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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슨이 좋은 이유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일단 나는 어느 분야에서든 선구자가 좋다. 새로운 걸 만드는 사람들은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일단 나는 어느 분야에서든 선구자가…

2017. 09. 27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일단 나는 어느 분야에서든 선구자가 좋다. 새로운 걸 만드는 사람들은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다. 마이웨이를 외치는 그 시크함이 좋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향해 엄청난 비용을 마다하지 않는 용감함이 좋다. 몇몇 브랜드가 떠오르실 텐데, 오늘은 그중에서 영국의 다이슨이다.

다이슨은 여러 가지를 만들었다. 날개 없는 선풍기 그리고 먼지 봉투 없는 진공 청소기. 먼지 봉투가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이제 옛날 얘기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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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제임스 다이슨은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다이슨 창업자다). 진공 청소기의 성능이 점점 떨어졌기 때문. 원인은 먼지 봉투였다. 쓰면 쓸수록 먼지가 쌓여 먼지 봉투의 미세한 틈이 막히게 되고, 결과적으로 청소기의 흡입력이 떨어졌다. 사람들은 먼지 봉투가 막힐 때마다 새로운 먼지 봉투를 구입해야 했다. 청소기 회사로서는 가만히 있으면 굴러들어오는 수익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불합리에 눈을 뜬 제임스 다이슨은 ‘대기업은 회개하라’는 1인 시위를 하는 대신, 직접 먼지 봉투 없는 청소기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물건에 불만을 갖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디자인 엔지니어로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면서. 멋진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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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봉투 없는 청소기를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험난했다더라. 1979년부터 무려 5년간 5,127개의 시제품을 제작한 끝에 개발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신화처럼 전해진다. 파산의 위기를 견디고, 다이슨이란 브랜드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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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렇다면 먼지 봉투 없는 청소기의 원리가 뭔지 궁금해진다. 먼지 봉투의 역할은 청소기로 들어온 공기가 빠져나갈 때 먼지를 걸러주는 일이다. 이게 없다면 자체적으로 먼지를 분리할 방법이 필요하다. 다이슨이 힌트를 얻은 곳은 ‘원심력’. 공기를 빠르게 회전시켜 페인트 입자를 분리하는 산업용 싸이클론 타워의 원리를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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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35년 동안 싸이클론 기술은 다이슨 청소기의 핵심이었다. 오늘 리뷰할 무선 청소기 신제품인 V8 카본 파이버에는 ‘2중 래디얼 싸이클론 기술’이 들어갔다. 이름은 요란하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15개의 싸이클론이 이중으로 배열돼 더 강력한 원심력을 만들어낸다는 것. 이를 통해 아주 미세한 먼지까지 먼지함으로 분리해버리고, 깨끗한 공기만 밖으로 배출한다. 우리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0.3 마이크로 입자까지 잡아낼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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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 쪽에 모든 핵심 부품이 쏠려 있기 때문에, 손에 쥐면 묵직하다. 뭔가 강력한 ‘청소 파워’를 얻은 듯한 느낌 마저 든다. 모터 외부의 디자인은 마치 자동차의 엔진을 형상화한 듯 카리스마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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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슨 특유의 ‘바디 컬러’는 대담하면서도 세련되다. 오렌지와 그레이, 블루와 레드로 이어지는 조합이 재미있다. 솔직히 한 제품에 몰아넣기엔 각각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한 컬러다. 그런데 만나서 조화롭다. 너무 귀엽거나 흔히 말하는 ‘여성향 디자인’이 아닌 점도 마음에 든다. 이게 바로 사람들이 다이슨은 ‘청소기’가 아니라 ‘머신’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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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랜시간동안 무선 청소기는 사이드 디쉬 같은 역할을 맡아왔다. 햄버거 세트로 따지자면 감자튀김 정도. 누구도 “오늘 식사는 감튀면 충분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곁들여 먹으면 더 좋은 정도. 무선 청소기는 그런 취급을 받아왔다. 왜냐면 유선 청소기에 비해 흡입력도 약한 데다, 전원 공급 없이 모터를 돌리다 보면 5분도 되지 않아 다 죽어가는 소리를 내곤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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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이슨은 이조차 개선하기로 마음먹었다. 미세먼지까지 빨아들일 수 있는 강력한 흡입력, 집 전체를 청소할 수 있을 정도의 배터리 시간. 무선 청소기의 자유로움을 누리면서, 유선 청소기에 버금가는 성능까지 주입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엄청난 가격까지 함께 주입되긴 했지만, 자본주의란 본래 이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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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성공했다. 그리고 점점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V8 카본 파이버는 이미 청소 마니아들 사이에서 ‘무선 청소기 끝판왕’으로 불리는 V8 기존 모델보다 더 강력해졌다. 흡입력을 30% 향상했다. 숫자로 따지자면 115AW에서 155AW로 업그레이드했다.

나는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다이슨을 손에 쥐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꾸준히 리뷰를 위해 여기저기 청소기로 들쑤시고 다녔다. 심지어 남의 사무실도 청소해줬다. 청소 요정이 되었달까. 다들 다이슨 신제품이라고 하니 관심이 많더라. 너도 나도 써보겠다며 청소기를 뺏어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던 건 처음이다. 내가 다른 청소기를 들고 있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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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제품 촬영차 갔던 스튜디오에서도 다이슨의 팬을 만났다. 바로 스튜디오 사장님. 에디터M이 스튜디오에 있던 예쁜 에스프레소 잔을 깨먹어서 당황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즉각 다이슨 V8 이전 모델을 가지고 와서 쓱싹 쓱싹 바닥을 밀어버리신다. 그리고 “이게, 신제품이 또 나왔어요?”라며 큰 관심을 갖더라. 괜히 으쓱해진다. 신형 아이폰을 갖고 있는 것 만큼이나 이목을 끄는 제품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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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청소를 시작해보자. 눈에 보이는 결과(?)를 얻고 싶어서, 가짜 먼지를 준비해봤다. 디에디트의 막내 에디터가 한땀 한땀 자른 인조 먼지다. 먼지 위로 청소기를 쭉 굴려본다. 한 번의 움직임으로 종이 조각 하나 남지 않고 말끔하게 사라졌다. 맥 빠질 만큼 분명한 결과다. 하긴 이 정도는 당연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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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인 V8 카본 파이버의 흡입력은 155AW. 이전 모델보다 30% 향상된 수치다. 115AW의 기존 V8 모델 역시 실제 사용해봤을 때 만족스러운 흡입력을 경험했던 바 있는데, 거기서 더 좋아졌다는 얘기다.

사실 흡입력 자체 보다 인상적인 건 지구력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집에서 무선 청소기는 찬밥신세였다. 청소 마니아인 우리 아빠는 무선 청소기로 방바닥을 대충 훑어내는 나를 보고 ‘게으른 청소’라고 맹비난을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선 청소기의 모터는 시작할 때만 신나게 빨아들이고 그 뒤론 뱉어내는 듯한 지구력을 보여왔으니까. 다이슨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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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흡입력을 유지해준다는 말을 확인하기 위해 V8 카본 파이버를 25분간 돌려보았다. 사실 일반모드에서 완충된 배터리는 40분 까지 버티는데, 내가 버티지 못했다. 한정된 공간에서 청소기를 20분 넘게 돌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중엔 더 청소할 곳이 없어서 지나간 곳을 다시 지나가고, 또 다시 지나갔다. 놀라운 건 내 눈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바닥인데도 청소기를 돌리면 돌릴수록 먼지통에 미세한 먼지들이 켜켜이 쌓여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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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8 카본 파이버에서 울리는 기분 좋은 엔진 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타이트한 리듬감을 잃지 않았다. 다이슨 측의 설명처럼 비슷한 수준의 흡입력을 계속해서 유지한다는 뜻이다. 꼭 매미 같다. 새된 울음으로 계속 짖다가 수명이 끝나면(배터리가 다 되면) 딱 멎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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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하기에 불편한 수준은 아니었는데, 무게는 꽤 나간다고 느꼈다. 처음엔 못 느끼는데 10분 이상 사용하면 그때부터 묵직함이 손잡이에 전해져온다. 대신 배터리나 모터 같은 무게 중심이 손잡이 근처에 쏠려 있기 때문에, 높은 곳을 청소할 땐 오히려 편하다. 번쩍 들어 올려도 휘청거리지 않는다. 바닥에 놓고 밀 땐 내 키에 비해 약간 높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천장 청소를 할 땐 장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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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전에 다이슨 청소기의 먼지통을 비워본 적이 없어서, 처음엔 먼지통 비우는 방법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먼지통 비우기’라는 의미가 분명한 아이콘이 그려진 버튼을 당겼는데 변하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서서히 들어올리면, 아래 덮개가 열리면서 먼지들이 다이빙하듯 뛰어내리는 원리였다. 이해하고 보니 상당히 편하고 위생적이다. 이걸 몰랐던 우리는 리뷰 중에 기껏 청소한 먼지를 바닥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꼭 휴지통 위에서 먼지통을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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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차례 흡입력과 모터, 배터리 성능에 대한 검증이 끝나고 나면 새로운 호기심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박스 가득 들어있는 이 수많은 헤드툴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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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의 청소기 답게 구성품이 빵빵하다. 온갖 용도에 쓸 수 있는 다양한 헤드툴을 별도 구매하지 않아도 된다. 생김새나 사이즈를 보면서 용도를 추측해본다. 소파나 매트리스, 계단, 가구와 벽사이의 좁은 틈, 자동차 시트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공간을 청소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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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 툴을 교체하는 것도 아주 쉽고 안정적이다. 똑, 빼서 딱, 끼우면 끝. 핸디 모드와 스틱 모드를 전환하는 것도 쉽다. 계단이나 자동차 시트를 청소할 목적이라면 핸디 모드가 좋다. 컴퓨터 키보드를 청소할 때도 마찬가지다. 신제품에는 익스텐션 호스 툴과 플렉시 크레비스 툴이 추가됐다. 특히 좁은 틈을 쭉쭉 늘려서 접근할 수 있는 익스텐션 호스 툴이 쓸모있다. 이걸로 쇼파 쿠션 사이 사이나, 책장 아래 쪽을 청소해줬더니 먼지통에 엄청난 결과물이 생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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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러시가 독특하다. 소프트 롤러 헤드는 부피감 있고, 보드라운 소재다. 청소 전에는 너무 부드러워서 자꾸 만져보게 되더라. 게다가 컬러도 예쁘다. 이건 마룻바닥의 크고 작은 먼지를 청소할 때 좋다. 일반 브러시로 제거하기 힘든 작은 먼지까지 낚아채는 재주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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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그레이드된 카본 파이버 브러시 바의 빳빳한 나일론 브러시는 카펫에 깊숙이 박힌 먼지나 반려동물의 털을 제거할 때 유용하다. 실제로 이 모터헤드로 러그 위를 청소해보니 눈에 보이지 않던 먼지가 계속 흡입되는 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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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기를 벽걸이 형태로 거치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사실 다른 청소기였다면 아무리 편해도 우리집 거실에 걸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얘는 다르다. 전해들은 이야기지만 에디터M의 친구는 신혼집 인테리어를 구상하면서, 다이슨 청소기를 걸어둘 공간을 따로 마련해놨을 정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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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다이슨을 다분히 의식한 청소기 제품이 여기 저기서 출시되고 있다. 따라하고 싶은 브랜드가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다들 결혼할 때 혼수로 꼭 챙기고 싶다고 떠들어댈 만큼 ‘모두의 위시리스트’에 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말이다. 청소라곤 로봇 청소기 밖에 몰랐던 무지한 내게 청소기 위시리스트가 생겼다. 아아, 리뷰가 끝나고 나니 다른 무선 청소기는 모두 오징어로 보인다.

고백건대 태어나 이렇게 청소에 열중한 적이 없었다. ‘좋은 청소’라는 게 얼마나 사치스러운 경험인지를 깨닫는다. 쾌적하다. 이렇게 쾌적할 수가 없다. 어릴 적에 내가 공부를 못한 이유는 아이패드가 없기 때문이었고, 평생 청소를 게을리한 이유는 다이슨이 없었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V8을 갖지 못한 게 패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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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