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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소개팅에서 취미는 독서라 말했다 5

베스트셀러보다 더 재미있는 책 추천 시리즈
베스트셀러보다 더 재미있는 책 추천 시리즈

2025. 08. 13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필자 기명균이다. 평일엔 회사에 도움되는 글을 쓰고, 주말엔 내가 도움받은 책에 대해 쓴다. 시간이 날 땐 뉴스레터 <퍼줄거임>을 만들어 보내기도 한다.

이번 달에는 소개팅에서 ‘요즘 무슨 책 읽어요?’라는 질문에 답하기 좋은 책 5권을 골랐다. <총, 균, 쇠>, <사피엔스>처럼 너무 어려워서 설명하기도 힘들고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교양에 관심 있어 보이고, 그럼에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다.


[1]
<한 곡 쓰기의 기술>

“음악 만드는 실력이 향상될 때까지 마냥 기다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는 게 저의 지론입니다.”

한 곡 쓰기의 기술

야간자율학습 때 학습이 잘되지 않으면 자율적으로 공책을 폈다. 처음엔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베껴 쓰다가, 언제부턴가 가사를 지어냈다. 유행가를 흉내 내면서도 유행가랑은 좀 다르길 바라며 쓴 가사들이 공책 한 권을 채웠다. 지금 그 공책을 찾을 수 없는 것이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론 앞으로 영영 찾을 수 없길 바란다.

지금은 가사를 쓰지 않지만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 한다. 악기를 못 다뤄도, 코드를 몰라도 대충 흥얼거린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 내 이름표를 붙이고 싶다. 10대 때의 감성은 흐려졌지만 기술은 익힐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 <한 곡 쓰기의 기술>을 펼쳤다.

저자 제프 트위디는 록 밴드 ‘Wilco’의 리더다. 오랜 시간 노래를 만들면서 쌓은 노하우와 경험, 시행착오 속에서 발견한 요령들이 얇은 책 안에 알차게 들어 있다. 총 4부 중 2부와 3부는 각각 작사와 작곡의 요령을 다룬다. 쉬운 말, 단어 수집, 배치 순서 바꿔보기, 아예 다른 존재가 되어보기, 제한시간 두고 써보기, 남의 거 모방해보기 등 저자가 권하는 방법들을 읽다 보면 이 책의 주제가 노래 한 곡 쓰기인지 글 한 편 쓰기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는데… 결과적으로 둘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여러 얘기를 들려주지만, 결국 책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일단 한 번 해보라는 것이다. 노래를 만드는 데 꼭 좋은 악기나 음악 지식이 필요한 건 아니다, 완벽한 걸 만들려고 할 필요도 없다, 남들이 별로라고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만들면 된다. 그리고 내 심장을 강타한 결정적인 한 마디. “좋은 음악을 만들려면, 안 좋은 음악을 만들어봐야 합니다.” 한 곡 쓰기는 몰라도 한 발 내딛기는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다.

  • <한 곡 쓰기의 기술> | 제프 트위디 | 카라칼 | 1만 9,500원

“누군가에게 받은 순간, 그 물건은 이 세계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로 변모합니다.”

요즘 나의 고민은 선물과 관련이 있다. ‘나는 왜 받는 건 잘하는데 주는 건 서툴까?’ 여기서 ‘잘 받는다’란, 누가 나에게 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매우 고마워하며, 설사 못 받는다고 해도 서운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잘 주지 못한다’란, 남에게 뭔가를 주는 것이 민망하고 어색하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뭘 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즉 선물하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라는 제목을 보고 나에게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이 질문부터 해보자. 나는 왜 선물을 못 줄 때 불편함을 느끼는가. ‘받은 만큼 줘야 한다’라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준 만큼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그게 또 다른 선물이든, 고맙다는 마음이든. 저자는 이러한 주고받음을 ‘교환’으로 정의한다. 어쩌면 난 남에게 뭔가를 줄 때 ‘예전에 받은 것’ 또는 ‘앞으로 받을 것’을 강하게 의식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럴 경우 선물을 주고받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다. 갚아야 하는데,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는데, 차라리 안 받았다면 마음이 좀 편했을 텐데. 저자의 표현대로 ‘증여의 저주’에 빠지는 것이다.

그럼 증여의 저주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줄 때는 생색 내지 말고 가능하다면 내가 준 걸 티 내지 않기. 어차피 돌려받을 게 아니라면 ‘내가 널 위해서 이렇게까지 했다’라는 걸 굳이 알릴 필요도 없으니까. “오다 주웠다” 정도면 충분하다. 둘째, 빚진 마음을 털어내기 힘들다면 아예 ‘세상에 빚졌다’고 생각하기. 어차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것을 주고, 또 받고 있으니까.

  •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 지카우치 유타 | 다다서재 | 1만 8,000원

“터미네이터를 막고 일자리는 지키더라도 어떤 인간적 가치들은 그 과정에서 틀림없이 부서질 것이다.”

먼저 온 미래

<먼저 온 미래>는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후 바둑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취재한 내용에, 창작자로서 본인의 생각을 더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재밌게 읽으면서도 동시에 좀 우울해졌다.

나는 AI가 싫다. ‘얘가 사람보다 요약을 훨씬 잘해’, ‘편집은 AI한테 맡기자’ 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자존심이 상한다. 이 일을 잘하기 위해 10년 넘게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쌓은 노하우가 한순간에 쓸모없어진 기분이다. 80점 정도의 결과물을 ‘빨리, 많이, 지치지 않고’ 내놓는 AI가 99점짜리 편집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의미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속이 상한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것 같다. “불평할 시간에 AI로 생산성 높일 방법을 찾아라.” 상처받은 내 자존심은? 자존심보다 생산성이 더 중요해? 씩씩거리던 내 등을 이 책의 문장들이 토닥여준다. “사람은 의미 있는 일을 자신이 잘해내고 있다고 믿을 때 긍지를 얻는다. 나는 다른 직업에서도 인공지능으로 인해 긍지를 잃을 사람이 많아지리라 생각한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 과감한 대안을 제시한다. 기술은 잘 쓰면 좋은 것이지만 잘못 쓰면 나쁜 것이니까, 지금부터라도 ‘AI를 잘못 쓰면 어떤 위험이 닥칠까? 그 위험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에 대해 얘기하자고. ‘기술 통제’라는 대안이 무리수라는 비판도 있던데, 나는 그마저 좋았다. 욕 먹기 싫어서 끝을 얼버무리는 책은 매력이 없으니까. 장강명 작가의 다른 책을 더 읽고 싶어졌다. 논픽션 <당선, 합격, 계급>을 읽을지 SF소설 <당신이 보고 싶었던 세상>을 읽을지 고민 중.

  • <먼저 온 미래> | 장강명 | 동아시아 | 2만 원

“‘인생은 게임’이라니,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인간은 믿으면 안 돼.”

지뢰글리코

<더 지니어스>부터 <데블스 플랜>까지, 서바이벌 예능은 챙겨보는 편이다. 서바이벌의 본질은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 방법은 여러 가지다. 빠른 계산으로 승리 확률을 높이거나, 룰의 허점을 발견해 필승법을 찾거나, 옆 사람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 수적 우위를 점하거나. 참가자들의 생존 전략이 팽팽하게 맞붙는 순간, 서바이벌 마니아들은 쾌감을 느낀다.

요즘은 좀 시들해졌다. 룰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데 참가자들의 전략이나 게임의 전개는 비슷비슷하다. 초반엔 친분 있는 사람들끼리 쪽수로 밀어붙이다가, 중반 이후엔 그냥 게임 잘하던 사람이 계속 잘해서 우승하는 엔딩. 빌런이 되지 않으려고 몸을 사려서인지, 살아남고야 말겠다는 의지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가장 최근에 본 <피의게임3>나 <데블스플랜> 모두 재미는 있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서바이벌을 좋아하면서도 막상 보면 실망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지뢰 글리코>를 추천한다. 주인공 이모리야 마토는 총 다섯 번의 일대일 승부를 벌인다. 가위바위보로 계단 오르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카드 뒤집기 등 익숙한 놀이를 살짝 변형했다. 독자 입장에서는 복잡한 룰을 숙지하느라 머리싸맬 필요없이 승부에 곧바로 몰입할 수 있어서 좋았다.

승부의 세계에서 마토는 ‘사기캐’다. 서바이벌 참가자에 비유하자면 이상민처럼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고, 홍진호처럼 룰의 허점을 찾아 이용하고, 장동민처럼 계획한 바를 오차 없이 실행에 옮긴다. 마토가 지면 어떡하나 마음 졸일 필요 없이 천재적인 플레이를 즐기면 된다. <지뢰 글리코>는 2023년 출간되자마자 전무후무 10관왕을 달성하며 일본 미스터리 판을 뒤집어놨다.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주제에.

  • <지뢰 글리코> | 아오사키 유고 | 리드비 | 1만 8,200원

“까놓고 말해서 내 만화가 뜨려면 갈등이 필요하다. 평화는 돈이 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소개팅이라고 해서 단순히 가볍고, 웃기고, 유행하는 것들에 대해서만 얘기한다면 그 만남은 오히려 실패할 확률이 높다. 진지한 대화는 좀 더 중요한 관계로 발전하는 데 있어 브레이크가 아니라 액셀러레이터다. 혹시 아나, 그러다 의외의 매력을 어필하게 될지. ‘마냥 웃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진지한 구석도 있네…’

물론 이전까지의 유쾌한 바이브가 깨질 수도 있다. 뉘앙스가 중요하다. 갑자기 중동 문제 전문가로 빙의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아서는 곤란하다. 민망하다는 듯 겸손하게 책 얘기를 꺼내보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뉴스를 봤는데 이게 꽤 심각하더라고요. 그래서 관심을 좀 가져보려고 <팔레스타인>을 읽고 있는데… 만화라서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팔레스타인>은 고전이다. 미국인 저널리스트 조 사코가 1990년대 초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웨스트뱅크에서 채집한 이야기를 코믹한 그림체로 그려냈다. 옆에서 거리를 같이 걷고 있는 것처럼 묘사가 생생하다. 줄글로 된 기사를 읽을 때와도, 미사일 소리와 끔찍한 참상이 교차 편집되는 뉴스 영상을 볼 때와도 다르다. 만화를 읽다 보면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미국에서 온 저자를 불신하면서도 그를 붙잡고 얘기를 늘어놓는다. 자기 얘기를 세계에 알리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절실함을 저자는 이용하지 않는다. 아니, 이용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러한 태도에 오히려 더 믿음이 간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후 팔레스타인의 현실이 세계에 많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개정판이 나온 지금까지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

  • <팔레스타인> | 조 사코 | 휴머니스트 | 3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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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균

매달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기이할 기, 밝을 명, 고를 균, 이름처럼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