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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와 빵을 찾는 순례길 – 1편

안녕, 에디터B다. 인류 최초로 고기와 빵을 함께 먹은 사람은 누구일까. 함께 먹어봐야겠다고 마음먹는 그 과정은 아주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빵은...
안녕, 에디터B다. 인류 최초로 고기와 빵을 함께 먹은 사람은 누구일까. 함께 먹어봐야겠다고…

2022. 09. 01

안녕, 에디터B다. 인류 최초로 고기와 빵을 함께 먹은 사람은 누구일까. 함께 먹어봐야겠다고 마음먹는 그 과정은 아주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빵은 오랫동안 인류의 주식이었고, 고기 또한 그랬기 때문이다. 좀 먹을 줄 아는 고대 이집트의 한 청년이 고기를 빵 사이에 끼워 넣어 먹는 걸 보고 그 방식이 입소문을 탔을 수도 있다. 2022년에도 여전히 고기와 빵은 인류의 주식이다. 차이가 있다면 어떤 고기냐, 어떤 빵이냐,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종류가 무한해진다는 것. 오늘은 고기와 빵을 사용한 음식을 파는 식당 다섯 군데를 소개하려고 한다. 사실 아홉 군데를 취재했는데 분량이 너무 많아서 2편으로 나누어 소개하려고 한다. 1편에서는 핫도그, 미트파이, 쿠반 샌드위치. 2편에서는 필리 치즈 스테이크, 미트파이, 버거, 샌드위치를 소개할 예정이다. 그럼 시작한다.


본매로우 핫도그,
투그 TO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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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그는 핫도그를 파는 와인바다. 물론 핫도그만 팔지는 않는다. 파스타, 스테이크, 치즈 플레이트 등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도 판다. 하지만 투그가 핫도그를 팔지 않았다면 내가 투그의 존재를 알긴 어려웠을 거다. 와인과 핫도그, 그 조합이 재미있어서 방문하게 되었으니까.

투그에서는 본매로우 핫도그를 판다. 본매로우는 소정강이뼈를 뜻한다. 본매로우도 처음, 본매로우 핫도그도 처음이었다. “본매로우 말고 추천할 만한 시그니처 메뉴는 없을까요?” 나는 본매로우 핫도그와 함께 다른 시그니처 메뉴를 먹어보고 싶었다. 셰프는 케러멀라이즈드 어니언, 태운 피망, 부티파라 등이 들어가는 카탈란 핫도그가 시그니처인데 현재는 재료 소진이라 어렵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본매로우와 클래식을 주문했다. 본 매로우 핫도그는 1만 5,000원. 클래식은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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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쟁반 위에 핫도그 하나가 올려져 나왔다. 야구장에서나 볼 법한 핫도그가 고급스러운 식기 위에 고스란히 플레이팅된 모습이 생경하다. 추리닝에 바람막이만 입고 다니던 친구가 어느 날 면접을 보고 왔다며 수트를 차려입은 느낌. 이것 또한 어울린다. 셰프는 골수가 뜨거우니 직접 핫도그 위에 올려주겠고 했다. “잠시만요, 사진 촬영 몇 컷만 하고요” 재빨리 다섯 컷 정도를 찍었다. 촬영이 끝나자 셰프는 숟가락으로 뼈를 긁어 골수를 핫도그 위에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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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매로우의 맛이 궁금해서 살짝 먹어봤다. ‘무슨 맛일까, 사골 같기도 하고? 도가니탕 같기도 하고?’ 쿰쿰한 맛이 나는데 그 향이 엄청 강렬하진 않았다. 사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익숙한 맛이다. 곰탕을 만들 때 소고기 뼈를 우려서 먹으니까. 외국에서는 뼈를 우리지 않고 구워서 먹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본매로우를 먹었을 때 종로3가 어딘가의 도가니탕이 생각났는데, 골수가 뿌려진 핫도그를 함께 먹으니 다르긴 달랐다. 본매로우는 일종의 각성 재료로 사용된 듯했다. 내가 아는 칠리소스에 육수 한 방울 첨가되면서 전체적인 맛을 한 단계씩 각성시킨다. 소시지 자체의 맛도 궁금해서 소스를 닦아서 먹어봤다. 맛있다. 하지만 소스와 토핑이 강렬하다 보니 함께 먹을 땐 소시지 맛이 미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지금껏 내가 아는 핫도그는 빵과 소시지가 주인공인 음식이었다. 핫도그 위에 각종 소스를 뿌리지만 소스가 메인이 되지는 않았다. 소스는 소시지를 더 맛있게 먹기 위한 서포터 역할일 뿐이었는데, 본매로우 핫도그는 토핑이 주인공처럼 보였다. 비프 칠리소스, 체다 치즈 소스의 역할이 상당하다.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핫도그의 넓은 세계를 잘 몰랐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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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핫도그에는 이탈리안 펜넬, 스타우트 케첩, 버번 머스타드, 크리스피 어니언 칩이 들어갔다. 케첩과 머스타드에서 느껴지는 신맛이 강했고, 크리스피 어니언 칩 덕분에 식감이 재미있다.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본매로우를 먹고 난 다음에 먹어서 강렬한 임팩트를 느끼지 못했다. 클래식부터 먼저 먹어볼 걸 그랬다. 본매로우를 맛볼 수 있는 곳이 흔치는 않으니 투그에 간다면 본매로우 핫도그 한 번 먹어보는 걸 권한다.

투그

  • 서울 성동구 성수이로14길 5 1층
  • 월-일 12:00-22:00

칠리 치즈 갓도그,
알고 al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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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는 어린이대공원역 근처에 있다. 가게 분위기는 성수동, 연남동, 압구정동에 있는 공간과 확실히 다르다. 핫플이 아닌, 대학가에 오랫동안 장사하면서 단골들의 추억이 쌓인 아지트 같은 감성이 있다. 네온 보드마카로 쓴 블랙보드의 글씨가 그렇고, 화장실 벽을 가득 채운 포스트잇 낙서가 그렇다. 포스트잇을 하나씩 코팅해서 화장실 벽에 가득 붙여 놓았는데 메모 하나하나가 영화 같다. “오빠, 연락 줘”, “기다릴게 OO아” 이런 말들. 프리스타일의 Y가 배경 음악으로 깔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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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맛있으려면 버금가는 술이 필요하다. 알고는 수제 맥주에 꽤나 정성을 들이는 곳이다. 인스타그램 @algo_sausage_official에서 탭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는데, 8월 26일 기준으로는 히든트랙의 저먼 수플렉스, 맥파이의 무진기행, 톰브로이의 로겐 등 일곱 가지 종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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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메뉴 ‘칠리치즈 핫도그’와 신메뉴 ‘불고기 핫도그’를 시켰다. 핫도그를 주문할 땐 소시지를 고를 수 있는데 칠리치즈 핫도그는 카바노치(독일식 훈연소시지)로, 불고기 핫도그는 링귀사(포르투갈식 매콤훈연소세지)로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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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은 강렬하지만 막상 먹어보면 블랙홀처럼 모든 맛을 빨아당기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고 투 헬’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얼굴에 피어싱을 한 사람이 토스 적금을 성실하게 넣는 느낌이다. 강렬한 비주얼에 비해 맛은 예의 바르고 점잖다. 토핑 아래를 보면 양배추, 당근, 옥수수로 구성된 코울슬로가 있다. 이게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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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평범하게 느끼할 수 있는 맛을 코울슬로가 잡아준다. 칠리 치즈, 불고기 둘 다 맛있었는데, 불고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불고기에서 단맛이나 양념맛을 좀 약하게 한 느낌이었다. 이것도 전체적인 맛의 밸런스를 위해 불고기의 맛을 일부러 누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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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들고 먹어도 되긴 하는데 한입에 넣어 먹기엔 사이즈가 큰 편이다. 잘라서 먹는 게 좋다. 투그에서처럼 여기서도 소시지를 따로 먹어봤다. 소시지가 정말 맛있다(보성녹돈으로만 소시지를 만든다고 하더라). 핫도그만 먹고 가기엔 소시지가 너무 맛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방문할 땐 소시지 플레이트를 주문해서 먹어봐야겠다.

알고

  • 서울 광진구 광나루로17길 10 2층
  • 월-토 12:00-23:00(일요일 휴무)

남아공식 미트파이,
파이리퍼블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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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에는 의외의 해외 음식을 파는 곳이 있다. 그것도 한국식으로 타협하지 않은 음식을 파는 식당이. 내가 아는 곳만 해도, 말레이시아 음식점 아각아각, 페루 음식점 리마, 러시아 음식점 부퓌에트발랴가 있다.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곳은 남아공식 미트파이를 파는 곳이다. 외국인이 서빙을 하고, 음식이 한국화되지 않은 곳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음식이 꽤 늦게 나온다. 성격 급한 한국인들이 기다리기엔 조금 답답할 수 있다. 파이리퍼블릭도 그랬다. 오픈하자마자 방문해서 손님이 거의 없었는데, 미트파이 하나 나오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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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리퍼블릭은 남아공식 미트파이를 파는 식당이다. 나는 한국어가 서툰 한 외국인 직원에게 남아공식 미트파이가 뭔지 물었다.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 직원이 다른 직원을 손짓으로 불렀다. 나는 다시 물었다. “음…영국식 미트파이, 호주식 미트파이 어떤 것과 비슷해요?” “아, 호주식 미트파이랑 비슷해요.” 문제는 내가 호주식 미트파이와 영국식 미트파이의 차이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미트파이의 유래는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대 미트파이의 뿌리는 영국으로 본다. 영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로 퍼졌고, 지금은 남아프리카,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에서 많이 먹는 음식이 됐다. 미트파이에는 기본적으로 다짐육, 그레이비소스가 기본으로 들어가고, 호주 사람들은 케첩을, 영국 사람들은 브라운 소스를 찍어 먹는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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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지막한 고기가 가득 들어있다. 고기의 양이 많아서 놀랐고, 덩이가 커서 한 번 더 놀랐다. 내가 주문한 램파이는 양고기 냄새가 진하지 않았다. 양고기를 잘 못 먹는 사람도 거부감 없이 먹을 정도로 은은했다. 램파이를 주문하면 그레이비소스가 함께 제공되는데, 그 조화가 정말 좋다(다음에는 케첩 없는지 물어봐야겠다). 소스에 찍어 먹으니 두 배는 더 맛있어진다. 그레이비소스나 각종 향신료 때문에 한국인의 밥상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가 외국이고, 여기가 케이프타운이다.

파이리퍼블릭

  • 서울 마포구 양화로23길 10-10 지하 1층
  • 화-일 11:30-21:00(월요일 휴무)

쿠반 샌드위치,
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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탬파는 2015년에 연남동에서 문을 연 샌드위치 전문점이다. 그리고 현재는 도산공원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연남동에 있을 때도 구경만 하고 가보지 않았는데, 취재를 핑계로 7년 만에 방문하게 됐다. 탬파는 내가 모르는 사이 많은 매체에서 실력을 증명한 것 같다. 국제 쿠반샌드위치 페스티벌에 참여해서 2017년, 2018년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다. 탬파는 플로리다 탬파에서 시작된 쿠반 샌드위치와 함께 미국 남부식 음식과 맥주를 파는 곳이다. 나는 오직 쿠반 샌드위치를 먹기 위해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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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샌드위치는 <아메리칸 셰프>를 보고 처음 알았다. 가족과 소원해지고, 나락으로 떨어진 셰프가 아들과 함께 쿠반 샌드위치를 만들며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이름은 쿠반 샌드위치이지만 쿠바와는 관련이 없다. 몽골리안 비프가 몽골 음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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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짜거나 느끼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았다. 땀을 많이 흘린 노동자들이 먹던 샌드위치라고 해서 짭조름한 맛이 특징이라고 들었는데, 간이 그 정도는 아니었다. 주로 느껴지는 맛은 돼지고기의 맛. 짭조름한 살라미와 부드러운 식감을 가진 모조포크의 조화가 좋다. 모조포크는 돼지고기를 라임, 올리브, 큐민, 오레가노와 함께 숙성시킨 고기다. 보통은 어깨살이나 목살을 사용한다고 한다. 든든하고 건강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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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트는 바삭바삭한 표면이다. 겉을 힘껏 눌렀기 때문에 밀도 높은 바삭함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먹은 건 탬파 쿠반 샌드위치인데 이외에도 마이애미 쿠반 샌드위치, 서울 쿠반 샌드위치, 필리 치즈 스테이크까지 있으니 친구와 함께 가서 나눠서 먹어보는 걸 추천한다.

탬파

  • 서울 강남구 언주로168길 5 1층 탬파
  • 화-일 11:30-22:00(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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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