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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디에디트 어워즈

디에디트가 뽑은 2025년의 20가지 키워드
디에디트가 뽑은 2025년의 20가지 키워드

2025. 12. 18

벌써 12월의 절반이 지났다. 디에디트가 연말정산 어워즈를 발표할 때가 됐다는 뜻이다. 올해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20가지 키워드를 선정했다. 최종 선정된 키워드를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올해는 ‘케데헌’과 ‘AI’의 해였구나.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한 편이 전 세계에 준 영향이 정말 컸고, AI는 생활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서론이 길었다. 올 한 해 가장 뜨거웠던 키워드 20가지를 보며, 2025년을 마무리해보자.


올해의 아이돌: 헌트릭스 (HUNTRIX)

차라리 올해의 콘텐츠를 뽑는 거였다면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올해 전 세계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열광했으니까. 오히려 올해의 아이돌로 케데헌의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냐 중에 누구를 선정할지 더 오래 고민했다. 중국집에서 짜장과 짬뽕을 고를 때만큼 힘들었달까. 그래도 단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올해의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은 헌트릭스에게 돌아가는 게 맞다. 결정적인 이유는 단연 한 곡이다. 헌트릭스의 ‘Golden’. 이 노래는 올해를 관통했다. 한국 음원 차트를 넘어 빌보드에서 18주 1위라는 기록을 남겼고, 이는 브루노 마스와 레이디 가가를 제친 역대 최장기간 1위 장기집권이었다. 그 사이 수많은 가수들이 이 곡을 커버하며 자신의 가창력을 증명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Golden’이 흘러나왔다. 이 노래는 작품 속 세계관을 넘어 현실의 팬덤을 단단히 묶어주는 역할을 했다. 말 그대로 혼문을 완성한 곡이었다. 아마 시간이 지나 2025년을 돌아보면, 이 해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헌트릭스가 있다. 실존 여부와 상관없이, 올해 가장 아이돌다웠던 존재가 아니었을까.

올해의 매력: 박정민

박정민의 행보는 좀처럼 예상이 되지 않는다. 갑자기 연기를 쉬겠다고 하더니 출판사를 차리질 않나, 배우들을 섭외해서 오디오북을 발간하지 않나. 예능은 안 하면서 유튜브 채널 <침착맨>에는 심심하면 출연한 것도 보통 배우들이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박정민은 하고 싶은 것 앞에서 재고 따지지 않았다. 언제나 하고 싶은 걸 선택했기에 올해 가장 매력적인 배우 박정민이 탄생했다. ‘고민중독’을 부르며 부끄러워하면서도 꿋꿋하게 “좋아해!”라고 말하고, 피식대학에서 한예종 통이었다며 지나치게 열정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고, 청룡영화제에서는 멜로 눈빛을 보여주자 SNS에서는 온통 박정민 얘기 뿐이었다. 게다가 영화 <얼굴>로 연기까지 인정 받으며 본업에도 충실했으니, 이런 배우를 싫어하는 게 가능은 할까 싶다.

올해의 명장면: 깐부치킨 회동

삼성동의 한 치킨집에 세 사람이 모였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현대차 정의선 회장. AI 합성처럼 보일 만큼 비현실적인 이 치맥 회동은 어마어마한 화제를 낳았다. 언뜻 정답게 소맥을 기울이는 ‘깐부들’처럼 보이지만, 이 만남은 단순한 친목 자리가 아니라 차세대 AI 동맹을 상징했다. 삼성전자는 HBM 메모리와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가, 현대차는 자율주행과 로보틱스를 위한 초고성능 AI 컴퓨팅 파워가 필요한 상황. 그리고 이 모든 중심에는 엔비디아가 있다.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전략 자산은 GPU니까. 전 세계 AI 연산 인프라의 상당수가 엔비디아 GPU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젠슨 황이 한국에 26만 장의 GPU를 우선 공급하겠다고 밝힌 건 엄청난 거래다. 한국이 향후 AI시장에서 중요한 파트너가 되리라는 전략적 투자로도 읽히고 말이다. 삼성동 깐부치킨엔 이들이 앉았던 흔적이 아직도 전설처럼 남아있다.

올해의 AI: 챗GPT 지브리

올해 3월, 챗GPT를 이용해서 사진을 지브리 화풍으로 바꾸는 게 엄청난 유행이었다. 이 ‘지브리 열풍’을 타고 국내 챗GPT 모바일 앱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었을 정도. 3월에는 앱 신규 설치가 100만건을 돌파하더니, 4월에는 466만건을 넘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흥미로운 점은 AI 에이전트가 가진 어떤 ‘생산성’보다도 지브리 풍의 프로필 사진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챗GPT의 대중화에 유효했다는 사실이다. 콘텐츠가 가진 접근성과 파급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원작자의 저작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 실제로 지브리 측은 오픈AI에 자사 콘텐츠에 대한 AI 무단 학습을 중단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를 휩쓸고 간 ‘지브리 사진 열풍’은 우리가 AI를 얼마나 쉽게 쓸 수 있는지를 알려준 동시에, AI가 타인의 콘텐츠를 얼마나 쉽게 훔쳐 올수 있는지를 알려준 사례이기도 하다.

올해의 테크: 갤럭시 Z 트라이폴드

올해의 테크 제품은 뽑기 어렵겠구나 낙담하던 차, 느슨해진 연말 바이브를 뚫고 등장한 어마어마한 제품. 삼성 최초의 3단 폴더블 스마트폰 갤럭시 Z 트라이폴드다. (이 제품이 최초의 트라이폴딩 스마트폰인 건 아니다. 화웨이 메이트 XT가 먼저 출시되었다) 2019년에 첫 번째 갤럭시 폴드가 공개된 이후로 이제야 ‘스마트폰을 접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을 얻었다는 느낌. 접은 상태에서 보이는 커버 디스플레이는 6.5인치로 갤럭시 Z 폴드7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두 번 접혀있던 화면을 펼치면 태블릿급의 10인치 화면이 나타난다. 309g의 부담스러운 무게, 359만 원의 더 부담스러운 가격. 아쉬움은 아직 남아있지만 놀라움을 표하기엔 충분한 올해의 하드웨어다.

올해의 이슈: 개인정보

올해 뉴스를 가장 자주 장식한 단어를 하나 꼽자면 단연 ‘개인정보 유출’이다. 한두 번의 사고였다면 이렇게까지 체감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독 비슷한 장면들이 반복됐다. 유통사에서 시작해 통신사로, 금융권을 거쳐 이커머스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개인정보가 새어 나갔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유심을 바꾸고 비밀번호를 바꾸며 뒤처리를 감당해야 했다. 단발성 사고라기엔 흐름이 너무 닮아 있었다. 이쯤 되면 ‘개인정보’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이름과 연락처를 넘어, 카드 정보와 구매 내역, 심지어 집 공동 현관 비밀번호까지 떠돌아다니는 상황에서 내 정보가 과연 나만의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더 씁쓸한 건 사고 이후의 풍경이다. 유출은 기업에서 일어났지만, 수습은 늘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기술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성과와 속도에 밀려 보안이 늘 후순위로 취급한 결과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연결되고, AI가 빠르게 발전하는 지금, 개인의 정보는 곧 돈이자 권력이다.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올해 반복된 개인정보 유출은 분명한 경고다. 같은 뉴스가 또 반복된다면, 그땐 정말 아무도 놀라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가올 내년에는 우리의 개인정보가 조금은 더 안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2025년의 이슈는 ‘개인정보 유출’로 기록한다.

올해의 캐릭터: 라부부

지난 여름, 라부부 키링을 사겠다고 상하이 팝마트까지 찾아갔다. 매장 안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작은 박스를 흔들어보고 있었다. ‘블라인드 박스’라고 부르는 판매 방식 때문이다. 박스에 어떤 디자인의 피규어가 들어있을지 모르니 소리로 나마 추측해보려는 심산이었다. 72분의 1 확률로 등장한다는 시크릿 라부부의 리셀가가 100만 원을 넘었다는 소식에 일확천금을 꿈꿨지만 라부부 키링은 구경 조차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 계절이 채 지나기 전에 투기에 가까웠던 라부부 신드롬은 빠르게 저물기 시작했다. 하늘 모르고 치솟던 팝마트 주가도 주저 앉았고, 라부부는 흔해 빠진 인형 키링 중 하나가 되었다. 그때 우리가 무엇에 홀렸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올해의 크리에이터: 정서불안 김햄찌

요즘 쇼츠나 릴스를 넘기다 보면 유독 자주 마주치는 얼굴이 있다. 사람은 아닌데, 그렇다고 그냥 캐릭터라고 넘기기엔 괜히 마음이 쓰이는 존재. 바로 AI 동물 캐릭터들이다. 그중에서도 올해 가장 강한 존재감을 보여준 이름은 단연 ‘정서불안 김햄찌’다. 뭐 하나 쉬운 게 없는 직장 생활, 연차를 내고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웃지 못할 상황, 퇴근 후 마라탕에 맥주 한 캔 마시고 그대로 잠드는 게 최고의 행복인 이 캐릭터의 일상은 우리와 너무도 닮아있다. 이런 공감의 힘 덕분일까. 김햄찌는 올해 유튜브가 선정한 ‘올해의 크리에이터’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유튜브는 크리에이터의 얼굴과 개성이 곧 채널의 정체성이 되는 플랫폼이다. 그런데 얼굴 없는 AI 동물 캐릭터가 그 자리에 올랐다는 건, 콘텐츠의 중심이 “누가 말하느냐”에서 “무엇을 말하느냐”로 확실히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로 보인다. 좋은 스토리와 콘셉트만 있으면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시대. 콘텐츠의 본질은 결국 이야기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려줬다는 점에서 올해의 크리에이터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

올해의 밈: 칠 가이(Chill Guy)

이수지의 섹시푸드, 카니의 매끈매끈하다 매끈매끈한, 크리에이터 퐁귀의 골반 통신, 유노윤호의 이건 첫 번째 레슨 등 올해도 수많은 밈이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며 인터넷 세상을 점령했다. 그중 가장 많은 패러디를 만들어 낸 건 역시 ‘칠 가이(Chill Guy)’가 아닐까? 청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정체불명 강아지 칠 가이는 2023년 미국 디지털 아티스트 ‘필립 뱅크스(Phillip Banks)’가 처음 공개한 일러스트에서 시작됐다. 해외 틱톡에 등장하면서 밈이 되었고, 올해 한국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얻었다. ‘Chill(느긋한) Guy(남자)’라는 이름에 걸맞은 저 여유 넘치는 표정을 보라.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태도의 칠 가이 밈은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다 같이 가쁜 숨을 가라앉힐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주었다. 밈의 생명력은 사라졌지만, Chill하고 여유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태도의 유행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많은 사람을 울렸다고 해서 좋은 드라마는 아니다. 하지만 나쁜 드라마가 사람을 울릴 수는 없다. 올해 3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폭삭 속았수다>를 올해의 드라마로 선정한 이유는, 이 작품을 본 다음 날 눈이 제대로 안 떠질 만큼 울어서도, <오징어 게임>처럼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할 정도의 흥행을 기록해서도 아니다. 이 드라마가 남긴 것은 숫자나 화제성보다 훨씬 오래가는 감정이었다. <폭삭 속았수다>는 단순히 특정 시대를 재현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애순이에서 금명이로 이어지는 2세대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부모의 얼굴이 겹쳐 보이고 자식의 마음이 포개지며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엄마와 나란히 앉아 보다가, 할머니가 떠오르고 엄마가 그리고 자식도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드문 드라마였다. ‘폭삭 속았수다.’ 수고했다는 뜻의 제주도 방언이다. 이 말은 누군가에게 건네는 인사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세상이 생각만큼 다정하지 않아도, 삶이 가끔은 지독하게 굴어도,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고.

올해의 예능: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라이벌이 없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이하 ‘모태솔로’)만큼 화제성 강한 예능이 없었다. 진정성 부족한 비슷비슷한 연프에 지겨워질 때쯤에 <모태솔로>가 등장했다. <모태솔로>는 기존 연프와 많이 달랐다. <솔로지옥>, <하트시그널>처럼 연애에 능수능란하고, 외모와 몸매가 뛰어난 사람들이 아니라 한 번도 연애를 못해본 순수한 사람들이 주인공이었다. 일단 그들은 셀럽이 되고 싶어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솔직하고 어설펐기에 진정성 있어 보였다. 시청자들은 좋아하는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서 쭈뼛거리며 주변을 서성대는 출연자를 보며 답답해하면서도 응원하고 싶은 감정을 느꼈다. 참고로 2024년 올해의 예능은 <흑백요리사>였다. 2년 연속 넷플릭스 예능이 이 자리를 차지했다는 게 새삼스레 시대의 변화를 보여준다.

올해의 열풍: 일본 애니메이션

올해 한국 극장가의 상황이 썩 좋지 않았던 와중에 일본 애니메이션의 활약이 대단했다. 2025년 영화 흥행 순위 1위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5위엔 <체인소 맨: 레제편>이 랭크됐을 정도. 주목할 지점은 이 두 작품이 모두 극장가에선 ‘마니아 장르’로 분류되던 일본 소년 만화라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히트쳐온 픽사나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스즈메의 문단속> 같은 말랑한 장르도 아니다. 이 같은 성과는 충성도 높은 기존 팬덤의 힘도 있지만, 소비 환경 변화의 결과에 가깝다. 각종 OTT 서비스를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의 접근성이 좋아지며 SNS를 통해 1분 내외의 숏폼 영상이나 캐릭터 중심의 클립 소비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 이런 흐름 속에서 극장판은 서사의 정점을 확인하는 ‘이벤트 콘텐츠’가 된 셈이다.

올해의 영화: 어쩔수가없다

올해의 영화를 선정하기 위해 2025년 개봉작의 관객 동원 순위를 다시 살폈다. 1위는 560만 명을 모은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2위는 비슷한 관객 수의 <좀비딸>이다. 그 뒤를 <주토피아2>, <F1 더 무비>, <극장판 체인소맨: 레제편>이 이었다. 상위 20위 안에 든 한국 영화는 11편이지만, 관객 500만 명을 넘긴 작품은 <좀비딸>이 유일하다. 2025년 한국 영화의 성적은 솔직히 말해 ‘처참하다’. 위에서 언급한 일본 애니메이션과 할리우드 영화가 괜찮은 평가와 성적을 거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영화의 부진을 외부 요인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결국 이유는 하나다. 재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고민 끝에 올해의 영화로 <어쩔수가없다>를 선택했다. 한국 영화가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박찬욱 감독의 작품 가운데 가장 웃기고, 동시에 호불호가 비교적 덜 갈리는 영화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부터 배우들의 연기, 음악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느껴지는 부분이 없다. 개봉 전 이미 200여 개국에 선판매되며 손익분기점을 넘겼다는 사실 또한 인상적이다.

영화 한 편이 아무리 뛰어나도 산업을 부흥시킬 순 없다. 영화의 본질은 엔터테인먼트. 관객은 ‘훌륭한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극장을 자주 찾지 않는다. <야당>, <히트맨2>, <보스>, <하이파이브>, <검은 수녀들> 등 상위 20위에 오른 상업 영화들은 뻔하고 진부한 설정으로 관객에게 반복적인 실망을 안겼다. 한국 영화를 애정하는 마음으로 쓴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영화들만 줄줄이 개봉해 놓고 “넷플릭스 때문에 한국 영화가 망한다”는 말만 되풀이한다면, 내년에도 정말 제목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지 않을까.

올해의 영화제: 제1회 디에디트 영화제

영화제는 시네필만을 위한 축제는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어 버렸다. 한 달에 한 번 영화를 볼까 말까 한 사람들이 가기엔 영화제는 조금 어렵고 진지했다. 김밥축제나 떡볶이 축제처럼 맘 편히 가기엔 벽이 있어 보였다. 디에디트는 9년 동안 쉽고 공감가는 콘텐츠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하고 멋부리지 말자는 기준으로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었다. 제1회 디에디트 영화제 역시 디에디트의 DNA를 공유한 행사다. 어려운 영화는 지양하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GV로 관객, 모더레이터, 게스트가 영화에 대해 수다 떠는 시간을 필수적으로 넣었다. 게스트 라인업도 다양하게 구성했다. 제작사를 차린 배우 고경표, 온라인에서 핫한 연애 프로그램 <72시간 소개팅> 기획자 유규선과 연출자 원의독백, 그리고 코미디언 원소윤, 민음사 조아란 부장, 디에디트 에디터들이 진행하는 블라인드 상영 회차까지. 모든 회차는 5분 안에 매진됐다. 디에디트 영화제가 2회를 맞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람들은 이런 행사를 기다렸다는 것. 그러니 내년에도 또 해야 하지 않을까?

올해의 건축물: 하우스 노웨어

올해 서울에서 ‘건물 얘기’가 가장 많이 나온 곳을 하나 꼽자면 성수동 아이아이컴바인드(IICombined) 신사옥을 빼놓기 어렵다. 오픈 전부터 조감도만으로도 우주선, 괴물, 불시착 같은 말이 오갔는데, 더 인상적인 건 실제 완공 모습이 그 기대(혹은 공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조감도만 그럴듯한 건물이 아니라, 끝까지 밀어붙인 건물. 이건 건축주의 태도에서 이미 승부가 갈렸다. 많은 사람이 이 건물 전체를 ‘하우스 오브 노웨어(HAUS NOWHERE)’로 부르지만, 정확히는 하층부에 해당하는 리테일 영역(주로 1~3층과 5층)이 하우스 오브 노웨어 서울의 본진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오피스와 임직원 공간이 되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젠틀몬스터·탬버린즈·누데이크가 한데 모인 ‘퓨처 리테일’의 무대가 열린다. 일터와 쇼룸을 분리하면서도 방문자에겐 강렬한 경험을 주는 방식이 영리하다. 무엇보다 올해의 건축으로 이곳을 뽑고 싶은 이유는, 이 건물이 단순한 핫플을 넘어 브랜드가 공간을 통해 철학을 말하는 방식의 ‘가장 큰 형태’로 완성됐기 때문이다. “최대 면적”이나 “수익성” 같은 숫자보다 영감과 감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건축으로 밀어붙인 결과. 2025년 서울에 오랜만에 생긴 새로운 실루엣, 그래서 올해의 건축은 하우스 오브 노웨어로 선정한다.

올해의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올해를 돌아보면, ‘케데헌’을 빼놓고는 어떤 이야기도 하기 어려운 한 해였다. 올해의 박물관을 논할 때마저도 이 이름을 피해 가기는 힘드니까. 국립중앙박물관은 1945년 개관 이후 처음으로 연간 관람객 600만 명을 돌파하며 자체 신기록을 세웠다. 이는 루브르 박물관(873만 명), 바티칸 박물관(682만 명), 영국박물관(647만 명)에 이어 세계 4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정말 대단하지 않나? 국립중앙박물관이 올해 ‘대세 박물관’이 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무료 입장, 둘째는 박물관 굿즈 브랜드 ‘뮷즈’를 통해 선보인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등 ‘감다살’ 기획으로 젊은 세대에게 ‘국중박’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점. 그리고 마지막이자 결정적인 계기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흥행이다. 재밌는 점은<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제작사가 소니픽처스이고, 플랫폼은 넷플릭스라는 점이다. 작품 속에는 서울의 다양한 공간과 라이프스타일은 물론, 한국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까치 같은 전통적 소재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그 결과, K콘텐츠의 인기가 국립중앙박물관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올해의 디저트: 두바이 쫀득 쿠키

요즘 이거 사 먹으려고 회사 다닌다. 바로 ‘두바이 쫀득 쿠키’. 줄여서 두쫀쿠라고 부른다. 지난해 유행한 두바이 초콜릿과 올해 유행한 마시멜로 쫀득 쿠키가 합쳐진 최종 진화 버전인데, 겉은 코코아 가루 잔뜩 묻힌 마시멜로에다가 속은 고소한 피스타치오 스프레드를 섞은 카다이프로 꽉 찼다. 한입 베어 물면 말랑한 마시멜로를 뚫고 바삭한 카다이프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바쟉바쟉. 쫀득쫀득. 만드는 곳에 따라 크기도, 모양도, 가격도 제각각이다. 기본은 동그란 찹쌀떡 모양이고, 길게 만 김밥 모양도 있다. 속에 들어가는 튀르키예 전통 면 카다이프에 피스타치오 스프레드를 얼마나 많이 섞었느냐에 따라 촉촉 두쫀쿠와 꾸덕 두쫀쿠로 나뉜다. 참고로 나는 촉촉파. 현재 두바이 쫀득 쿠키의 폭발적인 인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재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대량 생산이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직접 프라이팬에 마시멜로를 녹이고, 카다이프에 피스타치오 스프레드를 섞어 조물조물 만드는 셀프 두쫀쿠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올해의 라이징 스타: 공무원 크리에이터

“충주맨이 독을 풀었다.” 양주, 양산, 울산 등 지차체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가면 쉽게 볼 수 있는 댓글이다. 충주시 유튜브 채널을 맡고 있는 충주맨(김선태 주무관)이 지자체 홍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소식을 홍보하기 위해 밈을 패러디하는 건 물론이고, 수위가 센 농담도 거침없이 한다. 그 모습에 감화 받은 전국의 다양한 공무원이 어느때보다 많이 데뷔(?)한 해였다. 벌 쏘인 강아지(?)가 별명인 양주시의 정겨운 주무관은 현재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도 출연 중이고, 양산, 울산, 여주, 경주, 안동 등 많은 지자체의 공무원들이 꾸준히 퀄리티 높은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있다. 그 밑에는 이런 댓글이 달린다. “와… 요즘 공무원 컷 진짜 높네.”

올해의 콜라보: 프로 야구

야구 열풍은 작년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뜨거워졌다. 지난해 1,000만 관중을 돌파했던 프로야구는 올 시즌 1,200만 관중을 넘겼다. 숫자보다 중요한 건 관중석의 변화다. 젊은 관객, 특히 여성 팬층이 대거 유입되면서 야구의 분위기와 소비 방식이 함께 달라졌다. 단순한 팀 굿즈를 넘어, 구단 IP에 캐릭터와 패션 브랜드를 결합한 협업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망그러진 곰, 캐치! 티니핑, 꿈돌이 같은 캐릭터부터 산산기어, 새터 같은 패션 브랜드까지 영역도 다양해졌다. 이런 변화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한정판 거래 플랫폼 크림(KREAM)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야구 굿즈 거래액은 전년 대비 537% 증가했다. 야구 굿즈는 더 이상 응원용 기념품이 아니다. 소장하고, 입고, 거래하는 아이템이 됐다. 이 흐름은 아이돌 시장을 떠올리게 한다. 팀을 중심으로 세계관이 만들어지고, 굿즈는 하나의 스타일이 된다. 스포츠에서 출발한 야구가 경기장을 벗어나 하나의 문화로 확장된 한 해였다. 양과 질을 모두 놓고 봐도 올해 프로 야구만큼 활발하게 콜라보를 했던 곳이 또 있을까.

올해의 약: 위고비

위고비는 노보 노디스크에서 개발한 주사 형태의 비만치료제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가 위고비로 체중을 감량한 사실이 알려지며, ‘기적의 다이어트 약’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 약의 원리는 뇌에서 인식하는 포만감을 높여 음식 섭취를 줄이게 하고, 위에서는 음식 배출 속도를 늦춰 식후 포만감을 오래 유지하게 만드는 것. 국내에 위고비와 마운자로 등 GLP-1 계열 비만 치료제가 본격적으로 풀리기 시작하자, 품귀 현상까지 벌어질 만큼 폭발적인 수요가 이어졌다. 사람들의 후기를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식욕이 줄어든다”는 것. 실제로 10kg 이상 감량한 사람들의 간증도 쏟아졌다. 하지만 주사를 중단했을 때, 다시금 식욕이 돌아오고 체중이 원상태로 돌아갔다는 사례도 많다. 위고비의 효과는 실로 대단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진짜로 기대한 ‘기적의 약’은 적게 먹게 만드는 약이 아니라, 쯔양이 되는 약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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