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오랜만에 디에디트에 글을 쓰기 위해 돌아 온 기즈모다. 돌아왔다는 것은 과거에도 디에디트에 글을 썼다는 얘기다. 맞다. 2년 전까지 디에디트에서 연재를 하다가 개인 유튜브 채널에 집중하기 위해 연재를 중단했다. 힙한 글을 쓰기엔 나이도 많이 먹었고 글을 더 이상 읽는 시대도 아니라 당시에는 디에디트 연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을 결심을 했다. 하지만 내 안 어딘가에는 글을 쓰고 싶어하는 욕구가 남아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다시 디에디트에게 메일을 보냈다. 사실 대단한 글도 아닌데 힙한 디에디트에 글을 다시 쓸 수 있게 되어 영광이다. 흔쾌히 손을 내밀어준 디에디트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 글을 보고 있는, 아직도 여전히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존경을 표한다.
나는 한정판, 리미티드 에디션, 특별판, 기념판, 디폴트, 파산 등의 단어를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이번 연재는 주로 전자 제품이나 디지털 제품의 한정판, 콜라보레이션, 특별판 등을 리뷰하는 코너다. 리뷰 형식을 가졌지만 솔직히 말해 리뷰는 핑계다. 한정판이나 콜라보레이션, 특별판 등은 보통 역사가 오래된 제품이나 브랜드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리뷰를 빌미로 제품에 대한 옛날 이야기나 역사, 뒷얘기 등을 하려고 한다. 옛날 사람의 옛날 이야기를 좋아할 사람이 부디 많았으면 좋겠다.
첫 리뷰 제품은 오디오 테크니카 60주년 기념 턴테이블 ‘사운드 버거’다. 오디오 테크니카는 1962년 설립됐기 때문에 2012년이 60주년이었다. 60주년 기념으로 여러가지 제품을 내놓았지만 다른 제품들은 대부분 필요 이상으로 비싸고 상대적으로 의미도 떨어진다. 그래서 사운드 버거를 골랐다. 그리고 사운드 버거는 아주 재미있는 컨셉이면서도 오디오 테크니카의 철학이 잘 담긴 제품이다. 게다가 성능도 아주 좋다. 평생 여러분과 함께 할 동반자로 손색이 없다. 지난 해 말에 7,000개 한정으로 발매됐으며 불행히도 모두 매진됐다. 다만 이베이 등에서 300~400달러 정도에 구입이 가능하다. 서두르면 좋은 가격에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디자인부터 보자. 턴테이블이라고 하지만 턴테이블이 아니라 마치 바이닐 세척기처럼 생겼다. 몸체는 플라스틱으로 이뤄져 있고 색상은 빨간색과 블랙, 그리고 투명 아크릴로 이뤄져 있다. 전형적인 1980년대의 레트로 한 디자인이다. ‘SOUND BURGER’ 타이포도 80년대 느낌이다. 무게는 약 900g이다. 뒤에는 휴대용 끈이 있어서 들고 다닐 수 있다. 그렇다. 사운드 버거는 휴대용 턴테이블이다. 집에서 들어도 되지만 어디든 들고 다니며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해 선 없이 바이닐을 들을 수 있다.
[후면에는 60주년 기념 패널과 고유 넘버가 붙어 있다. 한정판은 모름지기 이런 시리얼 넘버가 붙어 있어야만 한다.]
사운드 버거는 독특한 이름에, 독특한 디자인, 독특한 휴대용 컨셉의 제품이다. 왜 이런 디자인이 나온 지 잠깐 알아보자. 사운드 버거는 1982년 오디오 테크니카가 만들었던 휴대용 턴테이블 ‘사운드 버거’의 복원판이다. 마치 입을 벌려 바이닐을 입에 문 듯한 재미있는 디자인으로 내부에 건전지를 넣어서 휴대용으로 쓸 수 있었다. 당시 디자인과 거의 99% 흡사하며 당시에는 하얀색과 노란색 등 다른 색상도 있었지만 이번 복원판은 빨간색 버전만 나왔다.
이 제품이 나온 배경에는 소니 워크맨이 있다. 소니는 1979년 휴대용 오디오인 ‘워크맨’을 발매하며 큰 인기를 끈다. 워크맨은 오디오의 개념을 바꿔 놓을 정도로 충격적인 제품이었다. 이전까지의 오디오는 집안의 거실에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비싸고 고루한 기계였다. 누군가 음악을 들으면 다른 가족도 어쩔 수 없이 모두 같이 들어야 하는. 그런데 소니의 워크맨은 이런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어디든 들고 다니며 나만의 세계에 빠질 수 있는 ‘최초’의 개인화된 전자제품이었다. 오디오 테크니카 역시 워크맨에서 힌트를 얻은 휴대용 턴테이블을 기획한다. 그래서 3년만에 나온 제품이 사운드 버거다. 불행히도 바이닐은 워낙 크고 거추장스러워 휴대용으로는 적합하지 못해 사운드 버거는 아주 미세한 성공만 거뒀다.
다시 리뷰로 돌아와 보자. 본체의 뚜껑을 열면 마치 입이 벌리듯 상체가 올라간다. 하단에 바이닐 거치대가 있어 여기에 바이닐을 장착하고 바늘을 올려 음악을 들으면 된다. 마치 턴테이블이 바이닐을 물고 있는 듯 한 느낌이다. 그래서 이름이 ‘사운드 버거’다. 햄버거처럼 음악을 즐기자는 의미로 지었다. 이 제품은 휴대용 컨셉답게 USB타입C 전원으로 연결하며 배터리도 내장돼 있다. 완충시 12시간 동안 사용이 가능하다. 다만 단점은 충전시간이 엄청 오래 걸린다. 오디오테크니카 얘기로는 12시간 걸린다고 한다. 인풋과 아웃풋이 정직하다.
사실 휴대용이라는 개념은 크게 의미가 없다. 사운드 버거 자체는 휴대하기가 좋지만 문제는 소스인 바이닐이다. 바이닐은 크고 얇고 잘 깨지며 무척 비싸다. 바이닐을 휴대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고 귀찮은 일이다. 대신 작은 크기 덕분에 자리를 덜 차지한다. 음질편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이렇게 작은 크기로 제대로 된 음질을 내는 턴테이블은 흔하지 않다. 큰 크기, 그리고 너무 무게감 있는 턴테이블이 부담스럽다면 좋은 대안이 될 제품이다. 특히 디자인이 아주 멋지다. 전통적 오디오와 조합하면 애매하겠지만 비비드한 색상의 블루투스 스피커와 함께 두면 이런 힙한 시스템이 또 없을 거다.
음질은 어떨까? 사실 음질을 듣고 놀랐다. 그저 장난감 수준만 벗어나도 만족했을텐데 흠잡을 만한 것이 별로 없다. 정확한 회전 속도와 안정적인 톤암 밸런스, 그리고 적은 노이즈 등. 턴테이블이 갖춰야 할 모든 덕목을 제대로 갖췄다. 만약 마땅한 턴테이블이 없다면 충분히 음악감상용으로 사용해도 될 제품이다. 기타 기능으로는 33과 1/3회전, 또는 45rpm의 두 가지 속도로 회전이 된다. AUX로 유선 액티브 스피커와 연결해도 되지만 블루투스 기능도 있다. 따라서 블루투스로 무선 헤드폰이나 블루투스 스피커와 연결해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이 제품의 음질이 뛰어난 이유는 있다. 오디오 테크니카는 원래 턴테이블의 바늘 모듈. 즉 카트리지를 만들던 회사다. 1962년 설립된 이후로 가장 먼저 만들었던 것도 카트리지고 현재도 오디오 테크니카의 바늘은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 따라서 기본기 자체는 탄탄하다. 현재도 오디오 테크니카는 입문용으로 쓰기 좋은 저렴한 턴테이블을 많이 생산한다. 10만원대 제품부터 구입이 가능하다. 만약 여러분도 턴테이블을 구입하거나 입문한 적이 있다면 한 번쯤 오디오 테크니카의 턴테이블을 거쳐가거나 염두에 뒀을 것이다. 사실 턴테이블의 명성으로 보면 테크닉스와 데논을 따라갈 수는 없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누구나 턴테이블을 즐기도록 한 것은 오디오 테크니카의 큰 공이다.
오디오 테크니카가 저렴한 턴테이블을 만들게 된 이유는 있다. 이건 오디오 테크니카의 창업 스토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회사의 설립자는 ‘마츠시타 히데오’다. 그런데 이 사람의 이력이 재미있다. 미술관에서 일하는 평직원이었다고 한다. 오디오와 전혀 관련이 없었고 공대 출신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어느 날 미술관에서 열린 오디오 감상회에서 바이닐로 된 음악을 들으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집에 이런 시스템을 꾸미고 싶었는데 당시 제대로 된 오디오, 턴테이블 등의 가격은 무척 비쌌다.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모든 집들이 고품질 턴테이블 음악을 즐길 수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중년의 히데오씨는 무작정 회사를 차린다. 1962년. 그의 나이 42세 때의 일이다. 라멘 가게 위에 있는 작은 아파트(일본의 아파트는 한국의 원룸 빌라 개념으로 보면 된다)에서 창업을 했다고 한다. 자본금은 당시 돈으로 천 만원. 성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였다.
마츠시타 히데오가 창업한 이유는 단순했다. “아름다운 음질을 모든 사람들이 부담 없이 듣게 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했다. 음질을 위한 고품질, 그리고 저렴한 가격. 오디오 테크니카는 창업 이후로 고품질의 정밀한 카트리지를 만들며 성공을 거뒀다. 대신 가격은 아주 저렴했다. 카트리지가 저렴해지니 턴테이블의 가격도 저렴하게 만들 수 있게 됐다. 일본에 수많은 업체들이 오디오 테크니카의 카트리지와 바늘을 사용하며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그리고 그 중에는 테크닉스도 있었다.
오디오 테크니카의 창업 스토리는 사실 큰 감동이 없다. 창업자 나이도 많아 요즘 같으면 투자도 받기 힘들다. 해당 분야 경력자도 아니고 오디오 분야에 인맥이 있었을 것 같지도 않다. 일본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아 돈도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순진한 중년의 아저씨가 순진한 꿈을 이루기 위해 무작정 만든 작은 회사로 시작했다. 성공까지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 솔직히 성공할 확률이 제로에 가까웠다. 하지만 인생의 후반기에 무모한 용기를 냈고 그의 철학 덕분에 오디오 테크니카는 고품질 턴테이블, 바늘, 헤드폰, 이어폰 등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내놓았다. 덕분에 인류는 편안하게 집안에서도 좋은 음질을 즐길 수 있게 됐다.
2023년 새로운 도전을 꿈꾸며 혹시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오디오 테크니카의 60주년을 기억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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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즈모
유튜브 '기즈모' 운영자. 오디오 애호가이자 테크 리뷰어. 15년간 리뷰를 하다보니 리뷰를 싫어하는 성격이 됐다. 빛, 물을 싫어하고 12시 이후에 음식을 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