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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10년 전, 나는 이걸 좋아했다

9명의 에디터에게 물었다
9명의 에디터에게 물었다

2026. 07. 15

취향은 변할까, 변하지 않을까?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취향 따위가 변하지 않을 리 만무하다 싶으면서도 나의 몇몇 취향을 돌아보면 여전히 비슷한 것만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2016년, 디에디트가 창간된 해에 9명의 객원 에디터는 무엇을 좋아했는지 물었다. 그리고 여전히 좋아하는지, 취향은 변한다고 생각하는지도.


10년 전에 나는 키칠라노 해변을 좋아했다. 지금도 좋아한다. 다만, 취향이 변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고 싶다. 여전히 좋아한다면서 왜 취향이 변하느냐고? 좋아한댔지, 가장 좋아한다는 건 아니니까. 10년 전의 나는 캐나다의 키칠라노 해변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했다. 친구 명은이와 떠난 캐나다 여행에서 만난 해변이었다. 인스타그램에 “살면서 본 해변 중 최고, 당분간 키칠라노만한 건 없을 것 같다”고 적어두기까지 했다. 10년 전 내겐 미안하지만, 그 이후로 더 멋진 해변을 많이 만났다. 프랑스 카시스의 칼랑크, 시드니의 본다이비치까지. 키칠라노만한, 아니 그보다 더 좋은 해변은 많았다. 그래도 키칠라노는 내게 여전히 좋은 해변이다. 첫 직장에서 시름시름 앓던 시절, 친구와 초콜릿을 나눠 먹으며 바다를 바라보던 그곳. 이만한 건 더 없을지 모르겠다 싶었던 건 사실 해변이 아니라 그 순간의 기분이었을 것이다. 잠깐, 눈에서 왜 물이 나오지… 하지만 그만한 해변이 많았던 것처럼 그만한 기분도 많았다. 그렇다면 지난 10년, 나 꽤 괜찮게 살아낸 것 아닐까. 디에디트의 10년만큼은 아니겠지만. (찡긋) by 박주연 객원 에디터


10년 전에 나는 따릉이를 좋아했다. 대학생 새내기 시절부터 30대가 된 지금까지 내 일상을 채우는 존재는 다름 아닌 자전거, 그중에서도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다. 출퇴근길 만원 버스를 피하고 싶어 선택한 이동 수단으로 매우 완벽했다. 정기권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기분 내키는 대로 탈 수 있어서 좋다. 자전거를 탈 때만 느껴지는 자유로움이 분명 있다. 특히 적당한 햇살과 바람이 스치는 산뜻한 계절의 라이딩은 즉각적인 행복감을 안겨준다. 한때는 직접 자전거를 장만해 통근용으로 타고 다니기도 했지만, 어느 날 도둑맞는 바람에 다시 따릉이와 재회했다. 그 상처가 완전히 극복되기 전까지는, 당분간 따릉이와 계속 친하게 지낼 생각이다. 취향은 잘 변하지 않는 것 같다. by 길보경 객원 에디터


10년전에 나는 힙한 옷을 좋아했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따끈따끈한 어른이었다. 아메카지, 스트릿, 남성복 할 것 없이 온갖 스타일을 기웃거렸고, 친구들이 모르는 브랜드를 찾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옷에 ‘킥’이 있는 게 중요했다. 유행하는 아이템에는 괜히 거부감이 들었고, 애정하던 브랜드가 국민템이 되는 순간 마음이 식어버리기도 했다. 그때 입었던 옷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지금은 그래픽 티셔츠보다 블레이저를 더 자주 입고, 스트릿보다는 클래식한 옷에 더 끌린다. 하지만 옷을 고르는 기준만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남들이 다 입는 옷보다 조금 다른 옷, 유행보다 취향이 보이는 옷, 입은 사람의 이야기가 느껴지는 옷. 그래서 취향은 변하는 것 같기도, 변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스타일은 달라졌지만 결국 내가 좋아하는 방향은 비슷하니까. 어쩌면 취향은 정답이 아니라 방향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10년 뒤에는 또 다른 옷을 입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여전히 조금은 유난하고, 조금은 힙한 것을 좋아할 것이다. by 손현정 객원 에디터


10년 전에 나는 하우스 음악 페스티벌을 좋아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젠 도파민이 조금 덜 폭발한다. 취향은 변하는 것 같다. 하우스 음악 페스티벌 취향에서 좁은 공간에서의 ‘테크노’로 취향이 변했다. 사실 이런 변화를 두고 취향이 변했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안 변했다고 해야 하는 건지 구분짓기 어렵긴 하다. 멀리서 보면 변하지 않는 것 같고 가까이서 보면 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0년 전, 테크노를 들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좀 더 신나는 음악이 좋아” 당시 그리 유명하지 않은 테크노 DJ가 홍보를 부탁했는데 나는 즐기지 못해 겉핥기식으로 도움만 줬다. 그땐 어디서 어떻게 신나야 할지 몰랐으니까. 이젠 안다. 무슨 짓을 하든 잘 안 보이는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테크노에 홀려 있으면 명상 효과까지 느낄 정도로 좋아하게 됐다. by 김기은 객원 에디터


10년 전에 나는 깔루아 밀크를 좋아했다. 대학 시절, 쏘맥을 만날 받아 마시다 처음 맛본 칵테일은 너무도 달콤했다. 그렇게 칵테일과 사랑에 빠졌지만, 학식이 4,000원이던 시절 만 원짜리 칵테일은 사치였다. 그래서 기숙사 방에서 직접 만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그게 지금까지도 즐기는 나의 취미 ‘홈텐딩’의 시작이었다. 그땐 달고 만들기 쉬운 깔루아 밀크가 최애였지만, 지금은 너무 달고 뻔해서 좋아하지 않는다. 취미는 남았어도 취향은 변하는 것 같다. 칵테일의 세계는 넓으니까, 앞으로도 지키기보단 가꿔가고 싶다. by 글렌 객원 에디터


10년 전에도 나는 영화를 좋아했다. 아직 영화 평론가로 활동하기 전이었다. 그 해엔 <곡성>이 난리였다. 너무 험한 것을 만든 대가였을까? 그때 나홍진은 자신의 다음 영화를 만드는 데 십 년이 걸릴 줄은 몰랐을 거다. 같은 해 유일한 ‘천만 영화’였던 <부산행> 감독 연상호는 그동안 거의 매년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대체적으로 모두 <부산행>보단 아쉽다는 평가를 받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가려진 시간>으로 상업 영화 데뷔를 했으나 50만 관객 스코어에 그쳤던 감독 엄태화는 자신이 8년 뒤 ‘천만 영화 감독’이 될 걸 알았을까? 또 <아가씨>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을 찾았던 감독 박찬욱은 올해 그곳의 심사위원장이 됐다. 여기까지가 10년 전 내가 좋아했던, 그리고 지금도 좋아하는 영화들의 목록이다. 사실 내 취향은 그대로인데 영화는 많이 변했다. 바로 이 해 1월, 한국에 넷플릭스 서비스가 시작되었으니까. 그 사이 넷플릭스의 위상도, 영화의 위상도 많이 바뀐 것 같다. 무엇을 보느냐만큼 ‘어디서, 어떻게’ 보느냐도 취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지금 이 글을 어디서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 정말로 ‘중헌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이런 질문을 공유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준 디에디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by 김철홍 영화평론가


10년 전에 나는 매거진 만드는 사람을 좋아했다. 지금도 그들을 좋아한다. 수도권에서 매거진 만들다 싹 다 접고 제주로 내려왔지만, ‘굳이굳이’ 남이 만든 잡지를 읽는다. 모름지기 취향이란 마음이 어딘가로 치우치고 ‘쏠리는’ 것. 그런 점에서 매거진은 몸과 마음이 엉뚱한 곳에 쏠려 있던 이들의 1년 치 농산물 같다. 나는 이제 퇴근하면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책을 손에 쥐고 천천히 음미하고 싶다. 비록 업계를 떠났지만, 업계에 남은 동료 곁을 떠나고 싶진 않다. 취향을 무기로 창작에 나서는 이들의 인품과 긍지를 사랑한다. 그런 사람을 응원하려는 사람의 취향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나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그렇고. by 김정년 객원 에디터


10년 전에 나는 기념품을 좋아했다. 비행기 티켓, 게스트하우스에서 누군가 남긴 메모, 완주 메달, 도서대출증, 전시회 명찰, 거금을 쓰고 받은 영수증, 연인의 편지까지. 의미를 담고자 하면 대체로 모든 게 소중했다. 더 있었다. 여행을 가면 그 도시를 떠올릴 수 있는 촌스러운 기념 티셔츠를 사 모았고, 해외로 나가면 중고 서점에서 그 나라 말로 쓰여진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사들고 돌아왔다. 그때의 나는 물건에 기억을 맡기는 사람이었다. 손에 잡히는 무언가가 지나간 시간과 감정을 잃어버리지 않고 붙들어 둘 거라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기념품을 모으지 않는다. 떠날 기억이라면 기꺼이 떠나게 둔다. 취향은 변하는 것 같다. by 조서형 객원 에디터


10년 전, 나는 한국 힙합을 좋아했다. 지금도 좋아하지만, 그때는 거의 전부였다. 저스트뮤직, 하이라이트 레코즈, 일리네어 같은 레이블이 위세를 떨치던 때였고, 위·촉·오 삼국지처럼 각자 어느 나라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세력이 갈렸다. 나는 저스트뮤직파였다. 그해 <쇼미더머니>에 씨잼이 나왔고, 나는 매 화를 챙겨보며 그를 응원했다. 멜론 플레이리스트에는 돈을 자랑하고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부르짖는 래퍼들의 음악이 한가득이었다. 유튜브에 올라온 TJ미디어 노래방 영상을 틀어놓고 랩을 연습했고, 제스처까지 따라 했다. 노래방에서 꺼내 부를 나름의 필살 트랙도 있었다. 랩을 하고 있으면 나에게도 제법 신념과 지조가 생긴 것 같았다. 그러다 한동안 한국 힙합을 찾아 듣지 않았다. 힙합이 싫어진 건 아니었다. 한국 힙합을 듣는다는 이유만으로 ‘힙찔이’ 취급하는 시선에 신물이 났다. 그렇게 한동안 멀리하다가, 힙합 신이 다시 물갈이되고 있다는 소식에 지난해부터 차츰 다시 듣기 시작했다. 10년 전 못지않게 소위 ‘야마 있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한가득이라, 요즘은 20대 친구들이 추천하는 음악을 찾아 듣는다. 나는 힙합이 눈치 보지 않고 자기 할 말을 한다는 데서 매력을 느낀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취향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아, 랩 연습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노래방에서 부를 곡은 위·촉·오 시절의 랩이면 충분하다. by 지정현 객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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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