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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의 취향] 반짝이는 것에는 힘이 있어

늘 그랬지만, 오늘도 개인적인 얘기로 시작해보자. 작년 이맘 때의 나를 떠올려 본다. 나는 성실한 근로 소득자였다. 9시엔 출근을 했고 6시엔...
늘 그랬지만, 오늘도 개인적인 얘기로 시작해보자. 작년 이맘 때의 나를 떠올려 본다.…

2017. 02. 19

늘 그랬지만, 오늘도 개인적인 얘기로 시작해보자. 작년 이맘 때의 나를 떠올려 본다. 나는 성실한 근로 소득자였다. 9시엔 출근을 했고 6시엔 대체로 퇴근을 꿈꿨다. 열심히 일했지만, 환절기엔 습관처럼 권태로움이 몰아닥쳤다. 월급은 매달 같은 날에 날 찾아왔다. 일곱 자리의 숫자는 특별히 족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회사를 박차고 나와 월급이 없는 인생을 택했을 때도 나는 별로 무섭지 않았다. 행복과 모험의 돛단배 ‘디-에디트’가 바람을 타고 달리고 있었다.

두려움은 먼 길 돌아 은행 대출 창구 앞에서 찾아왔다. 나는 본래 은행을 좋아했다. 다들 친절하고 스윗했으니까. 하지만 월급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 은행은 쓰고 떫은 공간이었다. 2월 14일. 카카오 함유량 높은 그 날. 남들은 데이트를 한다는데 나는 페이백을 했다. 술이 당겼지만, 그마저도 좌절됐다. 나의 유일한 동네 소주 친구는 새 남자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다더라.

IMG_2438[그렇다, 디에디트 대표는 에디터M이었다]

불행의 끝에서 외투를 껴입는데, 택배가 도착했다. 뭘까. 택배 봉투 적힌 영문을 읽어 내리며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다리던 해외 배송. 그 물건이다. 잽싸게 에디터M에게 메시지를 날렸다. 왜냐면 이분이 사주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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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언박싱이다. 뽁뽁이가 두텁게 내장된 봉투를 뜯으니, 곱고 뽀얀 박스가 하나 나온다. 싸구려 고무줄을 고급 리본처럼 사용해 박스를 고정한 센스가 돋보인다. 쥬얼리라도 들어있을 것 같지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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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 물건은 고작 아이폰 케이스다. 포장이 꽤 그럴싸하다. 케이스 밑엔 푹신한 벨벳이 깔려있고, 심플하지만 예쁜 ‘THANK YOU’ 카드까지.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것 때문에 단가가 조금 올라간대도 상관 없다. 나는 뜯는 순간 손끝에 닿는 즐거움에도 비용을 지불했다고 믿는 타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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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케이스는 일부가 투명한 ‘시스루 디자인’인데, 제품 뒤에 종이로 만든 아이폰 모형을 겹쳐 놓았다. 실제로 아이폰에 착용(?)했을 때 어떻게 보이는지 알려주기 위함이다. 내가 주문한 아이폰7 플러스 모델에 맞게 듀얼 카메라까지 표현한 디테일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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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퍼와 글리터 케이스의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 말랑한 범퍼를 먼저 씌운 후 글리터 케이스를 겹쳐 끼우면 단단하게 고정되며, 충격 흡수 기능까지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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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DA! 나의 야심찬 신상. CASETIFY의 글리터 케이스를 아이폰7 플러스 블랙 모델에 씌워보았다. 블랙 바디가 비쳐보이니 케이스 안에 들어있는 실버 글리터가 훨씬 선명하게 보인다. 너무 예쁘다. 방 안에서 혼자 “너무 예뻐, 미쳤음, 어쩜 좋음”을 연발한다. 샤넬 넘버5를 흉내낸 향수병 디자인도 재치 넘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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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블링. 글리터 입자가 빛을 받을 때마다 눈 부시게 빛난다. 이게 뭐가 예쁘고, 뭐가 대단한지 잘 모르겠다고? 그래. 움직이는 걸 보여드리겠다.

글리터 케이스의 후면은 아주 얇은 이중 구조다. 그 안에 액체와 글리터가 함께 들어있어서 흔들 때마다 찰랑거리게 된다. 마치 스노우볼처럼. 글리터가 흔들리며 눈오듯 떨어지는 모습은 자꾸만 바라보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아마 여러분도 저 영상을 두세번 반복해서 보고왔겠지. 중독성이 있거든.

이 신기한 케이스는 미국의 CASETIFY에서 구입했다. 온갖 애플 관련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사이트로 유명하다. 아이폰 케이스는 물론 맥북 파우치, 애플워치 밴드까지 판매한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 한번 들어갔다가는 길을 잃게 될 정도다. 수많은 상품 중에서도 요즘 밀고 있는 건 내가 산 이 아이. 글리터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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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터 케이스도 후면 디자인에 따라 백여 가지를 판매 중이다. 나도 고르는데 일주일 걸렸다. 내부에 들어간 글리터 컬러도 네 종류나 된다. 로즈 핑크, 모노크롬 실버, 유니콘 파스텔, 골드 크롬. 아이폰이 어떤 컬러인지에 따라 어울리는 글리터가 달라지니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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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을 하며 놀라웠던 건, 상품 페이지에서 본인이 가진 아이폰 모델에 케이스를 피팅한 모습을 일일이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똑같은 케이스도 아이폰 바디가 골드냐 블랙이냐, 기본 모델이냐 플러스 모델이냐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는데 이걸 미리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것도 착용해보고 싶고, 저것도 대보고 싶고. 오프라인에서나 가능하던 경험을 웹에서 마음껏 누릴 수 있으니 실로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미스 퍼퓸 글리터 케이스의 가격은 45달러. 아이폰 액세서리치고 만만한 가격은 아니지만, 무료배송이었다. 전 세계 무료배송이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8일 만에 왔다. 꺄아.

하경화(@editor_ha)님의 공유 게시물님,

만나는 사람마다 내 케이스 너무 예쁘지 않냐며, 주책맞을 정도로 자랑하고 다녔다. 그리고 실제로 기분이 좋아졌다. 반짝거리는 것에는 분명 힘이 있다. 티파니가 아니더라도!

우울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방정맞게 끝내는 이 리뷰의 요점은 이거다. 때때로 불친절한 날에도, 즐거운 일은 모퉁이마다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의 경우엔 사소하고 가벼운 소비였다. 고작 물건 하나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알량하고 사랑스러운 일인가. 통장이 가벼워도 다음에 뭘 지를지 생각하는 여자. 에디터H의 취향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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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