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시계 리뷰하는 유튜버 김생활이다. 디에디트에서는 처음으로 인사를 드린다. 이제 더 이상 다이버 시계를 잠수 장비로 활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다이버 시계는 여전히 가장 인기 있는 시계 장르이고, 아직도 많은 시계 팬들이 다이버 시계를 숭배한다. 샤워할 때나 설거지할 때, 수영할 때나 물놀이할 때 다이버 시계가 함께 하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하지만 다이버 시계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꼭 방수 성능 때문만은 아니다. 한때는 007과 특수부대원들, 전문 잠수부들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손목 위의 다이버 시계에 의지했다. 인간이 만든 이 경이로운 도구가 겪어온 위대한 역사가, 우리로 하여금 다이버 시계를 우러러 보게끔 만든다. 나는 수심 200m는 커녕 20m만 들어가도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겠지만, 내 다이버 시계는 끝까지 살아남아 누군가에게 시간을 알려주리라.
상업용 다이버 시계의 여명기인 1950년대부터 최전성기인 1970년대까지, 기념비적인 다이버 시계들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괜찮은 레트로 다이버 3종을 선정해봤다.
[1]
1950년대, 튜더 블랙베이 시리즈
(400만 원대)
- 특별한 장점😍 400만원대에 만나는 롤렉스에 준하는 품질과 디자인
- 특별한 단점😨 롤렉스의 서브 브랜드라는 인식
롤렉스의 자매 브랜드 튜더(TUDOR)는 1954년부터 다이버 시계를 만들기 시작했으니,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다이버 시계를 만들기 시작한 선구적인 시계 회사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튜더 다이버 시계들은 롤렉스 서브마리너의 케이스와 용두, 시계줄마저 그대로 공유했다. 심지어 롤렉스의 로고가 그대로 찍혀있는 부품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오로지 무브먼트만 롤렉스의 인하우스 무브먼트 대신 제3자가 제작한 범용 무브먼트를 채택해서, 롤렉스보다 더 접근가능한 가격에 다이버 시계를 제공하려 했다. 60년대말에 이르면 튜더만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팁이 달린 ‘스노우플레이크’ 시침을 갖게 됐고, 프랑스 해군 마린 내셔널(Marine nationale)에 오랫동안 시계를 공급하면서 군용 다이버 시계 메이커로서의 나름대로의 역사적 유산도 갖게 된다.
2012년에 처음 등장한 블랙베이 시리즈는 튜더가 만들었던 첫 번째 다이버 시계를 현대적인 스펙과 해석으로 되살린 시계다. 1954년에 나온 첫 번째 튜더 서브마리너의 모델 번호가 7922였는데, 거기에 0을 더 붙인 79220을 첫 블랙베이 시리즈의 모델 번호로 삼았다. 하지만 디자인은 Ref. 7922를 그대로 참고하기보다는 여러 빈티지 튜더 모델을 참고해서 만들었고, 케이스 사이즈도 현대적인 다이버 시계에 걸맞는 41mm로 키웠다. 진한 색상의 알루미늄 베젤과 박스 형태의 시계 유리, 긴 트라이앵글 모양의 12시 인덱스로 50년대풍 다이버 시계의 분위기는 살리면서도, 인덱스에 폴리쉬된 테두리를 둘러서 원조보다 고급스럽게 다이얼을 연출한게 인상적이다. 케이스의 모서리에 솜씨 좋게 넣은 폴리쉬된 헤어라인은 예전에 손으로 케이스 피니쉬를 하던 시절의 느낌 그대로 멋지다.
사진에 나와 있는 모델은 필자가 소장한 79220이지만, ETA2824-2를 엔진으로 사용하는 이 모델은 현재 단종됐다. 거의 비슷한 외양으로 약 70시간의 파워리저브를 가진 튜더의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채택한 79230 시리즈가 현재는 대체 모델로 나오고 있다. 사이즈까지 좀더 50년대의 시계와 가깝기를 바란다면 38mm 케이스의 ‘블랙베이 피프티에잇’ 시리즈도 있다. 리테일 가격은 79230의 스틸 브레이슬릿 버전이 476만 원, 피프티에잇 시리즈의 스틸 브레이슬릿 버젼이 463만 원이다.
[2]
1960년대, 오리스 식스티파이브 비코
(200만 원대)
- 특별한 장점😍 다른 데서 찾아보기 힘든 브론즈 콤비 조합과 돔형 유리
- 특별한 단점😨 다소 평범한 무브먼트
1960년대에는 맨몸으로 하는 스킨 다이빙과 가벼운 물놀이를 위한 얇고 아담한 다이버 시계들이 많이 등장했다. 60년대 스킨 다이버 시계들이 가진 특징이 좁은 베젤과 두터운 돔형 아크릴 시계 유리, 그리고 착용감 좋은 얇고 가벼운 케이스다. 오리스의 식스티파이브는 바로 이 60년대 스킨 다이버 시계들의 매력을 가장 잘 포착하고 있다. 식스티파이브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1965년에 나온 오리스의 첫 번째 다이버 시계 ‘오리스 슈퍼’를 디자인의 주된 영감으로 삼고 있다.
앞서 살펴본 튜더의 블랙베이는 디자인만 레트로지 스펙을 봤을 때는 완벽한 현대의 다이버 시계라고 할 수 있을텐데, 오리스의 식스티파이브의 경우 스펙까지 좀더 레트로 컨셉에 충실하다. 방수 성능은 100m에 그치는 대신 유리를 제외한 케이스 부분의 두께를 10mm 이하로 아주 얇게 유지했다. 원조 시계와 비교해서는 시계 유리와 다이얼의 업그레이드가 가장 두드러진다. 시계 유리의 소재를 아크릴에서 사파이어 크리스탈로 대체를 했는데, 그러면서도 형태 상으로는 아크릴 유리 못지 않은 멋지고 아름다운 돔을 보여주고 있다. 글로시한 다이얼 표면 위에 폴리쉬된 테두리를 두른 빛 바랜 인덱스를 붙여서, 가격대를 정당화할 수 있는 고급스러운 느낌을 추구했다.
무브먼트는 셀리타의 SW200-1을 채택하고 있다. 다이얼 색상도 다양하고, 36mm, 40mm, 42mm의 세 가지 사이즈 옵션과 나토줄, 가죽줄, 메탈줄 같은 여러 시계줄 옵션이 있다. 이중에서 가장 추천하는 옵션은 브론즈 소재를 시계줄과 베젤에 섞은 비코(Bico) 모델이다. 오리스는 브론즈 소재 중에서도 가장 색깔이 빠르게 변하는 인청동 소재를 사용했는데, 내 생활 습관에 따라 색이 바뀌는 시계라는 게 매력적이다. 색깔이 너무 빨리 변해서 조금 되돌리고 싶을 때는 레몬 쥬스나 콜라 등을 이용해서 살짝 닦아내면 된다. 비코 모델의 리테일 가격은 260만 원(메탈줄)이다.
[3]
1970년대, 스쿠알레 1521
(100만 원대)
- 특별한 장점😍 개성 있는 외양과 500m 방수 성능이 믿기지 않는 편안한 착용감
- 특별한 단점😨 다소 낮은 접근성(와루와치즈 매장이나 해외 직구를 통해서만 구할 수 있다)
1970년대에는 스쿠버 다이빙 관련 장비들이 보급되면서 고성능 잠수 장비에 대한 수요도 함께 증가하게 된다. 업그레이드된 스펙의 고성능 다이버 시계가 전성기를 누린 시기가 바로 1970년대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197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고성능 다이버 시계 전문 제작사들 중 하나가 스쿠알레다. 스쿠알레는 1950년에 샤를 폰 뷰렌과 엘렌 폰 뷰렌 부부가 스위스의 뇌샤텔에서 세운 폰 뷰렌이라는 회사를 전신으로 한다. 창사 초기부터 전문적인 다이빙 목적에 사용될 수 있는 다이버 시계 케이스를 만드는 데 특화된 회사였다. 엘빈 피케레즈가 론진이나 알피나, 해밀턴 같은 브랜드들을 위해 슈퍼 컴프레서 케이스를 보급하면서 한때 이름을 날렸듯이, 스쿠알레도 높은 방수 성능을 가진 다이버시계용 케이스를 만들어 공급하면서 명성을 높였다.
1970년대의 스쿠알레는 특히 블랑팡과의 협업으로 유명한데, 수많은 블랑팡 피프티패덤스 모델들의 케이스를 스쿠알레가 제작해 주었다. 아마 두 회사의 협업이 만들어낸 시계 중 가장 유명한 시계는 1970년대 독일 해군 특수부대를 만든 이른바 피프티패덤스 분트 모델일 것이다. 이 분트 케이스와 유사한 형태의 케이스는 블랑팡뿐만 아니라 호이어나 진, 독사 같은 같은 시기의 중량급 회사의 다이버 시계에 널리 사용됐다. 요컨대 스쿠알레는 1970년대 다이버 시계 케이스의 표준을 만든 회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유행했던 케이스와 거의 같은 형태의 케이스를 사용한 시계가 요즘도 나오고 있는데 그 시계가 바로 스쿠알레의 1521이다.
넓고 납작한 베젤과 네 시 방향의 용두, 오렌지색의 펑키한 분침을 보면 부정할 수 없는 1970년대의 향기가 느껴진다. 베젤의 지름은 42mm이지만, 케이스의 지름이 베젤보다 작은 데다가, 케이스가 역동적인 곡선 형태로 지어져 있어 체감은 40mm의 시계에 가깝다. 500m라는 가공할 만한 방수성능을 갖고 있음에도 편안하고 거추장스럽지 않은 착용감을 자랑한다. 무브먼트는 믿을 만한 ETA2824-2를 채택했다. 국내 공식수입원인 와루와치즈의 리테일 가격은 스펙에 비해 매우 착한 124만 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