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올가을, 광주에 가는 이유

가을 광주에는 트래킹 명소가 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이다. 정상인 천왕봉은 1966년 이후 딱 스물 다섯 번만 개방했다. 얼마 전...
가을 광주에는 트래킹 명소가 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이다. 정상인 천왕봉은 1966년…

2022. 10. 25

가을 광주에는 트래킹 명소가 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이다. 정상인 천왕봉은 1966년 이후 딱 스물 다섯 번만 개방했다. 얼마 전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정상이 열렸다. 황금 억새가 넘실대는 무등산을 오르기 위해 광주에 갔다. 마침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을 보다가 홍어 생각이 간절하던 참이었다. 아, 나는 객원필자 조서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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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중순의 북쪽은 겨울의 시작이지만 남쪽은 여전히 가을이다. 내려오길 잘했다. 광주는 전라도의 유일한 광역시다. 남도의 맛있는 게 모여 있을 게 분명하다. 산을 타고 몸을 쓴 다음 밥을 먹으면 기가 막힌 코스가 될 것이다. 낯선 도시에 가면 내가 아는 룰이 의미를 잃는다. 어느 동네에 맛있는 게 모여 있고 어딜 가서 놀아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그럼에도 내게 주어진 이틀의 주말에는 성공만 있었으면 했다. 마음과 달리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는 일은 어려웠다. 검색이 쉽고 간단할수록 진짜 정보는 숨는다. 이런 때는 옛날 방법을 쓰는 게 낫다. 현지 사람에게 소개를 받는 거다. 광주 여행을 위해 광주에서 태어났거나, 자랐거나, 대학과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을 찾았다. 그 결과 올가을 광주 여행은 아래와 같이 채워졌다.


무등산 때문에, 광주 무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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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시민은 복 받은 사람이다. 세계적 명산 무등산을 뒷산처럼 다닐 수 있으니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인구 140만 이상의 대도시와 해발 1000m 이상의 산이 맞닿아 있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날 트레킹을 함께 한 ‘친구1’은 대학 시절 매일 같이 무등산을 오르며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고 했다. 다행이 무등산은 높이에 비해 오르기 어려운 산은 아니다. 국립공원 기준 ‘쉬움-보통’ 수준의 평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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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화재청]

올해의 단풍은 10월 초 설악산에서 시작했다. 10월 말이면 남도 무등산까지 붉은 꽃길이 만들어질 것이다. 키가 큰 무등산에서는 남도에서도 가장 늦은 시기까지 단풍을 볼 수 있다. 11월 중순까지도 거뜬하다. 정상인 천왕봉에는 군 시설이 있어 1966년 이후 통제해 왔다. 10월에는 예약 인원 7,000명에게 하루만 무등산 정상을 개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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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김밥과 얼음물을 샀다. 공영주차장에서 중머리재까지 5.7km를 걷고 점심을 먹은 다음 정상까지 갈 생각이었다. 30분을 걷다 보니 수령 500년의 당산나무가 나왔다. 나무 아래 앉아 김밥 반 줄을 꺼내 먹었다. 중머리재에 도착하니 억새 밭을 배경으로 한 벤치가 나왔다. 앉아 있으니 사람들 얘기가 들렸다. 광주시가 최근에 정상 상시 개방을 논의했다고 한다. 군사 시설 일부를 옮기고 전망대 위치를 변경해 등산객 통행로를 확보한다는 계획. 결과는 올 연말쯤 알 수 있다. 이야기를 들으며 가을 바람에 김밥을 먹다 보니 몸이 나른했다. 편도 한 시간의 등산은 그냥 여기서 마무리했다.


육전 때문에, 광주 연화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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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저녁 식사를 위해 광주 상무지구로 이동했다. 최근 약 20년을 광주에서만 산 ‘친구2’가 식당을 골랐다. 들깻가루가 들어가 걸쭉하고 담백한 오리탕, 온갖 밥도둑을 맛볼 수 있는 남도 한정식, 튀김을 상추에 싸 먹는 상추 튀김 중 뭘 먹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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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전을 저녁으로 먹었다. 육전을 좋아하냐고 묻는 말에 머뭇거렸다. ‘육전…? 별론데.’ 광주에서 육전은 혼례와 제사에 꼭 포함되는 특별한 메뉴다. 질 좋은 소고기를 찹쌀가루와 계란을 입혀 기름에 부쳐 만든다. 광주에는 육전을 즉석에서 부쳐주는 전문 식당이 따로 있다.

세 명이서 4인분을 주문했다. 밑반찬과 함께 육전 한 접시를 먹고 나니 배가 불렀다. 만족스러운 식사였다고 생각하려는 찰나, 갓 구운 육전이 새로 나왔다. 4인분을 주문하면 먹는 속도와 양을 고려해 네 번에 걸쳐 육전이 나온다. 가장 맛있는 타이밍에 천천히 음식을 즐길 수 있다. 과연 품격 있는 도시, 광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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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전의 고기 부위는 지방이 거의 없다. 퍽퍽하진 않을까? 고기를 얇게 썰어서 계란을 입히면 담백하고 부드럽다. 육전 외에도 굴전, 전복전, 키조개전, 낙지전, 새우전, 더덕전 같은 게 있다. 다 육전처럼 바로 부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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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찬이 훌륭하다. 갈치 젓갈, 말린 풀치, 계란찜, 생선찌개, 해초무침, 알배추, 파절이, 콩고물 소금 같은 게 나온다. 쿰쿰하게 익은 묵은지를 물에 씻어 참기름을 발라서 주시는데 이걸 육전에 싸 먹으면 와. 낮에 반도 못 오르고 포기한 산은 생각도 안 난다. 여기가 정상이다. 육전을 먹고 식사를 주문하면 식사용 찬이 새로 나온다. 손으로 찢은 구운 김에 군내 나는 김치, 숭늉이 끝없이 들어간다. 연화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은 엄마가 광주에서 한정식집을 오래 운영했다고 한다. 좋은 걸 먹고 보고 자란 사장님의 좋은 솜씨다. 연화 식당은 룸만 있다. 예약하고 이용하는 게 좋다.

연화식당

  • 광주 서구 마륵복개로 147 아트빌
  • 062-384-1142
  • 육전 2만 7,000원, 보리굴비정식 2만 5,000원, 조기탕 2만 원

케이크 때문에, 광주 플레이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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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3’은 대학을 졸업하고 근처에서 일을 하는 내내 플레이 커피를 찾았다. 유럽 여행을 하는 동안 가족 선물은 안 샀지만 플레이 커피 사장님 선물은 샀다. 입에서 우유가 나오는 젖소 모양 우유 잔이다. 디저트 카페는 서울에도 많지만 ‘친구3’은 광주에 오면 꼭 이곳의 케이크를 먹었으면 했다.

플레이 커피는 커피감정사 남편과 일본 나카무라 제과학교 출신 파티쉐 아내가 운영한다. 온갖 종류의 커피를 다 판다. 에스프레소 기반, 콜드 브루, 드립백, 원두, 홈카페 용품까지 살 수 있다. 에스프레소 기반 음료로는 후추 커피, 땅콩 커피, 옥수수 커피 같은 게 있다. 그래놀라와 그릭 요거트까지 직접 만들어서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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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는 두 개의 층으로 되어 있다. 이용에 불편이 없을 정도만 깨끗하다. 특별한 인테리어는 아니다. 대신 공간을 채우는 향이 다르다. 디저트 굽는 냄새에 녹을 것 같다. 플레이 커피에는 계절마다 달라지는 케이크가 있다. 조각 케이크를 먹어보고 특별한 날에 홀 케이크로 주문해 가면 되겠다. 커피 만큼이나 디저트 메뉴도 많다. 체리 케이크를 추천 받고서 고민했다. 체리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한 입 먹으면 안다. 생 체리와 견과류, 초콜릿의 조합이 이렇다는 걸 배울 수 있다. 광주에서 나는 ‘또간집’ 풍자 만큼이나 나 자신을 모른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입은 계속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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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커피는 에그타르트로 유명하다. 하나에 3,000원이다. 4개 구매하면 11,000원에 박스 포장을 무료로 해준다. 에그타르트 대신 호두 타르트나 할라피뇨 베이컨 키쉬로 교차 구매도 된다. 매장은 애견 동반 가능이다. 플레이 커피에는 커다랗고 복실복실한 털을 가진 오드아이 ‘밀크’도 살고 있다.

광주 플레이 커피

  • 광주 서구 월산로 274 플레이B/D
  • 11:00 – 20:00 (월, 화 18:00까지)
  • 010-2480-2153

그리고 나머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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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커 감성의 가장 잘 아는 카페, 더스트하우스_ 거친 바이커들이 모일 만한 곳이다. 오토바이를 위한 크고 넓은 주차장이 있고 바이커를 위한 소품을 판매한다. 앉아 있는 동안 바이커들이 무리를 지어 들렀다 갔다. 으르렁대는 엔진 배기음이 연신 들리는 더스트하우스의 대표 메뉴는 부드럽고 달콤한 밀크셰이크.

  • 광주 동구 문화전당로23번길 6-7
  • 12:00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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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원의 우렁이 쌈밥, 산수쌈밥_ 신선한 반찬이 상을 채운다. 밥을 비우게 하는 짭짤한 젓갈이 아닌 데치고 버무린 채소류로 식사를 할 수 있다. 우렁이 쌈장은 장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우렁이가 빽빽하다. 매일 반찬 조합이 바뀌어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 광주 동구 동계로11 산수쌈밥 동명점
  • 10:30 – 20:30 (일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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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광주 극장_  1935년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이 세운 극장이다. 일제의 검열을 받으면서도 판소리나 창극단 공연을 상영하면서 항일정신을 이어 나갔다. 2003년부터는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예술 영화, 독립영화, 3세계 영화만 상영한다. 국내 실내 영화관 중 최다 좌석을 보여하고 있다. 856석이 한 방에 모여 한 영화를 본다.

  •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 46번길 10
About Author
조서형

아웃도어 관련 글을 씁니다. GQ 코리아 디지털 팀 에디터. 산에 텐트를 치고 자는 일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