 프리랜스 콘텐츠 에디터. 멋있는 사람과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개할 때 제일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