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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엔드의 맛, 브라운 시리즈 9 프로

면도기의 끝판왕을 맛보고 싶은 남자들에게
면도기의 끝판왕을 맛보고 싶은 남자들에게

2021. 09. 16

안녕, 에디터B다. 디에디트에는 최신 스마트폰과 값비싼 촬영 장비가 막 굴러다닌다. 궁금하면 굴러다니는 것 중 몇 개를 주어다가 써볼 수도 있고, 사무실에 없는 제품은 대표님에게 리뷰를 약속하고 법인카드로 구매하면 된다. 하지만 역시 인간은 간사해서 배부른 환경에서는 쉽게 질린다. 고가의 신제품을 쉽게 써볼 수 있으니 테크에 대한 호기심이 전보다 줄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사랑하는 브랜드 브라운에서 신제품을 소개하는 100주년 기념행사를 한다고 했을 때 오랜만에 호기심이 생겼다. 생각해보면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같은 제품에 들어간 기술은 궁금했어도 면도기처럼 매일 내 몸에 닿는 제품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전기면도기’라는 것이 얼마나 더 대단한 기술적 발전을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지금까지 14년 동안 전기면도기를 3개 정도 사용했는데,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기대감부터 생긴 이유는 지금껏 써본 제품은 모두 10만 원 이하의 것이었고, 오늘 구경하게 될 신제품의 가격은 30만 원이 넘어가는 하이엔드 전기면도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브라운 제품으로 꾸며진 여의도 페어몬트 호텔에 취재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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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들어가니 여기저기 브라운 로고가 보였다. 빨간색 아웃테리어가 돋보이는 페어몬트 호텔을 배경으로 놓인 네 대의 제품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시리즈 9 프로’, ‘시리즈 8 소닉’이다. 조금 더 가까이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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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에 봐도 고급스럽게 생겼다. 우리 집에 굴러다니는 10만 원 이하의 전기면도기와는 다른 고급스러운 아우라가 있다. 단단하면서도 유연해 보이는 헤드, 우아한 골드 컬러가 인상적이다.

시리즈 9 프로 골드 외에도 크롬, 그라파이트, 실버, 블랙 컬러까지 네 가지 컬러가 더 있다. 시리즈 9 프로가 출시되었으니 기존 모델이었던 NEW 시리즈 9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얼핏 보면 비슷해 보여도 기술적으로, 디자인적으로 결정적인 차이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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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면도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헤드다. 기존 시리즈 9과 달리, 시리즈 9 프로는 프로 블레이드를 새롭게 탑재해 4+1 프로 헤드를 한층 업그레이드했다. 프로 헤드란 4개의 커팅 요소와 1개의 스킨가드로 구성된 브라운만의 헤드다. 면도기의 존재 목적을 생각하면 무엇이 달라졌을지 생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면도기의 존재 목적은 수염을 잘 깎는 것. 여기서 ‘잘 깎는다’의 의미는 면도할 때 부드럽게 밀리면서도 피부에 밀착되어 수염을 잘 깎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걸 한 단어로 정리하면 ‘절삭력’이다.

NEW 프로 블레이드는 절삭력이 좋아졌다. 전작보다 트리머를 얇게 만들어서 0.05mm까지 밀착면도가 가능하게 되었다. 시리즈 9에 비해 트리머가 30% 더 얇아지고, 입구는 35% 더 넓어져서 수염을 놓치지 않는다는 게 브라운의 설명이다. 직접 사용해보기도 했는데 날면도기를 쓸 때처럼 깔끔하게 면도가 된다는 점이 신기하긴 했다. 특히 안 좋은 면도기는 놓치는 수염이 많아서 왔다 갔다 구간 반복하며 면도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피부가 금방 손상되고 따끔거린다. 시리즈 9 프로는 한 번에 쉽게 면도가 가능했다. 전기면도기가 날면도기에 비해서 아쉬운 점이 있는데, 저녁이 되면 그동안 수염이 자라서 사람이 조금 초췌해 보인다는 거다. 하지만 더 짧게 깎을 수 있으니 그런 단점을 커버할 수 있겠더라. 확실히 비싼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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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는 프로 블레이드를 보여주기 위해 크게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얇고 넓어졌다는 건 가운데에 있는 골드 티타늄 코팅 트리머를 보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집에서 브라운 시리즈 3을 쓰고 있는데, 나중에 집에 가서 비교해 보니 내 것은 가운데에 있는 골드 티타늄 코팅 트리머가 아예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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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다른 컬러 중 하나인 크롬 컬러다. 광이 번쩍번쩍 나는 유광 디자인이 고급스럽다. 시리즈 9 프로는 프로 블레이드 외에도 다른 차이가 있는데 헤드 고정 버튼의 디자인이 크게 바뀌었다. 예전에는 면도기를 쥐었을 때 엄지손가락이 올라가는 부분에 스위치가 있어서 면도를 하다가 갑자기 고정이 풀리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시리즈 9 프로에서는 그 부분이 개선되었다. 헤드 고정을 활용해서 전체적으로 면도를 할 땐 고정을 풀고, 집중적으로 한 부위를 면도하고 싶을 땐 헤드를 고정한 채 면도를 하면 된다. 사소한 불편도 놓치지 않으려는 브라운의 디자인 철학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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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케이스처럼 생긴 이것은 충전 케이스다. 전면에는 배터리 잔량을 확인할 수 있는 LED가 있어서 편리하고, 손에 착 감기는 부드러운 소재를 사용해서 손에 닿을 때 느낌이 고급스럽다. 새롭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브라운의 파워 케이스는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전기 면도기 휴대용 케이스라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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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여행을 갈 땐 편리함 덕분에 날 면도기보다는 전기면도기를 선호하는 편인데, 보통은 케이스 없이 가방에 아무렇게나 넣어두게 된다. 물론 구입할 때 주는 기본 케이스를 쓰면 되지만, 케이스 자체의 부피도 크고 별도로 충전기까지 챙기는 게 나 같은 사람에겐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더라. 그렇다고 케이스 없이 가방에 넣으면 전원이 멋대로 켜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충전 케이스는 면도기를 보관하기에도 좋고, 별도의 충전기를 챙길 필요가 없다는 점도 만족스럽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건 최대 6주 동안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2박 3일 정도의 일정이라면 조금도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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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신제품은 브라운 시리즈 S8 소닉이다. 컬러는 블랙, 그레이, 실버 세 가지 모델이 있다. 시리즈 8 소닉에도 편리한 기능이 많이 들어갔는데, 마찬가지로 헤드를 고정할 수 있고, 헤드는 굴곡에 맞게 8방향으로 움직이며, 전면에는 면도기를 관리하는 정보가 표시되는 디스플레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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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분당 1만 번 진동하는 소닉 테크놀로지라는 기술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전원을 켜고 눈으로 보면 블레이드가 작동한다는 건 보이지만 그게 분당 1만 번 진동하는지, 그 정도로 빨리 진동하는지는 느낌이 오지 않았다. 내 마음을 읽은 건지 공간을 안내해주는 브라운 담당자가 바로 이해를 돕기 위한 교보재(?)를 가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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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이 들어있는 교보재에 면도기를 밀착시키니 구슬이 파르르 떨리며 빠르게 진동하는 게 보였다. 분당 1만회 진동하는 미세진동 덕분에 자극이 덜한 부드러운 면도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기술은 시리즈 9 프로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사용해보니 확실히 자극이 없긴 하더라. 늦잠을 자서 아침에 급하게 출근할 때 전기면도기를 종종 쓰는데, 그런 날은 면도한 부분이 따끔거리곤 했다. 시리즈 9 프로를 썼을 때는 그런 단점이 없어서 좋았다. 또 시리즈 9 프로와 시리즈 8 소닉에는 수염 상태를 읽어서 알아서 파워를 조절하고 수염의 밀도에 따라 모터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오토센스 테크놀로지도 들어가 있다고 한다. 신기하긴 한데, 체감해보진 못했으니까 나중에 실사용기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이만하면 오늘 주인공에 대해 설명을 거의 다 했다. 하지만 공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제 시작이다. 바로 옆 공간으로 이동하면 1960년대의 브라운 면도기부터 최근에 출시된 면도기까지 나란히 전시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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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을 논할 땐 위대한 디자이너 디터 람스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디터 람스는 브라운 디자인의 정체성을 만들고 완성한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지금은 애플을 떠났지만 애플의 제품을 다수 디자인한 조너선 아이브가 디터 람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이름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나 역시 그 시기에 디터 람스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고, 미니멀리즘에 마음을 빼앗겨 턴테이블, 계산기 등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아마존에서 탁상시계, 계산기, 손목시계를 구매했다. 참고로 여기 전시된 브라운 면도기들은 개인 컬렉터에게 대여한 것이라고 한다(디터 람스 컬렉팅으로 유명한 4560 디자인 하우스에서 제공). 워낙 철저히 관리해서 상태가 깨끗해 보였는데, 요즘 출시해도 세련되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디자인이 훌륭했다. 브라운 제품을 보면 ‘좋은 디자인은 시간을 초월한다’라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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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 공간으로 이동하면 맨 케이브(man cave), 즉 ‘남자의 취미방’이 나온다. 혼자만의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이 공간엔 플레이스테이션, 아이패드부터 컴퓨터, 안락한 라운지 소파까지 세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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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나 또 브라운 제품이다. 크림색이 도는 바디에 측면을 우드로 마감해서 정갈하고도 따뜻한 느낌이 드는 턴테이블이다. 이 제품 역시 컬렉터에게 대여한 제품이라고 한다. 나는 탁상시계와 계산기밖에 없는데 누군지 몰라도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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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데군데 시리즈 9 프로와 시리즈 8 소닉이 놓여 있었다. 면도기를 공간에 어떻게 배치하면 좋은지 제안하는 느낌이었다. 거치대같이 생긴 이것은 브라운의 또 다른 자랑, 세척&충전 스테이션이다. 이 세척&충전 스테이션은 정말 신세계다. 평소에는 충전용으로 꽂아두다가 헤드를 씻고 싶을 때 전원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세척이 된다. 스테이션 아래에 세척액 카트리지를 끼워 넣어서 소독을 하는 방식인데, 세척 이후에는 건조까지 해준다. 스타일러를 처음 쓸 때, 로봇 청소기를 처음 쓸 때 느끼는 편리함에 버금가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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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시리즈 9 프로나 시리즈 8 소닉 모두 방수가 되는 제품이기 때문에 따뜻한 물로 씻어도 괜찮다. 하지만 세척&충전 스테이션을 쓰면 깔끔하게 보관하기에도 좋고, 관리도 훨씬 편할 것 같다. 세척액은 물이 아니라 90% 이상의 알코올로 구성되어서 더 위생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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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세척 스테이션은 단독으로 판매하는 제품이 아니다. 오직 패키지로만 판매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처음에 구매할 때 함께 사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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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의 날면도기를 아버지께 선물하려고 한 적이 있다. 만족스러웠던 경험을 아버지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전기면도기밖에 안 쓴다는 얘기를 하셨고, 대신 좋은 전기 면도기가 생기면 그걸 선물해달라고 하셨다. 브라운 시리즈 9 프로라면 좋아하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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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좋은 브랜드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브랜드가 사람보다 낫다.’ 좋은 브랜드는 자리에 집착하지 않고, 열린 자세로 평가를 받아들인다. 소비자에게 받은 성적표에 따라 기꺼이 물러났다가 더 나은 브랜드가 되기 위해 오래된 고집을 꺾기도 한다. 아집을 신념이라 착각하고, 독선을 자신감으로 포장하는 사람들보다는 ‘좋은 물건을 만들어서 많이 팔겠어요’라고 말하는 브랜드가 훨씬 솔직하고 매력적이며, 우리 삶에 더 좋은 영향을 준다. 그래서 브라운 100주년이라는 말을 곱씹을수록 대단한 성취라는 생각이 든다. 브라운은 무려 1세기 동안 소비자들에게 평가를 받으면서 단순히 살아남은 게 아니라, 디자인과 기술력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는 채 멋진 브랜드로 남아 있는 데 성공했으니까.

*이 글에는 브라운의 유료 광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