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웹매거진 디에디트가 영화제를 연 이유는?

제1회 디에디트 영화제의 뜨거웠던 현장
제1회 디에디트 영화제의 뜨거웠던 현장

2025. 12. 18

안녕하세요. 디에디트와 함께 영화제를 만든 영화평론가 김철홍입니다.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네필의 단계’를 표현할 때 쓰는 유명한 관용구 같은 것이 있습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는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프랑스의 유명 영화평론가의 것으로 전해진 이 말은, 사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다.”처럼 본뜻과는 상당히 와전된 것으로 밝혀지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주는 울림이 분명 수많은 예비 감독들의 마음을 움직여 이 세상에 또 한 편의 영화를 탄생시켰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는 없겠죠.

그렇다면 디에디트가 갑자기 영화제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아 매거진까지 창간해버린 그들이 고안한 네 번째 단계였던 것은 아닐까요? 이 글은 ‘제1회 디에디트 영화제’를 찾아주신 분들의 소중한 추억을 보존하기 위한 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미처 현장에 찾아오지 못하신 분들, 디에디트가 벌이는 재밌는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예비 관객분들을 위한 초대장이기도 합니다.


1회차 12월 12일 19:30

제1회 디에디트 영화제의 오프닝은 대세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소설 <꽤 낙천적인 아이>의 작가 원소윤님이 선정한 영화 <어 퍼펙트 데이> 상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웃음 전문가인 원소윤님이 “진짜 웃긴 영화”라며 강력 추천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몇 가지 걱정 거리가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일단 이 영화는 2017년에 개봉해 국내에서 약 만 명의 관객 스코어를 기록했던 영화로, 소위 말해 인지도가 낮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와 연관된 두 번째 걱정 포인트는 이 영화의 배경인 보스니아 내전이 ‘웃음’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아는 사람 입장에선 이 블랙 코미디 영화를 ‘웃긴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잘 모른다면 오히려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 걱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와 원소윤식 농담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 저희는 그 둘이 결합된 토크가 정말 재밌을 것이라 믿었고, 이날 상영 후 진행된 에디터 H님과의 대화 현장은 역시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가 어디가 웃긴지 따져 묻는 에디터H님과, 밀란 쿤데라의 <농담> 속 한 구절까지 읊으며 영화 속 웃음을 변호하는 원소윤님의 날선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이 영화를 ‘리버스 운수 좋은 날’이라고 표현한 원소윤님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괜스레 힘겹게 영화제를 만든 저희의 처지가 대입되기도 했구요. 지금은 원소윤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즐겁게 웃고 있지만, 과연 끝까지 ‘퍼펙트 데이’로 마무리할 수 있을지. 원소윤님은 이번 영화제를 계기로 다른 영화 관련 행사들의 섭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좋은 소식을 들려주시기도 하셨습니다. 


2회차 12월 13일 13:00

첫날의 설렘이 채 가시지 않은 채로 영화제의 둘째 날을 맞이합니다. 이날은 아침에 비까지 내려 관객분들이 찾아오시기에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였습니다.

2회차 상영은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에디터B님이 선정한 영화로 진행되는 블라인드 상영회였습니다. 상영할 영화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비밀로 부쳐졌습니다. 저는 이 회차가 매진된 것을 보고 정말 놀람을 감출 수 없었는데요. 대체 한 사람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두터우면 그저 ‘에디터B’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소중한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 있는 것일까요?

B님은 자신만만해 보였고, 곧 강제로 영화를 봐야 하는 두 대표님들은 계속해서 B님과 사람들을 떠보며 초조함을 달랬습니다. 상영 후 곧바로 이어진 대화에서 B님은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화에서 찬실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진정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기를 가지게 된다. 연말 시기인 만큼 우리가 주변을 잘 챙기고 있는지, 지금 나는 행복한지 함께 돌아보고 싶었다.”

물론 두 대표님 모두가 B님의 선택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디에디트 직원이 아닌 외부인의 관점에서 제가 느낀 건, 디에디트의 대표님도 직원도 다 복이 많아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3회차 12월 13일 17:00

프로그램이 공개되고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건, 단연 화제의 콘텐츠인 <72시간 소개팅>을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올해의 연프, 올해의 콘텐츠를 넘어 올해의 영화의 자리까지 차지할 기세와 함께 72시간 소개팅 팀이 저희 영화제 초청에 응해주셨습니다. 예매는 오픈 1분도 채 되기 전에 전석 매진되어 그 인기가 장난이 아님을 실감하게 하였습니다. 원의독백님은 상영 한 시간 전에 현장을 찾아 환호하는 팬분들과 소통을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곧이어 유튜브에선 볼 수 없는 영화제용 특별 상영판을 관람한 관객들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유규선님과 원의독백님이 참석한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었습니다.

평소 자신을 ‘72시간 소개팅 열성팬’이라 소개하시던 에디터B님의 진행으로, 극장에선 <72시간 소개팅> 촬영 현장의 비화와 출연진 캐스팅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상영관이 잠깐 들썩였던 순간이 있었는데요. 바로 ‘연프 전문 기획자’ 유규선님이 제작할 다음 연프에서는, 출연자를 공개 모집할 수도 있다는 단서를 던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시청자들이 자신에게 긴 자기소개서(?)를 보내고 있고, 그걸 하나도 빠지지 않고 꼼꼼히 읽고 있다고 하시니, <72시간 소개팅> 팀이 선사하는 아찔하고 설레는 경험을 원하시는 분들은 콘텐츠 제작사 블랙페이퍼의 소식을 꾸준히 체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객석에는 후쿠오카 편의 주인공인 현구님께서도 깜짝 등장해 팬들과의 만남을 가지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번에 상영한 홋카이도 편뿐만 아니라, 다른 네 편의 주인공들의 후일담도 전해질 수 있기를 저도 간절히 바랍니다.


4회차 12월 14일 13:00

드디어 영화제의 마지막 날이 밝았습니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하는 듯 저희가 준비한 포토월에 여태 보지 못했던 세 줄기 빛이 드리웠습니다.

이번 회차에서는 유튜브 민음사TV의 빛과 소금인 조아란 부장님이 선정한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가 상영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사전 미팅 때 아란님께, 그간의 이력을 살려 유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들과 관련한 토크를 하시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란님께서는 간만의 일탈을 막지 말라는 듯, 제게 B급 코미디 좀비 영화를 역제안하셨었죠. 행사 당일 에디터 M님의 진행으로 이어진 두 분의 수다를 듣고, 역시 아부님의 말만 들으면 다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사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한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웃기만 했습니다. 영화가 팀워크와 꿈을 향한 열정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기에 대화가 자주 의미 있고 감동적인 쪽으로 흘러갔지만, 두 분은 잠시도 진지한 순간을 못 견디겠다는 듯 이야기를 기필코 웃음으로 끝내곤 하였습니다.

수다는 갑자기(?) 밸런스 게임으로 이어졌습니다. ‘평생 영화 안 보기 vs 평생 책 안 읽기’, ‘영화관에서 뒷사람이 계속 좌석 차는 거 견디기 vs 책 보다가 종이에 손 베기’ 등 책과 영화와 관련한 밸런스 게임을 통해 결국 조아란 부장님의 책을 향한 일편단심을 확인하며 긴 수다가 훈훈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5회차 12월 14일 17:00

제1회 디에디트 영화제의 대망의 폐막작 상영 현장은 톱스타 배우 고경표님께서 자리를 빛 내주셨습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바 있는 영화 <미로>는 고경표 배우가 직접 설립한 영화사의 첫 결과물로 화제가 됐던 작품입니다. 저희는 고경표 배우님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기 위해 벌써 데뷔 15주년을 맞이한 배우 고경표의 커리어 전체를 되짚어보는 시간으로 프로그램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연기도 연기지만 예능 활동과 개인 전시, 그리고 다양한 짤과 밈을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아티스트 고경표에 대해 알아보는 과정에서, 그가 그저 외모가 빛나는 배우일 뿐만 아니라 뚝심 있는 주관으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멋진 예술가임을 새로이 깨닫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현장에선 <응답하라 1988>, 청룡영화상, 그리고 2025년 12월 기준 1800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사랑했잖아… 무대 영상 등 지금의 고경표를 만든 결정적 순간을 되돌아보며, 당시 고경표 배우의 소회를 묻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중 예고 없이 자리에서 …사랑했잖아…를 라이브로 불러 많은 관객들의 심장을 떨리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한 시간가량 이어지던 토크는 고경표 배우가 가져온 애장품을 이벤트를 통해 나눠주는 시간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고경표라는,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아티스트를 단 다섯 글자로 표현하는 미션이 주어졌었는데요. 난이도가 있는 과제였지만 정말 많은 분들이 애장품을 위해 손을 들어주셨고, 그중 몇 분을 선정하느라 배우님께서도 애를 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위해 과감히 독립 영화 제작에 나서고, 또 새로 시작하는 영화제에 함께 해주신 배우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영화제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짧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뜨거웠던 제1회 디에디트 영화제가 막을 내렸습니다. 영화제를 찾은 많은 분들이 물었습니다. 도대체 디에디트가 왜 영화제를 하는 거냐구요. 아래에 디에디트를 만든 분들의 말을 첨부합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인 것 같습니다. The Edit Film Festival will return.

“매거진의 본질에 대해서 항상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인스타 매거진’이 많아지고 뉴스와 매거진의 경계가 흐릿해지니 더더욱 고민하게 됩니다. 제가 최종적으로 내린 대답은 이것입니다. 매거진의 콘텐츠는 취향으로 도시와 사람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야 한다. 저는 어릴 적에 무비위크를 읽고 새로운 영화을 알게 되고, 대학내일을 보고 최신 취향을 습득했습니다. 그렇게 알게 된 취향을 친구들 앞에서 ‘아는 척’할 수 있었죠. 비록 아는 척이었지만, 덕분에 일상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영화제를 개최한 이유를 알고 싶은데 서론이 너무 길죠? 죄송합니다. 본론은 짧습니다. 취향이라는 건 연결될 때 더 빛이 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의견이지만 저에게는 당위에 가깝습니다. 반복되고 심심한 일상에 영화제를 통해 관객들을 연결하고 싶었습니다. 배우, 코미디언, 기획자가 영화를 고르고, 에디터와 관객이 서로 수다를 떨 수 있는 유쾌한 오프라인 행사, 그게 디에디트가 오프라인으로 보여주고 싶은 또 다른 매거진 콘텐츠였습니다. 앞으로 디에디트스러운 콘텐츠를 더 자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 에디터B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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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홍

제25회 씨네21 영화평론상에서 최우수상 수상. 영화 글과 평론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