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영화, 공연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문화생활을 즐기는’ 기분을 낼 수 있는 건 전시가 아닐까. 고요한 공간에서 가끔 들려오는 발소리와 함께 어떤 작품을 마주할 때면 정서적으로 묘한 풍요로움이 느껴지곤 한다. 마음의 양식이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싶다. 입추도 지났겠다, 각박한 일상에 선선한 바람이 되어줄 전시들을 꼽아봤다.
팀 버튼: The World of Tim Burton
<가위손>, <배트맨>, <유령 신부> 등을 연출한 팀 버튼 감독을 조명하는 전시로, 어린 시절에 그린 습작부터 일러스트, 회화, 사진, 글 등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팀 버튼이 영화 밖으로 확장한, 어쩌면 영화가 미처 담지 못한 그의 광활한 예술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팀 버튼의 창조물은 기괴하고 비정상적이다.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평범성과 정상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익숙한 현실을 낯설게 만든다. 팀 버튼의 판타지가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2012년 이후 10년 만에 열리는 팀 버튼 전시인 만큼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150여 점의 작품이 추가로 공개된다.
- 장소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전시관(서울 중구 을지로 281 배움터 지하2층)
- 기간 ~2022.09.12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진가이자 ‘포토저널리즘의 아버지’라 불리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전이다. 그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의 발행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로, 책에 수록된 오리지널 프린트, 초판본, 출판 당시 관계자들과 카르티에 브레송이 주고받은 서신, 인터뷰 및 영상 자료 등을 소개한다. 카르티에 브레송에게 사진이란 “머리와 눈, 그리고 가슴을 하나의 축에 놓는 것”이었으며 이것이 곧 그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었다. 진정성을 중요하게 여겼기에 오랜 시간을 들여 상황에 녹아든 끝에 신중히 셔터를 누르며 흘러가는 순간을 붙잡아뒀다. 연출도 편집도 없이 필름에 기록되고 현상된 흑백의 사진들은 시대를 관통해 묵직한 울림을 준다. VIBE앱을 통해 무료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할 수 있다.
- 장소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 기간 ~2022.10.02
어쨌든, 사랑: Romantic Days
누구에게나 순정은 있었다. <어쨌든, 사랑: Romantic Days>는 1980~1990년대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순정만화를 오늘날의 문법으로 재해석한다. 순정만화를 보고 자란 스물세 팀의 예술가들이 <언플러그드 보이> 천계영, <블루> 이은혜, <크레이지 러브 스토리> 이빈, <인어공주를 위하여> 이미라, <풀하우스> 원수연,<다정다감> 박은아, <아르미안의 네 딸들> 신일숙 등 7인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3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1권부터 완결까지, 순정만화를 머리 맡에 차곡차곡 쌓아두고선 하나씩 꺼내 ‘정주행’하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반가울 전시다. 단, 디뮤지엄은 비교적 사진 촬영이 자유로운 편이라는 걸 염두에 두자. 기록을 남기기에 좋지만 자칫 관람 분위기가 산만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 장소 디뮤지엄(서울 성동구 왕십리로83-21)
- 기간 ~2022.10.30
RED Room: Love Is in the Air
‘빨간 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뜨겁고 관능적이다. 여성 아티스트 3명(민조킹, 마르티나 마틴시오, 스텔라 아시아 콘소니)이 각각 일러스트, 영상, 사진, 에세이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 연애, 그리고 섹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곡되거나 대상화된 시선이 아닌, 주체적이고 상호적인 욕망을 보여준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버거워 죽겠는데 웬 사랑이란 말인가, 라고 생각하며 제법 건조하고 퍽퍽하게 지내고 있다면 ‘레드룸’에서 말라비틀어졌던 사랑 세포를 소생시켜보는 것은 어떨까. 다만 이제 막 설레기 시작한, 소위 썸 타는 사이라면 굳이 데이트 코스로 추천하진 않겠다. 생각보다 수위가 높다. 청소년 관람불가.
- 장소 그라운드시소 서촌(서울 종로구 자하문로6길 18-8)
- 기간 ~2022.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