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봄, 문밖을 나서려는 캠퍼에게

안녕. 들판이 보이면 공을 차고 싶고, 산이 있으면 오르고 싶고, 길이 나오면 자전거를 타고 싶은 객원필자 조서형이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안녕. 들판이 보이면 공을 차고 싶고, 산이 있으면 오르고 싶고, 길이 나오면…

2022. 04. 12

안녕. 들판이 보이면 공을 차고 싶고, 산이 있으면 오르고 싶고, 길이 나오면 자전거를 타고 싶은 객원필자 조서형이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하루 종일 밖에서 걷고, 뛰고, 먹고, 마시고, 지치면 그대로 잠들고 싶은, 바로 봄! 곁에 있을 땐 소중한 줄 모르다가 떠나고 나면 뒤늦게 ‘아, 그때가 좋았는데’ 하는 게 인간이지만, 이 계절은 하루하루 믿을 수 없이 소중하다. 선선한 아침 공기, 겉옷을 벗게 하는 따사로운 한낮의 햇살, 느릿느릿 지는 너그러운 해까지 아,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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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이 세계를 휩쓰는 3년 동안, 아웃도어 활동은 오히려 붐이었다. 웃돈을 주고도 텐트를 구하기 어려웠고, 주말 캠핑장 예약은 신입생의 수강 신청처럼 속도를 다퉈야 했다. 누군가는 이 소용돌이 속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갔는가 하면, 누군가는 멀찍이 서서 지켜보기만 했을 것이다. 자신의 성격과 취향과 배경과 상황과 그 밖의 경우의 수를 곰곰이 살펴 가면서.

그동안 흠, 나도 캠핑 한 번 해볼까? 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이 적기다. 봄은 최소한의 장비로 최대의 효율을 뽑아낼 수 있는 위대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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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B로부터 올봄에 캠핑을 시작하려는 사람을 위한 가성비 아이템을 추천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당장 이것만 있으면 누구든 캠핑 갈 수 있다템’으로 말하자면, 대충 텐트, 매트, 침낭, 랜턴, 버너 정도가 있다. 다만 이를 한 번에 갖추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백만 원은 있어야 하고, 나한테 맞는 제품을 한 번에 고르기도 어렵다. 특히 텐트나 침낭, 매트 같은 핵심 아이템은 가격 부담도 크다. (고르는 법을 적어둔 기사가 따로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이왕이면 첫 캠핑은 지인 텐트에 꼽사리 껴서 경험해 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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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는 아이템은 ‘시작점에서 고민 없이 사도 좋을’ 물건들이다. 활용도가 높고, 잘 망가지지 않아 중복 구매를 막을 수 있고, 친구 텐트에 맨몸으로 신세를 지는 일을 덜 면목 없게 할 것이다. 새 취미에 진입하려는 자에게 선물로 건네기에도 딱이다. 심지어는 캠핑을 하지 않더라도 유용한 아이템이다.


[1]
“시야 확보를 위해”
골제로 라이트하우스 & 크레모아 헤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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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함께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고 싶어’라는 고백을 할 때, 나는 랜턴을 선물한다. 조명은 대부분의 아웃도어 활동에 필요하며, 이왕이면 각자 휴대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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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제로’라 불리는 이 제품의 풀네임은 ‘골제로 라이트하우스 마이크로 플래시’. 직구로 사면 대충 삼만 원쯤 하는데(직구 링크는 여기) , 기능이 아주 야무지다. 버튼 하나로 은은한 랜턴 모드와 강하고 또렷한 플래시 모드를 바꿔가며 작동할 수 있고, 최대 170시간 불을 밝힌다. 제품 아래에 충전 포트가 있어서 번번이 충전기를 찾지 않아도 된다. 최근 국내 정식 수입처가 생겼다. 국내 구매처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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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모아는 아웃도어 조명계에 이미 굳건히 자리를 잡은 국내 브랜드다. 헤드랜턴인 헤디2는 깜깜한 숲에서도 80m 앞을 훤히 비추는 350루멘의 밝기를 자랑하며, 랜턴 각도가 조절되어 머리 위에서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 클립이 함께 들어 있어 헤어 밴드 없이 모자나 백팩에 고정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구매는 여기.


[2]
“맺고 끊는 일의 깔끔함”
오피넬 8VRI & 토리베 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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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빵칼, 맥가이버 주머니칼, 주방 가위, 캠핑용 칼을 거쳐 자를 게 없는 재료만 챙겨 다니기에 이르렀다. 헤매는 내내 적당한 (작고 가벼우면서 날카롭고 예리한) 녀석을 찾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껍질이 질긴 빵을 잘라 먹거나, 포장지를 뜯을 때마다 그랬다. 나 대신 주변에 제대로 정착한 캠퍼들에게 칼과 가위 하나씩을 추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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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넬은 1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프랑스의 칼 브랜드다. 1번부터 12번 제품까지 사이즈, 형태, 소재, 디자인이 다양해 여기 제품을 모으는 사람도 있다. 주로 6번을 많이 사용하고, 손이 큰 경우엔 8번도 많이 찾는다. 날은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이며, 손잡이는 고급 원목으로 만들었다. 안전링을 돌려 칼날을 꺼내고, 사용할 때는 다시 링을 닫아 고정하는 식이다. 접이식 칼인 만큼 과하게 힘을 주면 위험하다. 구매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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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베 가위는 캠핑 가위를 검색했을 때 가장 많이 등장한다. 그토록 헤매며 캠핑용 가위를 사고 또 샀는데, 이제야 알게 되었다니 믿을 수가 없을 정도다. 제품 전체가 스테인리스인 데다 날이 분리되기 때문에 접합부가 녹이 슬거나 음식물이 끼지 않아 위생적이다. 한 번만 써보면 그 서걱서걱 서늘한 절삭력이 잊히지 않는다. 찐득찐득한 찰떡도 묻어나지 않고 깔끔하게 잘려 나간다. 껍질이 딱딱한 꽃게나 새우 손질에도 무리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날이 짧아 수납도 덜 부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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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장인이 수작업으로 만드는 섬세한 제품으로, 약 8만 원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그래도 최적의 가위를 찾느라 서너 번 새로 사는 것보다는 저렴하다. 구매는 최저가 검색을 추천한다.


[3]
“집 밖의 얌얌 박사”
바우루 샌드위치 메이커 & 백마 왕초 언니 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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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길로 살짝 이동한 김에 본격적으로 먹는 얘기를 해볼까 한다. 이 두 가지 팬만 있으면, 캠핑에서 그럴듯한 식사를 할 수 있고, 자기 텐트로 나를 초대해준 친구에게 멋진 밥 한 끼를 차려 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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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와 간식을 만들 때 추천하는 건 샌드위치 메이커다. 팬에 버터를 한 조각 넣고, 식빵을 올리고, 치즈나 토마토소스, 옥수수 알갱이나, 슬라이스 햄 등 좋아하는 재료를 넣은 다음 식빵을 하나 더 얹는다. 꿀이나 초코 스프레드처럼 단 게 들어가면 맛이 더 풍부해진다. 약불에 양면을 2분씩 돌려가며 구우면 기가 막힌 토스트 완성.

1400_bawloo [바우루 공식 홈페이지]

이 간단하고도 대단한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한 장비로 ‘바우루’를 추천한다. 바우루(Baw Loo)를 처음 본 건 성수동의 편집숍 프라이데이 무브먼트였다. 제품과 음식을 동시에 팔기에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바삭, 하고 배어 물자 따뜻한 치즈가 울컥하고 넘어왔다. 그 순간 제품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바우루’라는 이름은 도구를 사용해 빵을 맛있게 먹을 줄 알았던 브라질 바우루의 대학생으로부터 시작했다. 여행을 하던 일본인은 그 도구를 가져다가 팔았고, 지금은 이탈리아 상사에서 전개하고 있다. 근데 외국 제품이라 배송비를 떠안아야 한다는 데서 고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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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뭐로 눌러도 맛있겠지 싶어서 바우루의 1/3 가격인 콜맨의 샌드위치 메이커를 샀다. 양쪽 팬의 아귀가 잘 맞지 않았다. 빵에 랜턴 모양 불도장이 찍히는 건 좋지만, 접합 부위가 늘 덜그럭거린다. 집 밖에서 직화로 뜨거운 샌드위치를 먹고 싶다면, 바우루를 사는 걸 추천한다. 바우루 구매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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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얘기만 이렇게 설명이 길어지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백마 팬 설명을 넘어갈 수는 없다. 갖은 팬과 냄비를 금지옥엽 써봤지만, 백마의 왕초 언니 냄비 같은 건 없었다. 백마는 1989년부터 ‘백마 아웃도어’라는 이름으로 코펠을 만들어 온 국내 브랜드다. 집 밖에 뜨거운 물과 세제가 늘 있을 수는 없다는 걸 이해하듯, 백마의 식기는 너그럽다. 블랙티 타늄 코팅 소재로 만들어 기름이나 소스가 불 위에서 지글지글 끓고 눌어붙어도 휴지나 종이 타월로 삭- 닦인다. 0.9L부터 2.8L까지 열 종류 사이즈가 있고, 나는 라면 두 개를 넉넉하게 끓일 수 있는 1.6L를 샀다. 가격은 7만 6,000원이며, 종종 B급 상품이 풀리니, 이때를 노리는 게 좋다. 구매는 여기.


[4]
“공기의 흐름을 컨트롤”
플렉스테일 기어 타이니 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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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잠자리를 위한 에어 매트는 어떻게 구했다 치자. 혹시 그걸 입으로 불 생각은 아니겠지? 튜브 불듯 입을 대고 공기를 주입하면 매트 내부에 침이 들어가 제품이 망가진다. 요즘 같은 때 어울리지 않는 비위생적인 행동이기도 하고. 파우치에 공기를 담아 끙끙거리는 게 귀찮아서 에어 매트를 빼놓고 갔다가 밤새 뒤척인 날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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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 캠퍼에게 추천받은 플렉스테일기어의 펌프는 매우 작다. 무게가 90g이 채 되지 않는다. 빠르고 조용하게 매트를 부풀리고, 깔끔하게 공기를 빼주기도 한다. 덜 마른 장작에 불을 붙일 때도 도움이 된다. 어지럽도록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는 대신 쿨하게 펌프를 작동시키면 된다. 매트별 주입구가 제품에 동봉되어 오기 때문에 시중 제품 대부분을 호환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다. C 타입 충전에 소소한 랜턴 기능도 있다. 구매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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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캠핑을 시작한다면 자기 의자와 식기, 컵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좋다. 배달 주문을 하고 받은 일회용 식기와 종이컵은 아름다운 봄날 캠핑 뷰를 순식간에 무너뜨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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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관련 콘텐츠에는 으레 이런 말이 등장한다. “캠핑에 불멍이 빠질 수 없죠?” “캠핑은 먹으러 가는 거니깐요. 삼겹살은 필수죠.” 그렇지만 ‘필수’라는 건 없어서는 안 될 아이템이고, 오늘날의 캠핑은 생존보다는 여가 시간에 가깝다. 뭐든 없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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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친구에게 먹을 걸 사줘 가며 살살 꼬셔 텐트의 한자리를 얻자. 한두 번은 담요를 둘둘 말고 밤을 지새우다가 그다음부턴 추천받은 제품 위주로 검색해가며 장비를 늘려나가면 된다. 텐트, 매트, 침낭, 조명에 타프, 테이블, 의자, 식기, 버너 등을 추가하는 식이다. 하나씩 사서 써 보고 아이템을 더하고 빼는 게 캠핑의 재미다. 당신이 이 계절 캠핑을 시작할 생각이라면, 무리하지 않아도 좋다. 봄은 시작하려는 당신에게 그럭저럭 온화한 계절이다. 온통 얼어붙거나 죄다 녹아내릴 일은 없으니 마음 놓고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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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형

아웃도어 관련 글을 씁니다. GQ 코리아 디지털 팀 에디터. 산에 텐트를 치고 자는 일을 좋아한다.