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디터M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 해를 정리하기 위해 어워즈를 쓰기 위해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한 해를 정리하다 보면 언제나 조금은 서글퍼진다.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으면서도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다. 올해는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았다. SNS의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나를 더 사랑하고 아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일을 만족스럽게 못 하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 참 소비를 많이 했다. ‘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가 내 모토인데, 정말 이 말처럼 매일매일 성실하게 무언가를 사고 썼다. 시간이라는 엄중한 잣대를 거쳐 내 곁에 남은 물건과 서비스는 무엇이었을까? 에디터M의 2022 어워즈 시작한다.
올해의 이슈
(2년 만의)이사
올해 3월, 아직 봄이 미처 발걸음을 떼지 못한 어느 쌀쌀했던 오후 나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최소 4년을 살 줄 알고 싹 뜯어고쳤던 나의 전셋집에서 2년 만에 쫓겨나게 된 거다. 집주인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는데, 거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억울하다며 세상을 원망해 봤자 해결되는 건 하나도 없더라. 벌어진 일은 이미 벌어진 일. 새로운 집을 구하자! 하지만 파이팅도 잠시. 2022년 전국에서 가장 집값이 많이 올랐다는 성동구에서 나의 귀엽고 보잘것없는 예산으로는 도저히 살고 싶은 집이 보이지 않더라. 눈물을 머금고 전략을 바꿨다. 어차피 전세금 8할이 빚인데, 이럴 바엔 월세로 간다! 그렇게 지금의 집을 구했다. 관리비 포함 월세 105만 원. 아직도 매달 빠져나가는 큰 금액에 적응 중이지만, 그래도 만족한다. 지은 지 1년이 채 안 된 깨끗한 건물, 서울숲세권에 갤러리아 포레 뷰까지. 나에겐 사치스러울 정도로 좋은 집이다. 사는 곳이 바뀌면 많은 것들이 바뀐다. 새로운 가구를 들이고, 있던 가구를 많이 처분했다. 올해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였다.
올해의 가전
로보락 Q7 플러스
올 한 해 가장 잘한 일은 집에 로봇 청소기를 들인 일이다. 정말이지 우리 집 청소 상태는 로봇청소기를 들이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후 1시, 점심시간마다 집에 있는 로봇청소기는 청소를 시작한다. “일할 거예요!”라는 짧고 귀여운 메시지를 남기고. 로봇청소기가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집안에 굴러다니던 각종 먼지와 머리카락은 자취를 감췄다. 우리 집에 있는 모델은 로보락에서도 가성비 모델로 불리는 Q7 플러스 제품이다. 요즘은 로보락에서 자동으로 물통도 채우고 먼지도 알아서 빨아주는 제품도 있다던데, 물론 좋은 제품이겠지. 하지만 나는 청소 후에 자동으로 먼지통을 비워주기 때문에 2달에 한 번 정도 더스트백만 갈아주면 되는 이 녀석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로봇청소기는 좀 과한 거 아니냐고? 모르는 소리. 혼자 사니까, 아무도 해주지 않으니까 로봇 청소기가 필요한 거다. 올해의 가전으로 자신 있게 로봇청소기를 임명하는 바다.
올해의 청소템
쿼시 올인원 세정롤티슈
혼자 사니까 청소에 진심이 된다. 내 집은 마음의 거울이다(내가 지은 말이다). 집이 번잡하면 마음이 혼란스럽고, 삶의 여유가 없으면 집 상태도 엉망이 된다. 그래서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 집의 청결 상태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지금 소개할 쿼시는 올해 발견한 청소 꿀템이다. 그동안 물티슈로는 2%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사람이라면 자신 있게 추천한다. 물티슈보다 질긴 소재에 세정 성분이 묻어 있는 티슈인데, 한 장씩 뽑아서 사용하는데, 이보다 편리할 수 없다. 쿼시가 없었다면, 인덕션 위에 늘어붙은 때를 밥 먹고 난 뒤의 테이블은 뭘로 닦았을까 싶다. 생활용품치고는 세련된 디자인 덕분에 보이는 곳에 두어도 거부감이 없다는 것도 장점. 일단 한 번 써보면, 이거 없이는 못 살게 될걸.
올해의 꿀템
MagSafe 충전기
아이폰 14로 스마트폰 기종을 바꾸면서 처음으로 맥세이프가 지원되는 케이스를 쓰기 시작했다. 근데 일단 써보니까 이게 웬 신세계인가 싶더라. 맥세이프는 동그란 자석 형태의 충전 규격으로 아이폰 뒤에 갖다 대면 강력한 자성으로 철썩 달라붙어 고정된다. 그리고 지금 소개할 MagSafe 충전기는 간단히 말해 동그란 맥세이프가 들어간 충전 케이블이라고 할 수 있다. 근데, 고작 충전 케이블을 무려 5만 9,000원이라는 돈을 주고 살 가치가 있었냐고? 내 대답은 예스! 알아서 붙으니 불 꺼진 방에서 충전을 위해 아이폰을 여기저기 들쑤시지 않아도 되니 편리하고, 충전을 하면서 이리저리 방향을 돌려가며 사용할 수 있으니 유용하다. 한 마디로 무선 충전의 쾌적함과 유선 충전의 활동성을 모두 갖춘 케이블이라고 하겠다. 나는 요즘 매일 밤 동그란 자석을 아이폰 뒤에 찰싹 붙인 다음 잠들기 직전까지 아이폰으로 세상을 유영하면서 생각한다. 너무 편하잖아!
올해의 해방
자이 파이널 키친
내가 두 번째로 싫어하는 게 바로 음식물 쓰레기다(첫 번째는 바퀴벌레). 방금까지 잘 먹던 음식이라도, 숟가락을 떼고 음식물 쓰레기가 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축축하고 냄새나는 존재가 된다.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는 게 싫어 혼자 있을 땐 배달 음식도 안 시키고 요리도 안 할 정도니까. 이런 내가 올해 음식물 쓰레기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게 바로 미생물 처리 방식의 자이에스앤디 파이널 키친이다. 음식물 쓰레기가 나올 때마다 뚜껑을 열어 버려만 주면,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긴 것처럼 없었던 일이 된다. 냄새도 거의 안 나고 소음도 없다. 살아있는 생물이니 혹시 음식을 가리면 어쩌지 걱정했지만, 음식물을 버릴 때 너무 짜고 매운 국물만 아니면 거의 모든 걸 분해한다. 살아있는 생물이라, 자꾸만 이름을 붙이면서 잘 키우고 싶단 욕심도 생긴다. 나를 음식물 쓰레기의 지옥에서 해방시켜준 너란 구원자, 올해의 해방으로 파이널 키친을 선정하는 이유다.
올해의 숙소
제주 무디타
독립을 하고 나서부터는 호캉스와 잠시 멀어졌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났더니 다시 호텔이 그리워지더라. 잘 정리된 침구의 정갈함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낯선 천장이 주는 혼란스러움이 그리웠다. 그래서 올해는 여기저기 호텔을 다녀봤다. 멋진 로비와 근사한 야경, 수준 높은 서비스가 있는 호텔도 좋았지만, 한 번 더 가고 싶고 여전히 여운이 남는 곳이 있다면 제주도에 있는 무디타다. 여기저기 세심한 배려가 인상적인 곳이었다. 일단 숙소에 들어서면 기분 좋은 향과 음악이 나를 반겨준다.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피워둔 인센스와 좋은 선곡으로 꽉 채워진 플레이리스트, 꾹꾹 눌러쓴 손편지까지. 어린 시절을 보낸 할아버지의 창고를 개조해 만든 이곳은 꽤 넓은 곳이 하나로 연결된 스튜디오형 숙소다. 간단한 요리가 가능한 주방에는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핸드드립 커피 키트와 원두와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다구 세트가 있고, 다른 한쪽엔 현무암으로 만든 욕조가 있는데 수영장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마당엔 보자기에 쌓여있는 조식이 도착해있는데, 음식이 슴슴하고 정갈하다. 1박으로 짧게 머물렀지만, 마음이 충분히 풍요로웠다. 예약이 쉬운 곳은 아니지만, 제주도에 간다면 하루는 꼭 머물러 보시길.
무디타 제주
📍주소 제주 제주시 애월읍 수산서3길 11-4
📍 링크
올해의 향
르라보 어나더13
워낙 향수를 좋아하다 보니, 매년 일 년 동안 향수로 목욕을 해야 할 정도로 향수를 사들인다. 덕분에 반 이상 사용한 향수가 거의 없는데, 올해 가장 자주 뿌린 향수는 르라보의 어나더13이더라. 호불호 강하기로 유명한 향이다. ‘살냄새’라고 느껴지는 향료가 들어있는데, 이게 피부의 온도나 살성에 따라 전혀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기 때문에 ‘향수한테 간택당해야 뿌릴 수 있다’라고 할 정도. 어떤 사람은 이 향수에서 비릿한 피 냄새나 알싸한 영안실 냄새까지 느낀다던데, 하지만 나는 어리둥절. 나에겐 포근한 니트향이 느껴질 뿐. 약간 달달했다가 이내 매캐했다가 마지막은 보송보송하다. 향의 느낌이 다층적이라 뿌려도 뿌려도 질리지 않는다. 만약 내 추천을 보고 마음이 동했다고 해도, 당신이 간택당할지 말지는 글로는 알기 어려우니 꼭 착향을 해볼 것을 추천한다.
올해의 행사
머니사이드업 팝업
올 한해는 팝업으로 시작해 팝업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말 AK홍대에서 열었던 팝업이 1월까지 이어졌고, 올해 10월 여의도 더현대에서 또 한 번의 팝업을 했으니까. 평일 내내 야근하고 주말이면, 팝업으로 출근하는 강행군이었지만 우리를 보기 위해 먼 길 마다 앉고 와주시는 여러분이 있어서 행복했다. 우리가 뭐라고. 한 명 한 명 손을 붙잡고 눈을 마주치고 할 수 있는 한 오래 대화했다. 고맙고 소중해서. 항상 화면 뒤에 있었던 사람들과 직접 만나는 경험은 특별했다. 내가 콘텐츠를 통해 어떤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건지 직접 알 수 있었으니까. 이 자리를 빌려 다들 와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만나서 반가웠다고 남겨둔다.
올해의 집밥
논현 토담골
혼자 살기 전까진 사람들이 왜 그렇게 ‘백반’을 찾는지 당췌 이해할 수 없었다(비슷한 맥락의 메뉴로는 미역국이 있다). 집에서 맨날 먹는 메뉴니까 그 고마움을 몰랐던 거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벌써 삼십 대 중반이 넘는 전형적인 한국 입맛인 나는 주기적으로 밥과 반찬이 있는 백반을 먹어줘야 한다는 것을. 엄마 밥이 그립지만, 잔소리는 피하고 싶을 때마다 토담골 논현점을 찾는다. 항상 먹는 건 1인분에 3만 5,000원 하는 토담골 정식. 사실 백반이라기보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나오는 한정식에 가깝다. 무겁고 광이 나는 방짜유기에 나오는 뜨거운 밥과 국 각종 나물 반찬과 잘 구워진 고등어와 불고기 제육 된장찌개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적당히 오래된 느낌의 한옥 인테리어, 활동성 있는 개량한복을 차려입은 직원들의 적당한 환대 식사를 마치면 아주 차갑게 내어오는 매실차까지.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이제 막 생겨서 사람들이 붐비는 핫플레이스는 아니고, 올해의 집밥이라기엔 조금 사치스럽지만 올해 가장 많이 많이찾은 나의 소중한 밥집이다.
토담골 논현점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37길 5
📍 링크
올해의 책
<허구한 날 서울 타령>
서울살이 벌써 10년 차. 이제 택시 탈 때, “영동대교는 막히니까 성수대교 타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어엿한 서울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유년 시절은 서울에서 차로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안산에 있다. 함께 안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나의 친구 민희가 올해 책을 냈다. 제목은 <허구한 날 서울 타령>. 이 책은 수도권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가 서울을 욕망하고 때때로 미워했다가 결국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참고로 2장 ‘꿈과 희망이 자란다, 가로수길’ 챕터는 나와 내 친구 사이의 은밀한 기록이다. 고등학교 때 하도 많이 봐서 꾸깃해진 잡지책을 돌려보며 에디터를 꿈꾸던 우리가 어떤 운명의 장난으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봐도 좋겠다.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책이니까 분명 즐겁게 읽을 거라 장담한다. 서울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만약 아니라면 서울의 새로운 모습을 찾게 될 테니까.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