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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의 취향] 더운 나라로 갑니다

꼭 무언가를 사려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사지 않더라도 꼭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가서 뭐라도 깨작여야 직성이 풀리는 곳이 있다. 나에겐...
꼭 무언가를 사려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사지 않더라도 꼭 지나치지 못하고…

2017. 08.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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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무언가를 사려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사지 않더라도 꼭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가서 뭐라도 깨작여야 직성이 풀리는 곳이 있다. 나에겐 이솝이 그렇다.

무슨 정신이었을까 나는. 이 더위에 오랜 친구와 삼청동을 찾았다. 살인적인 날씨였다. 열기가 내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라 분노로 분출되는 그런 날. 아스팔트 위에 붙은 껌딱지처럼 녹아내리고 있을 때, 내 눈앞에 이솝이 보였다. 그래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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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매장이야 하나같이 아름답지만, 경복궁 옆 길을 지나 삼청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이곳은 특별하다. 한옥을 개조했다는데, 억지스럽지 않아서 말해주지 않으면 한옥이란 것을 눈치채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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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룻바닥은 처음 건물이 지어질 당시부터 있었던 영국산 재활용 목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단다. 한옥을 미드나잇 블루 컬러로 칠하고, 안은 아이보리 컬러로 포인트를 줬다. 사방으로 뻗친 파이프가 멋스러운 공간이었다. 한국과 영국, 감색과 미색, 스틸과 나무. 전혀 어우러지지 않을 것 같은 요소를 멋스럽게 한 상에 차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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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은 언제나 우리에게 열려있다. 정갈한 인테리어, 마음이 편해지는 향기, 철저하게 계산된 플레이 리스트까지. 같은 시간 전 세계 이솝 매장에는 모두 동일한 음악이 흘러나온다고 할 정도다. 여러분에게 지금부터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꿀팁을 알려드리겠다. 너무 더워서 정신을 못 차리겠으면 이솝 매장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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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씻고, 깨끗한 상태에서 이솝의 다양한 제품을 체험해 볼 수 있는 핸드 데모, 이솝만의 레시피로 블렌딩된 시원한 차 한 잔을 마시면, 여기는 지상낙원.

직원들의 태도도 훌륭하다. 딱 기분 좋은 온도의 태도. 지나치게 친절하거나, 얼른 내가 지갑을 열기 바라는 성급함 따위는 찾아 볼 수 없다. 나에게 향긋한 차 한 잔을 권하고, 오직 내가 필요할 때만 적당한 태도로 물건을 권한다. 따뜻한 환대의 향기. 이것이 내가 이솝 매장을 자꾸 찾는 이유다.

꼭 무언가를 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장담컨대 매장을 나오면 당신은 아마 이솝과 사랑에 빠져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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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걸 샀다.

난 이미 집에 꽤 많은 이솝 제품이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무언가를 살 생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샀다. 난 곧 더운 나라로 휴가를 떠나니까.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피부를 지켜줄 제품이 필요했다. 이것이 이번 지름의 핑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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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이 기사를 보고 있을 때면 아마 난 한국에 없을 거다. 운 좋게 끊은 태국행 저가 항공기 안에 몸을 구겨 넣은 채 괴로워하고 있겠지. 내일모레가 출국인데 사실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다. 단출한 나의 짐. 내가 챙긴 건 평소 마음에 품어두었던 파자마와 입술에 생기를 더해줄 틴트 정도만 들어가는 작은 가방, 모자 선글라스 정도. 그리고 이솝, 이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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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프로텍티브 바디 로션 SPF50, 그리고 페티그레인 리바이빙 바디 젤. 조금 어려운 이름이지만 어려울 것 없다. 간단히 말하면, 요즘처럼 지글지글 타는 태양으로부터 피부를 지켜줄 아이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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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아이템은 프로텍티브 바디 로션SPF50 PA+++. 광범위하게 자외선을 차단해주는 것은 물론, 비타민 E 성분과 천연 미네랄 실리카 성분으로 피부를 촉촉하게 만들어준다. 살이 타면 건조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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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면 손등을 타고 흐를 정도로 제형이 묽다. 덕분에 슥슥 펴 바르기엔 아주 쉽다. 슥슥 몇 번의 손길이 스쳐 지나가면, 금방 흡수되기 때문에 덥고 습한 나라에서도 끈적임 걱정 없이 바를 수 있다. 바르고 나면 스피아민트 리프 그리고 라벤더의 향긋한 내음이 은은하게 풍겨나와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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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소개한 바디 젤이 밖을 나서기 전에 챙겨 발라야 녀석이었다면, 페티그레인 리바이빙 바디 젤은 밖에서 유용한 아이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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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가벼운 젤 타입으로 투명하고 쫀쫀하다. 알로에 베라 성분이 햇빛에 자극받은 피부를 진정시켜준다. 바르면 즉각적으로 피부가 시원해지고, 상쾌한 시트러스향 덕분에 내가 다 싱그러워지는 기분. 냉장고에 넣어두고 시원하게 사용하면, 더욱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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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든 뷰티 아이템은 브랜드가 목 놓아 외치는 효과를 체감하기 위해서는 근면함과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와닿는 건, 알아듣기 힘든 성분보다는 오히려 패키지와 제형, 그리고 향 같은 즉각적인 감각이다.

내가 이솝을 좋아하는 이유는 친절하지 않을지라도, 왠지 믿음이 가는 디자인. 기분이 좋아지는 향기. 매장에서 직원과 대화하고 고민하고, 그리고 결제하기까지 느껴지는 따뜻한 환대. 이런 복합적인 요소 때문이다.

세상에 좋은 제품은 너무 많다. 하지만 오래도록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물건을, 오래 함께할 브랜드를 찾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올 여름, 나는 이 싱그러운 것을 몸에 바르고 가벼운 걸음으로  떠날 것이다. 서울 보다 조금 더 더운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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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텍티브 바디 로션SPF50 PA+++, 페티그레인 리바이빙 바디 젤 모두 용량 150ml에 가격은 각각 5만 2,000원. 십만 원이 넘는 금액을 호기롭게 계산하고 이솝을 나섰다. 기분이 좋아졌다. 뜨거운 태양도 그새 누그러졌다. 휴가 아이템도 샀겠다. 이제 정말 떠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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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떠나서 잘 먹고 잘 자고 잔뜩 탄 검은 아기 돼지가 되어서 돌아올 예정. 이솝을 바르고 뜨거운 태국 햇살 아래 있는 힘껏 나태해진 내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 행복해진다. 여러분 저 휴가 다녀와서 봐요. 다들 안녕.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