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패션 브랜드의 뒷이야기를 좋아하는 객원 에디터 김고운이다. 빔스가 왔다. 아예 온 건 아니다. 잠깐 왔다가 갈 예정이다. 4월 4일부터 5월 8일까지 잠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에서 팝업 매장을 운영한다. 그래도 놀랍지 않나. 빔스가 한국에 진출하다니…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지난 3월 어느 날 갑자기 빔스 코리아 계정이 생겼다. ‘beams_korea_official’이라는 인스타그램 계정 이름만으로 첫 게시글의 댓글에선 놀람과 설렘이 술렁였고 각종 인스타 매거진은 특종으로 게시글을 올렸다. 빔스가 어떤 브랜드인가. 유나이티드 애로우즈, 쉽스와 더불어 일본 3대 편집샵으로 꼽히고 1976년 시작한 이래 일본 패션 트렌드를 그야말로 앞장서서 이끄는 브랜드다. 특유의 친근함으로 패션을 좋아하는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아 도쿄 신주쿠처럼 관광지에 있는 빔스에는 한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빔스를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이번 행사에 사람이 몰릴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관심을 받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몰려 입장 대기뿐만 아니라, 팝업 익스클루시브 제품들은 품절될 정도. (물론 꾸준하게 재입고 된다.)
오늘은 빔스의 역사와 더불어 이번 팝업 행사에서 볼 수 있는 하위 브랜드까지 정리해봤다. 방문 계획이 있다면 아래 내용이 팝업을 즐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글을 읽으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보자.
미국의 일상을 동경하다
빔스의 정체성이자 원동력은 ‘동경’이다. 그 대상은 미국. 패전국 일본은 부유한 승전국 미국이 누리는 자유롭고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했다. 그런 경향은 패션을 통해서 잘 드러났다. 일본 패션 브랜드 반 자켓(VAN JAC)이 1960년대에 자켓, 버튼다운셔츠를 만들어서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 학생의 패션을 일본에 소개한 것처럼 말이다. 이 아이비 패션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얼마나 그 인기가 대단했는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는 양복을 빼입고 무리를 지어 다니며 미풍양속을 해치는 젊은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정도였다.
일본이 미국의 문화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주의 깊게 볼 점은 문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어느 문화든 그 나라의 특성에 맞추어 변하지만 일본은 낯선 미국의 일상에 이야기를 더해 독특한 문화로 바꾸었다. 한마디로 ‘컨셉’을 만들었다. 1976년 하라주쿠에 첫 매장을 낸 빔스는 ‘아메리칸 라이프 스타일 숍’이라는 분명한 컨셉을 가졌다. 6.5평의 작은 방을 UCLA 기숙사 방처럼 꾸미고 브룩스브라더스, 엘엘빈, 에디바우어 같은 진짜 미국 제품과 그 방에 있을 법한 물건까지 판매했다.
컨셉은 이야기를 낳는 법. 여기서 잡지가 등장한다. 잡지는 컨셉을 알리고 풀어서 설명하는 선생님이었다. 빔스가 시작하고 몇 달 뒤 창간한 <뽀빠이>는 빔스와 영혼의 단짝으로 함께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했다. 널리 알려져 있듯 뽀빠이는 ‘Magazine for City Boys’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시티보이라는 개념을 정립한 잡지다. 뽀빠이가 소개하는 스케이트보드, 서핑, 하이킹 등 미국 도시의 건강한 청년이 누릴만한 활동은 빔스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1980년대엔 <맨즈클럽>, <핫도그프레스>, <올리브> 같은 잡지가 미국 문화의 가이드북, 길라잡이 역할을 했다. 잡지를 통해 미국 문화를 선망하게 된 독자들은 빔스에서 라코스테 카라티, 폴로 치노팬츠를 구매하고는 긴자나 시부야 거리를 누볐다. 미국 근사한 ‘시티’에 사는 ‘보이’처럼.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아 진짜 미국 제품을 접하기란 쉽지 않았던 당시 상황까지 고려하면 빔스는 혁신이었다. 빔스는 곧이어 시부야에 두 번째 매장을 내고 1978년엔 포멀한 수트를 중심으로 제품을 만드는 빔스 에프(BEAMS F), 1981년에는 전 세계 디자이너 브랜드를 만날 수 있는 인터내셔널 갤러리 빔스(International Gallery BEAMS)를 오픈하며 분야를 넓혀갔다.
빔스 스태프가 가진 힘
여기서 의문이 든다. 해외 제품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요즘에도 빔스가 인기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 답은 빔스 매장에서 근무하는 스태프에 있다. 빔스는 정말로 스태프를 빔스의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옷을 입으면 알리고 싶기 마련이고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는 것만큼 구매욕을 자극하는 방식은 없기 때문이다.
빔스 스태프의 패션 센스는 이미 유명한 사실. 빔스는 직원들이 더 뛰어놀도록 판까지 깔아준다. 홈페이지에서 연예 기획사 소속 연예인처럼 모든 스태프를 볼 수 있고 클릭하면 각 스태프의 스타일링과 매장 소식을 전할 수 있는 개인 페이지로 접속할 수 있다. 심지어 SNS처럼 관심 있는 직원을 팔로우하는 기능도 있어 스태프를 통해 각자가 추구하는 스타일을 확장할 수 있다.
빔스는 단순히 트렌드를 따르고 외모를 가꾸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물건으로 옷을 다룬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콘텐츠가 ‘빔스 엣 홈(Beams at Home)’이다. 벽돌만 한 두께로 총 4권이나 발행된 이 책은 스태프들의 집과 사용하는 물건을 모아놓은 책이다(1, 2권은 국내에도 번역되어 출간됐다). 책에는 옷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추구하는 삶, 좋아하는 하루, 휴식의 방식, 좋아하는 물건 같은 소박하면서도 단단한 삶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급변하는 패션 트렌드에도 빔스가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옷을 좋아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독자는 자연스럽게 책 속의 삶을 동경하게 된다. 마치 빔스가 미국을 향해 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에 상륙한 레이블 4
빔스는 단일 브랜드가 아니다.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는 취향을 반영해 패션, 잡화, 아트, 만화, 음악 등 30개가 넘는 하위 브랜드로 분화했다. 이번 팝업에는 빔스와 더불어 총 4개 브랜드가 참여했다. 빔스 보이, 레이 빔스, 비피알 빔스 그리고 도쿄 컬처 바이 빔스다. 하나씩 가볍게 살펴보자.
1. 레이 빔스(Ray Beams)
레이 빔스는 1984년 빔스가 전개한 첫 여성복 라인으로 도시 여성을 위한 옷을 판매한다. 1984년 당시는 요지 야마모토, 꼼데 가르송 같은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일본 경제는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이던 시기였다. 레이 빔스는 자신감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시티보이의 캐주얼함보다는 더 절제되고 도회적인 디자인을 주로 선보였고 이러한 컨셉은 여전히 이어져 레이빔스만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았다. 민소매 원피스나 동그란 실루엣 바지 같이 일본 여성 패션 하면 떠오르는 단정하면서도 개성있는 느낌이 전반적으로 흐른다. 이번 팝업에선 단톤처럼 한국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들과 PB제품을 볼 수 있다.
2. 빔스 보이(Beams Boy)
빔스 보이는 시티보이의 여성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레이 빔스와 같은 여성복 라인이지만 남성복을 입은 여성을 컨셉으로 하여 보다 캐주얼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이 특징. 1990년대 초, 치솟았던 일본 경제의 버블이 꺼지면서 명품 소비가 줄고 현실적인 소비가 늘었다. 그러면서 성별에 상관없이 캐주얼하게 옷을 입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이러한 흐름 속에 1998년 빔스 보이가 등장했다. 워크웨어, 밀리터리 웨어를 근간으로 스포티한 제품까지 뽀빠이 시티보이에서 느낄 수 있는 천진함과 가장 어울리는 빔스 브랜드다. 이번 팝업에선 한글로 빔스 보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익스클루시브 제품으로 판매 중이다.
3. 비피알 빔스(bPr Beams)
빔스는 일상과 분리된 패션을 지향하지 않는다. 일상을 닮은 옷, 옷을 닮은 일상을 지향한다. 그렇다고 실용성에만 초점을 두고 있지도 않다. 비피알 빔스의 디자인 소품에는 이런 빔스의 여유롭고도 포용적인 성향이 잘 드러난다. 비피알 빔스의 핵심은 ‘재미’다. 흔히 예쁜 쓰레기라고 불리는 제품부터 하이엔드 소품까지. 재치 넘치는 생활 소품을 판매한다. 때로는 쓸모없는 물건이 일상에 힘이 되기도 한다. 피식하고 웃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4. 도쿄 컬처 아트 바이 빔스(Tokyo CULTuART by Beams)
수입하고 이야기를 만들던 빔스는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수출한다. 도쿄 컬처 아트 바이 빔스는 도쿄 출신의 아티스트와 협업하여 아티스트의 작품을 티셔츠나 에코백에 인쇄하여 판매하거나 일본 느낌이 물씬 담긴 소품을 판매한다. 빔스는 소비 근원에 있는 호기심을 자극하며 도쿄에서 생산되는 작품, 문화를 세계로 알린다. 스스로를 잃지 않는 동경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빔스의 뿌리와 같은 브랜드다.
빔스의 이번 한국 진출이 정식 매장이 아니라 팝업 매장인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번 팝업 매장의 성과가 빔스 코리아의 방향에 영향을 줄 거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빔스를 향한 우리의 동경도 조금씩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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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운
패션 관련 글을 씁니다. 헛바람이 단단히 들었습니다. 누가 좀 말려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